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장은 분명히 전쟁 ‘내러티브’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정학 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전쟁은 방향을 결정하기보다 가격과 변동성을 조정하는 ‘배경 변수’로 바뀌었습니다. 앞으로 투자자들이 봐야 할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기업 이익의 지속가능성입니다. 특히 AI, 인프라, 에너지처럼 정책과 맞물린 산업은 구조적인 수요를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단기 뉴스보다 현금흐름과 투자 사이클의 길이를 봐야 합니다.
둘째, 인플레이션의 성격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소비가 과열되면서 물가가 오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전력, 에너지, 공급망 재편처럼 기업의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셋째는 정책의 방향입니다. 지금은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보다 정부의 재정정책이 시장을 더 강하게 움직이는 국면입니다. 정부 지출과 산업정책이 돈을 어느 분야로 유도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의 국가 부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본과 한국 등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고요. 이러한 시대에 정부와 중앙은행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거라고, 혹은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시나요? 재정 정책과 관련해 주목해야 하는 포인트를 짚어주신다면요?
지금의 부채 문제는 단순히 규모가 크고 작으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부채를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느냐입니다. 저는 지금을 ‘재정 지배력’의 국면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정부의 재정정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중앙은행이 금리만 결정하기보다 정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는 구조예요. 미국과 일본은 이미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고, 한국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 부채가 많은 시대에 가장 현실적인 해법은 성장입니다. 부채를 한 번에 줄이기는 어렵기 때문에, 반도체, AI, 인프라 같은 산업에 투자해 명목 GDP를 키우고 부채 부담을 상대적으로 낮추려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어요. 중앙은행도 급격한 금리 상승은 억제하면서,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용인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동시에 국채 발행 구조를 조정하거나, 은행과 연기금의 국채 수요를 유도하는 방식도 병행할 수 있습니다.
부채 시대에는 긴축만으로 문제를 풀기 어려워요. 관리된 완화 정책과 성장의 조합이 필요합니다. 투자자로서 우리는 금리가 오르느냐 내리느냐만 볼 것이 아니라, 자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로 흘러가며 어떤 자산으로 전환되는지를 읽어야 합니다.
지금 시장을 조금 긴 시간축에서 본다면, 어떤 흐름 위에 놓여 있다고 보시나요? 과거와 비슷한 시기가 있다면 언제이고, 또 무엇이 가장 다를까요?
지금 시장은 단순한 경기 사이클보다 체제 전환의 초입에 가깝다고 봅니다. 저는 이 국면이 1990년대 후반, 특히 닷컴 사이클 초입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라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통신망, 서버, 네트워크 같은 인프라에 돈이 먼저 몰렸습니다. 이후 그 투자는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나타났고요. 지금도 비슷합니다. AI를 중심으로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인프라에 막대한 자본이 먼저 투입되고 있습니다.
다만 가장 큰 차이는 유동성의 성격입니다. 1990년대는 비교적 건전한 재정과 통화 환경 속에서 민간 중심의 투자 사이클이 진행됐습니다. 지금은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과 부채 확장이 성장을 이끄는 구조입니다.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도 재정정책과 완전히 분리되어 움직이기 어려워졌습니다.
세계화의 흐름도 과거와 다릅니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비용을 낮추기 위해 생산기지를 전 세계로 넓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비용보다 공급 안정성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안보와 직결된 분야일수록 이런 흐름이 강해지는 ‘선별적 탈세계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이 변화는 물가가 쉽게 낮아지기 어렵게 만듭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지는 전환기에 있습니다.
전 세계의 투자금이 AI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어떤 기회를 찾을 수 있을까요?
지금 AI 투자는 단기 수혜주를 찾기보다, 돈이 어디에 먼저 들어가고 그다음 어디로 옮겨가는지를 봐야 합니다.
첫 번째 기회는 인프라 레이어입니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망, 냉각 기술은 AI를 구현하기 위한 필수 자산입니다. 이 분야는 정부 정책과 결합한 구조적 투자 사이클 안에 있습니다. 다만 이미 기대가 많이 반영된 영역이기 때문에 투자 타이밍과 밸류에이션 관리는 중요합니다.
두 번째 기회는 생산성 확산 단계입니다. AI가 실제 기업의 매출과 이익으로 연결되기 시작하는 구간입니다. SaaS, 플랫폼, 산업 자동화 기업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앞으로 살아남을 기업은 데이터와 업무 흐름을 통제하면서 비용을 줄이고 매출을 키울 수 있는 기업입니다. 이 구간은 시간이 걸리지만, 진짜 알파가 발생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투자자는 초기 ‘인프라 투자’와 이후 ‘생산성 확산’ 사이의 간극을 이해할 때 더 큰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기회는 자금 흐름 자체입니다. 지금의 AI 투자는 민간과 정부 주도의 재정 정책이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산업정책을 통해 자본을 AI 관련 분야로 유도하고 있고, 연방준비제도의 유동성 환경도 이를 뒷받침할 가능성이 커요. AI가 시장 유동성이 향하는 핵심 목적지가 되는 셈입니다.
성장의 축을 짚었다면, 이제 자산을 지키는 방법도 궁금해집니다. 고질적인 재정 적자에 이란 전쟁 장기화로 인한 에너지 가격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물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가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거나 넘어설 수 있는 자산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 드렸듯,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수요 과열보다 에너지, 전력, 공급망 재편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비용이 상승하며 발생합니다. 그래서 자산을 지키는 방어 전략도 예금이나 채권같은 상품보다 비용이 올라도 가격을 올릴 수 있는 기업이나 원자재처럼 물가와 함께 움직이는 자산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첫째, 에너지와 실물자산입니다. 유가와 전력 가격은 지정학 리스크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구조적 프리미엄이 붙을 수 있습니다. 에너지 기업이나 원자재는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직접적인 헤지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가격 결정력이 높은 기업의 주식입니다. 모든 기업이 인플레이션을 견디는 것은 아닙니다. 원가 상승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 있는 브랜드, 플랫폼, 필수소비재 기업은 명목 성장 환경에서 오히려 이익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때는 단순한 성장성보다 가격 전가력이 더 중요해집니다.
셋째, 실질 구매력을 방어할 수 있는 자산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물가연동국채, 즉 TIPS 같은 자산은 인플레이션 환경에서 구매력 방어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일반 채권보다 인플레이션에 직접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넷째, 금과 비트코인 같은 통화 대체 자산입니다. 금은 전통적으로 통화 신뢰가 흔들릴 때 방어 자산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비트코인은 재정 확장과 통화 신뢰 약화 국면에서 디지털 희소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다만 두 자산 모두 단기 변동성이 큽니다. 절대적인 안전자산으로 보기보다 변화에 대응하는 분산 자산으로 접근하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특정 자산 하나를 정답으로 보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에 맞춰 자산을 나눠 배치하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에너지와 재정이 핵심 변수인 시대에는 실물자산, 가격 전가력이 있는 기업, 금과 비트코인 같은 통화 대체 자산을 함께 고려하는 편이 더 균형 잡힌 전략입니다.
‘부는 언제나 공포의 한가운데서 시작한다’라고 말씀하신 적 있습니다. 지금처럼 변동성이 커질 때마다 흔들리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많은 분이 변동성을 ‘위험’으로만 해석합니다. 하지만 저는 변동성을 기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봅니다. 시장은 과도하게 반응하고, 그 과정에서 공포는 실제보다 더 크게 확대됩니다. 그래서 부는 늘 ‘안정적인 시기’보다는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순간에 씨앗처럼 뿌려집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을 정확히 맞히는 능력보다,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갖는 일입니다. 내가 왜 이 자산을 샀는지, 어떤 상황에서 추가로 살 것인지, 어디서 틀렸다고 인정할 것인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명확하면 변동성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계획을 실행하는 구간이 됩니다. 반대로 기준이 없으면 작은 하락에도 확신이 무너지고, 가장 나쁜 타이밍에 결정을 내리기 쉽습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시장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결론은 천천히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단기 뉴스와 가격은 계속 바뀌지만, 자산 가격을 결정하는 큰 흐름은 결국 이익, 유동성, 정책입니다. 이 흐름이 훼손되지 않았다면 변동성은 본질보다 소음에 가까울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막연한 용기보다, 이해에서 나오는 확신입니다. 공포를 억지로 이겨내려 하기보다 왜 공포가 생겼는지를 이해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