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스타 탕웨이를 광고 모델로 내세우며 ‘중국의 스타벅스’라고 불리던 커피 브랜드가 있습니다. 창업 반년 만에 중국 내 매장 500개를 돌파하면서 중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에 들어선 기업이죠.
이후로도 빠르게 사업을 확장해 창업 3년 만에 중국 내 매장 수 3,700개를 넘기며 스타벅스의 20년 업적을 갈아치웠습니다. 2019년 5월에는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며 해외 투자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죠.
승승장구하는 듯 보이던 이 기업의 주가는 지난 4월 2일 미국 증시에서 하루 만에 75% 하락했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가가 폭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를 통보받게 되죠. 올해 상반기 나스닥 시장을 뜨겁게 달군 ‘루이싱 커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루이싱 커피의 몰락을 예측한 한 리서치 그룹이 있었습니다.
이 그룹의 이름은 ‘머디 워터스 리서치(Muddy Waters Research). 머디 워터스 리서치는 올해 1월, 루이싱 커피에 대한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루이싱 커피가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해가는 모습에 의심을 품고 1,500명의 요원을 동원해 981곳의 루이싱 커피 지점에 파견을 보내 조사한 자료죠. 조사 결과, 루이싱 커피는 2019년 4분기의 실적을 부풀렸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흙탕물에서
고기를 잡기 더 쉽다?
‘월가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머디 워터스 리서치는 공매도 리포트를 통해 중국의 가짜 기업들을 솎아내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수십 개의 중국 기업들이 머디 워터스 리서치의 공격을 받아왔어요. 지적받은 문제가 사실로 드러나 상장폐지 당한 기업도 많지만, 살아남더라도 이미지에 타격을 입어 이전만큼 주가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공매도는 쉽게 말해 주가가 내려가는 데 베팅하는 투자 방식이죠. 머디 워터스 리서치의 공격이 맞아떨어져 기업의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해당 기업에 공매도 방식으로 투자한 이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앞서 말했듯 공매도는 주가가 내려가는 데 베팅하는 투자 방식이니까요.
머디 워터스 리서치의 이름은 중국의 속담인 ‘혼수모어(混水摸魚, 흙탕물에서 물고기를 잡기 쉽다)’에서 유래했습니다. 루이싱 커피 보고서는 말 그대로 혼란 속에서 대어를 잡은 것과 마찬가지였어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중국의 증권시장은 흙탕물과도 같습니다. 금융개방을 허용하지 않은 중국 정부의 정책 때문에 투자자가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게 막혀있는 데다, 기업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거의 닫혀 있는 상황이거든요.
2014년 11월부터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한 기업 내의 외국인 지분이 28%를 넘지 못하게 하는 등 여전히 규제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이미 금융개방을 통해 활발하게 거래하는 와중에도,
중국 시장은 아직 완전한 금융개방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예요.
몇몇 투자은행은 중국 기업이 미국의 증권시장에 상장할 수 있도록 밀어주기도 합니다. 평범한 방식으로는 상장이 어려우니, ‘역합병’을 통해 상장하는 거예요. 일단 미국 증권시장에 상장된 회사 중 망할 듯 말 듯 한 회사를 중국 기업이 인수하게 합니다. 미국 기업으로서 미국 증시에 상장돼있지만, 내부는 중국 기업을 유지하게 되는 형태에요.
이렇게 역합병 방식으로 미국 시장에 상장하고 나면, 본체가 중국 기업이더라도 누구나 쉽게 투자할 수 있게 됩니다. 외국 투자자들의 돈이 쉽게 몰릴 수 있게 되죠.
하지만, 앞선 루이싱 커피 사례에서 봤듯이 중국 기업 중 불투명한 회계처리로 문제가 된 기업이 많았습니다. 이 사태에서 돈을 번 집단은 바로 소수의 투자은행과 중국 기업들의 소유자였습니다. 피해는 불특정 다수의 개인투자자에게 떠넘겨집니다. 공매도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한들, 이들이 입은 피해는 사라지지 않았죠.
다시 생각해보는
시장 감시자의 역할
중국기업의 회계 부정과 공매도 세력의 투자, 개인투자자의 피해. 이 세 가지 요소는 2008년 금융위기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시장 관리자, 감시자의 도덕적 해이라는 문제예요. 기업이 주식시장, 즉 증권거래소에 상장한다는 건 ‘언제든 불특정 다수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회계사, 회계법인의 엄격한 감사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죠.
하지만 회계법인들은 시장 감시의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2008년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남발했던 것처럼, 중국 법인의 미국 증시 상장을 돕기 위해 중국기업의 매출을 높여주고, 자산 가치를 올리는 데 조력했어요. 일례로, 종이 회사인 오리엔트페이퍼의 매출을 40배, 자산의 규모를 10배 이상
분식회계 한 사건도 있었죠.
독립적으로 운영이 되어야 할 시장 관리자들이 기업의 이해관계자를 도우며 시장을 망가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국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사기 행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차이나 허슬: 거대한 사기>는 시장 감시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지적합니다. 영화의 첫 대사 댄 데이비드의 내러티브에도 그 비판의식이 은근하게 묻어나죠.
“There are no good guys in this story, including me.”
이 이야기에 좋은 사람은 없다. 나를 포함해서.
투명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지만
재무학에는 ‘간판이론’이라 불리우는 이론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거래할 때 거래가 이루어지는 환경, 즉 간판에 의존해서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내용이죠. 주식 투자를 하는 개인투자자에게는 ‘거래소에 상장됐다는 사실’이 그 간판일 겁니다.
‘깨끗한 물’은 곧 투명한 시장, 공정한 시장 정보를 의미합니다. 비록 깨끗한 물에서는 고기를 잡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는 않겠죠. 금융시장이 흙탕물처럼 탁해질 때, 억울한 피해자를 노리는 포식자는 다시 등장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