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인
2020년 올해 최저임금은 8,590원. 2021년 내년 최저임금은 8,72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역대 최저 인상률이에요. 최저임금 결정 시즌이 오면 항상 여기저기서 시끄럽습니다. 너무 높다, 여전히 낮다, 기업을 살려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살펴야 한다… 사실 각자로서는 다 맞는 말입니다. 어느 한쪽이 정말 ‘틀린’ 의견이었다면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을 거예요.
최저임금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직접적으로는 230만 명의 임금 노동자가 영향을 받아요. 아르바이트 급여, 직장인 연봉부터 시작해서 실업급여, 요양급여 등 각종 정부지원금까지 모두 최저임금과 연동해서 움직이거든요. 한 마디로 각종 급여의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 다들 잘 알고 계시죠. 그래서 최저임금은 중요하고 또 중요합니다.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 동결해야 한다! 낮춰야 한다! 없애야 한다! 뉴스 속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접하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여기서부터 시작하기로 합니다.
‘최저임금… 뭔데? 왜, 어디 필요한데?’
먼저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① 최저임금의 탄생 역사
② 최저임금이 논란이 되는 이유
일단 최저임금의 탄생 역사부터 알아볼까요?
🎬Scene #1.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매년 벌어지는 일
노동계: 이거 받고 어떻게 살아요, 사람이. 무조건 더 올려요.
경영계: 이거 주고 어떻게 회사를 꾸려요. 무조건 여기서 내립시다.
공익위원(전문가): 현실이 참 교과서 같지 않네요…
어피티: 최저임금이 뭐길래 매년 이렇게 치열하게 싸워야 하나요? 그냥 더 적게 주거나, 더 많이 주거나… 각자 형편대로 하면 안 되나요?
경영계: 제 말이 그 말이에요! 능력대로 일하고, 능력대로 받읍시다!
노동계: 아니, 그게 이 세상에서 가능한 일이었으면 처음부터 최저임금이란 개념이 탄생하질 않았겠지!
공익위원: 교과서에서나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교과서대로 되도록 노력은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피티: 교과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공익위원: 아주 많은 조건이 있지만, 필수적인 건 두 가지예요.
① 능력과 결과에 대한 정확한 측정과 공평한 적용
마치 시험 점수처럼, 어떤 능력이 어디에서 어떤 결과를 냈을 때 얼마의 가치가 있는지 정확히 측정 가능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그 채점 결과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해요.
어피티: 그게 가능할까요? 차라리 육체노동이면 ‘1분에 3kg짜리 물건 5개 들었을 때 5만 원 드립니다.’ 이런 식으로 하겠지만 그렇게 정확하게 측정이 가능한 일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어요. 기술직이나 사무직이나 서비스직, 전문직 같은 직군은 상황도 매번 너무 다르고, 업무 성격도 구체적으로 정의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공익위원: 그래서 인사(HR)업무가 중요하죠. 외국계 기업과 우리나라 기업의 차이가 거기서 발생하는데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인성과 친화 능력이…
어피티: 앗, 공익위원님, hoxy 교장선생님이세요…? 훈화 말씀 시작하는 느낌인데…?
공익위원: 흠흠, 두 번째 조건으로 갈까요?
②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채용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구 반대편에서라도 정확히 측정된 능력을 정확한 필요로 하는 기업이 있다면, 경영자는 곧바로 필요한 노동자를 채용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자는 자신이 필요한 회사에 바로 채용될 수 있어야 한답니다.
어피티: 그게 되면 실업자가 없겠네요.
공익위원: 그게 교과서의 ‘출발’이죠. 어쨌든 저 두 가지 조건이 완벽하지 않다는 건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하단 뜻이에요. 양측의 정보량이 비슷하지 않은, 정보가 비대칭한 상태인 거죠. 정보비대칭이 깔려있는 한, 능력대로 완벽하게 주고받는 일은 불가능해요.
어피티: 그러니까 최저임금이 대체 뭔데요…
노동계: 집세, 공과금, 교통비, 식비 등 먹고사는 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만큼의 돈을 주라고 만들어진 거라니까요?!
경영계: 그게 그렇기는 한데 그 집세, 교통비 같은 게 대체 언제 이야기냐는 말이죠!
어피티: 그러게요. 언제의 얘기일까요?
민주화에 대한 열망
또 다른 이유
우리나라는 1987년에 민주화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민주화’라는 것은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국민들의 손으로 뽑을 수 있고, 누굴 뽑든지 처벌받지 않고, 국회와 행정부와 사법부가 서로의 일을 침범하지 않고 견제하며 각자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그 전까지는 정치인이 아닌 군인이 무력을 동원해 대통령이 됐고, 한 번 대통령이 되면 법을 바꿔서라도 임기를 연장하려고 했죠. 반대하면 감옥에 보냈고요. 고작 30년 전 이야기랍니다.
갑자기 30년 전 정치 이야기를 꺼낸 이유. 이때 보통 사람들의 경제 활동에도 꽤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이라는 개념과 남녀고용평등법이 1986~1987년 민주화와 함께 생겨나죠. 대한민국의 민주화 항쟁이 성공했던 이유는 많은 사람이 군사정권에 반대하고 민주화세력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인데요. 다들 잘 알고 계신 것처럼 정치, 사회적인 자유를 얻고자 하는 의지도 컸지만, 당시의 경제상황에 대한 불만도 컸습니다.
🎬Scene #2.
1970년대
최저임금 논의의 시작
가발공장 여공: 배고파서 못살겠다!
봉제공장 여공: 월급 좀 제때 줘라!
경공업 공장 노동자: 월급은 제자리인데 집값이랑 물가가 이게 말이 됩니까?
정부: 노동집약적 산업 몰라? 노동집약적 산업의 경쟁력은 낮은 인건비라고!
자본과 기술의 생산성이 중요한 중화학공업과 달리, 경공업은 사람의 노동력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하죠. 경공업에서 인건비 절감은 곧 생산성 향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당시 한국 경제 발전의 목표는 경공업으로 모은 자본을 중화학공업에 투자하고, 중화학공업의 발전으로 경제선진국이 되자는 것이었답니다.
이런 정책과 정책 시행 과정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주장도 다양하죠. 어떤 면은 잘못됐고, 또 어떤 면은 훌륭하지만 1970년 전후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와 상관없이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가 무리하게 이루어져 당시에는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냈고, 인건비 절감의 희생양이 된 경공업 종사자들은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거죠.
1978~1979년에는 실제로 IMF 구제금융 신청을 고려할 정도의 경제 위기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외부 상황도 좋지 않았어요. 유가가 급격하게 올라버리는 바람에 세계 경제가 휘청했습니다. 한국 경제에서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찍은 게 역사상 딱 세 번 있었는데,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바로 이때였죠.
🎬Scene #3.
1979년
어마어마한 정책실패
정부는 1979년 4월, <경제안정화 종합시책>을 발표합니다. 그중에는 대량 정리해고와 임금 인하, 농산물 가격 강제 인하 등이 있었어요. 이게 엄청난 반발을 불러옵니다.
정부: 전국의 회사들은 월급을 깎는다. 실시!
회사들: 실시!
직원들: (심한 말)
회사들: 아니 우리는 정부가 깎으라니까 깎은 건데…
직원들: 지금 물가가 막 한 해 30%씩 폭등하고, 집값은 거의 두 배가 됐어! 그런데 월급을 깎아?!
정부: 해고도 해라.
회사: 아니 그게 지금 분위기가 그게 아닌데요…
정부: 말 안 들으면…알지?
회사: 아이고 나는 모르겠다! 여러분 내일까지만 나오세요!
국민: 정부, 너는 지금 해고랑 월급 깎는 게 경제 안정화 대책이라고 생각하냐?!
경공업 종사자들은 만성적인 저임금으로 불만이 쌓여있었습니다. 일찌감치 장시간 노동과 적은 월급을 강제하는 경제정책에 대해 싸워 오느라 노동조합이 결성된 상태였죠. 회사들은 정부의 지침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습니다. 인건비 같은 고정비가 적게 나가면, 회사의 영업이익이 많이 남게 되니까 사장님은 좋을 수밖에 없죠. 그래서 노동조합과 회사는 늘 의견이 부딪칩니다.
이때 노동조합엔 경공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지분이 꽤 높았답니다. 거기다가 안정화대책이 발표되면서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불만도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미 있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의견과 힘을 보태기도 했죠.
사람들: 월급을 제대로 내놓으라고!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냐!
노조: 이제껏 내가 그 말 해온 거라니까?
사람들: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일단 같이 싸우자.
그렇게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며 1987년까지 약 10년이 흘러갑니다. 일단 정책을 내놓고, 반발하는 사람들은 끌고 가던 군사정권이 물러간 이후, 사람들은 일단 일을 하면 먹고살 수 있어야 하는 게 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일단 일을 시키면 최소 이 정도는 줘야 한다는 기준선을, 매년 달라지는 중위소득을 참고해 새로 마련하기로 했답니다. 이게 최저임금법의 시작입니다.
(이때 남녀고용평등법도 함께 제정됩니다. 당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공들이었거든요)
🎬Scene #4.
2020년
싸움은 계속된다
경영계: 아, 요새 굶어 죽는 사람이 어딨냐고요, 도대체!
노동계: 이런 것 좀 보고 얘기해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요.
경영계: 최저임금이 너무 높아서 망하는 사장님들은 생각을 안 해요?
노동계: 집값도 이렇게 높은데, 최저임금이 너무 적어서 월세랑 교통비 내고 나면 저축 한 번 못 하는 사람들은요?
경영계: 그러면 업종별로 차등 적용을 하든가 하죠.
노동계: 그러면 돈 많이 주는 업종에만 사람 몰리고, 돈 적게 주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계속 가난하겠네요?
어피티: 아니 선생님들 다들 진정을 좀 하시고…
경영계&노동계: 당장 먹고 사는 문제라고요!
먹고사는 문제,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이 이슈가 정말로 판단이 어려운 이유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경영계와 노동계의 의견 모두 일리가 있기 때문이죠.
양쪽의 입장을 균등하게 헤아리는 정책이 나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합니다. 결국 어떤 측면에서는 한쪽의 편을 들어주는 그림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계속 의견을 다투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노릇. 정부는 어떻게든 결정하고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결정을 잘 내릴 정부를 세우기 위해, 국민들은 선거 때마다 투표해야 하고요.
오늘 이야기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최저임금에 관한 주장은 그 누구의 의견도 아주 완벽히 틀리지 않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첨예한 문제라는 거겠죠. 또 최저임금은 나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100원, 200원으로 신문 1면이 떠들썩하게 싸우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겠지만, 최저임금은 많은 급여체계의 ‘기준’이 되니까요.
오늘은 최저임금을 둘러싼 각각의 입장들에 대해 살펴보고, 최저임금이 도입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굵직한 것들을 먼저 다루다 보니 1987년과 2020년 사이 30년이라는 세월을 성큼 건너뛰었는데요. 다음 편에서는 30년간 최저임금제와 경제구조가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