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 전쟁을 선포하고, 쇠퇴한 미국의 제조업을 다시 부흥시키겠다고 선언했죠. 관세를 피하고 싶으면, 미국에 공장을 짓고 투자하라는 전 세계를 향한 으름장과 함께요. 이에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 내 투자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현대자동차는 2028년까지 21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죠.
미국의 제조업은 어쩌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고, 왜 그토록 투자를 유치하고 싶어 할까요? 우리 기업들은 이를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며, 미국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궁금증에 대해, FDI 전문가 이영선 코트라 아카데미 연구위원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어요.
인터뷰이: 이영선 코트라 아카데미 연구위원(『미중 FDI 전쟁(2025)』저자)
인터뷰어: 어피티 머니레터팀
Q. 먼저 용어가 낯선 분들을 위해 FDI가 무엇인지 먼저 설명 부탁드립니다.
A. FDI는 Foreign Direct Investment의 약자로, 외국인직접투자를 의미합니다. 즉, 개인이나 기업이 해외에서 기업을 경영하기 위해 투자하는 것을 말해요. 해외에 공장을 새로 짓거나 M&A로 현지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답니다. 그 기준은 지분의 10%인데요, 만약 투자하는 기업의 지분이 10%보다 작다면 포트폴리오 투자(증권 투자)로 분류돼요.
개인이나 기업은 FDI를 통해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어요. 투자 수용국은 기업의 투자로 생산과 고용이 증대되는 이점을 얻지요. 반대로, 투자국은 생산과 고용이 감소할 수 있어요.
Q. 왜 미국 제조업은 몰락하고, FDI가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인가요?
A. 미국 제조업은 제1·2차 세계대전 때 크게 성장하고, 1970년대까지 최고 전성기를 누렸어요. 하지만 그 이후에는 여러 이유로 쇠퇴하게 되었는데요.
일본, 독일, 한국, 대만, 중국 등 저렴한 인건비와 합리적인 기술을 지닌 제조업 강국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면서 미국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은 약화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미국 내 고임금을 피해 공장들이 멕시코 등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산업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어요. 좋은 인재들은 높은 임금을 주는 금융, IT 등의 서비스 산업으로 이동했고요. 그 결과, 미국의 생산 기술은 다른 나라에 뒤쳐질 수밖에 없었죠.
제조업의 쇠퇴는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데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어요. 우선 직접적인 군사력은 방산물자를 생산하는 제조업에서 나오기 때문에 제조업이 쇠퇴하면 전쟁 수행 능력에도 타격이 커요. 게다가 제조업 약화로 인한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는 미국 금융 시스템에 위협 요소예요. 달러 패권 유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죠. 산업은 융복합되면서 유기적으로 발전하기에 제조업이 너무 망가지면 미래의 첨단 산업이나 서비스 산업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동안 미국이 제조업의 부활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오래전부터 세계 시장에서 미국산이 줄어드는 상황에 대해 위기의식이 있었어요.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통제되지 않는 금융 산업은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제조업과 달리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죠. 해외 진출 기업을 국내로 복귀시키는 ‘리쇼어링’ 정책은 오바마 정부 때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바이든 정부나 트럼프 2기 정부는 외국 첨단 제조업체의 대미 투자 유치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고요.
그러나 현대 제조업은 지속적인 대규모 투자와 기술 축적이 필요한 산업이라, 지난 수십 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큰 비용이 필요해요.
Q. 지금 세계 경제의 가장 큰 화두인 미·중 간의 패권 전쟁과 FDI는 어떤 관련이 있나요?
A.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 첨단 기술의 중국 수출이나 양방향 투자 교류를 제한하고 있어요.
그러나 생산액 기준으로 미국 제조업은 중국 제조업의 절반 수준이어서 물량으로 경쟁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미국은 ‘첨단 기술’을 무기로 선택했어요. 빠르게 추격해 오는 중국이 손쉽게 첨단 기술을 배우거나 베끼지 못하도록 관련 수출을 통제하고, 양방향 투자를 제한하는 방식이에요. 여기에 법규를 통한 제한도 사용하고, 동맹국도 무역 규제에 협력하도록 해서 중국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식을 쓰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투자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어요. ‘투자 전쟁’이란 ‘자국 기업들이 특정 산업에서 상대국 기업에 대해 경쟁 우위를 지키기 위해 상대국과의 투자 교류를 제한 또는 금지하는 행위’를 말해요. 미국은 2018년부터 ‘외국인투자 위험심사 현대화법(FIRRMA)’으로 중국의 미국 내 투자를 통제한 데 이어서, 2025년부터는 미국 신흥 기술(반도체·AI·양자컴퓨팅·마이크로 전자기술)의 중국 내 투자도 금지했어요.
Q. 이런 복잡한 셈법 가운데 우리나라가 미국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만의 경쟁력은 무엇인지요?
A. 미국은 안보·보건·첨단 업종에서는 중국 기업의 참여를 배제하고, 자국인 미국 내에 이들 업종의 공급망을 완성도 높게 구축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미국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면 한 가지 문제가 생겨요. 현재 미국 경제는 중간재나 완제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는 ‘수입 의존형’이에요.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인 중간재나 공산품 수급에 있어서는 중국의 역할을 대신해 줄 나라가 필요한 상황이죠.
미국 업체들이 이 역할을 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세계화로 인해 제조업에서 뒤처진 기업들은 미국 국내에 생산 기술이나 생태계를 축적하지 못했어요. 아무리 제조업 부흥 정책을 밀어붙인다고 해도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미국은 제조업 강국이면서 미국에 투자해 줄 수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가 필요한 거예요.
우리나라는 제조업 강국인 동시에 실질적으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미 투자국이에요. 물론 우리나라보다 제조업 생산액과 대미 투자액이 많은 일본과 독일도 있지만 한계가 분명해요. 일본은 반도체, 독일은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대미 투자 역량이 부족해요. 현재 무역전쟁에서 핵심 산업으로 떠오른 분야들이죠.
그러나 우리나라는 반도체, 배터리, 조선, 재생에너지, 그린수소, 방산, 원전, 바이오·제약 등에서 모두 경쟁력을 갖고 있어요. 다른 선진국과 달리 아직도 국가 경제에서 제조업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죠. 세계 10대 제조업 강국의 GDP 대비 제조업의 비중 변화를 보면 우리나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는 제조업 비중이 감소했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제조업 비중이 중국 다음으로 높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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