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부족 때문에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는 중국, 그래서 하늘은 맑지만 겨울철 에너지 부족을 겪을 수도 있는 우리나라, 유럽에 천연가스 수출을 두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러시아, 전 세계적인 에너지 공급망 병목현상과 그린플레이션까지.
그놈의 에너지가 문제인 요즘, 유난히 주목받는 에너지가 있으니… 바로 원자력 발전! 매우 저렴하고 효율적인 데다 탄소 배출도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화석원료의 대안으로 밀어붙이기는 어려운 에너지예요.
핵폐기물 재처리 문제와
RE100 때문입니다. 원자력 발전은 한 번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데다, 핵연료 사용 후 발생하는 폐기물을 완벽하게 재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거든요.
RE100은 생소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텐데요.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기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바꾸어가자는 내용의 국제적인 캠페인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원자력 발전까지 포함할지 말지를 두고 논란이 치열합니다. 원자력 발전이 재생에너지는 아니지만 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도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면 미국이나 EU는 정리된 입장을 갖고 있을까요? 문제는 그것도 아닙니다. 당장 심각한 기후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국제정치적, 지리정치적인 문제로 에너지 대란이 발생할 위기라서, 최근에는
원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 혼란 속에서 어떤 방향을 잡고 있을까요? 우리 정부는 2년마다 전기계획수급안을 짭니다. 어떻게 전기를 만들어서 얼마를 받고, 어떻게 공급할 건지 장기적인 계획을 짜는 거예요. 작년 11월에는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발표됐습니다.
핵심은 ‘탈원전’. 전기를 만드는 여러 방법 중, 원자력 발전을 활용하는 비율을 줄이겠다는 내용이었어요.
🎬 Scene #1.
정부: 앞으로 원자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많이 안 만들 거예요.
어피티: 작년 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전체 전기 생산량의
약 29%였는데, 갑자기요?
정부: 갑자기 줄일 생각은 아니에요. 그래서 계획을 짠 거죠. 원자력 발전소는 현재 24기에서 2034년까지 17기로 줄이고,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도 같은 기간 내 30기를 줄일 예정이에요.
어피티: 환경오염이 정말 심각해졌다고 보는군요.
정부: 그렇죠. 이젠 손 놓고 있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물론 탈원전으로 가자고 결정하자마자 코로나19때문에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에 문제가 생겼잖아요. 내년 전력수급계획을 어떻게 짤지 고민이 많아요.
원자력 에너지의
진짜 큰 장단점
전기는 다양한 에너지원을 활용해 만들어집니다. 어떤 에너지원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화력 발전소, 수력 발전소, 원자력 발전소, 태양광 발전소, 풍력 발전소 등이 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효율이 높은 건 단연 원자력입니다. 원자력 발전의 연료가 되는 우라늄 1g으로 석탄 3천 톤, 석유 9천 드럼과 같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요.
현재 국내에서는 총 24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입니다.
작년 기준, 국내 전력 생산의 29%를 담당하죠. 이렇게 전력 생산에서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요새는 논란이 많습니다. 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요?
쟁점으로 넘어가기 전에 원자력 발전의 장단점을 짚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만 추리면 이렇게 돼요.
① 원료 가격이 저렴하고
② 적은 원료로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서 효율적이며
③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다른 원료에 비해 환경오염이 적습니다.
④ 단, 사고가 나면 환경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크고
⑤ 전기를 만들고 남은 핵폐기물은 현대 기술로 처리가 불가능합니다.
장단점이 극단적으로 갈리죠? 원자력 발전(원전)을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도 이것 때문입니다. 특히 단점에 나오는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와 ‘(이미 문제라는 걸 알고 있는) 핵폐기물’이 관건이에요.
없애는 건 둘째 치고
언제부터 만들었대?
🎬 Scene #2.
탈원전 반대론자: 화력 발전이 얼마나 대기오염을 많이 시키는지 아시나요?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화력발전소에서 많이 나온다고요!
탈원전 찬성론자: 그럼 어떻게 처리할 수도 없는 핵폐기물을 계속 생산할 거예요?
탈원전 반대론자: 아니~ 현실적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어떻게 줄일 건데요? 친환경 에너지가 그렇게 쉽게 개발되나요? 원전은 비용 측면에서도 어마어마하게 효율적인 데다, 우리나라 원전 기술은
다른 나라에 수출까지 할 정도인데. 이 기술력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요?
탈원전 찬성론자: 그게 문제예요. 원전을 돌리면 싸고 좋으니까 기업이 다른 신재생에너지에 굳이 투자를 안 하는 거예요. 당장 달콤하다고 미래의 위험을 무시할 거예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기억 안 나세요?
그런데 말이죠. 원전 중심 발전에서 벗어날지, 유지할지를 둘러싸고 갈등하는 걸 지켜보면서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습니다. 대체 원자력 발전소는 언제 지어진 걸까요?
예전에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던데, 어느 세월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서 그 기술력을 수출까지 하고, 이제는 줄여야 한다고 얘기하는 걸까요?
라떼는
전기가 없어서 난리였어~
🎬 Scene #3.
어피티: 남한에는 발전소가 없었나요?
옛날 사람: 있긴 있었는데, 20만kW 정도로 아주 적었어요. 일제강점기 때 국토 균형 발전 같은 걸 신경 썼을 리도 없겠지만, 아무튼 남한에는 발전소를 안 지어줬거든요. 그래서 북한에서 전기를 엄청나게 끌어와서 썼어요.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전체 전력의 60%를 북한에서 끌어왔다니까요.
그러다 1948년, 북한이 일방적으로 전기를 끊으면서 남한의 전력 사정은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바로 5·14 단전 사태입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남한은 안정적인 전기 공급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화력발전소부터 차근차근 준공해가며 전력난을 줄여나갔어요.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도 이때쯤부터입니다.
전기가 모자라도
너무 모자라
🎬 Scene #4.
옛날 사람: 1958년에서야 원자력 발전소가 필요하다고 해서 20년간 공을 들여 만들었어요. 1978년에 부산 기장군에 세운
상업용 원전 1호, 고리 1기가 첫 번째 발전소예요.
어피티: 1950년대에 지어진 원자력 발전소가 전 세계 통틀어 10개 정도였다던데. 한국전쟁 직후에 엄청나게 가난했던 나라가 어떻게 원자력 발전소를 세울 생각을 했대요? 북한과 경쟁이 있었던 건가요?
옛날 사람: 그런 것도 있고, 빠른 경제 성장 덕분에 전기가 많이 필요하기도 했어요.
여기서 잠깐. 발전소 얘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죠. 바로 한국전력(한전)입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전기회사는 세 곳이었습니다. 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가 있었죠. 이 세 회사를 하나로 합병해 지금의 한전이 탄생했습니다.
1961년에 세워진 한전은 1967년이 되자 원전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어요. 경제 성장이 본격화되던 당시, 전기 공급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었거든요.
🎬 Scene #5.
옛날 한전: 원전을 세우지 못하면 매일 밤 블랙아웃, 정전뿐입니다!
정부: 저… 그런데, 우리가 돈도 기술도 없거든요. 인프라도 없고, 인력도 없고, …
옛날 한전: 그럼 지금처럼 계속 석탄이랑 석유로 발전소를 돌릴 거예요? 필요한 만큼 전기를 만들기엔 석유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요.
정부: 그럼 빚이라도 내서 지어봅시다… 안 그래도 외국에서 원전 기술 수출하고 싶어서 난리니까…
장고 끝에 우리나라는 1년 국가 예산의 30%를 투자해서 영국·미국에 의뢰해 원전을 짓게 됩니다. 처음 원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시점부터 20년이나 걸렸으니, 얼마나 복잡한 사정이 있었는지 짐작이 가시죠?
20년 고민 끝에
첫 원전 탄생
고민하는 시간은 길었지만, 발전소를 짓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공사 시작 7년 만인 1978년 4월 29일 국내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 고리 1호기가 완성됐어요.
고리 1호기는
턴키(turn-key) 방식으로 시공됐습니다. 열쇠를 돌려서 시동만 걸면 된다는 뜻으로, 시공회사가 다 알아서 하는 방식이었죠.
당시에 원전 시공 기술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을까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단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원자력 발전소 시공이라는 어마어마한 내용으로 국가 간 계약이라는 정교한 협상을 논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거든요.
고리 1호기가 준공된 이후부터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차례로 준공되면서, 1989년에는 원자력 발전량이 총발전량의 50%를 넘었어요. 2016년 기준 설비용량으로는 세계 6위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2008년 말에 아랍에미리트(UAE)가 원전 사업 참여를 공식 요청하면서 원전 첫 수출이라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원전을 세울까 말까 20년 동안 고민하던 국가에서 원전 기술을 수출하는 국가로 발전한 거예요.
탈원전을 앞두고
원전 돌아보기
짧고 굵게 발전해 온 우리나라 원전이 지금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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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대안이 될 만한 에너지가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원전을 줄일 수는 없다는 입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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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핵폐기물을 완벽하게 처리할 방법이 없고,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어요.
우리의 생활경제 문제로 생각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원전이 멈추면
전기 요금이 오릅니다. 전기 요금이 오르면 전반적인 물가도 오르기 때문에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한편 폭염과 폭우, 미세먼지 등 기후 위기 문제 때문에 매년 발생하는 비용도
어마어마해요.
어떤 방향을 택하던, 다 같이 감당해야 할 것들이 분명합니다. 사실 지금도 농축산물 장바구니 물가 인플레이션이나 여름처럼 더운 10월 등 기후변화의 공격을 받고 있죠.
오늘 <라떼극장>에서는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의 역사를 훑어보았습니다. 탈원전을 이야기하는 요즘에서야 아주 tmi 같은 이야기지만, 최근의 이슈를 좀 더 깊게 생각해보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시간 여유가 있을 때, 20년에 걸친 ‘고리 1호기 짓기 프로젝트’를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추천해 드릴게요. 마치 드라마 한 편을 보듯이 흥미진진하답니다.
📚 <라떼극장>에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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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연, 「한국의 원자력 역사에 관한 기술사회시스템 분석, 1955-2017: 고리1호기의 일생을 중심으로」, 2019, 부산대학교대학원 과학기술학협동과정 박사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