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조선업 경쟁은 어떻게 흘러왔을까

글, 권효재


전 세계 조선을 지배하는 한중일
현재 전 세계 조선산업은 동아시아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부터 이 구도가 유지되고 있지만, 원래 세계 조선업의 중심은 현대식 제철 기술을 개발하고, 증기기관을 처음 만든 영국이었어요. 영국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19세기부터 1956년까지 세계 조선업의 선두를 지켰죠.

이후 일본이 영국을 넘어서고, 2000년 이후 우리나라가 일본을 넘어서고, 2010년 이후에는 중국이 배를 쏟아내면서 현재의 구도가 만들어졌어요. 2025년 기준 전 세계 조선의 95%가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에서 생산됐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세 나라의 조선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살펴볼게요.

미국식 대량 생산 기술을 적용했던 일본
먼저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을 만들 정도로 조선업의 강자였어요. 전쟁 이후엔 미국이 전쟁 중 발전시킨 대형 블록 공법, 용접 확대, 표준화된 설계와 조립 방식 등을 빠르게 받아들여 생산성을 끌어올렸어요. 일본식 현장관리에 미국식 대량생산 기술을 결합한 거죠. 여기에 전후 세계 경제 성장과 유조선 대형화 흐름이 맞물리면서 일본 조선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1960년 일본의 조선 점유율은 이미 과반에 이르렀고, 1960년대 내내 세계 시장을 석권했어요. 영국이 전통의 기술 강자였다면 일본은 시장의 룰 자체를 바꿨죠. ‘더 크고 더 싸고 더 빨리’ 배를 만들 수 있는 생산 시스템을 구축한 일본의 성공은 영원히 갈 것 같았어요.

전략사업으로 시작해 무섭게 성장한 한국
우리나라는 1970년부터 조선업을 전략 산업으로 키우기 시작했어요. 돈과 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조선업에 뛰어들었고, 일본의 성공 사례를 참고해 처음부터 크고 거대한 설비에 투자했어요. 현대중공업이 울산에 초대형 조선소와 초대형 유조선을 동시에 만들면서 업계를 놀라게 한 일이 그 대표적 사례예요.1971년 조선소 건설을 시작해 이듬해 선박 건조에 착수하고, 1974년 첫 선박 인도에 성공했죠.

오일 쇼크가 불러온 침체기와 대응
현대중공업에 이어 대우조선, 삼성중공업도 거제도 초대형 조선소를 지고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시장을 흔들었어요. 유가 급등과 경기 둔화, 해운 경기 위축이 겹치면서 선박 발주가 급감했고, 세계 조선업은 긴 침체에 들어갔죠. 이 과정에서 전 세계 조선소의 절반가량이 사라졌고 고용도 반 토막이 났어요. 


우리나라 조선업도 큰 타격을 받았지만, 이 시기 설비를 확충하고 기술력과 생산성을 높이면서 버텨낼 수 있었어요. 인건비가 저렴한 이점을 살렸고, 정부의 지원도 큰 힘이 되었어요. 이러한 노력으로 90년대를 지나는 동안 세계 2위의 지위를 지켜낼 수 있었죠. 어려운 시기에 체질을 개선하고 실력을 쌓으면서 다가올 호황을 준비했어요. 그리고 기회는 찾아왔어요.

냉전 종식 이후 동구권이 세계 경제에 편입되며 교역물량이 증가하고, 컨테이너선들도 커진 덕에 해운과 조선 시장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는 그동안 갈고닦은 역량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나갔어요.


공급망을 묶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한 중국
중국은 개혁개방 직후인 1980년대 초부터 조선업을 키우고자 일본의 도움을 받았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2004년부터 시작된 대호황기 때는 달랐어요. ‘중국이 수출입하는 물자를 중국의 해운업과 중국의 조선소가 처리한다’는 정책을 세우고 시행했죠.

정부의 막대한 금융 지원, 자국 해운·물류·항만과의 연계, 대형 국영 조선소를 중심으로 규모를 확대하면서 중국은 조선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렸어요. 중국의 시장 점유율은 2000년 약 5% 수준에서 10년 만에 40% 수준까지 확대됐어요. 이 시기 중국은 단순히 싼 값으로 배를 대량 생산하는 수준을 넘어 자국 해운·조선·기자재 공급망을 묶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했어요.

과잉 발주와 공급이 유발한 또 다른 침체기 
하지만 조선업의 호황은 늘 과열을 동반하기 마련이죠. 결국 2015년 전후 조선업이 다시 깊은 침체에 빠진 이유도 과잉 발주와 공급 과잉이었어요. 앞선 호황기에 너무 많은 배가 발주됐고, 여기에 유가 하락과 해양플랜트 시장 위축까지 겹치면서 한중일 모두 타격을 받았어요.

당시 한국은 비싸고 복잡한 대형 상선과 해양플랜트 비중이 높아 충격이 컸고, 일본은 내수 중심과 벌크선 중심 구조가 부담이 됐으며, 중국은 비교적 기술 난도가 낮고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선박 위주로 버텼지만 역시 구조조정을 피하지 못했어요. 이 시기 세 나라 모두 설비와 인력을 크게 줄였고, 전체 산업 규모도 눈에 띄게 축소됐어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시작된 긴 불황이 201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의 조선업 회복은 긴 겨울 끝에 온 반등에 가까워요.

조선업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건 2022년이에요. 팬데믹 이후 물동량 변화, 선박 교체 수요, 환경 규제 강화가 한꺼번에 작용해 산업의 상승세를 이끌었죠. 다만 이번 반등은 과거와 상황이 조금 달라요.

그 사이 중국 경제의 질이 높아졌고, 조선업의 기술력과 품질 수준도 함께 올라왔어요. 2025년 기준 중국이 처음으로 세계 생산의 절반을 넘겼어요. 지금은 중국이 물량 기준 1위를 굳혔지만, 우리나라는 LNG선과 친환경·고부가 선종 중심으로 차별화하고 있어요. 일본은 점유율이 10% 안팎까지 떨어졌지만, 이대로 밀릴 수 없다고 보고, 정책 자금 지원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요. 일본 정부는 2035년까지 자국 건조량을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어요.


앞으로 더 복잡해질 경쟁과 조선업의 미래
앞으로 경쟁은 더 복잡해질 거예요. 대형 상선 시장은 여전히 한국·중국·일본이 지배하고 있어요. 반면 유럽은 크루즈선, 군함, 해양플랜트 지원선처럼 더 특화된 영역에서 강점을 유지하고 있죠. 핀란드나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상선 물량 경쟁에서는 밀려도 특정 고난도 분야에서는 여전히 존재감을 보이는 이유예요.

동시에 인도와 베트남 같은 신흥국은 정책적으로 조선업을 키우고 있어요. 당장 한중일 3국의 구도가 깨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나라가 자국 안보와 공급망, 제조업 전략 차원에서 조선업을 다시 키우려 할 가능성이 커요.

결국 글로벌 조선업 경쟁의 역사는 국가 전략의 역사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조선업 공부할 때는 지금 수주가 얼마나 늘었는지만 보는 것으로는 부족해요. 어느 나라가 조선업을 미래 산업으로 보느냐, 인력과 금융과 해운을 함께 묶어 지원하느냐,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올라가느냐를 함께 봐야 하죠. 지금 벌어지는 한중일 경쟁은 앞으로 누가 바다를 통해 돈을 벌고 공급망을 쥘 것인가를 둘러싼 장기전이에요.
📌필진 소개: 조선해양공학, 경영학, 에너지 정책을 공부했어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 후 20년 넘게 한국, 중국, 미국에서 중공업과 에너지 분야 업무에 몸담으며 천연가스, 조선·해양, 재생에너지, 산업정책을 주요 연구 분야로 삼아 교재를 집필하고, 에너지 정책과 전력·연료 시장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어요. 페이스북 지식 그룹 COR Energy Insight를 이끌며, 서울대학교 해양시스템공학 연구소 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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