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2시쯤,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 팬데믹 시기에 집회라니 뭔가 싶었죠.
대통령까지 나서서 집회 자제를 부탁했는데 말이에요.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여기에도 오랫동안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사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노조와 기업, 정치의 숨겨진(?) 관계를 잘 드러내는 사례로 이야기해볼게요.
2019년, 두 개의 사건
2019년 9월 초, 노조 파업과 관련된 큰 이슈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1 국내 자동차 회사, 현대자동차
2019년 9월 첫째 주,
현대자동차 노조 이야기가 종합지 정치면과 경제지에 커다랗게 실렸습니다. 8년 만에 파업과 싸움 없이 임금협상을 마무리했다는 내용이었어요. 조금 의아하게 느껴지는 뉴스죠. 현대자동차 노조가 대체 뭐길래 ‘싸우지 않고 임금협상을 완료했다’는 게 구국의 결단인 것처럼 모두가 박수를 쳐주는 걸까요?
#2 글로벌 기업 GM의 한국 현지법인, 한국GM
2019년 9월 둘째 주에는
한국GM이 본사의 걱정을 샀습니다. 한국GM에서 파업이 시작될 것 같은 기미가 보이니 미국GM 본사에서 “너희, 파업하기만 해 봐.
한국 공장 물량 줄일 거야”라고 경고한 거예요. 본사의 경고에도 한국GM은 22년 만에 전격 파업을 선언합니다.
여기서도 의문이 듭니다. 22년 만에 한국GM이 파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요? 또 미국GM 본사는 왜 ‘파업할 기미가 보인다’는 것만으로 경고했던 걸까요? 그리고 물량을 줄인다는 게 왜 경고가 되는 걸까요?
지역을 먹여 살리는 제조업의 힘
우리나라는 전체 경제 규모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6%(2016년 기준)가 넘어요. 지분율이 높은 다른 산업으로는 금융업, 건설업, 서비스업 등이 있는데 단일업종 비율이 높은 건 제조업밖에 없습니다.
금융이 됐든 건설이 됐든 이미 만들어놓은 물건, 즉 제조된 물건을 기반으로 하죠. 제조업은 무진장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제조업 공장 몇 개가 한 지역의 경제를 혼자 끌고 가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그 공장이 이런 식으로 굴러갑니다.
🎬 Scene #1.
본사: 거제도 공장 나와라, 오바. 올여름엔 ‘번츠’가 전국에서 2천 대는 팔릴 것 같다. 그중 1천 대를 배정할 테니 꼼꼼하게 제조 부탁한다. 엔진 부품은 독일에서 공급할 거다.
공장: 한국인의 손기술은 최고다. 그런데 작년에는 아오디 2천 대를 조립한다고 해서 고용한 인원이 많다. 1천 대 가지고 인력이 남아서 안 된다. 물량을 더 달라.
본사: 국제적으로 불경기라서 전체 물량 자체가 줄었다. 게다가 이제 기계화가 많이 돼서 사람 그렇게 많이 필요 없다. 너희들도 인원 감축 들어가라.
공장: 우리가 거제도 고용을 책임지고 있다. 거제도 청년들은 다 우리 공장에서 일하고 우리 공장 주변 식당 아니면 여긴 식당 되는 곳도 없다. 지난 10년간 잘해오지 않았나. 앞으로도 이대로 유지될 거로 생각하고 정규직도 많이 뽑았다.
본사: 맞다. 너희가 정규직 뽑을 수 있게 지난 10년간 우리도 물량 몰아 주지 않았나. 이제 회사의 이익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괜찮은 자동차 제조회사가 있는 게 중요합니다. 본사가 한국 기업이라면, 한국 정부의 말이 좀 먹힐 테니까요.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책임감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본사가 외국 기업이라면? 무조건 이윤 극대화 논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본사가 자동차 물량을 배정해주지 않으면 그 공장에는 파리가 날리겠죠. 당연히 고용도 이뤄지지 않고요, 지역경제에 여러모로 타격이 큽니다. 미국GM 본사가 물량을 갖고 경고한 이유죠.
그런데도 한국GM은 결국 파업을 결정했습니다. 왜일까요?
노조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신문을 찾아보면 노조 입장은 잘 나와 있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편을 고를 땐 항상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하는데 말이죠. 자, 노조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왜 노조가 정치적인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시간을 돌려 100년 전으로 가볼게요. 당시에는 평범하게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권리가 전혀 없었어요. 8살 아이가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지 못하게 한다든가, 만삭 임신부에게 휴가를 준다든가, 사장님이 마음대로 월급을 깎지 못하게 하는 것도 다 정책으로 나와서 투표를 해야 하는 일이었죠.
그래서 옛날에는 노조의 시위가 핫했어요. 정책을 바꾸기 위해 노동조합에서 계속 로비도 하고 시위도 하고 파업도 했던 거예요. 물론, 노조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먹고살아야 하고, 깃발 하나 만드는 것도 다 돈인 만큼 운영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입비를 받았어요.
가입비를 낸 사람에게는 뭔가 혜택이 있어야겠죠? 노조는 가입비를 내고 가입한 노조 조합원에게만 자신들이 얻어낸 권리를 적용하기로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했어요. 다만 북한 이슈가 더해졌습니다.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에서는 북한 간첩이 노동조합에 숨어들어서 반정부 시위를 한다고 생각했고, 노동조합은 북한과는 상관없이 정말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들고나왔어요.
노동조합은 몇 년마다 노동조합위원장 선거를 합니다. 조합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노조를 이끌 사람을 뽑는 거예요. 월급 많이 올려주고, 우리 공장에 물량 많이 끌어다 주고, 고용안정 시켜주고, 위험한 일 안 하게 해주는 걸 약속하는, 힘센 위원장이 우세하겠죠?
조합원으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만든 노동조합인걸요. 그래서 노조는 위원장 선거 시기마다 파업을 합니다. 위원장 후보들의 파워를 보여주기 위해서죠.
지난 20일에 있었던 총파업도 민주노총의 양경수 위원장이
당선 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랍니다. 그래도 왜 파업까지 하냐고 보기에는 노동법을 지키지 않아 일어나는 산업재해가 너무 많죠. 올해 10월 16일, 여수에서
미성년자에게 불법적인 노동을 시켜 사망한 사건도 그렇고요.
2019년의 파업 이슈, 그 배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GM 노조가 파업했던 이유
그 와중에 현대자동차가 파업을 안 했던 이유
시장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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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은 사회적 비용이 큰 행위입니다. 노사분규가 강력하면 해외 기업이 투자를 꺼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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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외 기업이 우리나라에 공장을 세우면서 노조가 없기를 바라는 게 좋은 일이냐?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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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으로 생산 일정에 차질이 생겨 해외 기업이 공장을 빼거나 or 국내 기업이 수출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안 그래도 안 좋은 경기가 더 안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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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기적으로 회사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면 개개인 입장에선 참 일하기 힘든 나라가 되겠죠? 법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으니까요. 소송이 개개인 입장에서 쉬운 게 아녜요. 심지어 노조가 있는 곳에선 소송도 노조가 대신해줍니다.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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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게는 노조가 있는 회사가 좋습니다. 노조가 있는 회사라면 일단 중견기업 이상이라는 뜻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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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성범죄 관련해서는 노조가 있는 회사에서 여성이 더 보호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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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노조 때문에 경영에 문제가 발생하면, 지방에 본가가 있으신 분들은 부모님 가계경제가 걱정되실 거예요.
노조가 있다고 다 좋은 회사는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좋은 회사에는 대부분 노조가 있습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결과적으로 이런 이기심이 이제껏 세상을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켰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