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일쇼크
닮고 닮은 1970년대 오일쇼크와 지금
글, 정인
최근 경제 상황을 세 단어로 표현해보겠습니다.
① 고유가 ② 고금리 ③ 강달러
각각 석유, 돈, 미국 달러가 비싼 상황을 뜻해요. 이런 현상이 우리의 경제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두 단어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 인플레이션 ⓑ 정치적 불안정
①, ②, ③과 ⓐ, ⓑ가 모두 반영된 최근 뉴스도 살펴볼게요.
그러니까 유가가 너무 올라서 원자재 가격은 물론, 기업의 생산비용과 일상 냉난방 비용까지 모두 치솟고 있는데, 수출은 안 되고 그 와중에 금리가 치솟아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이자를 내느라 허덕인다는 얘기잖아요. 걱정되는 상황이에요.
도저히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모를 때, 우리는 뒤를 돌아봅니다.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찾기 위해 말이죠. 지금처럼 전 세계에 고유가, 고금리, 강달러, 인플레이션, 정치적 불안정이 모두 쏟아졌던 시기가 있었으니 바로 1970년대입니다.
석유 가격이 급등하는 오일쇼크
1970년대가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이유. 딱 하나만 꼽자면 바로 제1차·제2차 오일쇼크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말로는 ‘석유파동’이라고도 합니다.
오일쇼크는 석유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해 전 세계 경제가 커다란 타격을 입고 휘청거리는 상황을 뜻합니다.
생산을 적게 했든 생산은 충분한데 물류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든,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물량이 시장에 풀리지 못하면 가격은 뛰기 마련이에요. 여기에 공급자가 마음대로 공급량을 통제할 수 있는 독과점 상황까지 겹치면 상황은 아주 나빠집니다.
이전에도 유가가 급등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1970년대에 일어난 두 번의 오일쇼크만큼 커다란 상처를 남긴 사례는 없었습니다. 배럴당 3~10달러 전후로 형성되는 것이 당연했던 유가가 한두 달 사이에 배럴당 60달러 위로 껑충 뛰었거든요.
좀 과장된 비유긴 하지만, 난방비가 지난달에 10만 원이었는데 이번 달 고지서에 갑자기 20배 오른 200만 원이 찍혀 날아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때는 석유가 이렇게 비쌀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해서 충격이 더욱 컸어요.
1970년대 원유 생산과 판매의 통제
1970년대, 중동 국가들은 원유 생산과 판매가 통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죠. 지금은 사우디아라비아(우리나라의 원유 수입국 1위)나 쿠웨이트(2위)가 우리나라에 ‘원유 안 팔아’ 해버리면 방법이 없잖아요.
1970년대에는 달랐습니다. 중동 국가는 자기 나라 땅에서 나는 원유인데도 실질적인 결정권이 없었어요. 당시, 중동 원유의 패권은 영국과 미국이 갖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석유 사업은 기술력과 자본이 필요합니다. 넓은 사막에서 원유를 찾아내고, 찾아낸 원유를 뽑아내고, 운송하고, 가공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당시 중동은 기술력과 자본이 충분하지 않았어요.
메이저 석유 회사의 시대
1960년대까지 중동 원유를 다스렸던 7곳의 영미계 석유 회사를 ‘세븐 시스터즈’, 혹은 ‘메이저 석유 회사’라고 해요. 이 회사들이 중동 국가에 원윳값을 주기는 했는데, 그게 무척 저렴했습니다.
농산물도 농부에게 직접 살 때는 저렴한데, 유통 과정에서 이것저것 비용이 붙잖아요. 원유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회사들은 원유를 싸게 사서 가공한 다음,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이익을 얻었습니다. 가공하지 않은 원유의 가격은? 당연히 세븐시스터즈가 결정했어요.
1973년, 첫 번째 오일쇼크
중동 국가들의 불만이 턱 밑까지 차올라 찰랑거리던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나며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바로 이때 첫 번째 오일쇼크가 발생해요.
제4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과 중동의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입니다. 소련이 아랍 국가들에 물자를 지원했고요, 미국이 이스라엘에 전쟁 무기를 지원했어요. 그리고 중동 국가들은 여기서 큰 결심을 했습니다.
중동 국가들: 미국. 이스라엘 돕기를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이제 원유를 생산하지 않겠다.
당시 오일쇼크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냐 하면, 친미 국가로 유명한 일본과 우리나라가 반미 성명을 낼 정도였어요. 아래와 같은 기사가 나오기도 했답니다.
- 24일께 친선사절 파견 일본,「친 아랍」공식 발표(동아일보, 1973.11.22)
- (우리나라 정부) “이스라엘 점령지 철수하라” 친 아랍 성명 발표(동아일보, 1973.12.17)
뭉쳐야 산다, OPEC의 시대
이때부터 중동 국가들은 매일 원유 생산량을 줄였습니다. 그전에는 원유 생산량을 쉽게 줄이지 못했어요. 미국이나 세븐시스터즈에게 원유 못 팔까 봐 걱정했던 것도 있고, 다른 국가가 그걸 기회 삼아 이득을 챙기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전쟁이 터지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중동 국가들의 연합으로 똘똘 뭉쳐서 생산량을 줄었어요. 그 결과, 중동 국가가 다 같이 살아남게 됐습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원유 시장에서 전 세계가 중동의 눈치를 보게 되었으니까요.
오일쇼크라는 거울로 비추는 현재
원유가 전쟁에서 무기로 작동하는 광경. 익숙하지 않으세요?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가 천연가스와 원유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렇게 에너지 가격이 뛰면서 물가가 같이 뛰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금리를 올리니까 버블이 터지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흐름이에요.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도 아닌 데다 미국의 금리가 올라 원·달러 환율이 높아지는 부담까지 있습니다.
이렇게 오일쇼크의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봤는데요. 앞으로 몇 주간, 오일쇼크를 다루면서 ① 미국 금리가 오르는데 왜 환율이 뛰는지 ② 1970년대 당시 우리나라는 오일쇼크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③ 제1차·2차 오일쇼크 때 탄생한 경제학 상식은 무엇인지 차례대로 알아볼게요.
이 글을 쓰는데 참고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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