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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어디서부터 돌봐야 할까요?

person wearing gold wedding band

글, 박한슬

📌 필진 소개: 안녕하세요, 약 대신 글을 짓고 있는 약사 박한슬입니다. 라디오에서는 약과 질병에 대한 상식을 전하고, 신문에는 바이오산업과 의료정책에 대한 글을 쓰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복잡한 의료와 보건, 바이오산업 이슈를 차분하게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온 ‘돌봄’


어피티 독자분들께서는 ‘돌봄’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순 우리말이라서 단어 자체의 의미는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는 한편, 각종 기사와 뉴스에서 말하는 ‘돌봄’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와닿지는 않는 경험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돌봄이 ‘사회적’으로 논의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거든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돌봄이라는 분야는 별다른 이름도 없이, 주로 가족 중 여성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 중 하나였습니다. 어린 가족구성원에 대한 돌봄, 질병을 앓는 가족구성원에 대한 돌봄, 노령의 가족구성원에 대한 돌봄까지. 모든 돌봄을 여성들이 주로 도맡아 하되, ‘일’로 여기진 않았죠.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말한 것처럼 철저한 ‘그림자 노동’의 영역에 속해 있던 거예요.


우리 사회가 이런 ‘돌봄노동’을 처음 인식하게 된 건, 가정에 매여있던 많은 여성들이 사회로 나오며 가정 내에서 돌봄노동을 담당할 사람이 사라진 이후의 일이에요. 그제야 돌봄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이라는 인식과 함께, 공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돌봄이 ‘사회화’되기보단, ‘상업화’되는 형식으로 해결됐다는 거예요.


독박돌봄이 기본값인 사회


가장 대표적인 게 어린이에 대한 돌봄 행태 변화예요. 과거엔 주로 어머니들이 집에서 전담하던 자녀 보육은 맞벌이 가구가 늘어나며 점차 피아노 학원, 태권도 학원 같은 곳들에 사교육비를 지불하고 맡기는 형태로 ‘외주화’됐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집에 혼자 방치되는 식이었죠.


2000년대 즈음부터는 비슷한 일이 아픈 노인에 대한 간병을 중심으로 똑같이 반복됐습니다. 맏며느리가 시부모를 간병하는 형태의 가족돌봄모델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되면서, 간병 역시 사회적 돌봄이 아닌 ‘상업화’되는 형태로 해결되기 시작했거든요. 


초기에는 간병인 고용을 두고 멀쩡한 자녀들이 자식된 도리를 저버렸다는 식으로 여겨졌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지불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다들 돈 주고 간병인을 고용하게 됐어요.


시설에서 간병을 진행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에는 요양원이나 주간돌봄(데이케어) 센터, 요양병원 등에 노인을 모시는 일에 대해 사회의 윤리적 비난은 물론, 당사자인 노인들의 거부감도 컸어요. 


현재는 초고가 프리미엄 실버타운 형태의 고급 돌봄 시설도 곳곳에 들어선 상태입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평범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과 같은 시설 역시 상당 수준의 비용 부담 없이는 입소조차 어렵죠.


안타까운 점은 이렇듯 개개인이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의 돌봄 전환이 다양한 문제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서툴게 상업화된 돌봄의 문제점


첫 번째 문제점은 돌봄의 질이에요. 돌봄은 과거의 왜곡된 인식 탓에 전문성 있는 노동으로 인정받질 못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돌봄을 외주 주는 과정에서도 돌봄노동자의 자격 요건이나 돌봄의 질에 대한 요구는 거의 없었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이 20년 넘게 방치된 탓에, 지금도 간병인은 아무런 자격 없이 일할 수 있어요. 추후 연재에서도 살펴보겠지만, 이런 상황이 ‘노인 학대’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문제점은 노인에 대한 돌봄이 의료와 혼재되며, 고유성 있는 분야로 인식되질 못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현재 우리나라 돌봄은 상당부분 의료와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노인에 대한 돌봄이라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돌봄을 전담하는 전문적 돌봄 시설이 아닌 ‘요양병원’이란 의료기관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태니까요. 의료와 관련된 이슈에 밀린 돌봄 영역은 아직 사회적 의제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문제점은 돌봄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에요. 사교육비를 낼 수 없는 아이들은 학원이란 돌봄 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듯, 간병비를 부담하지 못하는 노인들은 간병인을 이용하지 못합니다.


큰 고통을 가족 단위에서 감당해야만 한다는 뜻이죠. 돌봄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직업을 포기하고 돌봄에 종사하게 되거나, 방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돌봄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이대로 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현재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는 고령화예요. 노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서 돌봄 수요는 지금보다 훨씬 커질 거고, 특히나 대략 1950-60년대생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령인구에 접어들면 이들의 돌봄은 자녀 세대인 80-90년대 생의 책임이 되죠. 돌봄이 지금과 같은 상업화된 형태를 유지한다면 우리에겐 세 가지 정도의 선택지가 남습니다.


  • 부모님의 돌봄을 위해 일시적 휴직이나 퇴직을 선택하고 직접 돌봅니다
  • 월급의 상당 부분을 간병인 등에게 지불하여 돌봄을 위탁합니다
  • 키워주신 부모님에게는 죄송하지만 눈 딱 감고 모른 체합니다


어느 쪽이든 그리 만만하게 고를 수 있는 건 없죠? 더군다나 각각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봤을 때도 여러 가지 문제를 낳습니다. 윤리적 문제가 있는 세 번째 선택지를 제외하면, 사회는 각각의 경우에 다음과 같은 타격을 입게 됩니다.


  • 직접 돌봄 선택 시, 노동 가능한 인력이 돌봄 영역으로 쏠려 노동력이 부족해집니다
  • 비싼 사설 돌봄을 선택 시, 가처분소득이 감소해 소비가 위축되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결국 현재와 같은 상황을 유지하는 건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야할까


중요한 건 과거의 가족 중심 돌봄 모델이 붕괴하였음을 인정하고, 사회가 함께하는 돌봄 모델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의료와 딱 붙어 구분되지 않고 있는 돌봄을 고유성 있는 분야로 분리해서,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요.


현재의 고령 세대를 위한 해결책만이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 두셔야 해요. 딩크 부부나 1인 비혼 가구 역시도 고령이 되었을 때 돌봄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낯선 얘기에 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돌봄의 현주소를 살피고, 어떤 해결 과제가 있는지 살피다 보면 우리가 사회가 나아갈 길도 가늠이 되기 시작하실 거예요. 부족하지만 거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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