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얀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배우 류승수 씨가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했던 말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공감한 이야기였을 거예요.
다수의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진다는 것은 생활하는 데 많은 불편함을 줄 수밖에 없을 거예요. 특히 저처럼 혼자 조용히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이죠.
글 쓰는 일이 직업이 되고 가장 놀란 점 중 하나는 작가가 책보다 앞에 나서야 할 때가 많다는 점이었어요. 작가와의 만남과 사인회 같은 행사부터, 매체 인터뷰와 강연, 방송 등 작가를 찾는 제의가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누군가는 ‘강연이나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어요. 눈앞에 사람이 5~6명만 넘어가도 자기소개하는 게 힘들었던 사람인걸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좋았다면 애초에 작가라는 직업 대신 배우나 아나운서와 같은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저의 첫 번째 책 <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 –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가 나왔을 때, 흥미로운 소재 때문인지 대학에서 강연 제의가 제법 들어왔어요. 게다가 매거진에 연애·섹스 칼럼을 연재하던 게 커리어의 시작이었던 터라 방송 매체에서도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서 전하는 게 편한 저 같은 사람에게, 방송 출연은 정말로 하기 싫은 일에 속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쓴 제 책이 있었기에 거절이 쉽지 않았죠. 작가의 인지도와 책의 판매량은 같이 갈 수밖에 없거든요.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웹 소설의 인기 때문인지, 최근 들어 작가의 평균 연봉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과 3년 전인 2018년 기준으로 소설가의 평균 연봉은 1,014만 원이었어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글 쓰는 일로는 한 달에 100만 원도 벌지 못한다는 거예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첫 책이 출간되고 한 달 만에 중쇄를 찍었지만, 출간 후 1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2018년 작가의 평균 연봉과 비슷한 수준이었어요. 그러니 앞에 나서는 건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죠.
어려운 내색을 뒤로하고, 처음으로 방송국 카메라 앞에 서거나 1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강연할 때마다 매번 주문처럼 되새기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너무 부담갖지 말자, 긴장하지 말자, 이 강연을 망친다고 해도 지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요.
하지만 그게 마냥 쉽지 않죠. 저는 우황청심환으로도 뛰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 내과에서 혈압을 낮추는 약까지 처방받아서 먹어야 했어요. 그러면서 늘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나는 작가인데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지?’하는 마음이 들었죠.
매번 남들 앞에 서는 것을 하기 싫은 숙제처럼 하다 보니, 역시나 이런 활동으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그 덕에 제 이름으로 3권의 책이 나오는 동안 먹고살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며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돌이켜 보면 이런 생각도 들어요.
‘책이 잘 팔렸더라면,
내가 스스로 내 책이 잘 팔릴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노력했더라면,
이렇게 멀리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어’
한편으로는 매번 남들 앞에 설 때마다 마음속으로 외쳤던,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되새김이 정말로 이루어졌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들 앞에 먼저 나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전히 숙제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다만, 지금은 ‘어차피 해야 하는 거라면 그냥 빨리 해치우자’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작가가 최선을 다해 좋은 글을 썼다 해도 홍보가 부족하면, 독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너무나 많습니다. 수많은 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만든 다음, 제품 개발만큼이나 홍보와 마케팅에 돈을 쓰고 열을 올리잖아요.
어차피 저는 평생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타인에게 내 작품을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라면, 나서서 그것을 소개하는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무엇이든 하거나
미국에서 손꼽히는 부동산 부자이자 사업가 트럼프. 정치색과 도덕성을 떠나 그가 얼마나 뛰어난 셀프 브랜딩과 마케팅에 열을 올렸는지는 이 일화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나홀로 집에 2>에는 플라자호텔이 등장합니다. 제작사는 호텔 측에 비용을 지불했지만, 당시 뉴욕 플라자호텔의 오너였던 트럼프는 ‘자신이 영화에 나와야만 호텔을 사용할 수 있다’라는 조건을 걸어서, 그를 카메오로 출연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해요.
트럼프는 크든, 작든 어떻게든 매스컴에 얼굴을 비추고 싶어 했어요. 그런 활동이 남들에게 욕을 먹든 아니든 자신을 알리는 데는 플러스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죠. 이런 것들이 결국 미국 대통령의 꿈을 이루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는
갈 곳도 없고 못 갈 곳도 없다’
최승호 시인의 <허공을 달리는 코뿔소>에 나온 문장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거예요.
‘작가’, ‘쓰는 사람’, ‘오직 문학만’, ‘오직 글로만 말하는 사람’에 갇힐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이런 다짐을 해봅니다.
나 자신과, 자신의 작업물을 스스로 알리는 것에도 두려워하지 말자. 특히나 나와 내 작업물이 유명해져서 그것이 소속된 팀과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더욱 나와 내 작품을 세상에 알리자.
꼭 작가나 예술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에요.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다 해당되는 이야기죠.
부모에게 물려받을 것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비혼을 결심하고 스스로 혼자를 선택한 사람일수록, 100세 시대에 평생 직장은 없다는 걸 빨리 깨달은 현명한 사람일수록,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는 것에 망설이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