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처음부터 1등이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1997년 10월까지는 넷스케이프가 1등이었어요. 당시 넷스케이프의 시장 점유율은 72%. 시장 점유율 18%를 차지하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와는 상당한 격차가 있었습니다.
그랬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1998년 2월에는 시장 점유율 69%까지 올라서게 됩니다. 말이 안 되는 수준으로 빠르게 업계 1위에 올라선 건데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팔기’ 전략이 통했기 때문입니다. 더 설명하기 전에 ‘끼워팔기’가 어떤 의미인지 짚고 넘어갈게요.
끼워팔기가
뭐길래
🎬 Scene #2.
어피티: 사무실에 놓을 정수기를 좀 사고 싶은데요.
끼워파는 회사: 네 손님, 정수기 한 대와 자전거 한 대 합쳐서 300만 원입니다.
어피티: 네? 자전거는 안 살 건데요?
끼워파는 회사: 손님, 죄송합니다. 저희 회사 정수기는 꼭 자전거도 같이 사야 하거든요.
어피티: 아뇨. 그냥 정수기만 주세요. 정수기 단품은 얼마예요?
끼워파는 회사: 그렇게는 안 팔아요, 손님🙏
끼워팔기는 이렇게 ‘어떤 물건을 살 때, 다른 물건도 강제로 사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수기는 다른 회사에서도 파니까, 끼워팔기를 하지 않는 다른 회사에서 사면 될 것 같은데요. 만약 전 세계에서 정수기를 파는 회사가 한곳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 Scene #3.
끼워파는 회사: 정수기 단품은 안 팔아요. 사기 싫으면 사지 마세요.
어피티: 대체 정수기랑 자전거가 무슨 상관인데 이러세요?
끼워파는 회사: 자전거 열심히 타시면 땀도 많이 흘리고 목마르잖아요.
어피티: 그렇죠.
끼워파는 회사: 그럼 정수기가 필요하겠죠. 이게 다 큰 그림이라고요. 서로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어피티: …
이렇게 독점 기업이 끼워팔기를 시작하면, 시장 전체가 후유증을 감내해야 합니다. 경쟁 기업의 매출은 줄어들고, 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참여하기 어려워집니다. 소비자에게는 더 저렴하거나 좋은 품질의 서비스를 찾을 기회가 줄어들고, 시장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어요. 위의 예시에서는 자전거 시장이 피해를 볼 거예요.
브라우저 끼워팔기로
단숨에 업계 1등
90년대 중후반, 넷스케이프보다 늦게 웹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든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팔기’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렸습니다. 자사 운영체제(OS)인 윈도우를 팔면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서 판매한 거예요. 이제 막 컴퓨터가 대중에 보급되던 시점에, 소비자들은 윈도우라는 운영체제를 깔기 위해 인터넷 익스플로러라는 기본 웹브라우저를 함께 설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넷스케이프는 소비자가 직접 다운받아서 설치해야 했습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비해 이용자 접근성이 훨씬 떨어지죠. 넷스케이프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참패를 당하며 회사 운영까지 어려워졌습니다. 1998년에는 다른 PC통신업체에 42억 달러로 매각되고 말았어요.
반독점법의
칼을 뽑다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웹브라우저 업계 1위를 탈환하던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미국 법무부의 눈에 난 상황이었습니다. 시장 공정성을 해치는 짓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거죠. 결국 1998년, 미국 법무부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제재의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팔기’를 이용해 경쟁기업이었던 넷스케이프를 시장에서 퇴출한 사건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죠.
🎬 Scene #4.
미국 법무부: 저기요 MS씨, 브라우저 끼워파는 거, 그거 불법이에요!
MS: 아니 윈도우 OS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딱이라니까요.
미국 법무부: …윈도우에서 크롬 써도 잘 돌아가는데요?
2000년 4월, 미국 법무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끼워팔기가 독점적 행위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회사 분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의 기업이 시장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구도에서 벗어나도록 두 개의 회사로 나누라고 한 거예요. 그로부터 1년 뒤, 회사 분할 명령은 연방항소법원 1심에서 기각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서 회사 분할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이 소송전을 계기로 주가는 반 토막이 나게 됩니다. 판결 이후,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더는 윈도우에 끼워 팔 수 없게 됐거든요.
예전에는 윈도우만 팔면 인터넷 익스플로러 매출이 자동으로 따라왔는데, 이제는 윈도우 매출만 들어오게 생겼습니다. 어떤 웹브라우저를 쓸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쓸지 말지는 고객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됐어요. 그렇게 15년쯤 지나자 우리나라에서도 크롬이 훨씬 높은 점유율을 갖게 됐습니다.
법무부의
두 번째 심판
크롬은 구글의 웹 브라우저입니다. 빠른 속도, 구글 서비스 연동, PC와 모바일 동기화, 확장 기능 등의 차별성을 가지며 출시 4년 만에 1위 웹브라우저가 됐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2020년 10월 기준으로 전 세계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은 크롬이 66.1%로 단연 1위입니다.
그런데 미국 법무부가
이번에는 구글을 반독점 소송 심판대에 올렸습니다. 미국 정부가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제시한 반독점 소송 이후 가장 큰 건이라고 평가되고 있어요.
법무부는 구글이 자사 서비스를 스마트폰에 끼워팔았다는 걸 문제로 삼고 있습니다. 구글이 스마트폰 제조사 또는 통신사와 계약해서 구글이 만든 앱(크롬, 지메일, 구글 지도, 구글 검색 등)을 여러 브랜드의 스마트폰에 미리 탑재(선탑재)했다는 거예요. 스마트폰 제조사와는 수익 배분 계약을 체결해, 구글이 아닌 다른 기업의 앱을 선탑재할 수 없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구글 OS인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에는 구글 앱이 선탑재됐을 뿐 아니라 삭제도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구글은 애플과도 계약해, 애플 기기의 검색엔진으로 구글의 서비스가 탑재되도록 했습니다. 그 대가로 구글이
110억 달러(약 12조 5천억 원)를 지불했다고 해요.
미국 법무부는 구글이 과거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끼워팔기 전략으로 구글 제국을 쌓아 올린다고 보고 있습니다. 불공정한 거래를 통해 다른 경쟁사의 시장 진입을 막고, 도태시킨 게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거죠.
알아야
보이는 것들
웹브라우저는 인터넷의 관문입니다. 이용자가 어떤 사이트에 방문하려면 웹브라우저 밖을 벗어날 수 없죠. 스마트폰에 깔린 앱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목적에 맞는 앱을 반드시 이용해야 하니까요. 스토어, 검색, 지도, 메일과 같은 필수 앱은 더 그렇고요.
이렇게 중요한 서비스지만, 소비자인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알게 모르게 제한돼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각 가정과 학교, 기관에 보급되는 윈도우 OS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기본으로 탑재돼있었어요. 스마트폰에는 구글 앱이 ‘마치 이것만 사용해야 할 것처럼’ 기본으로 깔린 데다 삭제도 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독점의 폐해를 숨 쉬듯이 겪고 살아온 셈입니다.
구글의 반독점 소송전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이 소송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반독점 소송 이후, 끼워팔기 전략을 내려놓고 웹브라우저 업계에서 내리막을 타게 된 마이크로소프트와 비슷한 결말로 이어질까요? 우리와도 긴밀히 연관된 이슈인 만큼 끝까지 지켜봐야겠습니다.
📚 <라떼극장>에 참고한 자료
정호열, 「마이크로소프트사 사건과 미국 독점금지정책의 향방」, (2001), 비교사법 8(2), 2001.12, 1099-1130, 한국비교사법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