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편은 지난 <라떼극장> 세 편을 아래 순서대로 읽고 오시면 더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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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최저임금이 가장 중요할 때는 언제일까요?
바로, 내가 비정규직에서 일하고 있을 때입니다.
최저임금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거의 비슷하거든요.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가 여성일 때 그렇답니다. 2019년 기준 비정규직 월급 평균은 175만 원이고, 2019년 기준 주휴수당을 포함한 최저임금 월 급여도 175만 원이에요. 이번 최저임금 협상에서 노동계 측이 역대 최저 인상률에 반발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죠.
그렇다면 경영계가 모두 악덕업주인 걸까요? 그럴 리가요. 최저임금 문제가 어려운 건, 다른 어떤 문제들보다도 각자의 입장이 너무 상충하는 지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Scene #1.
좋은 일자리가
없어서 생기는 일
경영계: 최저임금 주기도 버거운 자영업 영세업자들은 어떡하라고?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이 OECD 7위야. 돈 버는 사람들 넷 중 하나는 자영업자라고!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가 망한다는 건 나라 경제가 망한다는 거야!
노동계: 최저임금 주기가 버거우면 사람을 쓰질 말아야지!
경영계: 백만 원만 받아도 나와서 일하겠다는 사람 널렸어! 영세업자들은 노동력이 필요하고!
노동계: 백만 원 받아서 어떻게 생계를 꾸려?
경영계: 백만 원 받으려는 사람이 다 가장인 줄 아나? 한 사람이 나가서 돈 벌고 있으면 다른 한 사람은 백만 원만 보태도 큰 도움이지!
노동계: 그건 일용직이나, 풀타임 안 뛰는 시간제 계약직 얘기겠지.
경영계: 자기가 가장이면 최저임금보단 더 받는 풀타임 일자리에 가라고 해!
노동계: 그런 일자리가 퍽이나 많겠다!
경영계: 그런 일자리를 늘리려고 분배보다 경제성장을 먼저 하자는 거 아냐!
어피티: 잠깐, 그럼 우리나라에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데는 두 분 다 동의하시는 거죠?
노동계&경영계: 그건 사실이지. 다 저쪽 탓이지만! (서로를 가리키며)
어피티: 대체 어쩌다 ‘오래 일하고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인 일자리’가 이렇게 많아진 걸까요?
제조업 vs 서비스업
그때그때 달라요
여기서 잠깐.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해볼게요. 서비스업은 경기가 좋을 때 잘 나가고, 제조업은 비교적 경기를 덜 타 단단하고 보수적입니다. 또, 재고를 팔면 딱 판 만큼의 마진을 보는 제조업과 달리 서비스업은 변동에 취약하지만 아이디어에 따라 더 많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요.
그러니 어떤 산업이 더 많이 발전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사실 그때 그때 다르다고 이해할 수 밖엔 없어요. 요새는 글로벌 경기가 안좋아, 다시 제조업이 각광받고 있죠. 한편, 근로 여건의 관점에서도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서비스업이 한창 생겨나던 시기, 나라 경제가 영 좋지 않던 때였던 것도 한 몫 했죠.
🎬Scene #2.
업의 형태에 따른
노동자들의 입장차이
제조업 종사자: 요새 살 만 하냐?
서비스업 종사자: 경기가 안 좋아져서 힘들어. 당장 사람들이 외출을 잘 안 해.
제조업 종사자: 하긴, 우린 그런 영향은 좀 덜 받지… 꼭 필요한 물건이란 게 있으니.
서비스업 종사자: 나는 제조업 종사자들 대단하다고 생각해. 어떻게 한 동네에서 그렇게 오래 살아?
제조업 종사자: 당신은 이직이 자유롭지만 우린 공장에 매인 몸이잖아. 익힌 기술은 이 업종에서만 쓸 수 있으니까 공장을 못 떠나…
서비스업 종사자: 대신 장기간 근무라 안정적이긴 하잖아?
제조업 종사자: 뭐, 그건 그래. 그러니까 노조도 있고.
서비스업 종사자: 우린 이직도 잦고 사람이 바뀌니까 노조를 만들기가 너무 힘들다.
다시 소환해봅니다
IMF 외환위기
우리나라에서 ‘낙후된’ 서비스직 비중이 높아지기 시작한 건 IMF 외환위기 이후입니다. 과도하게 높은 자영업자 비중도 IMF 외환위기가 큰 원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시 대량해고와 많은 부도기업 발생으로 실직자가 어마어마하게 늘었고, 그 실직자들을 받아줄 기업은 없었기 때문에 다들 영세 자영업을 시작하거나 단순 계약직, 일용직, 임시 서비스직으로 취업을 할 수밖에 없었죠.
🎬Scene #3.
나쁜 일자리가
진짜 나쁜 이유
노동자A: 한 번 계약직으로 취직을 했더니 다시 정규직이 되기가…
노동자B: 계속 계약직 공고만 나더라고. 하긴, 한 번 계약직 맛을 알았는데 회사가 뭐하러 정규직을 뽑냐. 그런데 우리 월급은 왜 최저임금으로 책정이 된 거야?
노동자A: 원래 정규직 시절에도 기본급은 얼마 안 됐어. 이래저래 받는 특별수당이 많았지. 월급의 60% 정도는 각종 수당이었어. 수당은 줬다 안 줬다 해도 되니까 회사에서 월급 올려준다고 할 때 맨날 기본급은 놔두고 수당으로 처리했거든.
노동자B: 야간수당, 잔업수당, 근속수당, 상여금 같은 거?
노동자B: 하여튼 줘도 되고 안 줘도 되면 안 준다니까. 처음부터 특별수당이란 게 우리나라가 고도성장할 때 자꾸 일거리가 늘어나니까 임시로 생긴 꼼수라, 그게 될까.
이런 경우 원래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는, 회사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노동자를 챙겨달라고 하겠지만 서비스직 일자리는 노동조합이 생겨나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사람이 계속 들락날락하기 때문에 조직 유지가 어렵거든요. 그러다 보니 정규직 위주로 노조가 구성돼있던 기존 제조업 일자리와 격차가 점점 벌어집니다.
🎬Scene #4.
노동조합과
경영계의 입장
노조: 비정규직까지 신경 쓰라고요?
어피티: 일단 사람들이 그런 게 노조의 역할 아닌가 기대를 많이 하고요…
노조: 그렇지만, 우리는 조합원이 낸 조합비로 경영하는 자발적 이익집단이에요. 기본적으로 조합원을 위해 일하는 조직이랍니다. 가입도 안 하고 조합비도 안 낸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어요. 만약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면 조합비 낸 사람들은 뭐가 되나요. 그럼 아무도 굳이 가입 안 하고 싶어 할 걸요?
어피티: 듣고 보니 맞긴 한데. 그러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나요?
노조: 그분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결성하면 됩니다. 그러면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죠.
어피티: 하지만 위에서 쭉 읽은 내용으로는 그게 구조적으로 어렵고…
노조: 저희도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어요. 게다가 이제 시장이 너무 커져서, 정부 정책의 지원과 사회 전체의 방향전환이 없으면 아무 것도 혼자 하긴 어려워요. 그건 저희뿐 아니라 경영계도 마찬가지일걸요.
경영계: 노조가 없으니 우리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요청도 파악하기 힘들고, 개개인이랑 면담해서 뭘 결정해봤자 다른 사람들이 거부하면 끝이고, 또 그 사람 퇴사하면 원점에서 시작이고…
어피티: 그럼 경영계도 노조를 원하시는 거로군요?
경영계: 네….? 갑자기 잘 안 들리는 것 같은데….?
그렇게 여러가지 이유로 새로 생겨나는 서비스업 일자리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물론 좋은 서비스직 일자리도 만들 수 있죠. 하지만 IMF 이후 해고된 사람들이 급하게 나와 시작한 영세 자영업이 많아서 생산성이 좋지 않아요. 더 주고 싶어도 못 주는 회사가 많다는 뜻이에요.
그럼 기본급, 수당과 같은 낡은 임금체계와 서비스직 노동자의 가입이 어려운 현재 노조 형태는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데요. 이 문제는 회사의 생존과 노동자의 월급이 직접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아주 첨예하고 복잡한 이슈이기 때문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습니다. 꼬여버린 매듭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정하는 것부터가 너무 어려운 일이죠.
너무 복잡하게
꼬여버린 매듭
🎬Scene #5.
지금은 힘드니까
나중에 합시다
노동계&경영계: 당장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 그런 거 고민할 여유가 없다!
어피티: 정부는요?
노동계&경영계: 어디 시장에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을!
정부: 틀린 말은 아니라서… 정부가 만능은 아니에요. 정부가 손대서 고쳐 놓는 건 결국 한계가 있죠.
어피티: 그럼 역시 노사 양측이 미래를 향한…
노동계&경영계: 아! 당장 너무 힘들다!
어피티: …
이런 현실이기도 해요. 언제나 ‘말은 쉬운’ 법이니까요. 그 와중에서도 자발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라이더 유니온’ 같은 곳이죠. 지난 7월 배달노동자들이 노조결성 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했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복리후생·수당 차별을 없애기 위한 차별금지법도 논의되고 있죠.
내 입장을 비롯한 여럿의 입장이 얽힌 복잡한 이슈 앞에서,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껴지면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 2회에 걸쳐 이 내용을 다룬 이유는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상황에 대처하려면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입체적으로 이해해야 해결이 좀 더 수월해지니까요.
지금 머니레터를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나중에 직원을 고용하거나, 일자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위치에 가게 되실 텐데요. 이 내용을 잘 알고 있다면 상충하는 입장에 대한 좀 더 좋은 대안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입장’ 뒤에 있는 개인, 한 사람에 대한 배려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될 거예요. 라떼극장은 다음 주에 새로운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