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관세 혼합 정책을 통한 제조업 부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죠. 고관세로 세수 감소분을 메우는 것은 한계가 명확해요. 관세로 거둬들이는 세금이 감세로 부족한 곳간을 채우기에는 부족한데다, 상위 1%에 혜택이 집중되기 때문이에요. 제조업을 부활시키려면 산업정책(보조금, 연구개발, 공급망 지원 등)이 필수적인데요. 이런 조치들이 도입될 조짐은 아직 없어요. 산업정책에 기반한 당근(투자 장려 보조금, R&D 지원 등)과 채찍(고관세)을 적절히 구사한 바이든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고강도의 채찍만 휘두르는 듯 보여요. 제조업 부활을 노리면서 이민자들을 추방한 것은 임금과 물가 상승을 불러일으켜요. 정책 간에 모순되는 요소들이 보이지 않나요?
미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서비스 부문이 만년 흑자인 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요. 기축통화국으로서 겪는 ‘트리핀의 딜레마’, 기축통화국은 지속적으로 달러를 공급해야 하므로 무역적자를 피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죠. 무역적자가 지속되면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달러 공급을 줄여야 하고, 달러를 줄이면 세계 경제가 어려워져요. 미국은 이 딜레마 속에서 무역 적자를 유지하면서 기축통화국의 위치를 유지해 왔어요.
무역적자란 국내의 저축 부족을 외국의 투자가 메꾸는 것*이라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서는 국내 저축을 늘려야 한다는 점, 글로벌가치사슬 내에서 미국이 창출하는 국내 부가가치가 많은 점, 그리고 이를 통해 주로 고학력 화이트칼라가 높은 소득을 얻고 있는 점은 외면하고 있어요.
상호 관세 등이 현실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도 커지고 있어요. 어떻게 원만하게 풀어 갈지도 문제예요. 미국 내에서는 상호관세가 미국 관세 체계의 혼란을 초래하고, 비용 상승 등의 부담으로 국내 기업과 소비자에게 부담을 주며,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약화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어요.
트럼프 행정부 내의 균열
JD 밴스 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 행정부 인사들은 기술 낙관론자(techno optimists)와 우파 포퓰리스트(populist right)로 크게 나뉘어요. 이들 사이에는 관세를 둘러싼 시각차가 있어요. 예컨대, 전자에 속하는 월가 출신의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관세를 협상 도구로 쓰는 게 적절하다고 봐요. 중국에서 테슬라 공장을 가동 중인 일론 머스크는 중국과 대립이나 높은 과세가 부과되는 것을 반가워할 리 없죠.
반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용어를 만든 것으로 알려진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고문은 우파 포퓰리스트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관세 전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어요.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나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도 관세 만능론자에 가까워요.
밴스 부통령은 전직 실리콘 밸리의 벤처 캐피탈리스트였던만큼 기술낙관론자와 우파 포퓰리스트 간의 시각차를 분열로 확대 해석하는 경향을 경계하며 양측이 연대 가능할 거라고 주장해요. 기술낙관주의가 신봉하는 혁신을, 우파 포퓰리스트가 중시하는 노동의 가치를 대체하기보다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밴스는 자신이 두 세력의 연합을 중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양상은 우파가 오히려 좌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반자유주의 혹은 노동자 중시 기조를 가져와 MAGA 세계관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데 쓰려는 모습을 보여주죠.
미국 민주당이 힘을 쓰지 못하는 동안, 밴스의 바람대로 양자 간 균열이 봉합되고 MAGA 세계관이 한층 진화해 미국의 주류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될지 주목돼요. 관세 전쟁의 이론적, 철학적 기반을 튼튼히 하여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될 거예요.
단, 트럼프 1기와 달리 철저히 트럼프 대통령에 충성적인 인사들로 행정부를 꾸렸고 입법부와 사법부도 장악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두 세력의 출동은 일관성 없는 관세 정책이 나온다거나,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수준에 그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또한 관세 전쟁의 지속을 어렵게 할 거예요.
미국 내 지지기반의 이탈
단기적으로 관세 전쟁의 최대 성패는 미국의 지지층에게 달려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 중 하나는 바이든 행정부 때 잡히지 않던 인플레이션이었죠. 그런데 고관세는 이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어요.
그 직격탄을 맞는 사람들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지지기반일 거고요. 특히 공화당 지지 기반의 반응이 중요해요. 게다가 감세-관세 혼합정책(TCTM)의 최대 수혜자는 노동자가 아닌 상위 1%예요. 이들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돌아설 임계치가 어느 수준일지 주목되네요.
산업계의 동요 여부도 무시할 수 없어요. 미국의 상공회의소, 소매업지도자협회, 컴퓨터통신산업협회, 국제물류협회 등의 협회와 단체, 기업은 상호 관세가 보복관세를 유발하고 경제 안정성을 저해하는 등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며 우려하고 있어요. 특히 머스크 소유의 테슬라의 반발은 예사롭지 않죠. 테슬라가 그리어 USTR 대표에게 보낸(보복이 두려워 서명조차 없는) 서신에서 공정 무역을 지지하나 다른 국가의 보복관세는 미국 수출업체에 생산비용 증대와 같은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어요.
3월 7일에서 11일 동안 미국 NBC가 전국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47%로 1기와 2기를 통틀어 최고치지만, 51%가 부정 응답이었어요. 특히 경제정책에 관해서는 54%가 반대했어요. 경제 분야의 반대 응답은 1기 3개월 차의 여론조사(2017년 4월, NBC, WSJ 공동 실시) 당시의 46%보다 높아졌죠. 5대 주요 분야(국경 보안 및 이민, 외교, 경제, 인플레이션 및 생활비, 러시아-우크라이나전)별 국정 운영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는 ‘국경 보안 및 이민’만 유일하게 56%로 가장 높고 나머지는 모두 반대 의견이 절반을 넘었어요. 주요 정책별 평가에서는 ‘무역 및 관세’에 대한 부정 평가가 여타 정책에 비해 가장 높은 38%로 나타났어요. 하지만 해당 분야에 대한 긍정 평가가 41%로 이보다 3%p 높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거예요. ‘인플레이션 및 생활비’에 대해서도 긍정(40%)이 부정(30%)보다 높았어요.
전반적인 여론은 좋지 않은데요. 여론조사업체 해리스폴이 미국의 성인 2,13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4월 8일 ~ 12일간)에서는, 미국인의 72%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어요.
더 최근 자료를 볼까요? 4월 1일~14일 실시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44%, 반대율은 53%로 나타났어요. 이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트럼프 정부의 경제 정책에 우려를 표하며 경기 침체에 기여한 요인으로 경제와 인플레이션을 꼽았어요. 바이든 정부의 지지율을 갉아 먹은 그 인플레이션 말이죠.
국채금리의 상승도 걱정거리인데,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연기한 이후는 다소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요. 하지만 안심하기는 일러요. 시장에서는 관세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에 더해 불신도 깊어지고 있어요.
미국 유권자들이 트럼프 정부로부터 등을 돌릴지에 대한 관건은 일자리보다 물가예요. 물가는 아무도 피해갈 수 없거든요.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단기적으로 고통은 피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는 실패에 대비한 사전 포석으로도 볼 수 있어요.
미국과 ‘헤어질 결심’ 하는 동맹과 우방국
장기적으로는 미국 밖의 변수도 무시하기 힘들어요. 미국은 전면적인 관세 전쟁으로 국제사회에서 공공의 적이 되었어요.
대서양 건너 미국의 전통 우방‘이었던’ EU는 미국과 ‘헤어질 결심’을 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의 미국은 유럽과의 안보 동맹에 선을 긋고 푸틴에 호감을 표하는 미국, 서방의 전통 가치와 규범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극우주의자들을 지지하는 미국,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중국, 북한, 이란과 함께 반대표를 던진 미국, 그린란드 매입 야욕을 드러내는 미국, 동맹이나 우방에도 무차별 관세 폭탄을 던지는 미국이니까요.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캐나다는 어떨까요? 3월 10일 캐나다에서 공개된 모 여론조사(캐나다인 1,500명 대상 조사)에서, 캐나다인의 44%가 EU에 가입해야 한다고 답변해 그 반대 답변(34%)을 웃돌았어요. 캐나다인의 미국에 대한 호감도는 34%로 중국(28%)과 큰 차이 없을뿐더러 EU에 대한 호감도(68%)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어요. 향후 3~5년 내 캐나다에 가장 중요한 파트너를 고르라는 질문에 2위 중국(28%)보다 높은 35%가 미국을 가장 중요하지 않은 나라로 선택했어요. 캐나다 소비자들은 4월 현재 미국산 수입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고 이를 돕기 위해 바코드를 스캔하여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Maple Scan’이라는 앱까지 등장했는데 3월 출시 후 다운로드 수가 10만 건을 기록했어요. 이와 유사한 앱이 이것 말고도 세 개 더 있어요. 캐나다인의 미국 여행자 수도 상당히 감소했고요.
문제는 과연 이들이 미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있느냐예요. 세계 무역이 미국권, 중국권, EU권의 3대 권역으로 크게 나눠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자신의 영향권에서 관세 전쟁으로 고립을 자초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만큼 미국의 영향력도 축소될 수 있어요.
사실 바이든 전 대통령이 동맹과 우방을 찾았던 이유는, 미국 단독으로 중국을 상대하기엔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동맹이나 우방이 안중에도 없어요. 그러니 미국에서조차 이로 인한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어요. 지금 중국은 미국의 관세 부과에 전혀 기죽지 않고 정면으로 맞대응하고 있어요. 그런 와중에 동맹과 우방마저 미국에 등 돌린다면, 미국은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