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

글, 최지웅

세계를 이해하려면, 석유를 이해해야 해요
석유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에요. 교역 품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물가 수준과 국제 수지를 결정해요. 석유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각종 뉴스와 지표를 통해 워낙 자주 접해서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죠.

그러나 사실 석유에 의해 더 크게 좌지우지되는 건 정치예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경쟁에 이르기까지 그 중심에는 석유가 있어요. 국제 정세는 석유의 정세라고 바꿔 말할 수 있을 정도예요.

석유는 식량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협상 카드예요
국제정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자국의 이익을 키우기 위해 타국과 협상하고 경쟁하는 과정’이에요. 극단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외교로 타협점을 찾죠. 이때 협상력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식량과 에너지 등 필수 자원의 무역을 통제하는 거예요.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을 때, 협상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죠. 희토류, 리튬, 반도체, 배터리, 천연가스 등 모든 주요 자원이 상대를 압박하는 카드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규모와 역할 면에서 석유에 비할 자원은 없어요. 석유는 여전히 세계 무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이에요. 모든 산업에 범용으로 쓰이며, 협상에 실패하거나 불리해졌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동원하는 군사력조차 석유 없이는 움직일 수 없죠. 그래서 석유는 모든 무기의 원천이자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무기예요.

미국이 중동에 개입한 이유
1970년대 두 차례 발생한 오일쇼크는 ‘석유 무기화’가 극단적으로 발현된 사례예요.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아랍 산유국들은 석유 수출을 중단하거나 줄였어요. 그리고 이는 1차 오일쇼크로 이어졌죠. 배럴당 3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가 약 12달러까지 폭등했고,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했어요.

오일쇼크의 충격 이후 미국은 더욱 적극적으로 중동 정세에 개입했어요. 2003년 이라크전은 미국이 석유 공급망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보여준 사건이었어요. 당시는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하루 500만 배럴로 이하로 감소한 시점이었죠. 1970년대 약 1000만 배럴에 달했던 미국의 산유량은 기존의 대형 유전들이 고갈되고, 저렴한 해외 원유 수입이 늘어나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감소세를 이어갔죠. 그러다 보니 미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역대 최고 수준까지 높아졌어요. 점차 미국은 중동으로부터 안정적으로 석유를 들여오는 데에 사활을 걸게 됐죠.
그런데 그 시점에 중동 한복판에 위치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반미 노선을 지향하며 미국을 불안하게 만들었어요. 이란의 이슬람 신정 정권도 미국을 악마로 규정하며 미국을 비판했고요.

이러한 지역 정세는 사우디 석유 공급망까지 위협할 수 있었어요. 만약 아랍 국가들과 전통적인 반미 국가인 이란까지 합세해 이라크를 중심으로 미국에 맞선다면, 미국의 에너지 안보는 물론이고,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지위마저 흔들 수 있었어요.

석유 공급의 핵심 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이라크 전쟁
결국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구실로 이라크를 침공했어요. 지상군까지 투입해 이라크의 반미 정권을 무너뜨렸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 또한 막심한 손실을 감내해야 했어요. 이라크 점령은 작전 26일 만에 이루어졌으나, 점령 후 통제가 문제였어요. 무려 4,500여 명의 미군 사망자가 발생했어요.

미국이 자국민 수천 명을 희생시키면서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중동이라는 거대한 석유 공급 기지를 미국의 영향 아래 두고자 했던 것이죠.

미·중 패권 경쟁의 중심에 놓인 석유
오늘날 미·중 패권 경쟁을 이해할 때도 중요한 것이 석유예요. 2010년 이후 미국은 셰일 혁명을 거치며, 사우디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었어요. 반대로 중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석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예요. 게다가 중국은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 등 지정학적으로 위험이 큰 지역을 거쳐서 원유를 수입해요. 이것은 중국의 치명적 약점이죠.

중국은 석유 공급망의 취약성을 극복하고자,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는가 하면, 중남미까지 가서 투자와 차관을 제공하고 석유를 확보하는 이른바 ‘자원외교’를 펼치고 있어요. 2024년 기준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량의 거의 절반은 중국으로 향했어요. 중국이 가까운 중동을 두고, 비싼 운송료를 감내하면서까지 중남미 원유를 수입하는 이유는 미국이 주도하는 석유 공급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예요.

확보가 아닌 지배를 위한 전쟁
지난 2월 28일, 미국이 이란을 공습한 궁극적 동기도 결국 중동 지역의 석유예요. 물론 미국이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 된 2018년 이후 석유 공급원으로서 중동의 중요성은 줄었어요. 하지만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대부분 ‘내수용’이에요. 반면 사우디, UAE, 쿠웨이트 등의 석유는 ‘수출용’이죠. 특히 사우디는 글로벌 석유 공급자로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중국은 중동에서 에너지·투자·안보 협력을 넓히며 미국을 견제해 왔고, 이란 역시 그 지역의 대표적인 반미국가예요.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와 주변 산유국들이 중국이나 이란 쪽과 가까워진다면 세계 에너지 질서를 뒤흔드는 문제를 넘어 미국 중심의 패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어요.

또 전 세계에서 중동의 석유는 달러로 거래되고 있어요. 기축 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를 지켜주는 ‘페트로 달러’의 중요한 축이죠. 만약 사우디가 중국의 위안화나 다른 통화로 석유를 결제하기 시작한다면, 달러의 지위는 흔들릴 수 있어요.

석유는 여전히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자원이고, 강력한 제재 수단이며, 상대국의 힘을 제한하는 무기예요. 미국에 대한 동맹국들의 충성도 결국 중동 산유국을 장악하는 데서 나온다는 해석도 있어요. 그래서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되었어도 중동을 떠날 수 없어요. 앞으로 석유를 둘러싼 갈등을 볼 때 석유를 확보하는 것과 지배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필진 소개: 안녕하세요. 한국석유공사 정보분석팀에서 석유 시장과 산업, 에너지 전환과 탄소 문제를 연구하는 최지웅입니다. 저는 석유 수급과 에너지 정보 등 다양한 업무를 맡으며 현장을 경험해왔습니다. 여러 방송을 통해 에너지 산업의 변화와 미래를 전한 공로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역사와 경제의 흐름 속에서 에너지 산업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는 힘’인 석유에 대해 짚어보고자 합니다. 지은 책으로는 《2050 에너지제국의 미래》와 《석유 제국의 미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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