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은 집에서 세계여행 하고 여행자는 숙식을 제공받는 우프(WWOOF)의 정체

글, 잘쓸레옹 유현

어릴 적 읽은 여행책에는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책의 주인공은 여자 혼자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작가였는데요. 여행 중 우연히 만난 할머니와 친해져 할머니 댁에 초대받게 된 거예요.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하룻밤 묵고 가라고 권하셨고, 여행작가는 할머니와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식사도 함께 하며 하룻밤을 보냈어요.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읽은 뒤 저에게도 로망이 하나 생겼어요. 여행지에서 만난 현지인과 친구가 되어 그 집에서 하루쯤 머물러보는 거예요.


하지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는 “요즘 세상이 어느 때인데, 위험하지 않겠어?”라며 걱정하곤 했어요. 저도 선뜻 시도하지 못했고요. 그러다 얼마 전, 그 로망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답니다.


현지 농장에서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으며 지내는 여행, 혹시 관심 있으신가요? 이 활동의 이름은 바로 우프(WWOOF)예요. 오늘은 한국에서 직접 우프를 경험한 후기를 들려드릴게요. 추수로 바쁜 가을, 농촌의 일손을 돕는 여행이 궁금하다면 함께 살펴봐요! 

© 유현


우프는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의 약자로, 농장에서 하루 몇 시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세계적인 네트워크예요. 나라별로 운영되고 있고, 한국에는 우프코리아가 있어요.

출처: 우프 코리아


저는 예전에 지역 잡지에서 우프를 소개한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농사일도 잘 모르고, 연차가 생기면 여행 가기 바빠서 우프를 해볼 생각은 못 했어요. 그러던 중 얼마 전, 친구에게 이탈리아 여행 이야기를 들었어요. 친구는 시칠리아의 올리브 농장에서 우프로 머물며 숙박비 없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대요. 호스트가 한국 음식도 궁금해해서 잡채를 만들어 나눠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으니 저도 해보고 싶어졌어요. ‘나도 유럽 여행 때 한번 해볼까? 근데 난 영어도, 농사도 자신 없는데?! 그렇다면 한국에서 먼저 해보자!’ 이런 의식의 흐름으로 우프코리아 홈페이지를 살펴봤습니다.

출처: 우프 코리아


알고 보니 당일이나 주말에도 우프를 할 수 있더라고요. 체류 기간도 일주일 미만부터 한 달 이상까지 다양했고요. 마침 2박 3일 연휴가 있어서 그 기간을 활용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첫 우프를 경기 파주로 다녀왔습니다.


농촌일을 돕는 여행은 처음이라 궁금한 게 많았어요. 어떤 농사일을 하게 될지, 숙소는 어떨지, 어떤 분을 호스트로 만나게 될지 기대됐어요. 농사일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고요.


🌾우프에서는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제가 다녀온 곳은 파주의 평화마을 짓자(GG133, 예술로 농사짓고 농사로 평화짓자)예요. 우프 홈페이지에는 하루에 최대 5~6시간 일한다고 써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방문했을 때는 한 시간 정도만 농사일을 했던 것 같아요. 

© 유현


농장마다, 방문 시기마다 해야 할 일이 다르겠죠? 저는 8월에 방문했고 잡초 뽑기, 물 주기, 닭 모이 주기, 닭 물통 갈아주기 등의 소소한 일을 했어요. 마침 방문 당시 마을 행사가 있어서 행사 준비도 도왔고요. 생각보다 농사일을 거의 안 한 것 같아서 행사 준비만큼은 열심히 도왔어요. 따로 요청하시기도 전에 상황을 파악해서 눈치껏 빠르게 움직였답니다. 그간 쌓아온 직장인 짬밥(?)이 십분 발휘된 느낌이었어요.


저는 주로 사무직으로 일해서 몸을 쓰는 일은 거의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은퇴 후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는데요. 막상 우프를 해보니 ‘생각보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잘할지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농사일 외에는 호스트님의 일정 중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도 따라다녔어요. 시간이 되면 종종 파주 구경도 시켜주신다고 하더라고요.


🛏️ 방문객이 묵을 숙소 & 식사는 어떻게 준비되어 있을까요?

우프 홈페이지에는 숙소에 관한 자세한 정보가 없었어요. 호스트님의 개인 집에서 지내는 거라 가기 전까지는 어떤 곳인지 잘 몰랐죠. 그런데 방과 화장실을 따로 내주셔서 편하고 쾌적하게 지냈어요.

© 유현

홈페이지를 보니 이전에 다녀간 외국인 우퍼들도 꽤 많더라고요. 혹시 다른 외국인 우퍼를 만나게 될까 싶어 영어 공부도 급하게 했어요. 그런데 제가 방문했을 때는 저 혼자였답니다. 덕분에 방도 혼자 편하게 썼어요.


식사는 호스트님이 차려주신 음식을 먹기도 하고, 마을 행사에 껴서 먹기도 했어요. 여기저기 따라다니며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 유현


친구는 외국 우프에서 음식을 딱 적당량만 제공받아서 약간 배고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밥 먹었냐는 질문이 안부 인사인 한국이라 그런지, 배 꺼질 틈 없이 계속 먹을 걸 주셨어요. 먹는 것에 비해 활동량이 너무 적어서 따로 마을 한 바퀴 뛰고 오기도 했어요.


🕊️ 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 세상을 가꾸는 여행자

우프는 제가 노동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활동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직접 경험한 우프에서는 제가 제공한 것보다 더 큰 걸 선물받은 느낌이었어요. 편안하게 먹고 자는 것도 좋았지만, 평화마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분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무척 특별했거든요. 마을 행사 때 호스트님이 저를 다른 분들에게 이렇게 소개하셨어요.

© 유현


“이분은 우퍼, 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 세상을 가꾸는 여행자예요.”


제가 한 일에 비해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는 소개를 듣자, 약간 찔렸어요. ‘땅을 소유하지 않은 농부’라니. 제가 한 농사일이라고는 잡초를 뽑고 닭에게 모이를 주는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알고 보니 우프코리아에서 쓰는 문구더라고요.


내가 하는 여행이 세상을 가꾼다니, 참 낭만적이지 않나요? 사실 제가 한 농사일은 너무 소박해서 별 도움도 안 되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니 제가 어떤 곳에 와 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다녀온 평화마을 짓자는 한 분이 운영하는 일반적인 농장과는 조금 달랐어요.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마을이자 생태마을이었거든요. 마을에서는 빗물을 다시 사용해 밭에 물을 주고, 태양열과 지열을 활용해 에너지를 만들고 있었어요. 음식물쓰레기는 퇴비로 만들어 밭에 뿌리고요. 비닐과 화학비료, 농약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요. 자원을 다시 활용하면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었어요.

© 유현


이런 생활 방식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신기했어요. 농부 한 명이 혼자 실천하는 것도 어려울 텐데,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하고 있더라고요.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연대의 감정까지 느껴졌어요. 저는 평소 은퇴 후에 어떻게 살 것인지 막연하게 고민하곤 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제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삶의 방식을 직접 볼 수 있었어요.


만두 만들기 행사에서도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마을에 비건인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은 비건 만두를 따로 만들고 쪄내시더라고요. 저는 비건인데 집에서 고기를 안 먹는다고 부모님이 걱정하시거든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비건이 뭔지 설명하거나 고기를 왜 안 먹는지 이해시킬 필요도 없이 비건이 이미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마을이라니!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평화마을에서는 햇빛장이라는 농산물 직거래 장터도 열고 있었어요. 주변 농부들이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는 거예요. 또 작년에는 ‘기후야 춤추자 평화랑 뒹굴자’라는 가을 잔치를 열었대요. 싱잉볼 명상, 요가, 훌라, 꽃초밥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하시는데요. 마을 분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마을 안에서 실천하고 있었어요. 친환경 농사를 짓고, 농부들이 물건을 판매할 수 있도록 장터도 열고,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도 만들고요. 공동체의 가치와 평화를 위해 마음을 쓰는 모습이 좋았어요.


제가 해보고 싶은 활동들을 이미 하고 계신 것도 신기했고, 여러 사람이 함께 그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동안은 은퇴 후에 무슨 일을 하며 살지 고민했어요. 마을에서 느낀 환대 덕분에 이번에는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도 생각해보게 됐고요.


📝 우프를 해보고 싶다면
1. 가입하기 전에 갈 만한 농장부터 찾아봤어요

  • 웹사이트: 우프코리아(WWOOF Korea) https://wwoof.kr/ko/ 
  • 연회비: 개인 회원 기준 1년 50달러
  • 방식: 농장에서 노동 ↔ 숙식 제공

우프는 멤버십 제도로 운영돼요. 나라별로 가입비가 다른데, 제가 가입할 때 한국은 1년 회비가 50달러였어요. 우프코리아에서는 한국 호스트들이 실제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지, 숙박 환경은 어떤지 확인한다고 들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더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다만 우프는 세계적인 네트워크여도 나라별로 독립적으로 운영돼요. 어떤 나라의 WWOOF는 모든 호스트를 직접 방문해 확인할 자원이 없다고 명시하기도 해요. 해외에서 우프를 이용한다면 해당 국가의 운영 방식과 호스트 후기를 꼭 확인하시길 추천드려요.


저는 멤버십에 가입하기 전에 우프코리아 홈페이지를 둘러보며 갈 만한 곳부터 골랐어요. 뚜벅이로 갈 예정이라 처음에는 역이나 터미널에서 가까운 농장을 찾아봤습니다. 

출처: 우프 코리아


홈페이지에서는 이전에 농장을 방문한 게스트들의 목록을 볼 수 있고, 우퍼들이 작성한 후기도 꽤 자세해요. 외국어 후기는 번역해서 읽으면 되고요. 이렇게 몇 군데 골라둔 뒤 멤버십에 가입했어요.


2. 프로필을 꼼꼼히 작성하세요

가입할 때는 프로필 사진을 첨부하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적었어요. 숙식을 제공받는 활동이다 보니 일반식, 채식, 비건 등 식사 선호도도 표시할 수 있었어요.


참고로 저는 파워 J라 한 달 전에 일정을 확정했어요. 우프는 신청한다고 무조건 갈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호스트가 승인해야 방문할 수 있어요. 방문이 확정되면 호스트에게 전화번호가 공유된다고도 해요.


그런데 처음 신청한 농장에서는 방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어요. 방이 없다고 하셨는데도 ‘혹시 내 소개가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생각해보니 호스트는 게스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잖아요. 어떤 사람이 와서 함께 지낼지 궁금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프로필을 다시 열어 자기소개를 좀 더 꼼꼼하게 적었어요. SNS 정보도 추가했고요. 그리고 세 번째 신청에서 드디어 승인이 났습니다.


3. 준비물과 체류 기간도 확인하세요

농장마다 선호하는 우퍼상이나 우퍼에게 바라는 점을 적어뒀더라고요. 글을 보니, 한국인들은 준비물을 잘 안 챙겨오는 편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서 저는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알아보고 잘 챙겨갔습니다. 장화(레인부츠), 모자, 작업복을 가져갔고 장갑과 팔토시 등은 농장에서 빌려주셨어요.


우프 홈페이지에는 어떤 농사일을 하는지 대략적인 설명이 있어요. 후기에도 방문자들이 경험한 일을 자세히 적어두는 편이고요. 하지만 농사 경험이 없다 보니 설명을 읽어도 실제로 얼마나 힘들지 감이 안 오더라고요.

체류 기간은 당일, 주말, 일주일 미만, 1~2주, 3~4주, 한 달 이상 등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요. 농장마다 받아주는 기간도 다르고요. 제가 방문했을 때는 농사일을 주로 새벽에 해서 1박 2일은 조금 짧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2박 3일로 다녀왔지만, 일정이 더 길었다면 농장 생활을 좀 더 경험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4. 후기와 위치는 꼭 확인하세요

우프를 비롯해 여러 숙식교환 플랫폼을 이용해본 친구들에게 물어봤어요. 친구들은 공통적으로 신청하기 전에 후기를 가장 꼼꼼히 본다고 하더라고요. 노동 강도는 어떤지, 농장 분위기와 시설은 어떤지 살펴보는 거예요.


후기의 내용뿐 아니라 개수와 작성 시기도 확인해보세요. 호스트가 얼마나 오래 활동했는지, 인증 여부는 어떤지도 참고하면 좋아요. 특히 여성 이용자의 후기를 찾아보는 것도 추천드려요. 네이버 블로그에는 한국 분들이 작성한 자세한 후기도 꽤 있어요.


안전을 생각하면 위치와 교통수단도 중요해요. 너무 외딴 곳에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다면, 생각했던 것과 다른 환경이어도 쉽게 나오기 힘들 수 있잖아요. 저도 파주에 가기 전에 가족과 지인들에게 머무를 곳의 위치를 공유했어요. 위급한 상황에서는 데리러 오기로 약속했고요.


해외라면 이런 대안을 마련하기 어려우니 더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 내 집에서 하는 세계여행

우프 호스트님과 ‘카우치서핑’에서 여행자를 맞이하는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카우치서핑은 여행자가 현지인의 집에서 숙박하며 교류하는 플랫폼인데요. 어떤 마음으로 여행자들을 집에 초대하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두 분이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내 집에서 하는 세계여행.”


듣고 보니 그런 즐거움도 있겠더라고요. 멀리 떠나지 않아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생활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저도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이런 ‘내 집에서 하는 세계여행’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귀농이나 귀촌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우프를 해보니 내 손으로 먹을 것을 가꾸는 일이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라고 느껴졌어요.


추수가 시작되는 가을, 농장은 꽤 바쁜 시기라고 해요. 고사리손으로 삶을 가꾸는 여행, 우프로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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