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이
사회에서 전문 자격증은 디딤돌이자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 주곤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그 자격 사항에 갇히라는 법은 없죠.
자격증이 진짜 빛을 발하려면 그것이 나를 규정짓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직장생활을 하다가 로스쿨에 진학해 법률사무소, 국회의원 보좌진, 소셜벤처를 거쳐 바이오벤처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준 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바이오 벤처기업에서 사내변호사로 일하고 있어요
작은 벤처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일하며 법률 관련 업무부터 기획, 인사, 구매, 총무, 재무, 교육, 대외협력 등 경영지원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합니다. 지난해부터 ‘사업개발’ 업무를 맡아 라이센싱(기술이전) 계약업무와 특허수익화사업을 맡고 있어요.
삼성에버랜드 환경개발사업부 조경설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도시공원을 만들고 싶어 학부에서 세부 전공으로 조경학을 선택했어요. 조경 회사 중에서도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어서 공채를 거쳐 삼성에버랜드(주) 조경설계사로 입사했습니다.
로스쿨에 진학하다
조경설계사로 일해보니, 저는 설계 업무 자체 보다는 도시공원을 만드는 일이 더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마침 직장을 다니던 중 로스쿨 제도가 생겨서 환경 전문 변호사가 되어보겠다는 꿈을 꾸고 로스쿨에 진학했습니다.
법률사무소의 주니어 변호사가 되다
로스쿨 졸업 후 기본적인 변호사 실무를 배우기 위해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1년 동안 주니어 변호사로 실무 경험을 쌓았어요.
국회사무처 국회의원실 보좌진이 되다
주니어 변호사로 일하면서 정책 업무를 익힐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국회 홈페이지를 통해 국회의원실 보좌진으로 지원해 일했습니다. 국회의원 보좌진의 일은 ‘월화수목금금금’의 업무 강도를 견뎌내야 해요.
소셜벤처 ㈜언더독스의 COO/부사장이 되다
로스쿨에 다니는 동안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났어요. 국회의원실에서 근무하는 동안 육아나 가사를 함께 할 만한 여유를 갖기는 어려웠어요.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꿈과 일상의 행복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창업교육 전문 소셜벤처의 사내변호사로 입사했습니다.
바이오벤처 ㈜툴젠 경영전략실장, 사업개발실 이사가 되다
소셜벤처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이라면, 치료제를 개발하고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종자를 개발하는 바이오벤처도 소셜벤처라는 생각에 지금의 회사로 이직했어요. 회사가 코스닥 상장을 마칠 때까지는 경영지원업무를 했고, 코스닥 상장 이후에는 변호사로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기업법무와 사업개발 업무를 맡고 있어요.
대기업 퇴사 후 로스쿨 진학이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저는 로스쿨 입시도 재수하고, 변호사 시험도 재수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요.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좌절도 컸고, 경제적으로도 손해가 많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한 결과 변호사 자격증을 얻고 보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어요.
요즘은 과거와 달리 변호사 자격증이 경제적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아요. 하지만 일적으로는 여전히 많은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만약 제가 변호사가 되지 않았다면 국회에서 일하는 것도, 벤처기업에서 경영지원 일을 하는 것도 어려웠을 거예요. 변호사라는 자격증이 있었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원하는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닥 상장의 목표를 이룬 후 번아웃이 찾아왔어요
현재 직장에서 코스닥 상장 관련 업무를 하면서 정말 많은 어려움을 겪었어요. 상장 예비심사 청구 자진철회, 최대주주변경을 위한 합병(mergers) 시도 및 실패, 기업 인수(acquisitions)를 통한 최대주주 변경 후 코스닥 상장에 성공하기까지 꼬박 4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목표했던 코스닥 상장을 이루고 나니 다음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게 되었어요. 방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문가, 인생의 선후배들을 만나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봤고, ‘내가 잘할 수 있는 무엇인지’ 고민한 후 부서와 업무를 바꾸면서 번아웃을 이겨냈어요.
‘기회, 성장, 임팩트, 미션’을 기준으로 커리어를 선택해요
“커리어는 사다리가 아니라 정글짐이에요. 직업을 구할 때 기회, 성장, 임팩트, 미션을 찾으세요. 커리어는 옆으로 움직이고, 내려가기도 하고, 새로 시작하기도 하고, 그만두기도 하는 거예요. 이력을 쌓지 말고, 직무능력을 쌓으세요.”
2021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졸업식 연설에서 쉐릴 샌드버그가 한 말은 제 커리어에 있어 기준이 되었어요.
이런 기준이 있었기에 ‘임팩트(사회적 영향력)’를 만들어내는 국회와 소셜벤처를 직장으로 선택할 수 있었고, 직무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되면 직급을 낮춰 이직해 새로 시작할 수도 있었어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느껴요
대기업을 다니다 로스쿨에 진학한 건 전문직이 주는 안정성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평생직장이 없는 요즘 시대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직장인이나, 변호사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가장 최근에는 ‘코스닥 상장’이라는 목표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뚜렷한 목표가 없는 상황이에요. 삶이 내 뜻과 다르게 펼쳐지는 경우도 많은 게 현실이니 요즘은 ‘신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지금 회사에 가장 만족하는 점 중 하나가 마곡 서울식물원 옆이라는 점입니다. 공원을 산책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초심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아합니다.
저는 여러 커리어 패스를 거치는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게 되었어요.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에는 대기업에 가면 성공한 인생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기업에서 일해보니, 저는 일을 기획하고 성과를 바로 느낄 수 있는 작은 조직에 더 잘 맞는 사람이더군요.
일을 하면서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정말 즐거워요. 제가 만약 돈을 많이 벌어서 사회공헌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을 운영해보고 싶어요. 출생률 저하에 따른 인구소멸로 지방대학들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지방도시에 있는 대학이 도시공원, 창업, 창직의 교육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공원을 만들고 싶었던 꿈, 교육 소셜벤처기업과 상장사에서 일해본 경험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준 님의 인생을 바꿔준 시,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준 님은 고등학교 때 의사를 꿈을 갖고 재수까지 했지만 의대 진학엔 실패했대요. 패배감을 안고 대학생활을 시작한 후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할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고요.
그러한 고민들은 로스쿨 재학시절에도 계속되었는데 그 무렵 접한 구본형 님의 책,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괴테의 문장을 공지글로 적어두고 하루를 시작하는데요, 여러분의 인생 문장은 무엇인가요? 준 님의 인생을 잡아준 구본형 님의 책 서문의 일부를 소개해 드릴게요.
내가 만일 다시 젊음으로 되돌아간다면,
겨우 시키는 일을 하며 늙지는 않을 것이니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천둥처럼 내 자신에게 놀라워 하리라
신(神)은 깊은 곳에 나를 숨겨 두었으니
헤매며 나를 찾을 수 밖에
그러나 신도 들킬 때가 있어
신이 감추어 둔 나를 찾는 날 나는 승리하리라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것이 가장 훌륭한 질문이니
하늘에 묻고 세상에 묻고 가슴에 물어 길을 찾으면
억지로 일하지 않을 자유를 평생 얻게 되나니
길이 보이거든 사자의 입 속으로 머리를 처넣듯
용감하게 그 길로 돌진하여 의심을 깨뜨리고
길이 안 보이거든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할 뿐
신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
위대함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며
무엇을 하든 그것에 사랑을 쏟는 것이니
내 길을 찾기 전에 한참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천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천한 번의 용기로 맞서리니
그리하여 내 가슴의 땅 가장 단단한 곳에 기둥을 박아
평생 쓰러지지 않는 집을 짓고,
지금 살아 있음에 눈물로 매순간 감사하나니
이 떨림들이 고여 삶이 되는 것
아, 그때 나는 꿈을 이루게 되리니
인생은 시(詩)와 같은 것
낮에도 꿈을 꾸는 자는 시처럼 살게 되리니
인생은 꿈으로 지어진 한 편의 시
구본형,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뮤진트리, 2011, 7-10쪽 <서문>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