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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플레이션의 공포: 일본의 버블 붕괴 2부

글, 오건영


📌 필진 소개: 신한은행 WM추진부 팀장 오건영입니다. 신한금융지주 디지털전략팀과 신한은행 IPS 그룹 등을 두루 거치며 글로벌 매크로마켓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과 함께 매크로 투자 전략 수립, 대외 기관·고객 컨설팅, 강의 등의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삼프로TV」, 「김미경TV」, 「스터디언」, KBS라디오, MBC 등 다양한 경제 미디어에 출연해 친절한 경제 전문가로 대중들과 소통해 왔어요. 저서로는 『부의 시나리오』, 『부의 대이동』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습니다.


앞서 인플레이션이 왜 무서운 것인지 70년대 석유 파동을 통해 살펴보았죠. 그리고 지난 연재부터 두 편에 걸쳐 디플레이션은 더 무서운 이유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최악의 디플레이션으로 30년을 잃어버린 일본의 이야기를 이어가 볼게요.


플라자 합의 이후 기록적인 엔 강세로 신음하던 일본은 수출 성장이 쉽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고 내수 성장에 포커스를 맞췄어요. 금리를 낮추고, 각종 대출 규제를 풀면서 부동산 경기 부양에 힘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낮은 금리에 돈이 풀리니 그 돈은 필시 어딘가를 향했겠죠. 그곳이 어디였을까요? 엔 강세로 인해 다른 나라와 수출 경쟁을 제대로 해야 하는 제조업보다는, 자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푼 부동산 시장으로 돈이 몰렸습니다. 그 결과 일본의 지가부터 시작해 상가, 맨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부동산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어요.


그러면 모두 부동산을 사려고 했겠네요?


부동산이 다른 투자용 자산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죠. 주식은 보유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지만 부동산, 특히 내가 거주해야 하는 집 한 채는 필수재입니다. 자가, 전세, 월세 어떤 형태로든 일단 살 곳은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기에 주가가 오를 것 같다고 하면 “옛날에 주식 좀 사둘걸…”이라면서 아쉬워하는 정도지만, 내가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상당한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죠.


이렇듯 부동산은 ‘가격 상승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크게 작용하는 만큼, 부동산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던 당시 일본 사람들 대부분이 한시라도 빨리 부동산을 매입하고 싶어 했을 겁니다. 


당장 돈이 없는 사람들은 빚을 내서라도 집을 샀죠. 기록을 보면 당시 일본 은행들의 LTV가 100%를 넘었다고 하는데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예컨대 10억짜리 집을 사면서 10억 이상의 대출금을 받을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모두 빚을 내서 집을 샀습니다. 거액의 부채도 걱정하지 않았어요. 금리가 충분히 낮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산 가격 급등은 소비 수요를 키웁니다. 소비가 늘면 물가가 오르기 마련이죠. 앞서 우리가 공부한 내용대로라면, 이때 일본중앙은행은 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을 거라 예상이 되죠. 하지만 일본중앙은행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왜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나요?


엔화 강세는 일본 입장에서는 ‘수입 물가 안정’을 말합니다. 거기다 80년대 후반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원유 공급이 크게 늘어나면서 에너지 가격 부담이 줄어들게 되었죠. 이런 조건이 맞물려 일본은 자산 가격이 치솟는 버블 경제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안정세를 보였어요. 굳이 금리를 인상할 이유를 찾지 못한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엔화가 강세라 하더라도, 호황이 이어지다 보니 수요가 워낙 강했어요. 물가 상승을 피할 수는 없었던 거예요. 그러는 사이 부동산 버블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주식 시장도 과열돼 뜨겁게 달아오르자, 투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습니다. 


1989년 여름 일본은행 총재로 임명된 미에노는 자산 가격의 급등, 즉 자산 버블에 대한 경계심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미에노 총재는 버블을 막기 위해 당시 2.5%였던 일본의 기준금리를 불과 1년 안에 6%로 인상했죠. 지금으로서는 너무 빠르게, 많이 올린 것이 아닌가 싶지만, 당시로서는 그 정도 충격을 주지 않으면 버블을 막을 수 없다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렇게 급격한 금리 인상은 당시 막대한 빚까지 내서 주택을 구매한 일본 사람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일본 전체 가계의 부채가 상당했거든요. 이들 중에는 소위 말하는 영끌족도 많았을 텐데 금리가 갑자기 크게 올랐으니, 이자 부담으로 가계 경제에 큰 위기가 닥치게 돼요. 


그럼 빨리 집을 팔아야 하겠네요?


이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높아진 이자에 모두 소유한 부동산을 팔려고 내놨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었어요. 팔려는 사람만 많고 사려는 사람은 없는 일본 부동산 가격은 급락세를 타게 됩니다.


아까 10억짜리 집을 살 때 10억 이상의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0억 빚을 내 산 10억짜리 집이 8억, 7억, 6억 계속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집을 팔아도 은행 대출을 다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부채가 커지게 됩니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자본이 깎여나가는 동시에 높은 이자까지 감당해야 했으니 사실상 집은 껍데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럼 그냥 집을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런 상황에 처한 당시 일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집을 포기하고 파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본 금융당국은 빠르게 금리를 인하하고, 어떤 때에는 거의 제로금리까지 만들어내면서 부양에 나섰습니다. 빚이 많아도 대출 이자가 얼마 나가지 않는 상황이 가능해진 거죠. 


일반적으로 금리가 낮아져 이자 부담이 줄어들면, 소비가 늘어나곤 해요. 기업들은 대출을 받아서 설비 투자를 늘리게 됩니다. 따라서 소비도 좋아지고 투자도 늘어나니 경기가 살아날 확률이 커지죠. 하지만 일본의 케이스는 달랐습니다. 


그런데도 디플레이션이 지속된 건가요?


일본 사람들은 부채가 워낙 많은 상황에서 자산 가격이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맞았어요. 금리가 낮아져도 사람들은 소비를 하지 않고 돈을 평소에 아끼고 아껴서 부채를 상환하는 데 몰두했죠. 낮아진 금리가 소비를, 혹은 경기를 자극하지 못하고 부채를 줄이고 싶은 심리에 묻혀버린 거예요.


금리가 낮아도 경기는 침체 일로에 있고, 수요는 계속해서 줄어듭니다. 물가가 더 하락할 거라는 기대가 작용해 물건을 최대한 늦게 사려고 합니다. 디플레이션이 만성화되고 악순환이 반복되며,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늪처럼 변한 거예요.


지난 30년간 일본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셨나요? 디플레이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도 더 체감하셨을 것 같은데요. 다음 시간에는 이런 장기 디플레이션 침체에서 벗어나고자 일본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한 얘기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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