재즈와 좀 더 가까워지는 시간 재즈 입문자에게 권하는 스탠다드 재즈&레전드 연주

📌필진 소개: 기획자, 연구자, 그리고 댄서 윤정한입니다. 런던에 살며 실험 음악, 즉흥 음악, 프리 재즈를 비롯한 음악을 다루는 공연장에서 일하고, 영국/런던 재즈를 매개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는 박사 과정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잘쓸레터에서 5월부터 열리는 재즈페스티벌 라인업과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들을 소개해드렸어요. 함께 알려드린 재즈 클럽에 직접 다녀온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페스티벌과 클럽에서 재즈와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지셨다면, 오늘은 재즈의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탠다드 재즈’와 대표곡들을 함께 알아보려고 해요. 그 전에, 제가 어쩌다 재즈를 업으로 삼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살짝 들려드릴게요. 


2017년 여름, 뉴욕의 재즈 클럽 ‘Smalls’에서 기타 연주자 피터 번스타인(Peter Bernstein)이 참여하는 공연이 열리는 날이었어요. 그날 공연은 저녁에 두 차례 이어졌고, 저는 첫 번째 공연을 보러 갔어요. 그곳에서 저는 막연히 상상하던 ‘이상적인 재즈’를 처음 마주했어요. 

재즈 클럽에 서서 공연을 자유롭게 관람하는 관객들 ⓒ정한


공연은 무척 만족스러웠어요. 들뜬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가려 지하철역까지 갔다가, 문득 피터 번스타인의 공연을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공연장으로 발길을 돌렸고, 두 번째 공연까지 감상했죠. 그날 이후 저는 재즈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 음악과 더 깊이 엮이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재즈를 배우고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아마 많은 분들에게 재즈가 완전히 낯선 음악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일상에서 재즈를 꽤 자주 만나요. 한 번쯤 음반을 사거나 공연에 가보았을 수도 있고요. 영화 <위플래쉬>나 <라라랜드>에서, 카페의 배경 음악에서, 또는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와 멜 토메(Mel Tormé)의 시상식 장면에서 탄생한 밈을 통해 재즈를 접해 보셨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막상 “재즈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려면 어쩐지 망설여지지 않나요? 재즈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일 거예요. 


재즈는 클래식 음악처럼 어릴 때부터 교과서로 접하는 음악이 아니죠. 가요처럼 다양한 미디어에서 다뤄지지도 않아요. 막상 재즈에 관해 알아보려고 검색해 보면, 정보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요. 그래서 재즈에 관심이 생겼다가도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처음 재즈에 흥미를 느끼고 탐구하려 했을 때, 바로 그 불친절함 때문에 아쉽고 어려웠어요. 그래서 오늘은 재즈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분들, 또는 이 글을 계기로 재즈를 한 번 들어보고 싶은 분들께 작은 안내를 드리고 싶어요. 어디까지나 제 경험에 기반한 주관적인 이야기들이니 부담 없이 읽어주세요. 재즈 이론이나 역사를 깊게 파고들기보다, 재즈가 대략 이런 음악이구나 하는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니 함께 준비한 재즈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느긋한 마음으로 즐겨보시길 바랄게요.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본 것 같은 그 음악, 재즈 스탠다드(Standard)부터 시작하기

재즈는 한 시점에 고정된 음악이 아니라, 계속 변하는 음악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죠. 재즈 뮤지션들은 새로운 생각과 접근을 끊임없이 시도하거든요. 이런 시도 덕분에 재즈는 지금도 살아 있는 음악으로 남아 있어요.


다만 재즈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최근 재즈 음반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조금 뻔해 보여도, 처음에는 스탠다드부터 들어보시길 권해요. 익숙한 선율이 많아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이에요.


다만 재즈 스탠다드에 절대적인 정의나 고정된 목록이 있는 건 아니에요. 재즈 스탠다드로 불리는 곡 중에는 뮤지컬 넘버, 대중가요, 영화음악, 클래식 음악에서 출발한 곡도 있어요. 재즈는 수많은 곳에서 영향을 받아 왔어요. 지금도 새로운 곡들이 스탠다드에 더해지고 있어요. 여러분이 요즘 좋아하는 곡을 재즈 연주자들이 즐겨 찾는다면, 그 곡도 언젠가 재즈 스탠다드가 될 수 있어요.


스탠다드는 재즈의 매력이자 특징 중 하나인 ‘즉흥 연주’가 가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재즈 뮤지션은 상당히 많은 스탠다드 곡들의 선율과 코드 진행을 외우고 있어요. 우리가 언어라는 약속 덕분에 처음 만난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듯, 뮤지션들도 스탠다드라는 공통의 틀 안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재즈를 듣는 사람도 뮤지션끼리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알면 그 대화에 참여해 같이 즐길 수 있겠죠. 스탠다드 곡을 알아가는 시작점으로 추천하고 싶은 몇 곡을 골라봤어요.

캐넌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의 ⟪Somethin’ Else⟫ 커버, Thelonious Monk의 타임지 커버 

  • Autumn Leaves
    재즈는 여러 계절 중에서도 가을과 자주 묶여요. 그 이유 중 하나는 가장 유명한 재즈 스탠다드 중 하나인 <Autumn Leaves>의 영향일 거예요. 


    <Autumn Leaves>의 시작은 프랑스 발레 음악이에요. 작곡가 조제프 코스마(Joseph Kosma)는 롤랑 프티(Roland Petit)의 발레 <Le Rendez-vous>를 위한 음악에서 이 곡의 선율 일부를 먼저 선보였어요. 이후 시인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의 가사가 붙으면서 <Les feuilles mortes>라는 노래가 태어났어요. 직역하면 ‘죽은 잎’이라는 뜻이에요. 영화 <Les Portes de la nuit>에 쓰인 이 노래는 영어로 번역되며 <Autumn Leaves>라는 제목을 얻었고, 가을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어요. 
많은 재즈 뮤지션이 <Autumn Leaves>를 연주했기 때문에 훌륭한 녹음본이 넘쳐흘러요. 제 추천은 색소폰 연주자 캐넌볼 애덜리의 음반 ⟪Somethin’ Else⟫에 실린 <Autumn Leaves>예요. 곡의 여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건조한 트럼펫 소리는 자연스럽게 마른 낙엽을 떠올리게 해요. 이 음반을 위해 모인 최고의 연주자들이 흠잡을 데 없이 곡을 완성하는 걸 한번 들어보세요. 언제 들어도 좋은, 훌륭한 스탠다드 연주의 표본이에요.

  • I Fall in Love Too Easily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라는 이름은 재즈가 낯선 분들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 곡은 프랭크 시나트라가 출연하고 노래한 영화 <Anchors Aweigh>에 등장해요. 당시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로도 올랐지만, 함께 후보에 오른 또 하나의 재즈 스탠다드 <It Might as Well Be Spring>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어요.

    곡 제목 그대로 영화의 등장인물이 순식간에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진 상황에서 부르는 노래예요. 애타고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이 손꼽히게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 목소리가 들어간 곡보다 악기 연주만으로 이뤄진 곡을 더 좋아해요. 하지만 예외가 있어요. 사랑을 말하는 쳇 베이커(Chet Baker)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언제나 특별해요. 쓸쓸하면서도 서정적인 쳇 베이커의 목소리와 트럼펫 소리는 서로 닮아 있어요. 그 목소리와 트럼펫으로 이 곡을 만날 수 있는 음반 ⟪Chet Baker Sings⟫를 추천해요. 

  • Someday My Prince Will Come
    부활의 <Never Ending Story>의 도입부 피아노 반주에 차용된 음악이 바로 <Someday My Prince Will Come>예요. 이 곡은 디즈니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위해 만들어졌어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음악과 재즈는 꾸준히 가까운 관계를 맺어 왔어요. 설립자 월트 디즈니가 재즈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어요. 제목은 몰라도 들으면 익숙한 <Take Five>를 만든 데이브 브루벡(Dave Brubeck)은 ⟪Dave Digs Disney⟫라는 음반을 발매했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노키오>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온 음악만으로 구성한 재즈 음반이에요. 디즈니 음악과 재즈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사례예요. 
빌 에반스의 음반 ⟪At the Montreux Jazz Festival⟫에서 이 곡을 들으면, 상상 속에서 백설공주의 성이 조금씩 완성되는 듯해요. 재즈 음반에는 공연 실황을 녹음한 음반도 많아요. 스튜디오 음반과 공연 실황 음반이 어떻게 다른지 느껴볼 수 있는 음반이기도 해요.

  • Caravan
    영화 <위플래시>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폭발하듯 연주하는 곡이에요. 다른 용도의 음악이었다가 재즈 스탠다드가 된 앞선 세 곡과는 달리, 후안 티졸(Juan Tizol)과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이 처음부터 재즈 곡으로 만든 음악입니다.


    <위플래시>에는 <Caravan>과 <Whiplash>라는 스탠다드 곡이 등장해요. 감독은 영화에 두 곡을 넣은 이유로, 애증의 관계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투영했다고 밝혔어요. 드럼 연주자였던 감독 본인이 이 곡들로 인해 괴롭고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잘 연주하고 싶었던 이야기를요. 그만큼 높은 수준의 드럼 연주가 나오는 곡이라 재즈 드럼에 더 집중해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추천 음반은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의 쫀득한 드럼을 즐길 수 있는 Art Blakey and the Jazz Messengers(아트 블레이키 앤 더 재즈 메신저스)의 ⟪Caravan⟫입니다.

  • Round Midnight
    앞서 소개한 곡들과 가장 이질적인 음악일 거예요. 재즈 뮤지션마다 고유한 스타일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고 싶다면, 이 곡을 만든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음악을 들어보세요. 그는 뚜렷한 개성으로 혁신적인 음악을 선보였지만, 당시에는 괴짜 취급을 받으며 오랫동안 비주류에 머물렀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셀로니어스 몽크는 재즈가 더 깊은 예술성을 지닌 다음 단계의 음악으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64년 ⟪타임⟫이 셀로니어스 몽크를 표지에 실은 일은, 그가 새로운 재즈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어요. 현대 음악가들도 자신들의 음악에 셀로니어스 몽크로부터 받은 영감을 언급하는 경우가 꽤 많아요. 그의 영향은 시대를 건너 이어지고 있어요. 
  • 이 곡은 작곡가의 손을 떠난 후 다른 뮤지션들에 의해 점진적으로 완성된 곡이기도 해서, 여러 음반을 들어보셨으면 해요. 우선 세 개의 음반, 셀로니어스 몽크의 ⟪Genius of Modern Music, Vols. One & Two⟫,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의 ⟪The Fabulous Dizzy Gillespie Pleyel Jazz Concert 1948⟫,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es)의 ⟪’Round About Midnight⟫을 차례로 들으면 이 곡이 초기에 어떻게 변해갔는지 따라가는 재미가 있어요. 

재즈 스탠다드는 연주자, 악기, 상황에 따라 끝없이 다시 태어나요. 같은 제목의 곡이 3분일 수도, 20분일 수도 있어요. 서정적일 수도 있고 격정적일 수도 있어요. 저는 처음 재즈를 접하던 시절, 더 알고 싶은 스탠다드를 발견하면 그 곡의 녹음을 최대한 많이 모았어요. 곡이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들었어요. 제가 어떤 뮤지션과 악기를, 어떤 스타일의 연주를 좋아하는지 취향을 찾고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죠.


스탠다드를 익힐 때 저에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먼저 보컬 녹음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었어요. 프랭크 시나트라,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피츠제럴드, 쳇 베이커가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부른 녹음을 듣고 선율을 익히면, 같은 곡이 연주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훨씬 쉽게 느낄 수 있어요. 저도 여전히 모르는 스탠다드가 많고, 알고 싶은 새로운 곡을 만나면 아직도 이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저는 스탠다드를 찾다가 음반 전체를 듣고, 거기서 또 다른 곡이나 연주자를 발견하는 식으로 재즈를 넓혀갔어요. 피아노 음반을 듣다가 참여한 드럼, 베이스, 관악기 연주자의 작업을 따라가는 식이었죠. 


음악과 뮤지션은 무궁무진해요. 소개해드린 음악, 뮤지션, 음반에서 하나씩 나아가 보세요.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음악을 찾을 수도 있어요. 재즈를 듣는 나만의 즐거움도 생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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