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마음이 흔들릴 때 지갑을 열까? 💳


📌 코너 소개: ‘쓸모를 찾아서’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감정과 마음, 에너지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쓰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는 마음 사용 설명서예요.

늦은 시간까지 야근 후 집에 돌아가는 길, 어두운 밤길을 걷다 보면 괜히 기분이 심란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끝나는구나. 회사에 앉아 일만 하다 하루가 가버렸는데,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앞으로 얼마나 더 이렇게 살아야 하지? 설마, 평생?


별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집니다. 집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요. “어, 나 지금 집 가는 길인데 40분쯤 걸릴 것 같아. 야식으로 치킨 안 먹을래? 지금 시키려고.” 바로 배달앱을 켜고 메뉴를 고르죠. 평소엔 쿠폰은 없는지, 무슨 치킨 값이 2만 원이 훌쩍 넘는 건지 가격을 따지느라 한참 고민했을 텐데 그런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요.


같이 먹어줄 사람이 없는 날이면 불 켜진 상점들이 유난히 반가워요. 눈앞에 보이는 빵집에 들어가서 진열된 빵들을 한참 바라봅니다. 이미 회사에서 저녁을 먹어서 배가 고프진 않은데도요. 3,500원짜리 소금빵이랑 7천 원짜리 고구마 크럼블 케이크를 번갈아보며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죠. ‘그래, 내가 이 정도도 못 사 먹을까봐?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결국 둘 다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종종 돈으로 기분을 표현해요. 혹시, 이런 현상을 네 글자로 나타낸 말이 뭔지 아시나요?

출처: X


먼저 양해를 구할게요. 의도치 않게 다소 거친 단어를 꺼내야 할 것 같아요. 바로 ‘시발비용’입니다. ‘시발’이라는 비속어와 ‘비용’을 합친 말로, 거의 10년 전쯤 한 트위터 이용자의 농담에서 시작된 표현이죠. ‘시발비용’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굳이 쓰지 않았을 비용을 뜻해요. 예를 들면, 퇴근길에 피곤하다는 핑계로 대중교통 대신 택시를 잡아타거나, 올리브영에 들러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하는 것처럼요.

 

한때 시대를 풍자하는 신조어였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어요. 누구나 한 번쯤 비슷한 기분으로 지갑을 연 기억이 있거든요. 우리는 기분이 안 좋을 때 뭔가를 구매함으로써 통제력을 되찾으려 해요. 직장에서 상사에게 시달리고 업무에 치이고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하루였지만, 적어도 양념치킨과 후라이드 치킨 중에 뭘 먹고 싶은지 정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출처: Freepik


‘시발비용’이라는 말이 퍼진 이후, 비슷한 개념들도 속속 등장했는데요. ‘소확행’이 대표적이죠. 바쁘고 지치는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를 풀 시간도 방법도 없는 상황,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 속에서 사람들은 당장의 위안을 소비에서 찾고 있어요. “돈 아끼면 뭐해, 어차피 집도 못 사는데.”라는 체념 같은 거죠.


문제는, 이렇게 돈을 썼을 때 잠깐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기분이 들긴 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한다는 거예요.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우리는 더 쉽게 소비 충동에 휘말리고, ‘소확행’, ‘시발비용’ 같은 단어들은 이를 정당화하고 죄책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해요. 문제는 이게 무의식적인 소비 습관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점이에요.


세상에 완벽한 소비 습관 같은 게 과연 있을까요? 때때로 그냥 사 버리는 순간이 필요하기도 하죠. 하지만 내 소비 패턴을 알아차리고, 필요할 때는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건 중요해요. 퇴근길에 괜히 쇼핑앱을 켜거나 상점에 들어가기 전에는 잠깐 멈춰 생각해 보세요. 지금 내가 이걸 왜 사고 싶은 걸까?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아니면 단순히 기분이 안 좋아서 충동적으로 지갑을 열려는 건 아닌지. 그런 식으로 한 번만 물어보는 거죠.

출처: tvN 유퀴즈온더블럭


최근에는 이런 시발비용의 방향을 살짝 바꾼 새로운 방식도 등장했어요. 바로 ‘시발적금’이라는 개념이에요. 화가 날 때마다 돈을 써버리는 대신, 화가 날 때마다 돈을 모으는 방식이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통장에 일정 금액을 넣고, 어느 정도 모이면 고생한 나를 위해 쓰는 거예요. 주말에 상사가 전화를 걸어오면 ‘주말에 전화금지’라는 입금명으로 1818원을 넣는 식으로요. 화가 나니까 돈을 써버릴 거란 마음 대신 화가 나니까 미래의 나를 위해 돈을 모으겠다고 바꾸는 순간,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지는 거죠.


이번 기회에 나를 위로하기 위한 ‘감정적금’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갑작스럽게 업무가 추가됐을 때는 만 원, 회의가 불필요하게 길어질 땐 30분마다 5,000원, 퇴근 1시간 전에 긴급 업무가 떨어지면 18,000원을 넣어보세요. 열 받는 강도에 따라 금액을 정하고, 입금명에 스트레스 원인을 간단히 적어두면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볼 때 오히려 웃음이 나올지도 몰라요. 그렇게 모인 돈으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걸 해보는 거죠. 비싼 오마카세를 먹거나, 눈여겨봤던 물건을 사거나,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아요.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괴롭히고,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해도 그걸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돈을 쓰는 게 나에게 맞는다면 그냥 써도 괜찮아요. 다만, 홧김에 돈을 쓰고 나서 카드 결제 문자나 영수증을 보고 소위 ‘현타’가 오고 그게 새로운 스트레스가 되는 일이 일이 반복된다면, 그럴 때는 한 번쯤 적금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쌓여있는 잔고를 보다 보면, 분노나 스트레스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지도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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