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 딱 한 뼘 가까워지는 법 재즈 입문자에게 권하는 곡, 클럽, 뮤지션, 페스티벌 모음집

📌필진 소개: 기획자, 연구자, 그리고 댄서 윤정한입니다. 런던에 살며 실험 음악, 즉흥 음악, 프리 재즈를 비롯한 음악을 다루는 공연장에서 일하고, 영국/런던 재즈를 매개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는 박사 과정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2017년 여름, 저는 아직 재즈의 주변을 기웃거리던 사람이었어요. 뉴욕의 재즈 클럽 ‘Smalls’에서 기타 연주자 피터 번스타인(Peter Bernstein)이 참여하는 공연이 열리는 날이었어요. 그날 공연은 저녁에 두 차례 이어졌고, 저는 첫 번째 공연을 보러 갔어요. 그날 저는 막연히 상상하던 ‘이상적인 재즈’를 처음 마주했어요. 


공연은 무척 만족스러웠어요. 들뜬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가려 지하철역까지 갔다가, 문득 같은 공연을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공연장으로 발길을 돌렸고, 두 번째 공연까지 감상했죠. 그날 이후 저는 재즈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 음악과 더 깊이 엮이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재즈를 배우고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아마 많은 분들에게 재즈가 완전히 낯선 음악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우리는 일상에서 재즈를 꽤 자주 만나요. 한 번쯤 음반을 사거나 공연에 가보았을 수도 있고요. 영화 <위플래쉬>나 <라라랜드>에서, 카페의 배경 음악에서, 또는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와 멜 토메(Mel Tormé)의 시상식 장면에서 탄생한 밈을 통해 재즈를 접해 보셨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막상 “재즈를 좋아해요”라고 말하려면 어쩐지 망설여져요. 재즈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일 거예요. 


재즈는 클래식 음악처럼 어릴 때부터 교과서로 접하는 음악이 아니죠. 가요처럼 다양한 미디어에서 다뤄지지도 않아요. 막상 재즈에 관해 알아보려고 검색해 보면, 정보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요. 그래서 재즈에 관심이 생겼다가도 포기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처음 재즈에 흥미를 느끼고 탐구하려 했을 때, 바로 그 불친절함 때문에 아쉽고 어려웠어요. 그래서 오늘은 재즈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한 분들, 또는 이 글을 계기로 재즈를 한 번 들어보고 싶은 분들께 작은 안내를 드리고 싶어요. 어디까지나 제 경험에 기반한 주관적인 이야기들이니 부담 없이 읽어주세요. 재즈 이론이나 역사를 깊게 파고들기보다, 재즈가 대략 이런 음악이구나 하는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니 함께 준비한 재즈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느긋한 마음으로 즐겨보시길 바랄게요.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본 것 같은 그 음악, 재즈 스탠다드(Standard)부터 시작하기

재즈는 한 시점에 고정된 음악이 아니라, 계속 변하는 음악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죠. 재즈 뮤지션들은 새로운 생각과 접근을 끊임없이 시도하거든요. 이런 시도 덕분에 재즈는 지금도 살아 있는 음악으로 남아 있어요.


다만 재즈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최근 재즈 음반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조금 뻔해 보여도, 처음에는 스탠다드부터 들어보시길 권해요. 익숙한 선율이 많아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이에요.


다만 재즈 스탠다드에 절대적인 정의나 고정된 목록이 있는 건 아니에요. 재즈 스탠다드로 불리는 곡 중에는 뮤지컬 넘버, 대중가요, 영화음악, 클래식 음악에서 출발한 곡도 있어요. 재즈는 수많은 곳에서 영향을 받아 왔어요. 지금도 새로운 곡들이 스탠다드에 더해지고 있어요. 여러분이 요즘 좋아하는 곡을 재즈 연주자들이 즐겨 찾는다면, 그 곡도 언젠가 재즈 스탠다드가 될 수 있어요.


스탠다드는 재즈의 매력이자 특징 중 하나인 ‘즉흥 연주’가 가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재즈 뮤지션은 상당히 많은 스탠다드 곡들의 선율과 코드 진행을 외우고 있어요. 우리가 언어라는 약속 덕분에 처음 만난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듯, 뮤지션들도 스탠다드라는 공통의 틀 안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재즈를 듣는 사람도 뮤지션끼리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알면 그 대화에 참여해 같이 즐길 수 있겠죠. 스탠다드 곡을 알아가는 시작점으로 추천하고 싶은 몇 곡을 골라봤어요.

캐넌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의 ⟪Somethin’ Else⟫ 커버,
빌 에번스(Bill Evans)의 음반 ⟪At the Montreux Jazz Festival⟫ 커버

  • Autumn Leaves
    재즈는 여러 계절 중에서도 가을과 자주 묶여요. 그 이유 중 하나는 가장 유명한 재즈 스탠다드 중 하나인 <Autumn Leaves>의 영향일 거예요.

    <Autumn Leaves>의 시작은 프랑스 발레 음악이에요. 작곡가 조제프 코스마(Joseph Kosma)는 롤랑 프티(Roland Petit)의 발레 <Le Rendez-vous>를 위한 음악에서 이 곡의 선율 일부를 먼저 선보였어요. 이후 시인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évert)의 가사가 붙으면서 <Les feuilles mortes>라는 노래가 태어났어요. 직역하면 ‘죽은 잎’이라는 뜻이에요. 영화 <Les Portes de la nuit>에 쓰인 이 노래는 영어로 번역되며 <Autumn Leaves>라는 제목을 얻었고, 가을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어요.
많은 재즈 뮤지션이 <Autumn Leaves>를 연주했기 때문에 훌륭한 녹음본이 넘쳐흘러요. 제 추천은 색소폰 연주자 캐넌볼 애덜리의 음반 ⟪Somethin’ Else⟫에 실린 <Autumn Leaves>예요. 곡의 여는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건조한 트럼펫 소리는 자연스럽게 마른 낙엽을 떠올리게 해요. 이 음반을 위해 모인 최고의 연주자들이 흠잡을 데 없이 곡을 완성하는 걸 한번 들어보세요. 언제 들어도 좋은, 훌륭한 스탠다드 연주의 표본이에요.

  • I Fall in Love Too Easily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라는 이름은 재즈가 낯선 분들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 곡은 프랭크 시나트라가 출연하고 노래한 영화 <Anchors Aweigh>에 등장해요. 당시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로도 올랐지만, 함께 후보에 오른 또 하나의 재즈 스탠다드 <It Might as Well Be Spring>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어요.

    곡 제목 그대로 영화의 등장인물이 순식간에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진 상황에서 부르는 노래예요. 애타고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이 손꼽히게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 목소리가 들어간 곡보다 악기 연주만으로 이뤄진 곡을 더 좋아해요. 하지만 예외가 있어요. 사랑을 말하는 쳇 베이커(Chet Baker)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언제나 특별해요. 쓸쓸하면서도 서정적인 쳇 베이커의 목소리와 트럼펫 소리는 서로 닮아 있어요. 그 목소리와 트럼펫으로 이 곡을 만날 수 있는 음반 ⟪Chet Baker Sings⟫를 추천해요. 

  • Someday My Prince Will Come
    부활의 히트곡 <Never Ending Story>의 도입부 피아노 반주에 차용된 음악이 바로 <Someday My Prince Will Come>예요. 디즈니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위해 만들어졌어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음악과 재즈는 꾸준히 가까운 관계를 맺어 왔어요. 설립자 월트 디즈니가 재즈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어요. 제목은 몰라도 들으면 익숙한 <Take Five>를 만든 데이브 브루벡(Dave Brubeck)은 ⟪Dave Digs Disney⟫라는 음반을 발매했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노키오> 등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온 음악만으로 구성한 재즈 음반이에요. 디즈니 음악과 재즈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사례예요.

빌 에번스의 음반 ⟪At the Montreux Jazz Festival⟫에서 이 곡을 들으면, 상상 속에서 백설공주의 성이 조금씩 완성되는 듯해요. 재즈 음반에는 공연 실황을 녹음한 음반도 많아요. 스튜디오 음반과 공연 실황 음반이 어떻게 다른지 느껴볼 수 있는 음반이기도 해요.


  • Caravan
    영화 <위플래시>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폭발하듯 연주하는 곡이에요. 다른 용도의 음악이었다가 재즈 스탠다드가 된 앞선 세 곡과는 달리, 후안 티졸(Juan Tizol)과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이 처음부터 재즈 곡으로 만든 음악입니다. 

    <위플래시>에는 <Caravan>과 <Whiplash>라는 스탠다드 곡이 등장해요. 감독은 영화에 두 곡을 넣은 이유로, 애증의 관계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투영했다고 밝혔어요. 드럼 연주자였던 감독 본인이 이 곡들로 인해 괴롭고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잘 연주하고 싶었던 이야기를요. 그만큼 높은 수준의 드럼 연주가 나오는 곡이라 재즈 드럼에 더 집중해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추천 음반은 아트 블레이키(Art Blakey)의 쫀득한 드럼을 즐길 수 있는 아트 블레이키 앤 더 재즈 메신저스의 ⟪Caravan⟫입니다.

  • ‘Round Midnight
    앞서 소개한 곡들과 가장 이질적인 음악일 거예요. 재즈 뮤지션마다 고유한 스타일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고 싶다면, 이 곡을 만든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의 음악을 들어보세요. 뚜렷한 개성으로 혁신적인 음악을 선보였지만, 당시에는 괴짜 취급을 받으며 오랫동안 비주류에 머물렀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셀로니어스 몽크는 재즈가 더 깊은 예술성을 지닌 다음 단계의 음악으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64년 ⟪타임⟫이 셀로니어스 몽크를 표지에 실은 일은, 그가 새로운 재즈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어요. 현대 음악가들도 자신들의 음악에 셀로니어스 몽크로부터 받은 영감을 언급하는 경우가 꽤 많아요. 그의 영향은 시대를 건너 이어지고 있어요.

이 곡은 작곡가의 손을 떠난 후 다른 뮤지션들에 의해 점진적으로 완성된 곡이기도 해서, 여러 음반을 들어보셨으면 해요. 우선 세 개의 음반, 셀로니어스 몽크의 ⟪Genius of Modern Music, Vols. One & Two⟫,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의 ⟪The Fabulous Dizzy Gillespie Pleyel Jazz Concert 1948⟫, 마일스 데이비스의 ⟪’Round About Midnight⟫을 차례로 들으면 이 곡이 초기에 어떻게 변해갔는지 따라가는 재미가 있어요. 


재즈 스탠다드는 연주자, 악기, 상황에 따라 끝없이 다시 태어나요. 같은 제목의 곡이 3분일 수도, 20분일 수도 있어요. 서정적일 수도 있고 격정적일 수도 있어요. 저는 처음 재즈를 접하던 시절, 더 알고 싶은 스탠다드를 발견하면 그 곡의 녹음을 최대한 많이 모았어요. 곡이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들었어요. 제가 어떤 뮤지션과 악기를, 어떤 스타일의 연주를 좋아하는지 취향을 찾고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죠.


스탠다드를 익힐 때 저에게 가장 효과적이었던 방법은 먼저 보컬 녹음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었어요. 프랭크 시나트라,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엘라 피츠제럴드, 쳇 베이커가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부른 녹음을 듣고 선율을 익히면, 같은 곡이 연주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훨씬 쉽게 느낄 수 있어요. 저도 여전히 모르는 스탠다드가 많고, 알고 싶은 새로운 곡을 만나면 아직도 이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저는 스탠다드를 찾다가 음반 전체를 듣고, 거기서 또 다른 곡이나 연주자를 발견하는 식으로 재즈를 넓혀갔어요. 피아노 음반을 듣다가 참여한 드럼, 베이스, 관악기 연주자의 작업을 따라가는 식이었죠. 


음악과 뮤지션은 무궁무진해요. 여기서 소개한 음악, 뮤지션, 음반에서 하나씩 나아가 보세요.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음악을 찾을 수도 있어요. 재즈를 듣는 나만의 즐거움도 생길 거예요.


당장 오늘 저녁에 찾아가도 좋을 국내 재즈 클럽 추천

음반을 듣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가 재즈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도 재즈 클럽에서의 경험이었어요. 재즈와 가까워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연주를 직접 보는 거예요. 재즈 클럽은 언제든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에요. 오늘 저녁에라도 당장 찾아갈 수 있는 재즈 클럽 몇 군데를 소개할게요.

클럽 에반스 (네이버맵), 사운드독 (인스타그램)


  • 에반스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 63 2층)
    앞서 소개한 피아노 연주자 빌 에번스의 이름에서 따온 공연장이에요. 홍대에 다른 재즈 클럽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동안에도, 에반스는 2001년부터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왔어요.

    대중가수와의 작업, 방송 출연으로 잘 알려진 윤석철이 정기적으로 ‘Super Jam Day’를 진행해요. 이날 방문하면 앞서 알아본 스탠다드 곡들로 연주자들이 어떻게 즉흥 연주를 하는지 직접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에반스는 매일 저녁 공연을 열어요. 또 <에반스 플레이어 오디션>을 통해 신인 뮤지션에게 정기 공연 기회를 제공해요. 홍대 지역 공연장들이 함께하는 <라이브 클럽 데이>에도 참여해요. 다른 공연장과는 다른 에반스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어요.

  • 사운드독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로35길 24)
    최근 10주년 기념 페스티벌을 개최한 공연장이에요. 후암시장 안에 자리한 독특한 입지와 분위기도 인상적이에요. 처음 사운드독에 가던 날, 과일 가게와 분식집을 지나며 정말 이런 곳에 재즈 공연장이 있을까 의심했던 기억이 있어요.

    사운드독은 약 40석의 작은 공연장이에요. 단차 있는 무대가 따로 없어, 공연 내내 뮤지션과 관객이 같은 공간에 머물러요. 그래서 음악과 연주자에게 더 관심을 갖고 집중하게 돼요. 작은 공간이 오히려 사운드독만의 장점이자 차별점을 만들어 주죠.

  • 올댓재즈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16 2층)
    ‘올댓재즈’는 1976년 이태원에서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재즈 클럽이에요. 이름은 뮤지컬 <시카고>의 주요 삽입곡 <All That Jazz>에서 따왔어요. 1980년대 후반 단골손님이었고, 이후 올댓재즈의 DJ와 매니저를 맡았던 진낙원이 클럽을 인수했어요. 올댓재즈는 두 차례 자리를 옮기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어요.

    역사가 긴 만큼 여러 콘텐츠에 등장한 공간이기도 해요. 누군가는 드라마 <사랑은 그대 품 안에>의 촬영지로 ‘올댓재즈’를 기억할 거예요. 누군가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 등장한 사장 진낙원이 운영하는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알았을 수도 있어요. 더 최근에는 방탄소년단 뷔가 노래 부르는 영상을 찍은 곳으로 처음 접한 분도 있을 거예요. 최근 50주년 기념 공연을 여는 모습을 보며, 언젠가 100주년을 축하하는 장면도 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올댓재즈 (네이버맵), 야누스 (네이버맵)


  • 야누스 (서울 중구 세종대로21길 53 2층)
    박효신과 함께 부른 광고 음악 <바람이 부네요>를 통해 고 박성연의 목소리를 들어본 분이 있을 거예요. 이 광고 음악은 임인건의 음반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Janus, The Reminiscence)⟫에 수록된 곡을 바탕으로 해요. 수록곡은 박성연이 생애 마지막으로 녹음한 노래예요.

    야누스는 박성연이 1978년 신촌에 연 재즈 클럽이에요. 한국인이 처음 세우고 운영한 재즈 클럽이기도 해요. 박성연과 야누스에서 함께 활동한 사람들을 “한국 재즈 1세대”라고 부르잖아요. 그만큼 야누스는 한국 재즈의 기반을 닦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공간이에요. 그 가치는 이루 말하기 어려워요. 여러 세대의 재즈 뮤지션이 모여 야누스 헌정 음반을 만든 것도 그래서예요.

    아직 재즈를 받아주는 곳이 드물던 시절, 박성연은 마음껏 재즈를 하고 싶어서 직접 재즈 클럽을 열었어요. 재즈 클럽 운영이 어려워지자 평생 모은 음반을 팔아 운영비를 마련했다는 일화도 있어요. 공교롭게도 야누스 40주년 기념 공연은 박성연의 생애 마지막 무대였어요. 야누스는 박성연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공간이에요.

    현재 야누스는 광화문으로 옮겼고, 재즈 가수 말로가 공동 대표로 운영하고 있어요. 뛰어난 뮤지션 말로의 공연을 정기적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의 야누스를 찾을 이유가 충분해요. 가수 최백호가 깜짝 등장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정미조의 공연이 열리기도 해요. 야누스는 재즈뿐 아니라 한국 대중가요의 굵직한 인물들도 무대에 세우며 새로운 장을 열어 가고 있어요.

재즈 클럽의 모든 공연은 그 순간에만 존재해요. 공연 실황을 음반으로 남겨도, 연주자와 공간, 관객이 주고받는 긴장은 온전히 담기지 않아요. 그 상호작용이 음악을 듣는 경험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요.


재즈 클럽에서는 질리지 않고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자주 재즈 클럽을 찾아 살아 있는 음악을 발견해 보세요. 재즈의 매력을 찾고, 재즈에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나라 재즈계를 빛낸 한국 뮤지션 알아보기

앞서 스탠다드를 다루며 언급한 재즈 뮤지션, 그리고 여러분이 스탠다드를 통해 재즈를 알아가며 만나게 될 뮤지션들 중 상당수는 미국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재즈는 오랜 시간 미국에서 발전해온 음악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죠.


여전히 미국 뮤지션이 재즈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세계 곳곳의 뮤지션들이 각자의 독창적인 재즈를 발전시키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기도 해요. 한국에도 뛰어난 재즈 뮤지션이 많아요. 그중 몇 명을 소개할게요. 이 중 누군가는 오늘 저녁 여러분이 찾은 한 재즈 클럽에서 만날지도 몰라요.


  • 임미정
    음반 ⟪Impromptu⟫로 2026 한국대중음악상 재즈 연주 부문을 수상한 피아노 연주자예요.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가득해 감탄하며 들었어요. 현대 재즈는 주요 선율을 뚜렷하게 내세우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지금껏 쌓인 좋은 음악도 워낙 많아요. 그래서 새로운 선율로 듣는 사람에게 깊은 감흥을 주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생각해요. ⟪Impromptu⟫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음반이라 더 놀라웠어요.

임미정은 언제나 좋은 연주를 들려줄 거라 믿게 만드는 뮤지션이에요.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연주를 해요. 그러면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연주를 들려줘요. 수준 높은 음악이 꼭 난해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도 보여줘요.


앞서 소개한 재즈 클럽들에서 임미정의 연주를 볼 기회가 있을 거예요. 공연장 일정을 살피다가 임미정이 참여하는 공연을 발견하면 직접 들어 보셨으면 해요.


  • 서수진
    창작음악가이자 드럼 연주자예요. ‘Chordless Quartet’, ‘Coloris Trio’, ‘밤 새’, ‘Near East Quartet’, 개인 음반 작업까지 다채로운 활동을 해요.

서수진은 스스로를 한 음악 분류에 가두지 않아요. 그는 장르의 제한 없이 음악을 만든다는 뜻에서 자신을 창작음악가라고 부른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색이 다른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모두 뛰어난 작업을 해내는 놀라운 뮤지션이에요. 국악을 접목한 프로젝트 밤 새의 ⟪Communication⟫과 니어 이스트 콰르텟의 ⟪Near East Quartet⟫은 제가 한국 음악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소개하는 음반이에요.


서수진의 연주도 종종 재즈 클럽에서 경험할 수 있어요. 올해 6월 새로운 음반을 발매할 예정이라, 더 다양한 공연이 열릴 것으로 기대해요.


  • 최선배
    한국에서 아직 재즈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최선배는 그 시절 미 8군 무대에서부터 연주한 한국 최초의 재즈 뮤지션 중 한 명이에요. 트럼펫 연주자이고, 특히 한국 프리 재즈의 선구자로 꼽혀요. 일본에서도 일찍 실력을 인정받으며 활동해 왔어요.

최선배는 50년 넘게 활동했지만, 한국에서 첫 음반 ⟪A Trumpet In The Night Sky⟫를 낸 건 2011년이에요. 스탠다드 곡들을 연주한 이 음반에는 깊고 단단한 트럼펫 소리가 담겨 있어요. 그 소리는 서두르지 않고 따스하게 퍼져요. 익숙한 곡들은 획기적인 새로움이 없으면 지루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오랜 세월이 담긴 최선배의 트럼펫은 귀를 사로잡는 힘이 있어요.


최선배는 여든이 넘은 지금도 다양한 세대의 연주자들과 여러 편성으로 무대에 올라요. 현재의 음악을 계속하고 있어요. 이 거장이 트럼펫을 부는 모습을 보는 일은 음악을 넘어 오래 남는 경험이 될 거예요. 혹시 최선배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놓치지 마시기를 바라요.


  • 나윤선
    나윤선은 주로 재즈 보컬리스트로 소개돼요. 하지만 저는 그 표현만으로는 나윤선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목소리 역시 하나의 악기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돼요. 보컬과 악기의 경계를 지워요.

나윤선의 음악은 음반 ⟪Lento⟫부터 들어보시길 추천해요. ⟪Lento⟫는 여러분이 기대한 재즈와 다른 소리로 가득할 수도 있어요. 다루는 음악의 범위가 무척 넓은 음반이기도 해요. 재즈 뮤지션이 이런 소리까지 만들 수 있구나 생각하며 들어보세요. 즐길 거리가 넘치는 음반이에요.


나윤선은 주로 프랑스와 유럽에서 활동해요. 다만 5월 말에는 지리산 천은사와 EBS <공감> 등에서 몇 차례 한국 공연을 할 예정이에요.


  • 홍선미
    글로 설명하기에 앞서 가장 최근 음반인 ⟪Fourth Page: Meaning of a Nest⟫를 먼저 들어 보시기를 권해요.

홍선미는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드럼 연주자예요. 갈수록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어요. 앞으로 어느 수준까지 도달할지 늘 기대하게 만드는 뮤지션이에요. 드럼을 잘 친다는 게 무엇인지 아직 감이 오지 않는 분이라면, 홍선미의 연주를 기준으로 삼아도 좋다고 생각해요. 요즘의 재즈를 더 알고 싶은 분이라면 홍선미의 연주 일정을 살펴보세요. 함께 무대에 서는 뮤지션들의 음악을 따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그중에는 홍선미의 음반과 연주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암스테르담 기반 피아노 연주자 임채린도 있어요.


홍선미는 가끔 한국을 찾아 공연해요. 나윤선과 마찬가지로 홍선미도 5월 말 합정 무대륙을 비롯한 한국 공연이 예정돼 있어요.


재즈페스티벌 경험해보기

여기까지 글을 읽고 음악을 듣다 보면 직접 재즈를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재즈 클럽에 가는 일은 아직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럴 때는 비교적 편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로 먼저 접해 보세요. 페스티벌에서는 여러 뮤지션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어요. 나중에 그중 마음에 든 뮤지션의 음악을 더 찾아보며 재즈에 대한 흥미를 넓힐 수도 있어요. 마침 매년 봄은 재즈 페스티벌이 특히 많은 시기이기도 해요. 

서울재즈페스티벌, 재즈토닉, 전주미니재즈페스티벌 포스터

  • 서울재즈페스티벌
    매년 이맘때 가장 눈길을 끄는 행사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이에요. 200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4일 동안 하루에 한 공연씩 열렸어요. 이제는 재즈를 넘어 온갖 음악을 포괄하는 3일짜리 대형 행사가 되었어요. 존재감도 커졌어요.

    어느 시점부터 재즈에는 고급스럽고 어려운 감상용 음악이라는 인식이 생겼어요. 하지만 초기 재즈는 춤과 함께 태어나고 자랐어요. 최근 새로운 세대가 만드는 재즈는 다시 댄스 플로어로 돌아가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어요. 춤과 함께 즐기는 음악으로 돌아가는 셈이에요.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의 재즈 라인업도 조용히 앉아 감상하는 음악보다, 함께 몸을 흔들며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많아요. 재즈를 잘 모르거나 난해한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분도 즐길 수 있어요.

    올해 라인업에서 몇 팀만 들여다볼게요. 페스티벌 첫날에는 아르투로 산도발(Arturo Sandoval)과 부에나 비스타 오케스트라는 쿠바 음악과 리듬을 재즈와 결합한 무대를 보여줄 거예요. 쿠바에서는 미국 음악인 재즈를 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쿠바 사람들은 고유한 음악과 리듬 아래에 재즈를 숨겼고, 라틴 재즈와도 다른 독특한 음악을 발전시켜 왔어요. 특히 아르투로 산도발은 이미 몇 차례 서울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섰어요. 누구보다 이 무대를 잘 꾸릴 거라 생각해요.

    조 아먼존스(Joe Armon-Jones)는 이번 라인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이름이에요. 에즈라 컬렉티브는 단독 공연으로 1만 2500석을 매진시킬 만큼 현재 영국 재즈를 이끄는 팀이에요. 이 팀이 페스티벌 초기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첫 내한이 이루어질 것처럼 보였지만 취소됐어요. 대신 에즈라 컬렉티브(Ezra Collective)의 키보디스트 조 아먼존스가 공연해요. 토요일의 알파 미스트(Alfa Mist), 일요일의 엘라 메이(Ella Mai) 공연과 함께 보면 새로운 세대의 영국 재즈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토요일에는 지금 재즈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는 존 바티스트(Jon Batiste)가 공연해요. 존 바티스트는 장르보다 사람의 감정과 에너지를 앞세우는 음악을 추구해요. 존 바티스트는 자신의 음악을 ‘Social Music’이라고 불러요. 다양성을 지지하고, 음악을 통해 꾸준히 사회적 메시지를 내는 뮤지션이기도 해요. 그래서 긴장과 대립이 가득한 지금 시점에 더 특별한 무대가 될 것 같아요.

    존 바티스트의 공연 전 낮 시간에는 엔지(ENJI)의 무대가 있어요. 엔지는 최근 유럽 무대에서 주목받는 몽골 출신 뮤지션이에요. 자기 뿌리에 있는 음악과 언어를 가져와 독특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요. 주로 재즈로 분류되지만, 재즈라는 틀을 넘어 엔지만이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엔지의 무대에는 홍선미가 함께할 예정이에요.

    마지막 날에는 허비 행콕(Herbie Hancock)과 메데스키 마틴 앤 우드(Medeski Martin & Wood)라는 굵직한 두 이름이 올라 있어요. 먼저 메데스키 마틴 앤 우드를 살펴볼게요. 세 사람은 각자 활동하다가 1991년에 팀을 결성했어요. 펑크(funk), 아방가르드 재즈 등 다양한 음악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리듬과 그루브를 들려줘요. 무척 신날 수도 있고, “이게 뭐지?” 싶을 수도 있어요.

    허비 행콕은 <Maiden Voyage>, <Cantaloupe Island>, <Watermelon Man> 같은 스탠다드와 재즈사에 남을 음반을 만든 거장입니다.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음악 작업을 해 왔어요. 힙합, 전자음악, 소울 등 여러 장르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기 음악을 넓혀왔어요. 서울재즈페스티벌 전체 라인업 중 가장 무게감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 청주 재즈토닉
    청주 재즈토닉은 충청북도 청남대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이에요. 2017년에 시작해 9회를 맞이한 꽤 오래된 행사예요. 우연히도 오는 5월 24일에 나윤선과 홍선미가 모두 공연할 예정이에요.

  • 제5회 전주미니재즈페스티벌
    전주시 삼천동에 있는 재즈 클럽 ‘더바인홀’의 페스티벌이에요. 보컬리스트 김주환이 운영하는 공연장이기도 해요. 더바인홀은 2021년에 문을 연 비교적 새로운 공간이지만, 빠르게 중요한 공연장으로 자리 잡았어요. 거장 피아노 연주자 빌 찰랩(Bill Charlap)을 비롯해 실력 있는 해외 뮤지션의 내한 공연도 상당수 이 공연장을 거쳤어요. 공연장이 직접 기획하는 공연과 행사도 좋은 라인업을 보여줘요.

    전주미니재즈페스티벌은 흔히 떠올리는 페스티벌과 달라요. 4월부터 10월까지 긴 기간에 걸쳐 한 팀씩 차례로 무대에 올라요. 특히 눈에 띄는 공연은 6월 5일 류다빈의 공연이에요. 류다빈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주목받는 피아노 연주자예요. 저도 꼭 한 번 직접 연주를 듣고 싶은 뮤지션이에요.

    더바인홀은 올해 전주 재즈 쇼케이스라는 새로운 행사도 시작해요. 6월부터 12월까지 열리고, 7월에는 임미정의 ⟪Impromptu⟫ 공연이 예정돼 있어요.

경제 공부, 선택 아닌 필수

막막한 경제 공부, 머니레터로 시작하세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프로모션, 이벤트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

잘 살기 위한 잘 쓰는 법

매주 수,금 잘쓸레터에서 만나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프로모션, 이벤트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