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돼지국밥 아니고 밀양 돼지국밥! 해운대에서 밀양으로 ‘구이농’ 후 살아남기

📌필진 소개: 밀양에서 버려진 천막으로 가방과 티셔츠를 만드는 업사이클링 브랜드 ‘구이농’ 대표 현드림이라고 합니다.

저는 부산에서 오래 살았어요. 해운대 해리단길에서 편집숍을 운영하며 옷을 사입하러 일본을 오갔고, 그 일을 꽤 오래 했어요. 그러다 번아웃이 왔어요. 하던 일도, 자주 오가던 도시도, 사람도 다 등지고 싶던 시기였죠. 그때 도망치듯 떠난 캠핑에서 처음 만난 도시가 밀양이었어요.


산과 계곡과 강이 가까이 있고, 조금만 이동해도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이곳에 몇 번을 오가다 보니 어느 순간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정말로 이사를 왔습니다. 연고 하나 없이, 40대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도시로요.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같은 경상도인데도 부산과 밀양은 생각보다 차이가 컸어요. 대도시와 소박한 지방 도시의 온도 차라고 해야 할까요. 심지어 두 도시의 대표 음식이 똑같이 돼지국밥인데도, 먹는 방식과 맛이 완전히 달랐죠. 더 큰 문제는 ‘먹고 사는 일’이었어요. 밀양에 온다고 하면 다들 귀농을 떠올리는데, 저는 농사를 지을 줄도 모르고 지을 생각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체력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말 그대로 농사 못 짓는 사람이 농촌으로 귀농을 한 셈이었어요. 40대 여자가 연고도, 기술도, 인맥도 없이요.


오늘은 제가 왜 밀양이라는 도시를 사랑할 수에 없었는지, 여행자로 왔다 발 붙이고 살게 된 이곳에서 어떻게 밥을 벌어먹고 살게 되었는지 이야기 나눠 볼게요. 그리고 저처럼 아무런 농사 지식 없이 농촌으로 내려오려는 분들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까지요.

직접 만든 밀양 굿즈와 쇼룸 ©현드림


⛺ 캠핑하러 왔던 도시가 두 번째 고향이 되기까지 

사실 저는 경관을 보면서 흥이 오르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밀양은 이상하게 좋았어요. 무엇보다도 한없는 자연에 있다가도 조금만 나가면 시내를 만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고요. 시골이라고 하기에도, 도시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딱 그 경계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죠. 부산이라는 대도시에 지쳐 있던 저에게는 그 애매함이 오히려 답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힘이 들 때마다 밀양으로 캠핑을 오게 되었어요.

 

저를 밀양으로 이끈 캠핑 스팟은 제가 밀양에 살면서도 여전히 자주 찾는 곳, ‘암새들공원’과 ‘금시당’이에요. 여기에서 노지 캠핑을 하면 참 좋답니다.

암새들공원 현장 사진 ©현드림


금시당 쪽으로 가면 다리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는 구간이 있는데, 여름에는 물가에 자리를 잡고 쉬거나 가족·지인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하루를 보내기도 해요.


산책을 좋아한다면 용두산생태공원에서 금시당과 월연정으로 이어지는 금시당길을 걸어보시길 추천해요. 밀양강과 소나무숲을 따라 천천히 걸을 수 있어서, 제가 밀양에서 좋아하는 풍경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길이거든요. 봄가을이 특히 좋아요. 복잡한 관광지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강변을 걷거나 조용한 길을 달리는 것만으로 충분히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외에도 밀양의 유명한 오토캠핑장 세 곳을 소개할게요. 

각 캠핑장 업체 제공 

  • 밀양아리랑 오토캠핑장 (하남읍 백산리)
    밀양시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곳이에요. 1박 30,000원, 캠핑카나 카라반은 40,000원이고 강변 바로 앞에 위치해 한적하면서도 경치가 좋아요. 매월 1일 오전 10시 30분에 선착순 예약이 열리고, 입실할 때 신분증 확인이 필요하니 꼭 예약하고 가세요.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은 분들께 잘 맞아요.

  • 밀양표충 오토캠핑장 (단장면)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40여 개의 파쇄석 사이트를 갖춘 캠핑장이에요. 사이트 간격이 넓어서 여유롭게 텐트를 칠 수 있고, 사이트 옆에 바로 주차가 가능해요. 무엇보다 수영장이 좋아서 여름이면 이곳만 찾는 캠퍼들도 있다고 해요. 수심이 깊지 않아 아이들이 놀기 좋고, 물은 매일 오전 깨끗한 지하수로 교체된다고 하고요. 표충사가 가까워서 캠핑과 사찰 여행을 묶기도 좋아요.

  • 밀양 패밀리 오토캠핑장
    봄이 오면 벚꽃이 흐드러지고 계곡이 둘러싼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에요. 캠핑장 바로 옆으로 계곡물이 흘러서 여름철 물놀이하기 좋고, 방갈로와 카라반, 오토캠핑 사이트로 구성되어 있어요. 텐트가 없어도 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그렇게 밀양에 마음을 주고 집을 알아보던 중 부북면 덕곡리에 있는 한옥을 발견했어요. 집을 처음 본 순간 다시 행복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덜컥 구매했습니다. 그렇게 밀양 생활이 시작됐어요.

‘덕곡리 하우스’와 ‘덕곡저수지’ ©현드림

집 앞에는 덕곡저수지가 있어요. 아침이나 해 지기 전 반려견 진미꼬와 저수지 주변을 가볍게 걷다 보면, 처음 캠핑을 왔을 때 느꼈던 편안함을 다시 만나게 돼요. 안개가 낮게 내려앉은 아침과 잔잔한 물 위로 빛이 번지는 저녁의 분위기가 서로 달라서 계절과 시간에 따라 걷는 재미도 있고요. 철새가 무리 지어 날아가는 걸 보면 괜히 영상으로 찍게 되고, 꽃이 한창일 땐 모르는 꽃이 너무 많아서 코를 박고 한참 냄새를 맡기도 해요. 그 순간만큼은 아무 후회도 고민도 없어서 밀양에 참 잘 왔다 싶어요.


🍚 부산 사람이 밀양 국밥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밀양이 부산과 같은 경상도인데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던 점이 바로 돼지국밥이었어요. 밀양에 처음 온 사람들이 돼지국밥을 받아 들고 가장 먼저 하는 말이 “국물이 왜 이렇게 맑아요?”거든요. 부산 돼지국밥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요. 저도 그랬고요.


차이는 육수에 있어요. 부산 돼지국밥은 돼지뼈로 국물을 우려내서 색이 탁하고, 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넣어요. 반면 밀양 돼지국밥은 소뼈로 육수를 내서 국물 색이 맑고 진하며, 고기를 얇게 썰어 넣는 것이 특징이에요. 대구식은 또 달라서 내장 같은 부속 부위를 다양하게 넣고요. 같은 음식 이름을 쓰는데 도시마다 이렇게 다르다는 게, 저에겐 밀양이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첫 단추였어요. 또 한 가지 재밌는건, 부산에는 ‘밀양돼지국밥’이라는 상호를 쓰는 가게가 100곳이 넘는데, 정작 밀양에는 ‘부산돼지국밥’ 집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코리아 민트’라고도 불리는 방아잎을 넣어 먹는 것이 특징이죠. 처음 마주하면 향이 워낙 강해서 당황스러운데, 이게 나중에 그렇게 생각나요. 방아잎은 돼지고기의 잡내를 잡아주고 향미를 살려주지만 특유의 향이 강해서, 원하는 손님에게만 따로 내주는 집도 있어요. 향에 민감한 편이라면 조금만 넣어보시고, 괜찮다 싶으면 그때 더 청하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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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인삼돼지국밥 전경과 맛난돼지국밥 국밥, 출처: 업체제공

  • 밀양인삼돼지국밥 (밀양시 내이동 1564-12) 
    이름 그대로 국물에서 은은한 인삼 향이 나요. 부산 돼지국밥에 익숙한 분이라면 완전히 다른 결이라 더 재밌게 느껴지실 거예요. 삼계탕 같은 느낌이 살짝 있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토렴하지 않고 밥을 따로 내주는 방식이고, 양념이 기본으로 들어가 나오니 참고하세요. 고기는 부드럽고 양도 넉넉해요.

  • 조방돼지국밥 (밀양시 내이동 1578-13) 
    머릿고기를 쓰지 않고 앞다릿살로 맑게 끓여내는 것이 특징이라, 잡내에 예민한 분들도 부담 없이 드실 수 있어요. 국밥과 내장국밥이 있고, 수육백반도 있어요. 다대기나 김치 국물을 넣지 않고 그대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는 집이라, 밀양 국밥이 처음인 분들께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곳이에요.

  • 맛난돼지국밥 (밀양시 삼문동 725-20) 
    사골 육수 베이스라 국물이 진하고 고기 인심이 후한 집이에요. 항정국밥이 특히 괜찮고, 고기가 워낙 넉넉해서 안주 삼기에도 좋아요. 잡내가 전혀 없어서 국밥을 잘 못 드시던 분들도 편하게 드시더라고요.


이처럼 여행자로 바라보던 밀양과 주민으로 살아가는 밀양은 달랐어요. 처음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고 익숙한 생활권도 없었죠. 필요한 가게를 찾는 일부터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까지 모두 다시 시작해야 했어요. 하지만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오히려 천천히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었어요. 자주 마주치던 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일을 통해 만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해주면서 조금씩 생활의 반경이 넓어졌거든요.

💼 그래서, 농사 못 짓는 사람은 어떻게 먹고 살까?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농사를 지을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체력이 안 되거든요. 😂


그래도 첫 1년은 집 마당에서 이것저것 시도해봤어요. 배추 키워서 김장도 하고, 명이나물부터 잡다한 채소까지 심어 장아찌도 담가봤고요. 그런데 잡초가 심해서 한 번 텃밭을 정리하면 이틀을 내리 누워 있어야 했어요. 농사가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지금도 주변에 농사짓는 어르신이 많은데, 신기하게도 그분들 밭엔 잡초가 없어요. 얼마나 부지런하신지 뵐 때마다 대단하다 싶어요.


그럼 먹고사는 건 어떻게 했느냐. 이게 제일 막막했어요.


40대에 밀양에 왔는데, 40대 여자가 로컬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치 않아요. 찾아봐도 설거지밖에 없더라고요. 카페는 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만 뽑으니까요.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장사를 하기엔 동네 분위기도 모르고요. 게다가 밀양이 생각보다 월세가 높아요. 거리에는 사람이 없는데 월세는 높으니까, 이 문제를 어떻게 돌파해야 하나 걱정이 많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디자인 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부산에서 의류업을 오래 했는데 번아웃이 너무 심해서, 업종과 도시를 함께 바꾸고 싶었거든요. 살짝 대인기피도 있었고요. 그래서 밀양 와서도 1년 반은 밖을 나가지 못했어요. 회복이 필요해서 집 안에만 있었죠.


미싱은 오랜 취미였어요. 청소년 시기부터 직접 옷을 만들어 입었거든요. 밀양 와서도 미싱을 하면 마음이 안정돼서 혼자 이것저것 만들었어요.

폐천막으로 만든 작품들 ©구이농


그러다 골목을 지나가는데, 웬 천막 가게에서 쓰고 남은 자투리를 버리더라고요. 바로 사장님께 달려가서 제가 가져가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얻은 폐천막을 깨끗이 닦고 혼자 만들어보기 시작했는데, 천막의 컬러가 너무 다채롭고 질감도 재밌어서 점점 다양하게 만들게 됐어요.


작품이 꽤 쌓였을 때 위양지 연극촌에서 플리마켓 참가자를 공모하더라고요. 2023년 여름이었을 거예요. 다시 밀양 밖으로 나온 날이자, 하기 싫었지만 내가 가장 잘하는 일로 돌아온 순간이었어요.


기존의 일자리를 계속 찾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이곳에서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그때 생겼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밀양에서만 만들 수 있는 건 뭘까’를 고민하게 됐고요. 밀양아리랑이나 영남루처럼 잘 알려진 이야기도 그대로 반복하기보다, 지금 사람들이 입고 들고 쓸 수 있는 디자인으로 다시 풀어보고 싶었어요. 티셔츠 디자인은 제가 좋아하는 한국 전통 민화와 탱화에서 영감을 받았고, 최근에는 갓을 활용해 ‘갓생’을 모티프로 작업하고 있어요.


브랜드 이름은 귀농을 프랑스어처럼 재밌게 풀어서 지었어요. 귀농을 느리게 발음해서 ‘구이농’. 중국어로 해석하면 ‘잘하고 있다’는 뜻도 되더라고요.


🎨 밀양 여행 일정에 영남루는 빠질 수 없죠!
밀양은 도시와 시골의 감성이 섞여 있어서 뭔가 새로운 창조성을 주는 도시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창작하는 분들이 꽤 많아요.

한옥 작업실’과 한옥에서 함께 지내는 고양이 ©현드림

처음 한옥에서 시작한 작업 공간은 지금 영남루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여기서는 실크스크린 체험을 운영하고 있어요.

실제 실크스크린 체험하는 모습 ©현드림


실크스크린은 판에 잉크를 밀어 그림이나 문장을 천에 인쇄하는 방식이에요. 처음 해보는 분도 어렵지 않게 참여할 수 있고, 같은 그림을 써도 잉크 색과 위치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져요. 여행객이 이미 만들어진 기념품을 사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기 손으로 여행의 기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완성한 티셔츠나 가방을 일상에서 쓸 때 밀양에서 보낸 시간도 함께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영남루 야경, 출처: 밀양 홈페이지


그리고 영남루 야경은 꼭 보세요. 작업실에 늦게까지 머문 날에는 영남루 주변과 밀양강변을 산책하곤 해요. 낮에 보는 영남루도 아름답지만, 밤이 되면 조명을 받은 누각과 주변 풍경이 강물 위에 비치면서 전혀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져요. 영남루 야경이 밀양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유를 직접 걸어보면 알 수 있어요.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강물과 누각, 도시의 불빛이 어우러져 밀양다운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길이에요.

다만 밀양이라는 무대가 그렇게 넓지는 않아요. 한정된 자리를 두고 서로 조심스러워질 때가 있어요. 누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판 자체가 좁은 거죠. 그래서 저는 안에서 자리를 나누기보다 판을 밖으로 넓히는 쪽을 권하고 싶어요. 사는 건 밀양에 살아도 활동은 얼마든지 멀리 나갈 수 있잖아요. 만드는 건 여기서 하고, 파는 건 다른 지역까지 나가서 할 수도 있고요.

그런 의미에서 구이농은 9월 aT센터에서 열리는 비마이굿즈 일러스트페어와 12월 코엑스 핸드메이드페어에 참가할 예정이에요. 또, 이번 가을에 오사카 센트럴 스토어샵 입점과 도쿄 코리아 마켓 페어 참가도 확정됐고요. 내년에는 일본 도쿄 핸드메이드페어에도 나갈 예정이에요. 잘쓸레터를 보시고 페어에 방문하시는 분들께서 인사해주신다면 무척 반가울 것 같아요! 뵙게 된다면 반갑게 맞이할게요. 모두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시는 꿈 이루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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