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그만두고 워터파크 스낵바에서 튀김을 팝니다 멀티칼라의 시대에 청춘을 소비하는 방식

📌 코너 소개: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노래하며 놀고 싶은 베짱이 ‘치즈’입니다. 주머니에 먹을 게 떨어져서 노는 걸 내려놓고 일하고 있어요.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를 오가며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습니다. 다음 저의 여정은 무엇이 될까요?

어른들은 늘 말씀하셨죠. 공부 열심히 해서 더울 때 시원한 곳,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하는 게 최고라고요. 저도 알아요. 앉아서 일하는 게 몸은 확실히 편하다는 걸요. 그런데 몸이 편한 일이 마음까지 편한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 있었어요.


저는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되고 싶던 사무직이었죠. 그런데 지쳐 나가떨어져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 서비스직으로 도망쳤어요. 하지만 거기서도 나름의 부조리함을 겪고 다시 계약직 사무직에 들어갔는데, 이번엔 영혼이 다치는 경험을 했고요. 결국 또다시 서비스직으로 도망쳤습니다. 6월 말부터 시작된 워터파크 성수기 동안 저는 인천 영종도 끝자락인 을왕리에서 자체 워킹홀리데이 중이에요. 사서 고생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책상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먼저, 가장 궁금해하실 급여부터 시원하게 밝히고 시작할게요

✅ 2021년, 임용 첫해 공무원: 본봉 165만 원 (수당 별도)

국립극장 레스토랑 서버: 시급 13,000원, 주 3일 × 5시간

강남 펍: 주휴 포함 시급 13,000원

3개월 계약직 사무직: 세전 220만 원

워터파크 스낵바 (현재): 세전 230만 원, 식사·숙소 제공


🎓 ‘시험이 제일 쉬웠어요’, 모범생의 첫 번째 탈출

저는 학창 시절 나름 모범생이었고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갔어요. 방황은 거기서 시작됐던 것 같아요. 계열제로 1년을 보내고 전공을 정해야 하는데, 친구들과 달리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하고 싶은 게 없으니 공부도 안 하고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로 학점만 깎아먹었죠.

공무원증과 코로나 시절 방역복 입고 보건소 근무할 당시 사진 © 치즈


결국 부모님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됐어요. ‘공무원이 되겠다’가 아니라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해볼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연습 삼아 본 시험에 덜컥 붙어버렸어요. 남은 학기 동안 신나게 놀고 임용만 되면 보장된 워라밸과 안정적인 앞길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죠.


하필 코로나 시절에 임용돼 온갖 감염병 업무와 모두가 기피하는 일을 떠맡았어요. 처음 반년은 거의 울면서 일했습니다. 적응도 하고 친구도 생기고 취미도 찾으면서 버텼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는 불편감은 점점 커지더라고요.


그때는 몰랐는데, 저는 일의 의미를 알고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 몸이 움직이는 사람이었어요. 하기 싫은 건 정말 하기 싫어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저도 이러고 싶진 않아요!) 의미를 찾기 어려운 일을 계속하다 보니 내적, 외적 충돌이 끊이질 않았고, 여기서 더 버티면 정말 망가지겠다 싶어 면직을 결정했습니다.


면직할 때 주변 사람들도, 저 스스로도 제가 더 ‘번듯한’ 곳에 도전할 거라 생각했어요. 외국계 회사나 공기업 같은 곳이요. 그런데 겪었던 불일치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그동안 무시해온 자아의 힘이 커진 건지, 저는 명함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쓰는 대신 나를 배우고 세상을 배우는 데 시간과 돈을 쓰기로 했어요. 그렇게 방랑이 시작됐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면 역류성 식도염을

현장에서 일하면 족저근막염을 얻는다

공무원을 그만 둔 뒤, 자유롭게 일하기 시작했어요. 여러 커뮤니티를 기웃거리고, 프리랜서 일도 하고, 소소한 사무 일도 하면서 공무원 시절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까먹었어요. 인생에서 가장 알찬 2년이었습니다.

공무원 퇴사 후 떠난 인도 여행과 유럽 여행의 추억 © 치즈


그러다 작년 상반기, 한 달간의 인도 여행과 6주간의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서 잊고 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꿈을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나이 제한을 넘기 전에 떠나야 했으니까요. 문제는 장기 여행 두 번에 통장이 텅 비었다는 거였죠. 당장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 알바를 구했습니다. 워홀 가면 서비스직을 할 확률이 높으니 감도 살릴 겸, 집 근처 국립극장 안 레스토랑에서 서버 일을 시작했어요.

레스토랑에서 일할 당시, 팔고 남은 음식을 집에 싸갈 수 있던 것이 유일한 복지였어요 © 치즈

무전기 사용도 생소하고 초반엔 삐걱거렸지만, 공연 보러 온 손님들이 워낙 매너가 좋아서 적응하고 나니 이만한 일도 없다 싶더라고요. 문제는 돈이었어요.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파트타이머를 하루 5시간, 주 3일로만 쓰는 구조였거든요. 그 돈으로는 월세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죠.

여의도 한강공원 스태프, 케이터링 알바 시절 모습 © 치즈


그래서 강남 펍, 케이터링, 행사 보조, 영어 스태프까지 투잡, 쓰리잡을 뛰기 시작했습니다. 여의도 한강공원 행사에서 영어 스태프를 한 적이 있는데, 얌전히 통역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오징어게임 옷을 입고 게임을 진행하는 막중한 임무였어요. 그렇게 뛰다가 코피도 흘렸고요.


앓는 병부터 달라지더라고요. 사무실에선 밥 먹고 바로 앉아 일하느라 소화불량과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았는데, 현장에 나오니 다리 부종과 족저근막염이 찾아왔어요. 다리가 너무 부어서 종로 갈 일이 있을 때 약국에 들러 유명 브랜드와 같은 성분의 저렴한 정맥 순환 개선제를 사 먹었는데, 며칠 만에 금방 괜찮아지더라고요. 발에 좋다는 신발도 사 신었고요. 물론 하루 종일 서 있다 보면 앉아서 일하는 사람이 부러워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몸을 쓰는 일에는 사무실 특유의 답답함이 없었어요. 열심히 일하면서도 대체 내가 오늘 한 일이 무엇을 위한 건지 모르겠는 그 감각 말이에요. 반면 몸으로 하는 일은 퇴근 후까지 붙들고 있을 이유가 없어요. 오늘의 쓰레기는 비우면 끝, 설거지도 마치면 끝. 이 직관적인 쾌감을 느꼈을 때 생각했어요.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 직접 끝맺을 수 있는 결과에 목말라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요.

당시 사 먹던 정맥순환개선제와 족저근막염에 좋은 액트플러스 신발 © 치즈


무엇보다 좋았던 건 손님과 나누는 스몰톡이었어요. 직원과 손님을 넘어 ‘존재 대 존재’로 대화하게 되는 순간들이요. 레스토랑이 남산타워 근처라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는데, 더워 보이는 손님에게 얼음물을 건넸더니 “서울 사람들은 다 너무 친절하고 좋다”는 말이 돌아왔어요. 그때 느낀 순수한 뿌듯함, 책상 앞에서는 느껴본 기억이 잘 없더라고요.


화이트칼라로 다시 돌아가고

영혼에 상처를 입게 되는데…

하지만 인간의 미련은 끝이 없는 법이죠. 올 상반기의 저는 비어가는 통장과 현실의 압박에 못 이겨 여러 사무직과 계약직에 서류를 넣었습니다. 나름 제 경력과 결이 맞는다 생각하고 지원했는데,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돈 때문에 마음을 속여가며 넣어서였을까요? 신기하리만큼 되는 곳이 하나도 없었어요.


해탈해서 반쯤 포기하고 아무 데나 넣던 중, 딱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3개월 계약직으로 일하게 된 대학 교육 프로그램 보조 업무였어요. 대학생 대상이라길래 친근하게 느껴져서 ‘그래, 이거라도 해서 일단 돈이나 벌자’ 하고 들어갔죠.


막상 가보니 그곳은 ‘취업 교육’의 현장이었어요.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기업 취업을 정답으로 여기고, 여기서 낙오되면 인생이 끝장난다는 듯한 태도로 살고 있더라고요. 물론 다수에겐 그게 좋은 삶이고 잘 맞는 삶일 수 있어요. 하지만 분명히 아닌 사람도 존재하잖아요. 타인의 의견을 내 의견으로 착각해 맞지 않는 삶을 살다 겪는 힘듦을 저는 이미 경험해봤거든요. 겨우겨우 나만의 세계관을 구축해놨는데, 또다시 “이게 정답이야, 넌 오답이고!” 하고 강요하는 세계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기분이었어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은데 마음에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니 몸이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어요. 면접 때 “사람 때문에 힘들 일은 없을 것”이라던 장담과 달리 상사가 강사들을 하대하는 태도에 스트레스를 받았고요. 나중에야 저를 뽑은 이유가 오직 ‘출신 학교’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을 땐 좀 허무했습니다.

 퇴근 후에 다친 손 © 치즈


결국 몸이 비명을 질렀어요. 생리 주기가 뒤틀렸고, 영혼을 뺀 채 퇴근하다가 길에서 넘어져 손가락 인대를 다치는 사고까지 났거든요. (한의원에 갔더니 왼손을 다쳤는데 오른손에 침을 놔주더라고요?) 번듯한 건물에서 깔끔한 구내식당 밥을 먹으며 일할 수 있는 자리였지만, 영혼이 버티질 못한다는 걸 실시간으로 느꼈어요. 그래서 그 안락한 사무실을 또 박차고 뛰쳐나왔습니다.


을왕리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하며

다시 한번 서비스직에 도전하다

그렇게 튕겨 나오듯 을왕리 리조트 워터파크의 단기 잡으로 도망쳤어요. 식사와 숙소가 제공된다는 말에, 짓눌린 정신적 스트레스를 몸의 노동으로 씻어내자 싶었죠. 호주 리조트 취업을 염두에 두고 경력도 쌓아보자는 계산도 있었고요.


여기엔 정말 다양한 이유로 모인 사람들이 있었어요. 방학 동안 알바하러 온 대학생, 실업급여 요건을 채우기 위해 온 사람, 관련 학과라 실습 나온 학생까지. 성수기 워터파크에는 저마다의 결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을왕리 리조트에 취업, 말 그대로 ‘블루칼라’ 유니폼 © 치즈


덥고 습한 스낵바 현장은 만만치 않았어요. 처음으로 튀김기를 다뤄봤고, 야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치킨과 피자를 날랐죠. 햇빛이 뜨거울 땐 땀이 뻘뻘 나고 팔은 까맣게 타들어 갔어요.


그래도 나름의 자유와 재미가 있었어요. 옷도 편하게 입고(못생긴 유니폼 상의는 예외!), 젖어도 되는 쪼리에 선글라스 끼고 팔토시까지 껴도 되고요. 근무 전후로 언제든 시원하게 씻을 수 있는 샤워실과 사우나가 있다는 건 엄청난 복지였어요.


성수기 한철 장사라 체계가 잘 잡혀 있지 않은 점은 스트레스였습니다. 재고 조사나 운영 방침이 명확하지 않아 사소한 어려움이 계속됐거든요. 그래서 나름대로 체계를 만들어봤어요. 재고 조사용 구글시트를 만들고, 정리되지 않은 창고에 기준을 세워 정돈했죠.


여기서 재밌는 모순을 발견했어요. 저는 사무실의 거대하고 불필요한 체계(쓸데없는 서류나 납득 안 가는 절차)는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현장에서는 최소한의 정돈된 체계를 갈망하더라고요. 현장의 체계는 일할 때 진짜 필요한 실용적인 정리니까요. 그리고 책상 앞에서 사용법을 익힌 엑셀과 구글시트 같은 도구가 현장 일을 훨씬 쉽게 만드는 걸 보면서, 어떤 경험도 결국 버릴 게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쾌감 있게 정리 된 기물들 © 치즈


단기 근무자가 많고 배경도 다양하다 보니 사람 간 필터링이 없어 생기는 불편함도 있었어요. 나이대가 낮아 격이 없는 건 좋지만, 서로 선을 넘는 바운더리의 붕괴도 경험했죠. 주 4~5일 기숙사 생활을 하며 달리겠다고 가져온 운동화는 덥고 습한 날씨에 꺼내보지도 못하고, 직원들과 모여 술 마시는 날만 잦아졌어요.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안 되겠다’ 싶어 건강치 못한 음식을 줄이고 기숙사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하며 저녁을 되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야외수영장의 밤과 낮 © 치즈


결국 관건은 어떤 동료와 일하느냐였어요. 사무실은 업무 분담이라도 확실한데, 체계가 없는 현장에서는 동료의 영향력이 훨씬 크더라고요. 업무가 얽힌 직원과 마음이 맞지 않아 매일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며 안타깝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제 안에 숨어 있던 부끄러운 모습과 마주한 경험이었어요. 지속적인 텃세를 겪으며 마음이 상한 어느날, 나와 이곳에서 오랜 시간 줄곧 일해온 그 사람들을 구분 지어서 생각한 적이 있어요. 나에겐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인 현장이 그분들에겐 다른 의미일 거라 단정 지으며 타인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태도가 튀어나온 거죠. 사람을 직업과 벌어들이는 돈으로 환산하는 이 사회의 가치관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했구나, 뼈저리게 느낀 경험이었습니다.


🌈 청춘을 소비하는 여러 방법에 대하여

사실 요즘 세상의 노동은 소위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핑크칼라 등으로 정해지는 하나의 색깔에 국한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만 해도 낮에는 워터파크에서 몸을 쓰고, 밤에는 기숙사 책상에 앉아 다음 스텝을 위한 서류를 쓰고 영어를 공부하고 글을 썼거든요. 두 세계의 경험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한 사람 안에서 자연스럽게 섞여요. 우리는 필요와 상황에 따라 스스로 색을 갈아입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제가 박쥐 같은 상태에서 외부인의 시선으로 현장을 낭만화한 것일 수도 있어요. 한쪽 세계에만 오래 머물면 반대편을 낭만화하기 쉬우니까요. 그래서 친구와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곤 합니다. “모두가 10년 중 2년은 의무적으로 서비스직에 종사하고, 3년은 농업이나 어업 같은 근간 산업에 종사해봐야 하지 않을까?” 서로 다른 노동의 세계를 경험해봐야 진짜 감사와 이해가 생기고 갈등도 줄어들 거라 믿거든요.


출장차 갔던 해외취업박람회에서 만난 호주 영주권자 한 분의 말씀도 오래 기억에 남아요. 호주는 최저임금이 높고, 청소년들이 각자 적성에 따라 진로를 정하기 때문에 대학이 꼭 정답은 아니며, 몸을 쓰는 노동의 가치도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분위기라고요. 그런 환경이 좋아 정착하셨다는 말을 듣고, 저도 그 가치관의 전복을 직접 느껴보고 싶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어요.


보통 20대에는 방황하며 경험을 쌓고 30대부터는 안정을 찾는다고 하죠. 저는 그 경험의 시작이 조금 늦어져 여전히 헤매는 중이라 가끔은 벅차기도 해요.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선을 그려나가고 있어요. 그 선을 알아야 앞으로 더 나다운 일,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꽤 명확해지거든요. 단기 잡을 구하는 분들, 방학에 색다른 경험을 원하는 분들께 현장 경험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예요.


지금도 몸이 힘들 땐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서 벌 수도 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불쑥 들어요. 그런데 그 시원한 사무실은 결코 공짜가 아니잖아요. 실제로 을왕리에서 전 직장에서 걸려온 업무 연락을 받았을 때, 예전의 스트레스가 트라우마처럼 몰려오더라고요. 밀려드는 지시에 우선순위가 헷갈리고 중간중간 새로운 요구에 시달리던 때를 떠올리니 아, 나는 지금이 좋구나 싶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공부 잘해서 ‘사’ 자 직업을 갖고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죠. 정답의 세계에서 보면 저는 완전한 오답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밖으로 튕겨 나와 겪어 보니, 모두가 맞다고 하는 정답이 나에게는 정답이 아니더라고요.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물며 안정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보고 있거나, 앉아 있는 자리가 불편해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분들 모두, 그 고민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을 거예요. 헤매는 것도 나다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일 테니까요. 정답은 없으니 우리, 같이 헤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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