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은 싸울수록 좋다? 안보 자산이 된 배터리

글, 강희종

배터리의 성장을 가속시키는 ‘전기화’
배터리 시장은 각국의 정부 정책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요. 혜택을 볼 수도 있지만 ‘정책 리스크’도 따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배터리 기업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은 각국의 정책 동향도 잘 살펴봐야 해요.

최근 배터리의 성장은 ‘전기화(electrification)’ 정책 기조와 관련이 깊어요. 전기화란 에너지가 필요한 장치나 시스템을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걸 말해요. 화석 연료 기반의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전환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예요. 전기차 등장 이후 배터리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전기화 추세는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어요.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 연료 사용을 줄여야 해요. 그만큼 전기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죠. 로봇, 드론 등 최근 등장하는 첨단 기기들은 모두 전기를 기반으로 해요. 첨단 무기에도 배터리가 들어가요. 전기화가 진행될수록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가 더 많이 필요해요.

안보 자산이 된 배터리
배터리의 사용처가 늘다 보니 각 국가는 배터리를 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군사용 드론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믿을 수 없는 국가에 의존한다면 어떨까요? 유사시에 배터리를 공급받지 못할 수도 있을 거예요.

문제는 현재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중국은 배터리 완성품뿐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등 주요 소재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어요. 리튬, 니켈, 코발트 등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핵심 광물의 공급 역시 중국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어요. 중국이 없으면 배터리를 만들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죠.

심각성을 인지한 미국과 유럽은 이제 배터리의 ‘출처’를 따지기 시작했어요.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중국산 배터리를 줄여 나가려 하고 있어요.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을 쓰지 않는다면 그 혜택이 돌아갈 대표적인 나라가 우리나라예요. 중국 외에 경쟁력 있는 배터리 기업을 보유한 대표적인 나라가 우리나라와 일본이기 때문이죠.

최근에도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조치를 발표했어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26일 ‘전력망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외국산 전력 장비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어요. 외국산 전력 장비가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어요. 행정명령의 대상에는 변압기와 발전기뿐 아니라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도 포함됐어요.

그동안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은 중국 기업의 텃밭이었어요. 이번 행정명령 역시 한국 배터리 기업에 호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요. 우리 기업들은 기존에 있던 미국 내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ESS용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OBBBA가 우리나라 기업에 미친 영향
현재의 긍정적인 전망 이전에는 어려운 시기도 겪었어요. 특히 2025년 7월 미국이 시행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은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 위협이 되었어요. 바이던 정부 때 만들어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최대 7,500달러를 지급하던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2025년 9월 30일 조기 종료되었기 때문이죠. 미국 현지 전기차 판매량이 급격히 줄면서 배터리 수요도 급감했어요. 결과적으로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대규모 주문 취소, 납기 연기 등의 상황을 맞이해야 했어요.

하지만 안 좋은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OBBBA는 중국 등 금지외국기관(PFE)에 대한 강력한 규제도 담고 있어요. ‘금지외국기관’이란 기존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있던 해외우려기관(FEOC)의 개념을 대폭 확장한 것으로, 금지외국기관에 해당하면 미국 정부로부터 세액공제(보조금)를 받을 수 없어요. 미국 내 ESS 프로젝트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중국산 부품이나 소재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뜻이에요. 사실상 미국 내 공급망에서 중국 기업을 배제하는 효과가 있어요. 

트럼프 행정부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조기 종료했지만 배터리 기업에 주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dvanced Manufacturing Production Credit, AMPC) 제도는 2032년 말까지 유지했어요. AMPC는 미국 현지에서 청정에너지 부품이나 배터리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에 주는 일종의 현금성 보조금이에요. 이 제도는 우리나라 배터리 기업들의 영업이익 상승에 크게 기여하고 있어요.

유럽연합 산업가속화법(IAA)의 목적
중국을 견제하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에요. 2026년 3월 유럽연합(EU)은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 IAA)의 초안을 발표했어요. ‘특정 국가’, 즉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 내 제조 역량을 키우려는 목적이에요.

IAA 초안대로라면 EU 내 공공 조달이나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배터리 셀, 양극재, 배터리관리시스템 등 주요 부품을 EU 국가 내에서 생산해야 해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중국 본토에서 생산한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유럽 내 점유율을 높여왔어요. IAA 규정대로라면 중국 기업들도 유럽 내에서 배터리 셀과 소재를 생산해야 해요. 우리나라 기업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므로 가격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어요. 폴란드, 헝가리 등에 대규모 생산 공장을 건설한 우리 기업에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돼요.

안보 자산이 된 배터리는 우리나라에 기회이면서도 또 다른 과제를 안겨주고 있어요. 한국 기업들도 주요 소재와 원료를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원료를 들여오는 나라를 다변화하고, 광물을 정제하고 소재를 만드는 역량까지 키워야 해요. 결국 이 변화가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질지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과 유럽의 기준을 충족하면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필진 소개: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1999년부터 기자로 일하고 있어요. 서울전자신문, 아이뉴스24, 디지털타임스를 거치며 인터넷, 통신, 미디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정보기술(IT)과 전자 분야를 오래 출입했어요. 아시아경제신문에서 산업부를 거쳐 국제부장, 경제부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에너지 산업을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펴낸 책으로는 ⟪배터리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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