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수영장의 밤과 낮 © 치즈
결국 관건은 어떤 동료와 일하느냐였어요. 사무실은 업무 분담이라도 확실한데, 체계가 없는 현장에서는 동료의 영향력이 훨씬 크더라고요. 업무가 얽힌 직원과 마음이 맞지 않아 매일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며 안타깝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제 안에 숨어 있던 부끄러운 모습과 마주한 경험이었어요. 지속적인 텃세를 겪으며 마음이 상한 어느날, 나와 이곳에서 오랜 시간 줄곧 일해온 그 사람들을 구분 지어서 생각한 적이 있어요. 나에겐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인 현장이 그분들에겐 다른 의미일 거라 단정 지으며 타인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태도가 튀어나온 거죠. 사람을 직업과 벌어들이는 돈으로 환산하는 이 사회의 가치관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했구나,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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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 세상의 노동은 소위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핑크칼라 등으로 정해지는 하나의 색깔에 국한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만 해도 낮에는 워터파크에서 몸을 쓰고, 밤에는 기숙사 책상에 앉아 다음 스텝을 위한 서류를 쓰고 영어를 공부하고 글을 썼거든요. 두 세계의 경험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한 사람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여요. 우리는 필요와 상황에 따라 스스로 색을 갈아입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제가 박쥐 같은 상태에서 외부인의 시선으로 현장을 낭만화한 것일 수도 있어요. 한쪽 세계에만 오래 머물면 반대편을 낭만화하기 쉬우니까요. 그래서 친구와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합니다. “모두가 10년 중 2년은 의무적으로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3년은 농업이나 어업 같은 근간 산업에 종사해봐야 하지 않을까?” 서로 다른 노동의 세계를 경험해봐야 진짜 감사와 이해가 생기고 갈등도 줄어들 거라 믿거든요.
출장차 갔던 해외취업박람회에서 만난 호주 영주권자 한 분의 말씀도 오래 기억에 남아요. 호주는 최저임금이 높고, 청소년들이 각자 적성에 따라 진로를 정하기 때문에 대학이 꼭 정답은 아니며, 몸을 쓰는 노동의 가치도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분위기라고요. 그런 환경이 좋아 정착하셨다는 말을 듣고, 저도 그 가치관의 전복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어요.
보통 20대에는 방황하며 경험을 쌓고 30대부터는 안정을 찾는다고 하죠. 저는 그 경험의 시작이 조금 늦어져 여전히 헤매는 중이라 가끔은 벅차기도 해요.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선을 그려나가고 있어요. 그 선을 알아야 앞으로 더 나다운 일,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꽤 명확해지거든요. 단기 잡을 구하는 분들, 방학에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분들께 현장 경험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예요.
지금도 몸이 힘들 땐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서 벌 수도 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불쑥 들어요. 그런데 그 시원한 사무실은 결코 공짜가 아니잖아요. 실제로 을왕리에서 전 직장에서 걸려온 업무 연락을 받았을 때, 예전의 스트레스가 트라우마처럼 몰려오더라고요. 밀려드는 지시에 우선순위가 헷갈리고 중간중간 새로운 요구에 시달리던 때를 떠올리니 아, 나는 지금이 좋구나 싶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공부 잘해서 ‘사’ 자 직업을 갖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죠. 정답의 세계에서 보면 저는 완전한 오답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밖으로 튕겨 나와 겪어 보니, 모두가 맞다고 하는 정답이 나에게는 정답이 아니더라고요.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물며 안정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보고 있거나, 앉아 있는 자리가 불편해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분들 모두, 그 고민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 헤매는 것도 나다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일 테니까요. 정답은 없으니 우리, 같이 헤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