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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도 환상의 나라로

글, 정인

📌 경제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작품을 어피티가 소개한다? 네, 그렇습니다. <어피티 인생극장>은 드라마, 영화를 주제로 경제 이야기를 줄줄 떠드는 시리즈로 기획되었어요. 스포일러 없이 영화 추천도 받고 얼떨결에 경제상식도 얻어갈 수 있는 어피티 인생극장 시리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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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

장르: 미스터리, 모험

추천인: the 독자 

the 독자의 별점: ⭐⭐⭐⭐⭐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사랑을 받으면
마음이 꽃봉오리처럼 활짝 열리죠”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개봉한 지 10년도 지나지 않은 영화지만, 고전 명작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이 영화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아래의 핑크빛 호텔 이미지는 알고 있으니까요.

영화를 ‘예술 영화’와 ‘상업 영화’로 구분한다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예술 영화에 가깝습니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기발한 연출, 익살스럽고 과장된 연기를 보다 보면 뜬금없이 코끝이 찡해지는 포인트가 있어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배경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반쯤 섞어둔 세상입니다. 호텔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알프스 산맥에 위치해 있어요. 알프스 산맥 주변은 ‘주브로브카 공화국’이라는 가상의 동유럽풍 국가입니다.

주인공인 ’제로 무스타파‘는 호텔의 로비 보이입니다. 또다른 주인공, 전설적인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가 그를 직접 교육하고 있어요.

귀족을 위한, 초특급 서비스

20세기 초반, 호텔은 지금과 같은 대중적 서비스가 아니었어요. 대륙을 잇는 커다란 여객선과 절벽을 잇는 아슬아슬한 철교, 그 철교를 지나는 횡단열차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때니까요. 

그런 최첨단 교통을 이용해 여행이라는 값비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귀족이거나 굉장한 부자였어요. 고급 호텔은 그들의 안목과 취향을 만족시켜야 했습니다. 인테리어, 요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의 교양 수준까지도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당시 최고의 호텔이었습니다. 그런 장소를 총괄하는 지배인이라면 귀족이 아니더라도 귀족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했죠. 그래서 ‘제로’는 ‘구스타브’ 밑에서 일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깁니다.

‘제로’가 ‘구스타브’에게 호텔 서비스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것들과는 정반대에 있는 상황이었어요.

전쟁 중에도 환상의 세계는 필요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모르지만, 우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20년 만에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그 사이 세계적으로 신분제가 몰락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싼 호텔 서비스는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특히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공산권이 되어버린 동유럽이라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구스타브’는 전쟁 속에서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지니고 있는 환상의 세계를 그대로 붙들어 두려고 노력합니다. 귀족들도 여행에서는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기대하거든요. 

낯선 장소가 마치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처럼 자신을 환대해 주고, 그래서 그 장소와 사랑에 빠지고, 또 내게 그 사랑을 되돌려주는 경험 말이에요. 

‘구스타브’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찾아온 외로운 여행객들이 호텔이 제공하는 환상 속에서 꽃봉오리처럼 활짝 피어나는 것을 자부심으로 살아갑니다.

여행은 쉬워졌고, 더 중요해졌습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주된 배경인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0년이 넘은 지금, 해외여행은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쉬워졌어요. 

각종 관광지의 호텔 이용 가격도 당시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해졌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어요. 

누구나 여행을 좋아해서인지, 여행업은 세계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산업이에요. 여행업이 창출하는 고용은 글로벌 전체 일자리의 12%나 차지하는 데다, 산업별 시장 규모로서는 매년 5~6위를 차지합니다. 

여행업은 엄청나게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이기도 해요. 그래서 국가 경제를 측정하는 주요 경제지표에서도 여행업을 주목합니다. 경상수지 중에서도 서비스 수지, 서비스 수지 중에서도 여행업이 중심이 돼요. 

국제수지, 경상수지, 서비스수지

국제수지는 우리나라에 1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사람, 기업과 우리나라 바깥에서 사는 사람, 기업 사이에 주고받은 경제적 거래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통계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와 다른 국가가 서로 뭘 사고팔았는지 꼼꼼하게 적어놓은 가계부예요. 

국제수지는 크게 ① 경상수지, ② 자본수지, ③ 금융계정으로 이뤄집니다. 경상수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경제활동을 포함합니다. ① 상품수지, ② 서비스수지, ③ 본원소득수지, ④ 이전소득수지로 이뤄져요.

한국 여행수지는 만성 적자?

우리의 주인공, 여행업은 경상수지의 두 번째 항목인 서비스수지에 속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만성적으로 서비스수지 적자에 시달리는 나라입니다. 

특히 여행수지가 언제나 마이너스예요. 쉽게 말해, 해외에서 우리나라로 여행을 와서 돈을 쓰는 것보다,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여행을 가서 쓰는 게 더 크다는 뜻이죠. 

최근에 깜짝 흑자를 낸 적이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의 일이었습니다. 이때 해외여행이 크게 줄어들어 서비스수지가 흑자를 기록했어요.

엔데믹 이후로는 여행수지의 적자 폭이 커졌습니다. 얼마 전에 발표된 6월 경상수지에서도 여행수지 적자가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아쉬운 건, 골든 타임을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2009년~2014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다 2015년부터 일본이 추월해, 지금까지 격차를 늘리고 있죠.

🗞 <[사설] 관광지 다변화 실패, 한국 관광 이대론 미래 없다>,

부산일보, 2023년 7월 31일


“2012년에는 한국의 외국인 관광객 숫자가 일본과 270만 명 이상이나 격차가 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당시 일본 관광당국이 “한국만 따라잡자, 타도 한국이 목표”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 한국에 외국인이 가장 많이 들어온 해는 2019년으로 1,750만 명이다.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외국인 관광객의 대부분이 서울로만 향하니 관광객 숫자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 그 결과가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5년째 꼴찌이다.”

여행업이 발전해야 경제가 산다!

여행업과 여행업에서 파생되는 서비스업은 고용 창출 효과가 무척 뛰어납니다. 이쪽을 더 발전시키지 못하면 지금처럼 국제 제조업 경기에 너무 크게 휘둘리는 경제 체질을 계속 견뎌야 할 거예요. 정부가 국내 관광을 독려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낯선 곳을 찾아 여행을 많이 떠나는 건 그만큼 외롭고, 그래서 어딘가에 있을 ‘구스타브’를 찾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구스타브’는 여행이 특권이던 시절에도 그보다 더한 환상을 제공하는 호텔리어였거든요. 

여행수지를 보면 우리나라가 낯선 누군가에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환상을 주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치열한 장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행수지는 분명히 차가운 경제용어인데, 어째서인지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분야가 됐어요.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사랑을 받으면 마음이 꽃봉오리처럼 활짝 열리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볼 수 있는 OTT


어피티의 코멘트

  • 정인:서비스업이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지만, 제조업의 고용이 보통 더 안정적이고 임금이 높습니다. 제조업이 강해서 좋은 점이 있고 서비스업이 강해서 좋은 점이 있어요. 제조업이 약한 나라들은 지난 팬데믹 봉쇄 때 정말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수입이 막히자마자 실제로 사용해야 하는 물건을 구할 수가 없어졌으니까요. 중요한 건 한쪽이 너무 크게 모자란 상태 아닐까 싶어요. ‘무엇무엇을 버리고 무엇무엇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거르는 이유예요. 뭐든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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