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조사관은 명탐정?

글, 서지은


  Q.

피부과에서 리쥬란 시술을 받으려고 해요. 실비 처리가 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리쥬란’은 재생과 탄력 개선을 목표로 하는 피부과 시술로, 연어에서 추출한 생체적합 물질 폴리뉴클레오티드(PN)를 피부 진피층에 주입하는 것을 말해요. 아토피가 심한 사람들이 맞으면 증상이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치료보다는 주로 피부 노화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미용 목적으로 받는 시술입니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생긴 이유 

실손 보험은 ‘치료’ 목적의 의료비가 아닌 미용 목적의 시술은 보상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에요. 치료 목적이 아님에도 리쥬란 시술 후 실비 청구 및 보상을 받았다는 건 명백한 ‘보험사기’에 속해요. 이런 보험사기를 방지하기 위해 보험 컨설팅 단계에서 보험 설계사와 보험사가 언더라이팅(보험 심사)을 하고, 그 후에는 보험 조사관이 활약하게 되지요.


보험사기는 보험사고의 발생과 원인, 내용에 관해 보험사를 속여 보험금을 청구하는 행위예요. 우리나라는 2016년 제정된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에 의해 일반 사기죄보다 중한 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어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데요.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수령액이 5억 원 이상일 경우 가중처벌 될 뿐 아니라, 수령한 보험금도 반환해야 해요.


특별법까지 제정할 만큼 보험사기를 위중하게 다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혹시 ‘엄인숙 사건’을 아시나요? 2000년부터 약 5년간 가족과 지인을 대상으로 사고를 조작하거나 살인을 저질러 총 6억 원의 보험금을 편취한 사건이었는데요. 이 사건으로 인해 3명의 사망자와 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이 사건은 보험사기와 관련된 법적 제도를 강화하고, 대중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어요.


보험조사관이 어떤 일을 하냐면요 

드라마 <구경이>(JTBC, 2021)에는 보험조사관 ‘구경이’라는 인물이 나와요. 경찰을 그만두고 보험조사관이 된 구경이는 과거의 경험을 살려 보험금을 부당하게 타 내려는 이들을 명탐정처럼 잡아아내지요. 제 직업과 깊은 관련이 있는 만큼 드라마를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있어요. 


앞서 언급한 ‘엄인숙 사건’처럼 사망보험금을 노리는 끔찍한 범죄도 있지만, 실손 보험 부당수급 사례, 고지의무 위반, 고의로 사고를 낸 후 보험금 청구 등 보험사기는 그 사례가 매우 다양해요. 이렇게 보험이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구경이와 같은 보험조사관이라는 직업이 생긴 건데요. 그렇다고 보험조사관이 만화나 드라마 속 탐정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보통은 보험 청구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 기록, 분석하는 일을 하죠. 


만약 보험금을 청구했는데 지급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고 보험조사관의 조사가 진행된다면 보험사에서 확인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는 의미예요. 특히 고지의무 위반과 보험금 부당 지급에 관한 조사가 가장 많아요.


고지의무 위반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고지의무란, 보험 가입 시 건강 상태나 지금까지 앓은 병의 종류와 치료 과정인 ‘병력’을 정확하게 알리는 행위를 의미해요. 만약 과거 어떤 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던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보험에 가입했다면 보험사는 조사를 통해 보험계약을 해지하거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과거엔 병력이 일절 없는 표준체나 건강체만 보험에 가입할 수 있었고 전산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아 고지의무 위반 사례가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유병자 전용 보험 상품이 다양한 데다, 전산 기록을 통해 이전보다 병력을 알아내기 쉬워졌기 때문에 보험 가입 시 고지의무 위반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특히 ‘온라인 전용 다이렉트 보험’은 가입자가 스스로 모든 걸 작성해야 하므로 의도하지 않았어도 고지의무를 위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험설계사는 단순히 보험상품을 설계하는 것 말고도 피보험자의 고지의무 등을 살피는 1차 보험 심사자 역할을 해요.

모럴 해저드에 빠지면 결국 모두가 손해인 이유 

2023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백내장 실손보험금 지급 기준 정비 방안’을 마련했어요. 이후 진단이 적정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진단서 외에 세극 현미경 검사결과지를 첨부해야 하는 등 지급 심사가 강화되었죠. 현장 심사가 필요한 경우 보험조사관이 파견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백내장 실손 보험에 대한 기준이 강화된 것은 헬스케어 플랫폼을 표방한 브로커들이 병원과 손잡고, 환자에게 값비싼 수술(다초점 렌즈 삽입술 등)을 유도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인데요. 실손보험 가입자가 백내장 진단 후 특정 수술을 받으면 보험사로부터 최대 전액까지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사례였죠. 브로커들은 수술비의 20~30%를 수수료로 가져갔다고 해요.


병원에서 실손 보험을 미끼로 과잉 진료를 유도해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이렇게 해서 적발이 되면 가입자는 보험금 지급은커녕 보험 취소를 당할 수 있어요. 결국엔 다른 실손 보험 가입자의 보험료 상승까지 유발하는 손해를 끼치게 되는데요. 양심적으로 진료하는 병원까지도 의심을 받게 돼요. 


열 세대가 사는 다가구 주택에 수도계량기가 하나밖에 없다고 가정해 보세요. 집주인이 전체 수도세를 10분의 1로 나누어 세대에 부과할 경우 얼마를 쓰든 모두가 나누어 돈을 내기 때문에 물을 아껴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죠. 물을 낭비한 사람은 이익일지 몰라도 물을 절약한 사람은 손해를 보게 돼요. 이렇게 아껴 쓸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 물이 계속 낭비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데, 이것이 바로 모럴 해저드예요.


보험에서 모럴 해저드가 만연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합리화하며 보험을 남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고, 제도를 악용해 이익을 얻는 의료 업계의 관행이 계속된다면 결국엔 우리 개인의 손해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요. 보험에 가입하거나 보상을 위한 과정이 훨씬 엄격하고 복잡해지면서 정작 절실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지속적인 보험금 누수로 인해, 극단적으로는 보험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고요. 


보험은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사고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시작되었어요. 그 밑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자리합니다. 신뢰에 근거해 위험을 대비하는 보험이라는 제도가 사라진다면, 그 사회는 불신만 가득하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 불신과 그로 인한 불안을 ‘헤지’하기 위한 또 다른 보험을 필요로 하는 소모적인 순환이 이어질지도 몰라요. 합리적인 보험 구조와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보험 조사관이 필요 없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의 보험 화이트박스를 마무리하겠습니다.

📌 필진 소개: 어피티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글 쓰는 보험설계사 서지은입니다. 2022년 ‘보험 족보’ 시리즈로 만난 후 3년 만인데요, 그동안 보험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이 보험의 입문 편이었다면 이번에는 일상에서 정말 궁금했던 보험 관련 이야기들을 실제 사례들과 함께 콕콕 집어 전해드리려 해요.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블랙박스가 아닌,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보험 화이트박스’ 로 매주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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