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여기서 일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김하살: 비건 베이킹과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이초원: 비건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일본에서였어요. 일본 비건 식당을 가서 요리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무조건 여기서 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 비건 식당에 가서 번역기로 적은 이력서를 내밀었어요. 그렇게 돈도 안 받고 숙식만 제공받고 워킹홀리데이를 1년 동안 했었어요.
어느 정도 배웠을 때 선생님과 함께 한국에서 원데이 비건 쿠킹 클래스를 열었어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선생님도 한국에 오기 힘들었고 대면 수업도 열기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비건 식당과 비건 카페로 운영을 변경했어요.
올해 일본에 다시 갈 계획이라서 사업은 모두 정리하고, 프리랜서 베이킹 강사로만 활동하고 있어요.
돈이 많지도 않았는데
돈은 뒷전이었어요
김하살: 초원 님께서 돈은 필요 없으니, 일을 배우게 해달라고 말씀하셨던 부분이 인상 깊어요. 그때 돈 걱정은 없었나요?
이초원: 네, 걱정을 안 했어요. 집에 돈이 많은 편도 아니었는데 그 비건 식당에서 일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돈은 뒷전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때 전 재산이 200만 원이었어요. 일을 하면서 숙식 제공을 받았으니까, 딱히 돈 쓸 일이 없었어요. 식당에서 일을 하다 보니 항상 남는 것이 밥이었으니까 식비로 돈이 나가지도 않았고요.
그 식당에서 먹는 밥이 맛있었고 생활이 즐거웠어요. 눈 뜨면 대나무잎을 따고, 요리를 만들고, 칼질을 하고, 도시락 주문이 많은 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눈도 못 뜬 채로 밥을 짓고, 근처 대학교로 도시락을 팔러 다녔어요
제가 좋아하는 비건 요리를 하면서 제 나름의 요리 레시피도 개발해봤어요. 이런 경험들이 너무나 소중해서 행복했어요. 지금도 이 결정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아요.
어디서 굶어 죽진 않겠다, 싶었어요
이초원: 그리고 스스로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겠다,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하게 무언가를 팔아봤거든요.
중학생 때는 코스프레 옷 대여해주는 것도 해 봤었고, 대학생 때는 텀블벅에서 제로웨이스트 스커트 펀딩도 해봤고 아르바이트를 2, 3개씩은 했어요. 돈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일을 하는 게 재밌어서 그랬어요.
역시 돈은 중요했어요
김하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름의 고충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이초원: 돈 관련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맨 처음 사업을 했을 때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돈은 중요하더라고요.
특히 한 명이라도 고용하면 돈은 더욱 중요해져요. 내가 그 사람의 월급을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생기니까요.
돈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지만, 여전히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는 재밌는 일을 하는 게 더 좋아요.
돈은 풍요와 파멸을 가져와요
김하살: 초원 님이 생각하는 돈이란 무엇인가요? 돈을 어떤 태도로 대하세요?
이초원: 두 단어가 떠올라요. 풍요와 파멸이요.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지만, 돈 때문에 사람이 나락으로 가고 힘들어하기도 하니까요.
돈을 대할 때 중요한 태도가 심신의 안정인 것 같아요. 본인의 기준이 있어야 하고, 심신이 안정되어야 하는 구나를 느낀 경험이 많아요.
돈을 많이 가질수록 그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까치발을 드는 느낌이 있어요. 대학생 때 통장 잔고가 20만 원 이하로 내려가면 불안했는데, 통장 잔고가 200만 원이 되면 그 기준이 올라가서 2,000만 원이 되는 식이었거든요.
일본에서 농사를 하고 싶어요
김하살: 초원 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해요!
이초원: 일본에 돌아가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올 거예요. 이번에는 농사를 해보고 싶어요. 일본에도 인구 소멸 지역이 많아요.
이런 지역에 젊은 층들이 유입이 될 수 있게 일을 한다든지, 더 의미 있는 일들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예전의 저였으면 사업에 도움이 되니까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했었다면 지금은 좀 달라요. 내가 가진 것을 나눠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더 동기부여가 돼요. 제가 더 행복해질 것 같아요.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는 뭘 할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2년 정도 일본에 있다가 올 예정이에요.
먹거리는 외로운 마음을 어루만져요
김하살: 마지막 질문이에요. 초원 님이 생각하시는 요리와 베이킹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이초원: 나이와 국적을 불문하고 사람들을 이어준다는 점이에요. 먹거리는 사람들 사이의 심리적인 문턱을 낮춰주고, 음식을 나눠 먹을 때면 유대감도 느낄 수 있어요.
사람들에게 영양분도 되고 사람들을 연결하며 때로는 지치고 외로운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요. 그런 요리를 만드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