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경쟁 속 조선업이 주목받는 이유
요즘 미·중 패권 경쟁을 이야기하면 반도체, AI, 관세 전쟁이 먼저 거론돼요. 모두 중요한 이슈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배경에는 바다를 둘러싼 경쟁이 자리 잡고 있어요. 문명을 움직이는 물자의 대부분은 바다를 통해 오가며, 생존에 필수인 식량과 에너지는 더욱 바다를 통한 교역에 의존해요. 결국 세계 질서를 누가 주도하느냐는 해상 교역의 주도권과 통행을 누가 결정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해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전 세계에 함대를 배치하고 바다에서 안전과 교역의 자유를 보장해 왔지만, 이제는 그 지위가 도전받고 있어요.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할수록 조선업과 해군력의 중요성도 다시 커지고 있죠.
중국이 전진하는 사이 제자리걸음 하는 미국
전력만 놓고 보면 미국 해군이 여전히 강해요. 항공모함 운용 경험, 원양작전 능력, 글로벌 기지망, 동맹 네트워크, 함선의 수준과 작전 숙련도에서는 아직 미국이 우위죠. 하지만 흐름을 살펴보면 미 해군의 위기를 확인할 수 있어요. 미 해군의 전투함 수는 2025년 1월 기준 296척인데, 2003년 이후 대체로 270~300척 사이에 머물러 왔어요.
반면 중국은 이미 370척이 넘는 전투함을 보유하고 있어 함정 수 기준으로는 미 해군을 앞서고 있어요. 미국의 전문 분석기관들은 양국 해군의 양적 격차가 앞으로 더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어요. 미 해군이 전력 증강을 위해 지난 10년간 매년 40조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전력 증강 속도의 차이는 오히려 벌어지고 있어요.
더 무서운 것은 보충 능력이에요. 중국의 강점은 조선업에 있어요. 중국의 거대한 상선을 건조하는 능력은, 전시나 위기 상황에서 군함을 건조하고 수리하는 능력으로도 이어져요.
평가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중국의 조선업 능력은 미국보다 최소 200배에서 최대 600배 이상 커요. 중국의 한 대형 조선사가 2024년 한 해 동안 건조한 상선 톤수가 미국 전체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건조한 상선 톤수를 웃돌았다는 점은 양국 역량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줘요.
미국 조선업의 쇠락과 우리나라의 기회
미국은 해군을 늘리고 싶어도 마음먹은 만큼 빨리 늘릴 수 없어요. 미국 조선업은 최근 수년간 해군의 주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고, 보유 중인 함선들조차 수리가 지연되며 작전 투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조선업은 조선소 설비를 구축하고 설계를 도입한다고 해서 바로 역량이 재건되는 산업이 아니에요. 숙련공, 설계 역량, 공급망, 정비 체계, 공정 관리 경험이 다 같이 쌓여야 해요.
그래서 이제 미국은 우리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어요. 한미 정상은 작년 11월에 미국 조선업 현대화와 미 해군 함정 정비 협력 등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에 합의했어요. 이후 국회에서 통과된 ‘미국 전략 산업 투자 법안’에는 1500억 달러(약 210조 원) 규모의 조선 협력 자금이 포함되어 있어요. 이 돈은 미국 내 조선소 투자, 선박 건조, 금융 지원, 인력 양성에 투자될 예정이에요. 우리 조선산업에 큰 기회가 될 전망이에요.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교훈
여기에 최근 벌어진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는 전 세계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어요. 해상 수송로는 누군가 대신 공짜로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상선들이 위험에 처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미 해군조차 상선 호송을 장담하지 못했고, 그 결과 해협의 물동량은 전쟁 전 대비 5% 수준으로 줄었어요.
결국 패권국이 세계의 바닷길과 각국의 바다를 지켜주는 시대는 저물고, 스스로 지키는 자주 국방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어요. 앞으로 많은 나라들이 바다와 항로를 지킬 해군력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될 겁니다. 이는 곧 함선과 보급함을 공급하는 조선업에 새로운 기회로 이어질 수 있어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해군력을 강화하는 국가들
실제로 여러 국가가 해군력 증강에 빠르게 나서고 있어요. 중국의 팽창에 대응하려는 동남아,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남미, 역내 안보 질서가 급변하고 있는 중동,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력을 강화하는 유럽 등 전 세계 많은 국가가 해군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사례는 캐나다예요.
전 세계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방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캐나다는 해안선 방위를 위해 차세대 잠수함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요. 신규 잠수함 12척을 2035년까지 도입하는 이 사업의 규모는 60조 원에 달해요.
해양 방산에도 강한 우리나라 조선업
이러한 변화는 우리 조선업에 큰 기회가 될 거예요. 우리나라 조선업의 강점은 상선에만 있지 않아요. 군함과 특수선, 잠수함 같은 방산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요. 대형 상선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건조하는 과정에서 쌓인 설계·생산·납기 관리 역량은 군함 분야에서도 경쟁력으로 이어져요.
유럽 조선소는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비용이 높고, 납기와 생산 여력도 충분하지 않은 편이에요. 일본은 여전히 튼튼한 조선업 기반을 갖고 있지만, 상선 분야조차 2028년까지 생산 여력이 빠듯하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품질, 가격, 납기, 금융 패키지를 동시에 제시할 수 있는 우리나라 조선업이 상대적으로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어요.
일례로 유사한 크기와 무장을 갖춘 이지스급 대형 구축함 건조 과정에서 한국 조선업체들은 미국의 절반 수준 비용으로 더 짧은 기간 안에 함선을 납품한 사례도 있어요. 구축함, 호위함, 보급함, 잠수함 등 한국 조선업은 다양한 첨단 함선을 공급할 수 있는 역량과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이중 특히 기대되는 분야는 잠수함이에요. 잠수함은 탐지가 어렵고 억제력이 큰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적의 취약점을 공략해 전투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력)이에요.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 전쟁에서는 상대에게 훨씬 큰 부담을 주죠. 캐나다, 폴란드, 필리핀 등에서 잠수함 확보 사업이 진행 중이며 우리나라 기업들이 입찰 경쟁에 뛰어들었어요. 앞으로 각국이 ‘보여주기용 대형 전력’보다 ‘실제로 억제력이 있는 전력’을 중시할수록 우리 잠수함의 수주 기회는 더 늘어날 수 있어요.
한국은 상선 건조 역량과 방산 역량을 함께 갖춘 몇 안 되는 나라이며,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자 파트너의 지위를 갖추고 있어요. 앞으로 조선업은 상선에 대한 수요뿐 아니라 해군력 증강 경쟁에 따른 동맹국 간의 협력이 중요해질 거예요. 조선업은 다시 세계 질서의 중심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