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내 책임이야

woman in blue and white floral shirt holding her face
글, 캐미


📌 코너 소개: 캐미 님은 대기업 재무 부서에서 숫자 보는 일을 하며, 퇴근 후 홍대에서 술 마시는 책방 <책, 익다>를 운영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꾸는 캐미 님의 이야기, <행복을 버는 N잡러>에서 만나 보세요. 


제가 처음 혼자 떠난 해외여행지는 인도였어요. 대학교 4학년 때, 당시 류시화 시인과 한비야 작가의 영향으로 인도가 배낭여행의 성지로 떠올랐었거든요. 더구나 저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인도를 여행하고픈 환상이 있었기에 용기를 내보았답니다. 돌아오는 비행편도 확정하지 않고, 무계획 여행을 떠났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제 마음가짐을 바꾸게 된 사건이 일어났어요.


때는 여행 일주일 차, 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에서 배앓이를 하고, 낯선 현지 문화에 지쳐있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한 인도인 친구가 유명 관광지인 아그라 요새를 가이드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약속날 약속 장소로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따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서 전 계속 기다렸어요.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더니 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나타난 친구가 싱글벙글 웃으며 다가오는 거예요. 미안한 기색이라곤 하나도 없이요! 


당연히 전 친구에게 화를 내며 따졌어요. 어떻게 2시간이나 늦느냐, 그러면서 왜 미안해 하지 않느냐 등의 얘기를 쏟아내면서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네가 화가 난 건 내 책임이 아니야.

화는 네 마음속에서 일어난 거야.

네 마음이니깐 네 책임이지.”


본인이 늦어놓고, 제가 화가 난 건 본인 책임이 아니라뇨.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가 어딨어요. 그런데 그 억지가 제게 통했나 봅니다. 저는 더는 화를 내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어요. 그리고 생각할수록 동의가 되더라고요. 


‘화를 낸 것도 나고, 자꾸 시계를 들여다보며 화를 키운 것도 나구나.

아… 내 마음은 내 책임이었구나…’


갑자기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 들면서, 몸에 힘이 쫙 빠졌어요. 그동안 온갖 일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남 탓, 사회 탓, 혹은 다른 무엇의 탓을 했는데, 실은 그저 다 제가 껴안고 있는 거였단 생각이 들었어요. 성적도, 동아리도, 연애도 무엇 하나 내려놓지 못하고, 모든 걸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다 잘하고 싶어서 꽉 붙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마음 관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내 마음은 내 책임이니까요. 여러분에게도 공유드릴 테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1. 마음 열기


불편하고 힘든 감정이 몰려올 때 저는 일기를 써요. 일기장 맨 앞에 이렇게 써둬요.


“아무도 보지 말 것. 아무도 안 보니 솔직하게 쓸 것.

나도 보지 않을 것.”


일기엔 진짜 속마음을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고 해요. 처음에는 누가 볼까 봐 그러지 못했는데, 계속 노력하다 보니 지금은 정말 솔직하게 써요. 할 수 있는 한 구체적으로 쓰면 좋아요. 2화 좋아하는 것을 찾는 3단계 비법에서 ‘좋아하는 상황’ 구체화하기 하듯이요. 쓸 때도 그 불편한 마음 때문에 힘들긴 한데, 막상 다 쓰고 나면 마음이 한결 후련해져요.


예를 들어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게 와서 화가 났다’라고 써도 좋지만 이렇게 구체화해 보는 거죠. ‘친구가 저녁 약속 시간에 20분 늦게 왔다. 나는 늦지 않으려고 하던 일도 멈추고, 일찍 출발해서 10분 전에 도착했다. 총 30분을 기다린 셈이다. 늦을 거 같으면 미리 말을 해주던지. 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 화가 났다. 30분을 버려서 너무 짜증이 났다.’


꼭 매일 쓸 필요는 없어요. 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기록해 두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돼요. 일기를 쓴 다음엔 어떻게 하면 되냐고요? 


2. 마음 파헤치기


마음 여는 게 익숙해지면, 이제 깊게 파헤쳐볼 차례예요. 구체적으로 쓴 내 속 마음에서 내가 화가 난 정확한 이유를 찾는 거예요.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아니면 30분을 허비해서? 다리가 아파서? 하던 일을 마무리 못해서?

 

복합적이겠지만,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겠죠. ‘나는 누가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행동에 화가 나는구나.’ 하고요. 


혹은 ‘30분을 허비해서’가 화가 난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화가 난 감정은 본인을 향한 건 지도 몰라요. 30분이라는 시간을 애를 태우며 기다리느라 활용 가능한 30분으로 치환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일 수도 있어요. 불편한 마음의 원인이 무엇 때문이었는 지를 분명히 알 때까지 파헤쳐야 해요.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지금의 저는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공짜로 30분이 생긴 거라 생각하고, 경제 유튜브를 들으면서 주변 걷기를 해요. 제게 공부와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을 준 친구에게 오히려 감사 인사를 하죠. 미안해 하는 친구가 밥까지 산다면 이게 바로 1석3조 아니겠어요?


3. 마음에 좋은 상황 만들기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를 분명히 알았다면, 이제 남은 건? 그런 불편한 상황이 오지 않게 하는 거예요. 더 나아가 내 마음에 좋은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드는 거죠. 내 주변 환경을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거예요. 앞서 소개해드린 만다라트 계획표습관을 활용해서요. 우선순위에 따라 하나씩 상황을 만들어 보는 거예요.


저는 신입사원 때 회사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왜 말을 저렇게 함부로 하지? 저런 말 안 듣고 싶다.’ 저보다 높은 직급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얘기할 용기는 없어서 ‘말하는 법’을 공부했어요.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도록 하면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뤄내기 위한 말을 하는 방법을요.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비교적 가까운 선배들에게 실습(?)도 해보면서, 말하기 스킬을 늘려갔어요. 상대방이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다른 주제로 유도한다거나 하는 방법으로요. 상대를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민감한 상황을 타개할 능력을 스스로 키우는 건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제 마음에 좋은 상황과 환경을 조금씩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퇴근 후 조용하게 와인 한 잔 하면서 책 읽는 공간인 ‘책, 익다’도 만들게 된 거예요. 매일 이곳에서 마음 관리가 자동으로 되게 해 둔 거죠.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어렵게 들릴 수도 있어요. 저 역시도 1~2년 만에 마음 관리를 잘하게 된 건 아니니까요. 10년 넘게 고민하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제게 맞는 방법을 찾아냈어요.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어느덧 행복을 버는 N잡러의 연재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다음 시간에 그동안 못다한 마지막 이야기로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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