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메모리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팹리스와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여러 중국 기업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력과 생태계는 어느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평가하시나요? 우리나라가 가장 긴장해야 할 분야와 아직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분야는 각각 무엇인가요?
최근 창신메모리(CXMT)의 상하이 증시 상장과 이머전 DUV 노광장비의 자체 생산 소식이 있었죠. 중국 반도체는 미국의 고강도 규제 속에서도 설계, 제조, 장비를 아우르는 독자적 생태계를 완성해 가고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가 중국 반도체를 두고 가장 긴장해야 할 분야는 범용(레거시)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설계영역이에요. 중국이 확보한 거대 자금으로 PC, 스마트폰용 구형 D램 시장에서 저가 덤핑 공세를 펼칠 경우 큰 위협이 될 수 있어요. 또한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는 중국이 한국을 양적·질적 면에서 모두 앞서고 있죠. 그동안 시스템반도체 설계 능력을 꾸준히 키워 왔기 때문에, 앞으로 이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극자외선(EUV) 장비 규제에 가로막힌 3나노 이하 초미세 파운드리 공정과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3E·HBM4) 분야에서는 한국이 최소 3년 이상의 확실한 격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난도 첨단 패키징이 필수인 HBM 시장은 대만 TSMC와의 협력이 막힌 중국이 단기간에 추격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최근 중국에서 비용 효율성이 높은 AI 모델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고가의 AI 인프라 투자가 계속 필요할지를 둘러싼 논쟁도 커졌습니다. AI 모델의 효율성이 높아지면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까요, 아니면 더 많은 연산과 메모리가 필요해질까요? 이런 변화는 국내 반도체와 AI 산업에 어떠한 기회와 위험을 가져올까요?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고효율 AI 모델 등장은 전 세계 AI 생태계의 비용 구조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키미 K3와 같은 저비용 인공지능 모델이 확산되면 빅테크 기업들이 고가의 GPU나 HBM 등에 쓰는 돈을 줄일 테고, 대규모 인공지능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도 감소할 것이라는 논리가 있었죠. 하지만 키미 K3의 실제 운영 사례를 보면, 개별 질문을 처리하는 비용이 낮아지자 사용자 이용량이 급증하면서 전체 연산량은 증가하는 역설이 발생했습니다.
AI 모델의 효율성 향상이 반도체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와 장기로 나누어 볼 수 있어요. 단기적으로는 적은 연산량과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고성능을 내는 모델들이 늘어나면서, 빅테크 기업들의 무제한적인 인프라 투자 속도가 다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서버 한 대당 들어가는 고가 GPU의 수량이 줄어들거나 칩의 업그레이드 주기가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기술적 효율화로 비용이 감소하면, AI 서비스의 대중화를 이끄는 촉매제가 될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더 많은 반도체 수요를 유발하게 될 거예요. HBM 시장을 주도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술 경쟁만큼 인재 확보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오랫동안 반도체 인재 양성에 힘써오셨는데요. 우리나라 반도체 교육과 인재 양성 체계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인재를 길러야 할까요?
반도체 개발은 도시를 만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어요. 반도체의 역사는 사실상 ‘하나의 반도체 칩 안에 얼마나 더 많은 회로(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는가’입니다. 도시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효율적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스마트폰에는 핵심적인 AP(응용프로세서)라는 시스템반도체가 들어갑니다. 이 칩은 분당 신도시를 설계하는 수준으로 복잡해요. 집도 지어야 하고 도로망도 만들어야 하죠. 전력망,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장 같은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배치해야 하죠. 한정된 예산과 환경 규제라는 제약 속에서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해요. 반도체 설계자도 마찬가지예요. 소비 전력(Power), 성능(Performance), 칩 면적(Area)이라는 세 가지 제약(PPA) 안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는 개별적인 핵심 기술 확보도 중요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기술을 최적화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리더가 중요합니다. 이런 역량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를 시스템 아키텍트(System Architect, SA, 아키텍처를 만드는 사람)라고 불러요. 앞으로 이런 인재를 키워 내야 합니다.
지금의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으로 전환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이제 우리는 HBM 이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반도체 초격차를 위해서 세 가지 전략이 필요해요.
첫째, 전력, 용수 등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고 종사자 정주 시설 등을 차질 없이 지원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완성해야 합니다. 설계(팹리스)-제조-후공정-소재·부품·장비(소부장)가 모이는 ‘K-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둘째, HBM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차세대 메모리 칩 개발을 통해서 1등 메모리를 계속해서 유지해야 합니다.
셋째, 반도체 생태계를 메모리에서 시스템반도체로 다변화해야 합니다. 세계 6위의 제조업 강국으로, AI 반도체를 활용할 시장이 있어요. AI 시대의 새로운 시작은 우리에게는 기회입니다. 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온디바이스AI 반도체에 집중이 필요합니다. 온디바이스 AI는 말 그대로 인터넷을 통해 클라우드나 원격 서버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PC 등의 디바이스 자체에서 작동하는 AI를 의미해요.
마지막으로 투자자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장기적인 성패를 판단하려면 어떤 지표와 변화를 가장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까요? 첫째, 메모리 수요가 유지되는지 봐야 합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물론 중국의 CXMT까지 수백조 원을 들여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이 공장들이 완공되어 제품을 쏟아내는 시점이 오면, 공급이 수요를 넘어설 수 있어요. 지금 빅테크들이 물량을 보장하는 ‘3~5년 치 장기 계약’을 맺어둔 것은 물량이 부족해서지, 평생 사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공장 증설로 시중에 물량이 넘쳐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빅테크들은 장기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합니다. 현재는 목숨을 걸고 AI 주도권 경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수익 모델을 제대로 찾지 못할 경우에는 메모리 수요가 줄어들 수 있죠.
둘째, 국내 메모리 기업들의 HBM4 등 차세대 AI 메모리의 개발, 수율, 점유율입니다. 한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지속적인 슈퍼사이클 유지는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인 HBM4와 차세대 HBM4E의 시장 주도권 선점에 달려 있어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개발 속도, 수율 안정화, 점유율 확대를 두고 다각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HBM4부터는 베이스 다이를 메모리 공정이 아닌 TSMC나 삼성전자의 첨단 파운드리 로직 공정으로 제작해야 하므로, ‘이종 집적 패키징 수율’을 잡는 것이 핵심입니다.
셋째, AI 시장의 요구에 맞춰 맞춤형 칩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3나노 이하 첨단 파운드리 공정의 수율 개선과 글로벌 대형 고객사 확보가 중요해요. TSMC와의 격차를 좁혀야 하고 숫자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또한 미세화 한계를 극복할 첨단 패키징(후공정) 기술력과 국내 소부장 생태계의 자립도도 함께 살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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