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5년째 생일 선물 대신 돈을 받는 이유 생일 기부금 190만 원으로 ‘움직이는 책방’ 만들었어요

📌필진 소개: 필진 소개: 서울 군자에서 ‘피리의 서재’라는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피리(김은지)입니다. 11년 차 마케터이기도 한데요. 내가 가장 팔고 싶은 것이 뭘까 고민하다 결국 책방을 꾸리게 되었죠. 책이든 사람이든 온갖 이야기를 모으고 연결하는 것을 좋아해서 책방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어요.

일 년 중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으신가요? 저는 저의 생일을 가장 기다려요. 생일마다 저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기부를 하고 있거든요.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다양한 곳에 관심이 모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해 다른 곳에 기부하고 있어요.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께 보양식을 선물하고, 고립 청년들을 후원하고, 여성 노숙인 일시보호 센터를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며 그 시기에 저의 마음과 관심이 향하는 곳에 기부를 이어왔는데요. 5년 전 시작한 이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생일에 선물 대신 기부에 동참해 달라는 제안에 기꺼이 응해준 지인들 덕분이에요.


작년 말부터 ‘청소년 책선물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어른이 책값을 미리 내두면, 청소년이 책방에 와서 직접 원하는 책을 골라 가는 프로젝트예요. 


📚청소년 책선물 프로젝트는 이렇게 진행돼요!

  • 어른들이 청소년을 위해 선결제를 해둔다(서점에 와서 결제 혹은 계좌이체)
  • 청소년들이 서점에 와서 원하는 책 1권을 골라 간다
  • 책을 선물 받은 청소년이 선물을 준 익명의 어른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를 쓰고 인증 사진을 찍는다
  • 피리 사장이 편지와 인증 사진을 선결제한 어른에게 전달한다 

피리의 서재에서 책을 받아 간 청소년들과 어른들에게 남긴 쪽지 ©피리


청소년을 위해 돈을 잘 써주는 멋진 어른들 덕분에 많은 청소년을 만날 수 있었고, 함께 독서 모임도 시작했어요. 청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직접 원하는 책을 고르고 ‘내 책’을 갖는 일이 생각보다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스스로, 혹은 부모님과 함께 책을 사러 가기 어려운 곳은 어디일까 고민하게 됐는데요. 자연스럽게 얼마 전 다녀온 옥천이 떠올랐어요. 여행을 가면 어느 동네든 아기자기한 책방을 찾는 편인데, 옥천에서는 그런 공간을 쉽게 찾지 못했거든요.  

옥천에서 지역 잡지 기자로 일하는 지인에게 연락해 제 생각을 전하고, 책을 선물할 만한 곳이 있을지 물어봤어요. 지인이 소개해준 곳은 안남면에 있는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이었습니다. 근처 안남초등학교 전교생이 방과 후 셔틀버스를 타고 오는 곳이라고 했어요. 7살부터 13살까지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마을의 돌봄 공간이기도 했죠.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갈 곳은 여기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바로 간단한 기획안을 작성해 도서관 사무국장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 +📚 이름하여, 움직이는 피리의 서재! 
  • 도서관의 한 공간을 작은 책방처럼 꾸며두기
  • 아이들 나이에 맞게 큐레이션한 책을 눈에 잘 보이게 진열하기
  • 아이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직접 원하는 책 4권씩 고르기
  • 그 책을 고른 이유를 이야기하며 나만의 책장을 꾸며보기
  • 세상에 하나뿐인 책장을 집으로 가져가기

그때부터 많은 일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혼자서 여러 아이를 돌보느라 바쁘실 도서관 사무국장님도 흔쾌히 방문을 허락해 주셨고, 지인들뿐 아니라 서점 손님들까지 생일 기부금을 보내주셨어요. 

‘늘보의 섬’과 ‘시공주니어’ 두 출판사에서도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아이들 연령에 맞는 책을 직접 골라 택배로 보내주셨어요. 또 한 지인은 아이들 모두에게 줄 클리커 키링을, 서점 근처 소품샵 ‘베리뮤’ 사장님은 책장을 꾸밀 스티커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1박 2일 일정으로 옥천에 함께 갈 스태프 5명도 차례로 모였어요. 언제나 든든한 남편 서재 씨, 어린이 교육과 돌봄 경험이 많은 동생들, 그리고 시부모님까지 함께해 주셨죠. 그렇게 ‘움직이는 피리의 서재’ 팀이 꾸려졌습니다. 인스타그램에도 콘텐츠를 올려 이번 생일 기부 프로젝트를 소개했어요. 

생일 당일까지 무려 190만 원이 모였어요. 생일 기부금이 통장으로 들어올 때마다 따로 연락해 감사 인사를 드리고, 모아진 총금액과 후원 명단 그리고 소중한 돈을 어떻게 잘 썼는지 투명하게 공유하려고 꼼꼼하게 정리해 두었답니다.

후원금 사용 내역 최종 ver.  ©피리


드디어 프로젝트 당일, 서울에서 차로 2시간 40분 정도를 달려 옥천에 도착했어요. 먼저 간단히 점심을 먹고, 아이들에게 줄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샀습니다. 양손 가득 간식을 들고 도서관에 도착하니, 간이 책장과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 택배가 쌓여 있었어요. 

움직이는 서재를 만들기 위해 종이 책장 조립하기(Before & After)  ©피리

사무국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바로 종이 가구 조립을 시작했어요. 함께 간 스태프들부터 도서관에 들른 동네 이웃까지 모두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그렇게 도서관 한쪽에 작은 책방 같은 공간이 조금씩 만들어졌고, 책들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하나씩 자리를 잡았어요.

 

공간 세팅을 마쳤을 때, 기다렸다는 듯 셔틀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들어왔어요. 갑자기 외부인이 많이 와서 어색해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이들은 진열된 책과 책장, 그리고 뽑기 통과 클리커 선물을 보고 먼저 말을 걸어왔어요.


“이거 뭐예요?”

“오늘 뭐 해요?” 

책을 고르고 책장을 꾸미는 아이들의 모습  ©피리


드디어 아이들이 직접 책을 고르는 시간. 한 명당 총 4권씩 원하는 책을 고르고, 책을 골라 오면 간이 카운터에서 뽑기를 할 수 있도록 했어요. 


몇몇 아이들은 이미 눈으로 찜해둔 책이 있었는지 금세 네 권을 골라 왔고, 어떤 아이들은 그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쳐보며 한참을 둘러봤어요. 사실 가장 환하게 웃은 순간은 뽑기 통을 돌려 귀여운 키링을 뽑고, 클리커를 눌러볼 때였지만요.

이후에는 연령대별로 네 개의 조로 나눠 자리에 앉았어요. 아이들은 사인펜과 스티커로 나만의 책장을 꾸미고, 왜 이 책들을 골랐는지 이야기했습니다.


피리: “이 책은 왜 골랐어요?”
언니 주려고요!”
(표지) 지렁이 그림이 귀여워서요!”
제목이 신기해서요!”
제일 두꺼우니까 멋져서?” 

제1회 움직이는 피리의 서재 팀, 옥천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 어린이들과 함께!  ©피리


각각 다른 취향만큼 책장도 다채롭게 꾸며졌죠. 어떤 어린이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축구 선수 호날두를 그렸고, 집에 고양이를 키우는 어린이는 고양이 스티커로 모든 면을 도배했어요. 한 친구는 본인 이름을 큼지막하게 써두기도 했고요. 책장 만들기를 끝내고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마침 오늘이 생일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그 친구와 저에게 모두가 “생일 축하해!”를 외쳐주기도 했어요.


2시간 정도의 만남을 마친 뒤, 이 도서관을 연결해 준 지인이자 옥천 지역 잡지 《월간 옥이네》를 발행하고 있는 이혜빈 기자와 짧게 인터뷰를 했어요.

이혜빈 기자: 오늘 이 자리가 아이들에게 어떤 시간이면 좋겠어요?
피리: 어렸을 때 저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 말고, 오롯이 제 것인 새 책을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책을 직접 골라보고, 내 책장에 꽂아보는 경험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어보는 경험이기도 하고요. 또 누군가는 자신의 생일을 이런 방식으로 보낼 수도 있다는 걸 함께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건네면서 생일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는 걸요.

역대급으로 크게 벌인 생일 잔치. 옥천으로 간 이번 생일 기부 프로젝트는 저에게도 오래도록 잊지 못할 선물로 기억될 것 같아요. 좋은 일은 함께 해야 한다며 아낌없이 소중한 돈을 써주신 분들, 시간과 애정을 쏟아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맛있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는 돈, 갖고 싶던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이 세상에 하나뿐인 책장이 됐어요. 어쩌면 수많은 이야기가 담길 ‘나만의 공간’이 생긴 걸지도 몰라요.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새로운 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이 가득 담긴 그런 공간이요.


누구보다 멋지게 돈을 쓴 그 마음, 어쩌면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시작이었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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