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구글이 될 수 있을까

글, 서영민

실패가 영원한 추락은 아니다 

지난 시간에는 삼성이 왜 HBM에서 ‘파괴적 혁신’을 이루지 못했는지 살펴보았는데요. 사실 삼성만 그런 건 아니에요. 구글도 같은 실수를 했어요. 오늘은 이 실패담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저는 챗GPT에서 번역 기능을 가장 사랑해요. 취재차 영어 이메일을 써야 할 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됐어요. 쓰는 시간은 10분의 1로 줄었고요. 어색한 단어 대치에 불과했던 과거의 번역기와는 차원이 달라요. 


이건 GPT의 ‘T’와 연관이 있어요. T는 Transformer, 즉 변환기를 의미하는데요.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게 만든 획기적 방법론이에요. 과거의 컴퓨터는 인간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거나,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꿀 때 단어 하나하나 차례대로 번역해야 했어요.

그러나 트랜스포머는 단어 하나하나보다는 단어들 사이의 연관관계, 즉 맥락을 중시해요. 자연히 중요한 단어에 집중(Attention)해서 문맥을 파악하는 탁월한 재주가 생겼어요. 이를테면, ‘진심 어린 사과’와 ‘탐스러운 사과’에서 두 사과가 다른 사과란 걸 알죠.


이 방법론은 구글 연구진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그 성과를 발표한 논문이 ‘Attention is all you need(2017)’죠. ‘집중만 하면 돼’ 정도로 번역하면 될까요? 이 논문은 인용된 횟수가 17만 회가 넘을 정도로 유명한데요. 왜 이 논문을 내놓은 구글이 아니라, OpenAI가 앞서 나가게 된 것일까요?


그건 구글도 삼성처럼 기회를 날렸기 때문이에요. ‘구글 검색창에 들어맞지 않는 아이템’이라는 이유였다는데, 진짜 이유는 수익성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어차피 번역기는 돈이 안 되잖아? 그런데 트랜스포머는 기존 검색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돈)를 소모하네? 우리(구글) 몸집을 생각하면 너무 작은 사업이야. 앞으로 돈은 더 많이 들 텐데, 이걸 발전시킬 필요가 있을까? 버리자.


결국 2023년까지 트랜스포머 연구팀 8명 전원이 구글을 떠나요. 관료화된 조직과 진짜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영진에 환멸을 느낀 거죠. 이게 트랜스포머를 처음 개발한 구글이 오픈AI의 그림자가 된 이유예요. 


그래도 이후 구글은 추격에 박차를 가했고 오픈AI를 많이 따라잡았어요. 수조 원을 들여, 회사를 떠났던 연구 책임자를 복귀시키기도 했어요. 그 결과인지, 구글의 제미나이는 챗GPT를 빠르게 따라잡고 있네요. NotebookLM 같은 별도 어플리케이션도 만들어 또 다른 재미도 주죠. 최근에는 AI 경쟁의 최종 승자는 구글일 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정리하자면, ‘파괴적 혁신’ 앞에서 수익성을 생각하는 큰 기업은 실패하기 쉬워요. 하지만 그 실패가 꼭 영원한 추락을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기술 경쟁력이 있다면 말이죠. 구글처럼 빠르게 추격해서 다시 올라올 수도 있어요.


삼성도 구글처럼 다시 도약할 수 있을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에요. 삼성의 실패가 단순히 파괴적 혁신을 못 알아본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에요. 삼성은 HBM뿐만 아니라, 주력 제품인 D램의 성과도 좋지 않거든요. 

D램 기술력의 한계 

최신 D램의 공정은 10나노 6세대예요. 1c라고도 불리는데,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시작했어요. 삼성은 그 전 세대인 1a(4세대)나 1b(5세대) D램 수율도 떨어져요. 불량률이 높고, 본업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뜻이에요. 실패를 발판 삼아 달려가는 구글과는 이 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어요. 실패 속에서 여전히 허우적대는 인텔에 가깝죠.


지난 연재에서 인텔의 CPU가 멈춰 선 이유는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너무 작아져 만들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삼성도 트랜지스터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무어의 법칙’의 한계 앞에 부딪친 것이죠. 


1999년 마지막 치킨게임이 끝난 뒤, 홀로 20년 장기 집권해 오던 삼성은 다른 분야도 아닌 본진인 D램에서 ‘더 정밀한 칩(최신 1c 공정 D램)’도, ‘더 부가가치 높은 칩(HBM3E)’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어요. 반도체 시장 최고 점유율 자리를 32년 만에 내준 이유이기도 해요.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에요.


신성장 동력에서 길을 잃다

삼성은 D램만으로 성장하지 않았어요. LCD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플래시 같은 차세대 저장장치 칩,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했기에 지금의 삼성이 될 수 있었어요. 본진(D램)에서 돈을 벌어 멀티(LCD, 플래시, 스마트폰)를 확장하는 방식이 통했던 거예요.


그런데 파운드리에서 무너졌어요. 수십조 원을 투자했으나 새 손님을 불러들이기는커녕, 원래 있던 손님도 뺏겼어요. 2022년 AP 생산을 의뢰하던 퀄컴을 잃었고, 3나노 GAA 공정은 TSMC보다 먼저 확보했지만 수율 낮은 삼성 파운드리를 아무도 찾지 않았죠.


과거의 삼성은 이러지 않았어요. 기술적 진화의 모든 길목을 꼼꼼히 살피고,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면 모두 만들어봤죠. 최종 판단이 서면, 무섭게 움직였어요. 시장 반응이나 기술적 탐색에서 결론이 나는 대로 과감히 투자해 먼저 치고 나갔죠.


칩의 세계는 ‘관식이 마음’과 달리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항상 변화의 방향을 향해 예민한 감각을 유지했어요. 다른 한편에선 항상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위에 서서, 이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했어요. 그렇게 변치 않는 두 중력 아래서 성공하고 성장한 삼성, 지금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어요.


신뢰를 잃은 조직의 구원자 데이터!?

최근 삼성이 미국 테크 기업 팔란티어의 고객이 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팔란티어의 핵심 역량은 ‘빅데이터 연결’이에요. 다양한 종류의 방대한 데이터를 한데 모아, 그 안에서 의미 있는 패턴과 통찰을 찾아내는 것이죠. 이를 통해, 조직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요.


이 강력한 데이터 분석 및 통합 능력을 전 세계 기업이 탐내고 있어요. 특히, 삼성은 반도체 생산, 공급망 관리, 연구개발, 마케팅 등 수많은 영역에서 실시간으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쏟아 내요. 그만큼 분석할 만한 데이터가 많은 기업이에요. 협업하기 딱인 기업인 거죠

그래서인지 삼성 내부 직원들의 기대가 크더군요. 특히 ‘중간 관리자 문제’ 해결을 기대하고 있어요. ‘현장의 문제를 보고해도 위로 전달이 안 된다. 지적받고 싶지 않은 누군가가 문제를 숨긴다. 관료화되고 비대해져서, 부분 이익을 위해 전체 이익을 해친다. 정말 중요한 조직과 인원이 평가를 못 받는다.’라는 불만을 팔란티어가 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그 기대감을 풀어볼까요?


‘불필요한 중간관리 계층 없이’ 객관적인 데이터로 성과 측정, 프로세스 병목 진단 → ‘데이터 기반 소통과 판단’의 표준화 → 조직 운영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 향상 → 관료화된 조직의 폐해 극복 → 고질적 수율 문제를 해결하고 능력 기반 성과 보상 제도 정착


이게 된다면 정말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죠. 좋은 일이에요.


다만 저는 이들의 기대에 담긴 ‘미래를 향한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현실에 대한 암울한 인식’이 더 눈에 들어와요. 지금의 조직은 가망이 없으니, ‘하늘에서 뭔가 떨어져서’ 믿을 수 없는 조직을 구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거잖아요. 신뢰가 이렇게까지 땅에 떨어졌다면, 극복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듭니다.


Attention is all you need!

삼성의 위기를 진단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직원들이 공무원이 됐다더라(삼무원론), 재무인력이 엔지니어 위에 올라가서 그렇다더라(빈카운터스), 결국은 컨트롤 타워 부재 때문이다(리더십), 파운드리는 고객과 경쟁하니 서둘러 분사해야 한다는(분사론) 등 많아요.


저는 그 이야기를 하나씩 하는 대신 구글이나 팔란티어 같은 기업을 함께 살펴봤어요. 근본적으로는 같은 이야기지만, 다른 방식으로 녹여보았죠. ‘삼성의 위기’를 말하는 주제가 같더라도, 화법이 다르면 조금 더 잘 들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에요.


더 흥미롭게 이 이야기를 체험할 방법, 우선 제 다큐멘터리 ‘삼성, 잃어버린 10년’(2024)을 감상해 보는 걸 추천드려요. 좀 더 업데이트된 이야기를 읽고 싶으시다면 올해 쓴 제 책 《삼성전자 시그널》(2025)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삼성의 문제는 분명 한둘이 아니에요. 그러나 문제가 많다고 기준 없이 접근해서는 곤란해요. 중요한 건 집중이에요! 가장 중요한 본질적 문제에 집중하고, 그 부분을 해결해야만 변화가 가능할 겁니다. AI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었듯이요. 그러니까, Attention is all you need!


다음 시간에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칩의 세계’ 최첨단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볼게요.

📌 필진 소개: KBS에서 금융, 재정, 국제경제 기사를 주로 써요. 그러니까 전공은 ‘대한민국 경제’예요. 기삿거리를 찾던 어느날, 국가대표 삼성전자에서 ‘근본적 위기 신호’를 감지했어요. 이후 ‘칩’을 파고들었어요. 삼성전자를 주제로 크리스 밀러, 짐 켈러 같은 세계적 칩 명사를 등장시킨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큰 반향을 일으켰고, 여세를 몰아 《삼성전자 시그널(2025)》을 썼어요. 시대의 흐름을 읽어드립니다. ‘빠져들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을 추구합니다. 읽는 재미와 깊은 인사이트, 둘 다 담아서 여러분을 찾아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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