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입고 퇴사 후 다음을 준비 중인 30대 뉴요커의 일주일

글, 잘쓸레옹 벌꿀오소리 님

📌 코너 소개: ‘씀’은 낯선 도시에서 살아가는 유학생, 퇴사 후 소비 패턴이 달라진 사람, 독특한 주거 형태에서 살아가는 사람까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주일 소비생활을 기록하는 코너예요. 돈을 얼마나 아꼈는지, 얼마나 잘 썼는지만을 따지지 않아요. 대신 누군가의 소비를 들여다보며 소소한 재미와 생활의 힌트를 얻고, 때로는 서로 위로받을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Q. 자기소개 해주세요!
  • 저는 커리어를 쌓겠다는 마음으로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까지, 5년간 쉼 없이 달려온 30대 벌꿀오소리예요. 그러다 산재를 겪고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올해 3월부터 잠시 쉬어가고 있어요. 지금은 뉴욕에서 룸메이트 한 명과 함께 살고 있어요.

    요즘 제 하루의 중심은 몸을 돌보는 일이에요. 업무를 이어 가기 어려울 만큼 건강이 나빠져서 치료를 받고 있고,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병원에 가요. 병원에 가지 않는 날에는 밥을 챙겨 먹고, 천천히 걷고, 전시를 보러 가면서 하루를 차분하게 채워요.

    원래 전시와 공연을 좋아하는 편인데, 뉴욕에 살다 보니 쉬는 동안에도 문화생활을 놓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려왔으니, 이번 쉬는 기간에는 뉴욕을 제대로 즐기고 계절 따라 달라지는 바람의 향기도 천천히 맡아 보려고 해요. 제대로 먹고, 제대로 자고, 제대로 쉬는 중이에요. 요즘은 이 세 가지가 제 본업이랄까요.

노구치 미술관, 매디슨 스퀘어, 햇살이 잘 드는 나의 방 ⓒ벌꿀오소리

Q. 내 소비 패턴의 특징이 있다면?
  • 지금은 월급 없이 모아 둔 돈으로 생활하는 시기라, 쓰는 돈의 기준을 분명히 세우려고 해요. 그렇다고 무조건 아끼는 게 답은 아니더라고요. 쉬는 기간에는 얼마나 아끼느냐보다 어디에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요즘 몸소 느끼고 있어요.

    뉴욕은 룸메이트와 함께 살아도 월세가 $2,000(약 298만 원 이상)이 넘는 곳이에요. 월세와 통신비, 교통비 같은 고정비는 줄이기 어려워서 장보기, 외식, 문화생활처럼 조절할 수 있는 쪽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어요. 특별히 큰돈을 쓰는 항목은 없지만 커피만큼은 포기가 안 돼서, 이틀에 한 번은 꼭 좋아하는 카페에 가요.


    월요일과 목요일의 병원 교통비는 매주 똑같이 나가는 지출이라 고정비로 보고 있어요. 미국 병원비는 악명이 높기로 유명한데, 다행히 제 경우 치료비는 산재로 처리돼서 본인 부담이 없어요. 전액 보험사에서 내 주고 있답니다. 몸 상태가 좋은 날에는 대중교통을, 무거운 날에는 택시를 타요. 이건 아끼기보다 필요한 지출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식사는 집밥 비중이 높은 편이에요. 뉴욕의 외식 물가는 살인적이라 커피 한 잔만 사 먹어도 만 원이 훌쩍 넘고, 팁까지 더하면 체감 물가는 더 올라가거든요. 장은 마트마다 상품의 질과 가격이 달라서 격주로 보고, 먹을 만큼만 사려고 해요. 외식을 자주 하지 않고 문화생활은 혜택을 잘 챙기면 생각보다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어요.
Q. 미국에서도 산재 처리가 되나요? 
  • 앞서 치료비를 산재로 처리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 부분을 궁금해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따로 정리해볼게요.

    저는 회사에서 업무 중에 부상을 입었고, 회사에 산재 처리를 하겠다고 알렸어요. 그런데 문제는 회사에 HR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거예요. 절차를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었죠.


    혼자 처리하기가 어려워서 결국 변호사를 선임했어요. 산재 환자는 산재를 받아 주는 병원에서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이 부분도 산재 전문 변호사님이 도와주셔서 수월하게 해결됐습니다.

    참고로, 변호사 비용은 나중에 합의금을 받으면 뉴욕주에서 정해둔 비율만큼 그때 지불하는 방식이에요. 당장 들어가는 비용은 없습니다. 치료비도 산재로 처리돼서 보험사가 전액 부담하고 있어요. 제 본인 부담은 없습니다.

    다만 각오해야 할 부분도 있어요. 결과적으로 산재 처리가 된 건 정말 다행인 일이지만, 과정이 간단하지는 않았어요.

    모든 검사와 치료는 보험사의 승인이 나야 가능해서 대기 시간이 길었거든요. 케이스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정밀 검사를 받기까지만 4개월 이상 기다렸어요. 그리고 담당 의사 외에 보험사 소속 의사에게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장기 치료를 이어 가고 있어요. 치료비 부담이 없다는 건 안도가 되지만,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과정이라는 것도 함께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참고로, 이건 뉴욕주 기준이며, 산재 제도와 절차는 주마다 달라요. 같은 뉴욕주 안에서도 사건마다 조건이 달라질 수 있어요.

Q. 특별히 신경 쓰는 소비 분야가 있나요?
  • 먹는 것, 자는 것, 그리고 문화생활이에요. 평소에는 아침을 거르지 않으려고 달걀, 그릭요거트, 제철 과일과 채소를 넉넉히 사 두고,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매일 스트레칭을 해요.

두부김치, 당근 라페, 직접 담근 동치미로 만든 냉면  ⓒ벌꿀오소리

  •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은 뒤로는 숙면에 도움이 되는 이불, 파자마, 아로마 오일에는 아낌없이 써요. 한 번 사면 오래 쓰는 물건이라 과소비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잘 자는 데 쓰는 돈은 소비라기보다 투자에 가깝잖아요.

    문화생활은 돈을 들이기보다 혜택을 찾아 쓰는 쪽이에요. 뉴욕 거주민이라면 공립도서관 카드로 지정된 미술관과 박물관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서, 도서관 카드를 만든 뒤로 미술관 문턱이 확 낮아졌어요. 거기에 신용카드사에서 한 달에 한 번 전시 무료 관람 혜택을 주는데, 이것도 빠뜨리지 않고 쏠쏠하게 쓰고 있어요.

    자기 계발을 위한 교육비도 예전에는 지출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는데, AI가 등장한 뒤로는 거의 0에 가깝게 줄었어요. 나에게 맞게 커스터마이징해서 시간, 장소, 비용의 제약 없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학습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매력이에요.

월요일 ($12.5, 약 1만 8,600원)

매주 월요일에는 병원에서 하루가 시작돼요. 아침은 먹지 않고 곧장 병원으로 이동했어요. 컨디션이 좋아서 지하철을 탔고, 교통비는 왕복 $6(약 8,900원)이 들었어요.


치료를 마치면 성실하게 물리치료를 받은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병원이나 집 근처의 좋아하는 카페에서 아이스 라떼를 한 잔 마셔요. ($6.50, 약 9,700원) 오후에는 무리하지 않고 쉬었고, 저녁에는 몸이 으슬으슬해서 따뜻한 우동과 유부초밥을 만들어 먹었어요.

병원 가는 길, 치료 후 라떼, 우동과 유부초밥  ⓒ벌꿀오소리


화요일 ($72, 약 10만 7,300원)

병원 일정이 없는 날이라 일상을 챙기는 데 집중했어요.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단 게 당겨서 브런치로 프렌치토스트를 해 먹었어요. 오후에는 Trader Joe’s에서 이번 주 장을 봤어요. 아보카도, 과일, 채소, 빵, 고기, 그릭요거트, 달걀을 담았더니 $72(약 10만 7,300원)이 나왔어요.


돌아오는 길에는 도서관에 들러 한국 책을 빌렸어요. 뉴욕 도서관에는 한국 책이 꽤 많아요. 머나먼 타지에서 한국어 책을, 그것도 공짜로 빌려 읽을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해요.


저녁은 스포츠 덕을 봤어요. 미국도 한국처럼 연고 팀에 대한 열기가 대단한데, 정규 시즌에 지역 팀이 이기면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무료 쿠폰을 주기도 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치킨 샌드위치 브랜드 칙필레(Chick-fil-A)도 뉴욕 양키스(MLB), 뉴욕 아일랜더스(NHL)와 연계해서 팀이 승리하면 무료 메뉴를 줘요. 마침 이날 아일랜더스가 이겨서 무료 치킨 샌드위치로 저녁을 해결했어요. 동네 팀이 이기면 저녁값이 굳는다니, 승리의 맛이 이렇게 고소할 수가 없어요.

브런치로 먹은 프렌치 토스트,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빌린 반가운 한국 책, 뉴욕 공립 도서관 ⓒ벌꿀오소리


수요일 ($33, 약 4만 9,200원)

이날은 도서관 카드를 챙겨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다녀왔어요. 뉴욕 거주민은 원하는 금액만 내고 관람하면 되는 방식이라 원래 $30(약 4만 4,700원)인 티켓을 저는 기부금으로 $3(약 4,500원)만 내고 관람했어요. 메트로폴리탄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아는 사람만 안다는 루프탑인데, 지금은 보수 공사로 닫혀 있어서 아쉬웠어요. 탁 트인 맨해튼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그 거대한 풍경에 압도되거든요.


점심은 미술관 근처에서 커피와 잠봉 샌드위치로 해결했어요.($24, 약 3만 5,800원) 오가는 길은 지하철을 이용했습니다.($6, 왕복, 약 8,900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루프탑, 전시 관람 후 프랑스 카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청량한 가을 하늘 ⓒ벌꿀오소리


목요일 ($12.5, 약 1만 8,600원) 

이번 주 두 번째 병원 가는 날이에요. 월요일처럼 지하철로 이동했고 교통비는 $6(약 8,900원)였어요. 이날도 어김없이 물리치료를 받고 아이스 라떼 ($6.5, 약 9,700원)를 한 잔 마신 뒤, 곧장 집으로 돌아왔어요.


요즘 AI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서, 일하면서 집에 있던 복숭아와 크레이프로 점심을 때웠어요. 오후에 공부도 하고 운동도 했더니 에너지 충전이 필요해서, 아껴 두었던 명이나물과 명태회냉면을 소고기와 함께 맛있게 먹었어요.

물리 치료 후 커피, 공부하며 브런치, 오랜만에 고기 저녁 ⓒ벌꿀오소리


금요일 ($134, 약 19만 9,700원)

한국에서 사촌 동생이 놀러 왔어요. 마침 집밥이 슬슬 물리던 터라 반가운 핑계였죠. 오랜만에 맨해튼에 나가 맛있는 피자도 먹고, 비 오는 거리 풍경도 즐기고, 뉴욕 치즈케이크도 먹으면서 뉴욕 관광을 했어요. 가족이 온 김에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먹었어요.


점심 피자는 샐러드, 음료, 팁까지 포함해서 $86(약 12만 8,100원)이었고, 걷다가 당 충전을 하러 들어간 치즈케이크 가게에서는 $42(6만 2,600원)을 썼어요. 외식은 언제나 가격에 한 번, 팁이 더해진 가격에 또 한 번 놀라게 돼요. 이날은 골목골목 걸어 다니느라 지하철은 집에 오갈 때만 탔어요. ($6, 왕복, 약 8,900원)

사촌들과의 먹부림 그리고 가을비 내리는 뉴욕 거리 ⓒ벌꿀오소리


토요일 ($350, 약 52만 1,500원)

사촌 동생에 이어 고모와 고모부도 뉴욕에 오셨어요. 맛있는 식당에서 대접하고 싶었는데, 집에서 가족끼리 조용히 바비큐를 즐기고 싶다고 하셔서 소고기와 랍스터, 그리고 한국 식료품점 H Mart의 제주산 활광어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갔어요. ($350)


한 주 식비가 하루 만에 쑥 올라간 날이었지만, 날씨도 완벽했고 친척들과 옛날이야기를 나누며 입도 배도 마음도 든든했던 저녁이었어요. 이 성대한 저녁을 위해 아침과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만 먹었어요.

친척들과 홈 바비큐 그리고 미국 뉴욕에서 구매한 제주산 활광어 회 ⓒ벌꿀오소리


일요일 ($0)

이번 주는 친척들의 방문과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다른 주보다 바쁘게 지냈어요. 그래서 일요일은 지난밤 바비큐의 여운과 숙취를 달래느라 늦잠을 자고, 밀린 빨래와 집 청소를 하면서 한 주를 마무리했어요. 끼니는 어제 바비큐에서 남은 음식으로 해결했어요.


Q. 소비로그를 작성한 소감은?

한 주를 기록해 보니 총 $614(약 91만 4,900원)을 썼어요. 이번 주는 친척들의 방문과 친구들과의 약속이 겹쳐서 평소보다 식비가 많이 나왔어요.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만 합쳐도 $484(약 72만 1,200원)라서, 한 주 지출의 80% 가까이가 이틀에 몰려 있었죠.


그런데 돌아보니 제 소비는 저를 돌보는 일,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소소한 행복을 나누는 일로 이어져 있었어요. 잘 챙겨 먹은 집밥, 병원을 오가는 교통비, 걷고 쉬는 시간, 그리고 가족과 나눈 저녁까지요.


쉬는 기간에는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특히 나를 잘 돌보는 데 잘 쓰는 게 중요하고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데 쓰는 돈은 결국 다시 일어설 힘으로 돌아온다고 믿어요. 월급은 잠시 쉬고 있지만 나를 돌보는 일은 쉬지 않을 거예요. 몸을 먼저 돌보고, 그다음 걸음은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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