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호황 그 이후, 한국 반도체의 다음 승부처는 어디일까요?

📍 인터뷰이: 김용석 가천대학교 반도체대학 석좌교수

📍 인터뷰어: 어피티 머니레터 팀

AI 투자 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국내 반도체 산업도 큰 기회를 맞았고, 최근 정부가 발표한 3대 메가프로젝트는 기대감을 더욱 키우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의 호황이 미래에도 이어질지는 확신할 수 없어요. 중국에서는 CXMT를 비롯한 메모리 기업들뿐 아니라 파운드리, 팹리스 기업까지 빠르게 성장하며 추격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최근에는 반도체주가 급격히 흔들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고요. 지금의 메모리 반도체 이후를 무엇으로 준비할지, 우리나라가 메모리를 넘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어요.

삼성전자에서 31년간 반도체와 이동통신 소프트웨어, ‘갤럭시’ 시리즈 개발에 참여한 국내 1세대 시스템반도체 전문가이자 ⟪AI 반도체 전쟁⟫의 저자인 김용석 가천대학교 반도체대학 석좌교수와 함께 AI 시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기회와 위기, 그리고 앞으로 준비해야 할 과제를 짚어봤어요.

반도체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AI 수요는 과거와 다른 구조적 성장을 만들 것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앞으로 반도체 산업은 과거처럼 큰 폭의 호황과 불황을 반복할까요? 이번 사이클에서 과거와 달라진 점과 여전히 변하지 않은 점은 무엇인가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통상 2~3년 주기로 등락을 반복해 왔어요. 이를 ‘반도체 사이클’이라고 불러요. 메모리 반도체가 사이클을 타는 건 수요와 공급 간 불일치 때문입니다. 그간 메모리 반도체의 주된 수요층은 PC와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였어요. 이런 전자기기는 신제품이 나올 때 수요가 확 늘었다가 이후 점차 감소하는 제품군이에요.

그런데 현재 메모리 반도체 수요는 AI 데이터센터가 주도하고 있어요. ‘공급자 주도’ 환경이 갖춰진 것이죠. HBM은 주문형 메모리예요. 과거 범용 D램은 미리 생산라인을 지어놓고 주문을 기다리는 ‘기성복’ 같은 형태였다면, 현재는 주문이 들어와야 생산라인을 돌리는 ‘맞춤복’ 같은 구조예요.

그래서 이번 슈퍼사이클이 과거처럼 전형적인 등락 곡선을 그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그리고 반도체 기업들의 가장 큰 고객인 하이퍼스케일러의 AI 인프라 투자 속도와 기존 메모리 업체들의 증설 실행력이 이 사이클의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여러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골든타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을 특히 중요한 시기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HBM 이후 주목해야 할 차세대 기술과 시장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요. 3~5년은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유지될 것으로 보이고, 이 시간이 골든타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메모리 슈퍼사이클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재원을 잘 활용해야 해요.

AI 시대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HBM, CXL, PIM 등의 AI용 메모리는 물론이고 전체 메모리 1등을 유지해야 합니다. 시스템반도체 설계, 파운드리 투자도 이어져야 하고요. 우리나라는 제조업이 강한 나라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추론 중심의 로봇, 자동차등 피지컬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온디바이스AI 반도체의 국산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삼성전자에서 TV·오디오·이동통신 칩을 개발하고, 갤럭시 시스템소프트웨어 팀장으로도 근무하셨습니다. 근무하셨을 당시의 삼성과 지금의 삼성은 무엇이 다르고 같은가요?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가는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서 어떤 방향이나 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강력한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AI 시장의 확대로 매출과 영업이익은 기록적인 수준을 보이고 있지만, 과거 삼성의 독보적인 초격차 경쟁력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끄는 혁신 문화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실패를 용인하고 새로운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또, AI 및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 판도를 바꾸는 원천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대규모 R&D 투자를 해야 합니다. 최근 노조의 성과급 제도화 요구, 사업 부문(DS·DX) 간의 격차, 그리고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 부문의 소외감 등의 이슈를 지혜롭게 해결하고 결속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과거의 비노조경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새로운 노사문화 정립도 필요하겠습니다.

중국의 메모리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팹리스와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여러 중국 기업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력과 생태계는 어느 수준까지 올라왔다고 평가하시나요? 우리나라가 가장 긴장해야 할 분야와 아직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분야는 각각 무엇인가요?


최근 창신메모리(CXMT)의 상하이 증시 상장과 이머전 DUV 노광장비의 자체 생산 소식이 있었죠. 중국 반도체는 미국의 고강도 규제 속에서도 설계, 제조, 장비를 아우르는 독자적 생태계를 완성해 가고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가 중국 반도체를 두고 가장 긴장해야 할 분야는 범용(레거시)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설계영역이에요. 중국이 확보한 거대 자금으로 PC, 스마트폰용 구형 D램 시장에서 저가 덤핑 공세를 펼칠 경우 큰 위협이 될 수 있어요. 또한 시스템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는 중국이 한국을 양적·질적 면에서 모두 앞서고 있죠. 그동안 시스템반도체 설계 능력을 꾸준히 키워 왔기 때문에, 앞으로 이 분야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극자외선(EUV) 장비 규제에 가로막힌 3나노 이하 초미세 파운드리 공정과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3E·HBM4) 분야에서는 한국이 최소 3년 이상의 확실한 격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난도 첨단 패키징이 필수인 HBM 시장은 대만 TSMC와의 협력이 막힌 중국이 단기간에 추격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최근 중국에서 비용 효율성이 높은 AI 모델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고가의 AI 인프라 투자가 계속 필요할지를 둘러싼 논쟁도 커졌습니다. AI 모델의 효율성이 높아지면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까요, 아니면 더 많은 연산과 메모리가 필요해질까요? 이런 변화는 국내 반도체와 AI 산업에 어떠한 기회와 위험을 가져올까요?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고효율 AI 모델 등장은 전 세계 AI 생태계의 비용 구조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키미 K3와 같은 저비용 인공지능 모델이 확산되면 빅테크 기업들이 고가의 GPU나 HBM 등에 쓰는 돈을 줄일 테고, 대규모 인공지능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도 감소할 것이라는 논리가 있었죠. 하지만 키미 K3의 실제 운영 사례를 보면, 개별 질문을 처리하는 비용이 낮아지자 사용자 이용량이 급증하면서 전체 연산량은 증가하는 역설이 발생했습니다.

AI 모델의 효율성 향상이 반도체 수요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와 장기로 나누어 볼 수 있어요.
단기적으로는 적은 연산량과 최적화된 알고리즘으로 고성능을 내는 모델들이 늘어나면서, 빅테크 기업들의 무제한적인 인프라 투자 속도가 다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서버 한 대당 들어가는 고가 GPU의 수량이 줄어들거나 칩의 업그레이드 주기가 길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기술적 효율화로 비용이 감소하면, AI 서비스의 대중화를 이끄는 촉매제가 될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더 많은 반도체 수요를 유발하게 될 거예요. HBM 시장을 주도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는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술 경쟁만큼 인재 확보도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오랫동안 반도체 인재 양성에 힘써오셨는데요. 우리나라 반도체 교육과 인재 양성 체계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인재를 길러야 할까요?

반도체 개발은 도시를 만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어요. 반도체의 역사는 사실상 ‘하나의 반도체 칩 안에 얼마나 더 많은 회로(트랜지스터)를 넣을 수 있는가’입니다. 도시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효율적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스마트폰에는 핵심적인 AP(응용프로세서)라는 시스템반도체가 들어갑니다. 이 칩은 분당 신도시를 설계하는 수준으로 복잡해요. 집도 지어야 하고 도로망도 만들어야 하죠. 전력망,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장 같은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배치해야 하죠. 한정된 예산과 환경 규제라는 제약 속에서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해요. 반도체 설계자도 마찬가지예요. 소비 전력(Power), 성능(Performance), 칩 면적(Area)이라는 세 가지 제약(PPA) 안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시스템반도체 설계는 개별적인 핵심 기술 확보도 중요하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기술을 최적화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리더가 중요합니다. 이런 역량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를 시스템 아키텍트(System Architect, SA, 아키텍처를 만드는 사람)라고 불러요. 앞으로 이런 인재를 키워 내야 합니다.

지금의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으로 전환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이제 우리는 HBM 이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반도체 초격차를 위해서 세 가지 전략이 필요해요.

첫째, 전력, 용수 등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고 종사자 정주 시설 등을 차질 없이 지원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완성해야 합니다. 설계(팹리스)-제조-후공정-소재·부품·장비(소부장)가 모이는 ‘K-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둘째, HBM 초격차를 유지하면서 차세대 메모리 칩 개발을 통해서 1등 메모리를 계속해서 유지해야 합니다.

셋째, 반도체 생태계를 메모리에서 시스템반도체로 다변화해야 합니다. 세계 6위의 제조업 강국으로, AI 반도체를 활용할 시장이 있어요. AI 시대의 새로운 시작은 우리에게는 기회입니다. 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온디바이스AI 반도체에 집중이 필요합니다. 온디바이스 AI는 말 그대로 인터넷을 통해 클라우드나 원격 서버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이나 PC 등의 디바이스 자체에서 작동하는 AI를 의미해요.

마지막으로 투자자의 관점에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장기적인 성패를 판단하려면 어떤 지표와 변화를 가장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까요?
첫째, 메모리 수요가 유지되는지 봐야 합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은 물론 중국의 CXMT까지 수백조 원을 들여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이 공장들이 완공되어 제품을 쏟아내는 시점이 오면, 공급이 수요를 넘어설 수 있어요. 지금 빅테크들이 물량을 보장하는 ‘3~5년 치 장기 계약’을 맺어둔 것은 물량이 부족해서지, 평생 사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공장 증설로 시중에 물량이 넘쳐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빅테크들은 장기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합니다. 현재는 목숨을 걸고 AI 주도권 경쟁을 하고 있긴 하지만, 수익 모델을 제대로 찾지 못할 경우에는 메모리 수요가 줄어들 수 있죠.

둘째, 국내 메모리 기업들의 HBM4 등 차세대 AI 메모리의 개발, 수율, 점유율입니다. 한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지속적인 슈퍼사이클 유지는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인 HBM4와 차세대 HBM4E의 시장 주도권 선점에 달려 있어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개발 속도, 수율 안정화, 점유율 확대를 두고 다각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HBM4부터는 베이스 다이를 메모리 공정이 아닌 TSMC나 삼성전자의 첨단 파운드리 로직 공정으로 제작해야 하므로, ‘이종 집적 패키징 수율’을 잡는 것이 핵심입니다.

셋째, AI 시장의 요구에 맞춰 맞춤형 칩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3나노 이하 첨단 파운드리 공정의 수율 개선과 글로벌 대형 고객사 확보가 중요해요. TSMC와의 격차를 좁혀야 하고 숫자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또한 미세화 한계를 극복할 첨단 패키징(후공정) 기술력과 국내 소부장 생태계의 자립도도 함께 살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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