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국의 동력이 된 에너지
어느 시대든 에너지원을 먼저 확보하고 활용한 국가는 산업과 경제에서 앞서 나갔습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은 곧 에너지 혁명이었죠. 주역은 석탄이었어요. 증기기관은 석탄의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꿨고, 이 기술은 운송과 제철, 방직 등 여러 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어요. 영국은 풍부한 석탄 자원을 발판으로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렸어요. 그리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으로 도약했죠.
20세기에 들어 에너지의 중심은 석탄에서 석유로 이동했어요. 미국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먼저 활용한 국가였어요. 오늘날 미국이 패권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석유가 있어요.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떠오른 20세기 전반기에 미국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1위의 산유국이었어요. 이후 미국은 최대 산유국 자리를 사우디아라비아에 내준 시기도 있었지만, 중동 정세에 깊숙이 개입하며 석유 공급망에 영향력을 행사했어요. 또 중동산 원유 거래의 달러 결제 체계를 바탕으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지켜냈어요. 만약 석유가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지위는 달라졌을 거예요.
21세기에 이르러 중국도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며 성장했어요. 특히 석탄과 석유 소비를 폭발적으로 늘리며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어요. 지금은 전기차와 배터리, 태양광과 풍력 등 새로운 에너지 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죠. 미래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볼 수 있어요.
역사를 움직여온 중요한 동인 가운데 하나는 에너지였어요.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재생에너지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에너지원이 등장할 때마다 산업의 구조와 국가의 경쟁력도 달라졌어요. 하지만 하루아침에 새로운 에너지가 기존 에너지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에요. 더 효율적이고 활용하기 좋은 에너지원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산업과 인프라가 만들어졌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의 중심축이 서서히 이동한 것이죠.
미래의 에너지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
오늘날의 에너지 전환에는 과거와 다른 점이 있어요. 과거에는 경제성과 기술 발전에 따라 에너지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이동했다면, 지금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 자체를 의도적으로 줄여야 해요. 하지만 탄소중립을 위해 사용을 늘려야 하는 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에너지원이 아직은 기존 에너지보다 경제성 측면에서 유리하지 않아요.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해요. 재생에너지에 맞는 전력망을 확충하고 발전 설비와 저장 시설에도 투자해야 하고요. 정부 정책과 국가 간 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죠.
동시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도 유지해야 해요.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처럼 미래 핵심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앞으로의 에너지 전환은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의지는 물론,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정교한 전략이 필요해요.
이 전략을 생각해보기에 앞서 다른 나라의 에너지 믹스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오늘날 프랑스는 발전량의 66.8%를 원자력에 의존하지만, 이탈리아의 원자력 발전 비중은 0%이고 가스 발전 비중은 44.4%예요. 중국과 인도에서는 석탄 발전 비중이 각각 61.3%와 74.4%인 반면, 브라질과 노르웨이에서는 수력 발전 비중이 각각 56.1%와 88.9%예요. 미국이 풍부한 석유와 가스 자원을 활용하는 한편, 영국은 북해의 강한 바람을 활용해 해상풍력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에너지 전략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는 같더라도 각 나라의 자원 보유 여건과 에너지 접근성, 지리적 조건, 제조업 비중, 기술 수준이 모두 달라요. 결국 각 나라는 자신의 조건에 맞는 최선의 경로를 설계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에 맞는 에너지 전략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반면 제조업 비중이 높고, 해외 에너지 의존도도 매우 높아요. 특히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죠. 세계적인 원유 수입국인 우리나라의 2025년 석유·가스 수입액은 1225억 달러, 한화로 약 180조 원에 달해요. 국가 전체 수입액의 약 19%, 국내총생산(GDP)의 약 7%에 해당하는 규모예요.
이런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략은 석유와 가스 의존도를 장기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두 가지 과제를 함께 풀어야 해요.
우리나라는 프랑스나 브라질처럼 특정 에너지원에 크게 의존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에요. 다양한 에너지원과 관련한 기술력을 확보하고, 이를 조화롭게 활용하는 능력이 중요해요. 석유와 가스의 안정적인 공급 능력을 유지하면서 원자력의 경쟁력도 일정 부분 활용해야 해요.
에너지 전략은 ‘선택’이 아닌 ‘조합’의 문제
사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에너지 전환과 탄소 문제의 답은 당분간 하나가 아닐 거예요. 당분간은 재생에너지와 석유가 공존하고,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함께 에너지 안보를 뒷받침하는 현실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천연가스 역시 전력 수요 변화에 대응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전망이에요.
앞으로의 에너지 전략은 ‘선택’보다 ‘조합’의 문제예요. 어느 하나를 버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각 에너지원의 장점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중요한 상황이 이어질 거예요. 그 조합을 얼마나 현명하게 설계하느냐가 우리나라의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