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봤다, 스포츠에 ‘올인’한 월트 디즈니 컴퍼니

 

글, 강예지

 

📌 필진 소개: 어피티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경제전파사 편집장 강예지 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먹고 잘 살지 고민하는 평범한 30대이자 경제기자의 시선으로 어렵고 딱딱한 경제를 쉽고 친절하게, 숨은 행간을 풀이합니다. 호기롭게 사표 던지고 창업했다 실패한 경험을 복기하는 마음으로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들의 과거와 현재, 가능하면 미래까지 풀어보고자 합니다. 짧은 이야기로나마 소개해 드리는 기업에 친숙해지시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요!

 

주식시장은 꿈을 먹고 삽니다. 이 말은 기업의 미래를 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죠. 


100년 기업 월트 디즈니 컴퍼니(이하 디즈니)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 터줏대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존경스럽게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에 어떻게 살아남을까 치열하게 고민해 온 모습들이 엿보이죠. 그 고민의 산물 중 하나가 바로 스포츠 사업이에요. 


오늘은 우리 어린 시절을 함께 한 미키 마우스와 왠지 잘 연상되지 않는 디즈니의 스포츠 사업 이야기를 나눠봐요. 


디즈니의 ‘현재와 미래’ 시계는 이렇게 움직입니다  


디즈니의 사업은 엔터테인먼트와 경험(Experience), 스포츠, 크게 세 분야로 나뉘어요. 


기업 덩치가 큰 만큼 각 사업에서 뻗어가는 갈래도 상당히 많은데, 대강의 사업 흐름을 쉽게 이해하자면 이렇습니다. 스튜디오가 캐릭터와 스토리 등으로 콘텐츠를 만들면 이 콘텐츠가 매체를 타고 시청자(관객)에게 소개되고, 테마파크에서 오프라인 콘텐츠로 재탄생돼요. 테마파크를 아우르는 경험 분야는 역사적으로 가장 수익성 좋고 안정적인 매출원이에요. 여기까지가 우리가 익숙한 디즈니의 전통적 사업모델이죠.


디즈니 플러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플랫폼을 아우르는 D2C(Direct-to-Consumer)는 디즈니의 미래를 책임지는 한 축이에요. 지난 넷플릭스 편에서 살펴봤듯이 이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아직은 전통 사업만큼 자리잡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오늘 주제이자 디즈니에게는 매출을 다변화하기 위해 필수인 스포츠 사업이 있어요. 이 또한 미래 먹거리고요. 

디즈니의 D2C 부문 영업손익 추이예요. 디즈니 플러스와 훌루, ESPN 플러스 등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 성과를 보여주죠. 흑자를 기록한 것이 최근인데, 그만큼 스트리밍 시장이 얼마나 치열한지 방증해요. 출처: 디즈니 2024 4분기 실적발표

한마디로 스튜디오와 테마파크가 든든한 캐시카우가 되어 디즈니의 현재 수익성을 받쳐 주고, D2C와 스포츠가 디즈니의 미래를 이끈다고 정리할 수 있죠.  


디즈니의 통 큰 거래, ABC와 ESPN을 품다 


디즈니가 스포츠 사업에 뛰어든 건 생각보다 오래전 일이에요. 사업의 포석을 놓았던 것이 1995년 19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14.6조 원)를 주고 캐피탈시티/ABC(Capital Cities/ABC)를 인수한 일이었죠. 


당시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가장 큰 딜이었고, 대형 영화 제작사와 톱 TV 방송국이 합쳐진다는 소식에 미디어 시장의 관심이 대단했어요. 이 거래로 ABC가 가지고 있던 스포츠 브랜드 ESPN의 주도권을 디즈니가 쥐게 되었고요.


1990년대 스포츠 경기는 TV 방송의 꽃이었어요. 전국 스포츠 팬들을 TV 앞으로 모이게 했고, 광고주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죠. 특히 NFL(내셔널 풋볼 리그), NBA(프로농구 연맹), MLB(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NCAA(전미 대학 체육 협회) 등 인기 스포츠 리그의 독점 중계권을 보유한 ESPN은 그야말로 독보적 채널이라 할 수 있었어요. 


디즈니에게 ESPN 이란? 


디즈니는 수익 다변화의 수단으로서 ESPN이 가진 잠재력을 발견했던 것 같아요. ESPN 매출은 크게 광고와 제휴 수수료인데, 당장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랄까요. 


게다가 캐릭터와 스토리를 발굴해 한 땀 한 땀 영화로 만들고, 테마파크 등으로 파생시키는 기존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돌고 도는 속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다이내믹한 스포츠 사업은 기존 사업의 성격에서 일부 탈피할 수 있는 매력으로 다가왔을 거예요. 


또 당시 콘텐츠 소비 트렌드를 좇는 데 스포츠는 중요한 영역이었어요. 디즈니는 스포츠 전문 채널인 ESPN을 업고 미디어 시장 내 일고 있는 변화의 파도에 부드럽게 올라탈 수 있었던 거죠. 그러면서 어린이와 가족 단위의 기존 고객층이 커버하지 못했던 남성 청중을 품었고, 해외 팬덤까지 포섭함으로써 고객 기반을 크게 넓힐 수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ESPN 덕에 경쟁이 치열한 미디어 산업에서 디즈니는 지위를 한층 끌어올렸고, 더욱 공고하게 입지를 다졌어요. 또 훗날 디즈니 플러스나 테마파크 등 디즈니의 다른 자산들과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었죠. 


디즈니가 스포츠 도박사업을 한다고요? 


한 투자자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기업은 설립 후 곳간 관리를 잘해야 3년 고비를 넘기고, 트렌드를 따라야 5년을 넘으며, 새로운 유행을 선도해야 7년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이 말을 100년 기업 디즈니에 대입해 보자면 30여 년 전 씨앗을 잘 뿌려둔 덕에 트렌드를 잘 좇았다고 평가해 볼 수 있겠죠. 디즈니, 이제는 스포츠 시장 트렌드를 선도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디즈니가 스포츠 도박사업(!)에 뛰어들었어요.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꿈과 희망을 주는 디즈니가 스포츠도박이라니. (내 동심) 과연 디즈니 팬들의 반발을 사지 않고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더 넓은 스포츠 팬덤을 품을 수 있을 것인가 의심하는 눈초리가 많았죠. 월스트리트저널에는 ‘디즈니, 스포츠 베팅에 올인하다’라는 기사가 실렸어요.

출처: unsplash

2021년 당시 CEO 밥 차펙은 컨퍼런스콜에서 파격 선언을 합니다. “우리는 스포츠 베팅이 매우 중요한 기회라 믿습니다. 젊은 소비자들은 도박을 스포츠 경험의 일부로 포함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청중을 끌기 위해 디즈니는 스포츠 베팅에 더 적극 진출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며, ESPN은 이를 위한 완벽한 플랫폼입니다.”  

 

팬들은 실망했겠지만 디즈니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요. 미국 대법원이 2018년 스포츠 베팅 금지법을 폐지한 이후 30개 넘는 주가 합법적인 시장을 개설했거든요. 미국게임협회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 미국인은 ‘합법’ 스포츠 베팅 플랫폼을 통해 240억 달러를 걸고, 20억 달러 상당의 게임 수익을 창출했어요. 우리 돈으로 조 단위 시장인 거예요. 

 

ESPN은 스포츠 베팅 관련 회사들과 손잡은 데 이어 재작년에는 스포츠 베팅업체인 펜엔터테인먼트와 함께 ‘ESPN 베트(ESPN Bet)’라는 앱을 출시했어요. 스마트폰으로 쉽게 스포츠 경기 승패에 돈을 걸 수 있는 앱이죠. 

 

기존 팬들의 반발 때문이었는지 초기 다소 조심스러웠던 디즈니, 이제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볼 수 있죠.

ESPN 베트는 오프라인 시설도 운영한답니다. 과거보다 도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줄었고, 스포츠 베팅 합법화 이후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기도 했어요. 여러 경제활동을 일으키는 긍정적 효과에 더해 문화적으로는 새로운 스포츠 경험이 되었달까요. 출처: ESPN
 

도박이냐, 승부수냐 그 결말은? 


뜨겁게 타오르는 스포츠 팬들의 열기 덕에 ESPN이 상당한 돈을 벌기는 했지만, 케이블 TV시장이 쇠퇴하면서 ESPN 또한 고전을 면치 못했어요. 디즈니에는 ESPN이 캐시카우에서 계륵으로 변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요. 디즈니가 애플이나 아마존 등에 ESPN 지분을 판다는 이야기도 여러 차례 나왔습니다. 


하지만 디즈니의 행보를 보면 아직 스포츠 사업을 이끄는 ESPN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올 가을 선보인다는 ESPN의 스트리밍 전용 버전인 ‘ESPN 플래그십(ESPN Flagship)’이에요. 디즈니는 생중계와 베팅뿐 아니라 게임, 커머스, 심층 통계 등 개인 구독자의 취향을 반영한 맞춤형 스포츠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밥 아이거 CEO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ESPN을 포함한 디즈니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스트리밍에 있어서 디즈니만큼 폭넓은 역량을 가진 곳이 없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어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100년 이상 미디어 산업의 중심에 우뚝 서 자리를 지킨 디즈니는 숱한 풍파를 겪었겠죠. 어쩌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했기에 지금의 디즈니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2025년 새로운 챕터를 펼치는 디즈니, 스포츠 사업 베팅도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요? 

 

공유하기

관련 글

Netflix-Logo
광고 장사로는 ‘신참’ 미디어 거물 넷플릭스가 찾아낸 돌파구는?
넷플릭스는 설립 초기만 하더라도 DVD를 대여해 주는, 지금과 비교하면 다소 소박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회사였어요. 2025년...
팔란티어
은밀하게 위대한 이 기업의 베일을 벗겨보자, ‘팔란티어’ 이야기
최근 들어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개미의 뜨거운 주목을 받는 기업이 있습니다. 인공지능(AI)부터 방위산업까지, 트럼프 2기 행정부...
01.36117596
AI는 곧 엔비디아로 통한다, 만 31세 기업의 패기가 궁금하시다면
시가총액 약 4600조 원, 애플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타이틀을 다투는 회사. 오늘 친해져 볼 기업은 AI 반도체...
prometheus-8TqdrogVGfs-unsplash
아, 테슬라! (feat. 혁신과 두통 사이)
한국인이 사랑하는 미국 주식 1위,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주가가 폭등한 그 회사. 네, 바로 테슬라입니다. 테슬라는 전기차...

경제 공부, 선택 아닌 필수

막막한 경제 공부, 머니레터로 시작하세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프로모션, 이벤트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

잘 살기 위한 잘 쓰는 법

매주 수요일 잘쓸레터에서 만나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프로모션, 이벤트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