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전기차만큼 커질까

글, 강희종

전기차 판매 늘어도 국내 배터리 기업 웃지 못하는 이유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주가는 2020년대 들어 큰 변화를 겪었어요. 2020년대 초에는 전기차 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감으로 배터리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했지만, 2023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시장은 차갑게 식었어요.

각국 정부가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자, 자동차 제조사들이 잇달아 전기차 출시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한 영향이 컸어요.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올해 들어서는 유럽 각국이 보조금을 다시 확대하면서 전기차 판매량이 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아직 온기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어요.

K-배터리 기업들은 유럽보다는 미국 시장에 주력하고 있는데 미국 전기차 시장은 여전히 반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2026년 상반기 유럽의 전기차 판매량은 250만 대로, 전년 대비 27% 증가했어요. 반면 북미 시장 판매량은 20% 감소해 73만 대에 그쳤어요.

그런데 올해 들어 K-배터리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어요. 이 급등의 배경에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이 일면서 ESS 수요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 수혜가 돌아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어요.

전기를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저장하는 ESS
ESS란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장치를 말해요. 엄밀히 얘기하면 전기를 직접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저장하는 방식이에요.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ESS는 양수발전이에요. 전기가 남아돌 때 그 에너지로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 다음 전기가 필요할 때 물을 흘려보내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 거예요. 전기 에너지를 위치 에너지의 형태로 저장하는 것이죠.

배터리 ESS는 전기 에너지를 화학에너지의 형태로 저장한다고 보면 돼요. 배터리를 이용한 ESS는 ‘BESS’라고도 해요. 요즘에는 BESS가 일반화되면서 ESS라고 하면 거의 BESS를 가리키기도 해요.

재생에너지 발전에 필요한 ESS
ESS는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각국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고 있어요.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간헐성과 변동성이 심한 것이 문제예요. 날씨나 계절에 따라 전기 생산이 들쑥날쑥하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태양광은 하루 중 한낮 3~4시간 밖에 전기를 생산하지 못해요. 낮에 쓰고 남은 전기를 저장했다 저녁이나 밤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ESS를 설치해야 해요.

또 재생에너지는 주파수 변화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어요. 우리나라의 전력 시스템은 교류 기반으로 60헤르츠(Hz)의 주파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전력의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지 않으면 주파수가 흔들리고 전력망이 불안해져요. 심할 경우 블랙아웃(blackout‧대규모 정전)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는 터빈에 있는 회전체에 관성이 있기 때문에 전력망에 갑자기 문제가 발생해도 주파수를 유지하기 쉬워요. 반면, 태양광과 풍력은 생산한 전기를 인버터(직류를 교류로 변환하는 장치)를 거쳐 전력망에 연결하기 때문에 주파수를 유지하기 힘들어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배터리를 이용한 ESS예요.

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의 해결사 ESS
AI 데이터센터 건설 프로젝트는 최근 ESS 수요의 핵심이에요. 데이터센터는 하루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해야 해요. 북미에서는 AI 데이터센터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전력망이 노후화돼 있어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요. ESS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죠.

또한, ESS는 AI 데이터센터에서 비상전원장치(UPS, 전기가 끊겼을 때 대신 전기를 공급해 주는 보조 장치)를 대체하고 있어요. 기존 건물의 UPS는 디젤발전기였어요. 디젤발전기는 정전 시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요. ESS는 순간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 AI 데이터센터의 UPS용으로 주목받고 있어요.

갑작스러운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ESS가 필요해요. AI 데이터센터는 연산 처리 과정에서 밀리초(ms) 단위로 전력 수요가 급등해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서버 랙 내부에 배터리백업유닛(BBU)을 설치하고 있어요. 건물 전체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설치하는 것이 UPS라면 BBU는 서버 단위의 급격한 전력 수요에 대비하는 데 도움이 돼요.

ESS 시장의 성장과 기회
당초 ESS는 전기차 시장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재생에너지의 확대와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이 ESS 시장의 성장을 증폭시키고 있어요. 블룸버그는 전세계 ESS 수요가 2024년 312기가와트시(GWh)에서 2026년 652GWh로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어요. 전체 배터리 시장내 ESS의 비중도 26%에서 35%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고요.

그동안 북미 ESS 시장에서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강세였어요. ESS 시장에서는 NCM 배터리보다는 저렴하면서도 화재 안정성이 우수한 LFP 배터리를 선호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BA)‘ 등 중국을 견제하는 제도들이 시행되면서 K-배터리 기업에 유리한 정책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국내 기업들은 ESS 시장을 겨냥해 LFP 배터리 공장을 짓거나 기존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ESS용으로 전환하고 있어요. ESS 시장의 확대 덕분에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는 2026년 2분기에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어요.

전기차 시장의 부진을 딛고 ESS 시장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배터리 기업들의 행보가 기대돼요.  ESS에 이어, 아직은 규모가 작긴 하지만 휴머노이드로봇, 드론 등도 새로운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어요. 배터리의 활용 분야가 넓어지면서, 관련 기업들에 더 많은 기회가 열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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