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으로 보는 조선업의 미래

글, 권효재


세계 에너지 교역의 핵심 ‘해상 운송’
에너지는 공기, 물, 식량과 함께 인간 생존의 필수 요건이에요. 전기가 끊기면 수도 펌프도 작동을 멈추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슈퍼에서 음식을 사 올 수도 없으니까요.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풍부한 에너지 공급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요. 그런데, 화석연료와 같은 에너지원은 물량이 한정적이고 멀리서 구해와야 해요. 인구가 늘고 도시가 커지고 산업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죠. 문명은 더 많은 에너지를 더 멀리서, 더 저렴하게 가져오는 과정 위에서 성장해 왔다고도 할 수 있어요.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화석연료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에너지원이 바뀌자 그 에너지를 필요한 곳까지 대규모로 옮길 수 있어야 했어요. 막대한 물량을 옮기는 데 배보다 효율적인 이동 수단은 없어요. 인류가 바다를 통해 원유와 석탄, 천연가스(LNG) 같은 대규모 에너지를 실어 나를 수 있었기 때문에 산업과 무역, 도시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죠. 자동차, 철도, 항공기도 중요한 운송 수단이지만, 여전히 세계 에너지 상품 교역의 핵심은 해상 운송이고 배는 전 세계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핵심 수단이에요.

그래서 배를 만드는 조선업은 전 세계 에너지 시스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에너지 산업이 조선업의 핵심 고객이기 때문이죠. 조선업의 발전으로 에너지 산업이 성장하기도 하고, 에너지 산업의 구조적인 변화가 조선업의 혁신을 유도하기도 해요.


세계 산업 지도를 바꾼 초대형 유조선
산업혁명으로 석탄 수요가 늘면서 근대적인 해상 교역과 배가 등장했고, 20세기 들어 석유의 시대가 열리면서 조선업의 중요성이 더 커졌어요. 선박, 자동차, 항공기가 석유를 동력원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원유 수송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에요. 유조선은 늘어나는 석유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커졌고, 여기에 용접 기술, 블록 조립 방식, 대형 디젤 엔진이 결합했어요. 에펠탑이나 대형 항공모함보다 더 크고 거대한 초대형 유조선이 대거 등장했죠. 이런 배를 VLCC(Very Large Crude Carrier)라고 하는데, 요즘 VLCC는 원유를 한 번에 30만 톤 이상 운송할 수 있어요.

이런 초대형 유조선 덕분에 중동의 원유를 일본과 한국 같은 에너지 순수입국까지 낮은 운송비로 가져올 수 있게 됐고, 그 결과 세계 산업 지도가 달라졌어요. 값싼 해상 에너지 운송 덕에 제조업은 에너지 생산지 근처가 아니더라도 노동력과 산업정책, 시장이 유리한 곳으로 재배치될 수 있었죠. 그렇기에 아시아 제조업의 성장은 항만과 조선, 해운의 발전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워요.

21세기 에너지 전환기의 숨겨진 주연 LNG 운반선
21세기 들어 천연가스의 사용량은 대폭 확대됐어요. 천연가스는 강한 열을 낼 수 있으면서도 석탄보다 대기오염 물질 배출이 적어 도시 대기질 개선에 큰 역할을 했죠.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기도 해요.

바다에 인접한 대도시권에 이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중요한 수단이 LNG 운반선이에요. 우리나라와 일본은 천연가스 소비 전량을 LNG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중국의 연안 대도시들도 사정이 비슷해요.

LNG는 상온에서는 기체인 천연가스를 영하 163도 안팎까지 냉각해 액화시킨 것으로, 이렇게 하면 부피가 1/600로 줄어 운송에 유리해요. 지금 아시아는 세계 LNG 수입의 중심이에요. 2025년 기준 아시아가 전 세계 LNG 수입의 약 65%를 차지하고 있어요. LNG 운반선은 21세기 에너지 전환기의 보이지 않는 주역이에요.

천연가스를 바다 건너 수입해야 하는 나라들에 LNG선은 꼭 필요해요. 우리나라 정부는 LNG를 수입하기 위해 우리 조선업에 LNG선을 국산화할 것을 요구했어요. 그 결과 우리나라 조선 기업들이 전 세계 LNG선 시장을 주도하게 됐죠. 이제 동아시아 3국뿐 아니라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이 수입량을 늘리고 있어 LNG선 수요는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이에요.


필연적인 에너지 전환의 길
앞으로도 화석연료가 지금과 똑같이 쓰이지는 않을 거예요. 전통 에너지원에서 석탄으로, 석탄에서 석유로, 석유에서 천연가스로의 전환을 능가하는 근원적인 의미의 에너지 전환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에요. 전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이 없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그리고 여러 무탄소 연료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어요.

하지만, 무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요. 인류 문명이 기존 화석연료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고,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80% 이상이 화석연료이기 때문이에요. 전기차처럼 기술적, 상업적 대안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대체 기술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영역도 많아요. 국제 사회는 배터리, LNG,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원자력 등 모든 종류의 에너지에 가능성을 열어 두고 논의하고 있어요.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에 따라, 항로의 길이나 화물의 종류와 규모에 따라 최적의 솔루션이 결정될 거예요.

무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은 조선업에 기회
무탄소 에너지 전환은 조선업에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거예요. 지금까지는 선박을 구동하고, 이 선박이 운송해야 하는 에너지는 정해져 있었어요. 현재 선박은 벙커C유, 디젤, LNG로 구동되며, 석탄, 석유, LNG 같은 화석연료를 운송해요. 하지만 앞으로는 어떤 무탄소 연료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대규모로 옮길 것이냐가 중요해질 거예요.

제조업 가운데는 고온 열원이 필요한 분야가 많고, 이런 산업은 장기적으로 수소나 수소 기반 연료를 많이 필요로 해요. 수소를 직접 운반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암모니아나 메탄올처럼 운송이 더 쉬운 형태가 먼저 상용화될 가능성이 커요.

결국 에너지 전환이 깊어질수록 새로운 연료를 대량으로 실어 나를 새로운 개념의 선박이 필요해지고, 그것이 조선업의 미래 수요를 만들 거예요. 미래의 선박도 다양한 무탄소 연료를 이용해서 구동될 거고요. 선박 자체의 기술도, 그 선박이 실어 나를 화물도 바뀌어야 하므로 경우의 수도 훨씬 많아질 거예요.

차세대 공급망의 주도권을 건 경쟁
경쟁은 이미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지금 세계 조선업체들은 단순히 선박 수주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차세대 연료 기술과 기자재, 안전 기준, 연료 공급망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고 있어요. 누가 먼저 쓸만한 엔진을 만들고, 실제 운항 경험을 쌓고, 연료 저장과 공급 시스템을 표준화하느냐가 시장의 승부를 가를 거예요.

HD현대중공업은 2026년 세계 최초의 암모니아 추진 선박을 건조했고, MAN Energy Solutions는 암모니아 엔진의 상용화와 100% 부하 시험, 발전기용 암모니아 엔진 프로젝트를 잇달아 공개했어요. 이를 통해 보면 이제 에너지 공급망은 조선소만의 경쟁이 아니라, 엔진 회사와 기자재 회사, 연료 공급망과 인증 기관이 함께 뛰는 생태계 경쟁으로 바뀌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배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무탄소 연료 기술, 핵심 기자재, 항만의 연료 공급 체계, 국제 기준 대응 능력까지 함께 갖춰야 해요. 암모니아 엔진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암모니아 엔진이 빨리 상용화되면 선박도 암모니아를 동력원으로 쓰면서, 암모니아가 탈탄소 연료이자 에너지 공급원으로 광범위하게 쓰이게 됩니다.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죠.

석탄과 석유의 시대에 유조선과 벌크선이 산업 문명을 키웠다면, 가스 시대에는 LNG선이 도시와 공장의 연료 체계를 바꿨어요. 앞으로는 암모니아, 메탄올, 수소 같은 새로운 연료를 실어 나르는 선박, 그리고 그 연료를 직접 사용하는 선박이 조선업의 다음 성장을 이끌어 갈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선박과 기술이 채택되고 확산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인류의 역사에서 바다는 에너지 시스템의 변화를 떠받쳐 왔고, 조선업은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한 보이지 않는 주역이었어요. 에너지의 형태가 바뀌어도, 조선업의 역할은 쉽게 바뀌지 않을 거예요.
📌필진 소개: 조선해양공학, 경영학, 에너지 정책을 공부했어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후 20년 넘게 한국, 중국, 미국에서 중공업과 에너지 분야 업무에 몸담으며 천연가스, 조선·해양, 재생에너지, 산업정책을 주요 연구 분야로 삼아 교재를 집필하고, 에너지 정책과 전력·연료 시장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어요. 페이스북 지식 그룹 COR Energy Insight를 이끌며, 서울대학교 해양시스템공학 연구소 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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