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인
📌 경제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작품을 어피티가 소개한다? 네, 그렇습니다. <어피티 인생극장>은 드라마, 영화를 주제로 경제 이야기를 줄줄 떠드는 시리즈로 기획되었어요. 스포일러 없이 영화 추천도 받고 얼떨결에 경제상식도 얻어갈 수 있는 어피티 인생극장 시리즈,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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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화, <범죄도시3>(2023)
장르: 범죄, 액션
추천인: the 독자
the 독자의 별점: ⭐⭐⭐⭐
“총이라도 쏘면 어떡해요? (피해야지)”
<범죄도시> 시리즈는 3편까지 개봉됐습니다. 2017년 개봉한 1편은 장첸(윤계상 분)이 메인 빌런으로, 마석도 형사(마동석 분)가 서울 가리봉동 조선족 범죄 조직을 소탕하는 내용이죠.
2편, 3편도 비슷한 흐름입니다. 악인이 질 낮은 범죄를 벌이고, 마석도 형사가 무력으로 그 악인을 시원하게 때려잡는다는 단순한 서사가 반복돼요. 지겹다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게 바로 <범죄도시> 시리즈의 매력이거든요.
<범죄도시> 시리즈는 ‘마석도 유니버스’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히어로물이에요. 하지만 마석도 형사는 미국 아메리칸 코믹스, 특히 마블의 히어로처럼 쫄쫄이를 입거나 최첨단 하이테크놀러지 무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비교적 현실적인’ 캐릭터죠.
실화를 기반으로 그려진 범죄
범죄도시 시리즈의 기반이 되는 범죄도 실화 기반입니다. 이런 사례를 모티브로 사용했다고 해요.
- 1편: 2000년대 초반 중국 동북 지역에서 소탕된 중국 폭력 조직이 우리나라로 도망쳐 들어와 벌이던 패권 다툼
- 2편: 필리핀에서 우리나라 범죄자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상대로 저질렀던 연쇄 납치 및 살인사건
- 3편: 대만과 일본, 우리나라 폭력조직이 연계해 필로폰을 거래했던 사건
정인: 그래서 그런지… 히어로물인데 되게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느낌이에요. 3편은 우리나라 경찰이 일본 야쿠자를 상대하는 거긴 하지만…
the 독자: 사실 오리지널 미국 히어로물에서는 싸우는 배경이 전 지구, 우주가 돼버리니까요. 결이 조금 다르죠.
정인: 저는 마석도 형사를 보면서 미국이 일본을 경제적으로 완전히 무너뜨린 ‘그 사건’이 생각나더라고요?
영화도, 인생극장의 딴 얘기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1980년대, 미국이 일본을 바라보던 시선
미국인들의 ‘혐일 감정’이 위험수위까지 올라왔던 시절이 있습니다. 바로 1980년대예요. 당시 미국인들은 일본인들을 ‘경제동물’이라고 부르며 비하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굴지 못하고 품위 없이 돈만 생각하며 이해타산적이라는 비난이었어요.
그게 사실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일본의 존재감이 약하다면 미국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1980년대의 일본은 G2로서 미국의 독보적인 위상을 위협하던 국가였습니다. 미국은 일본에 국력을 따라 잡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죠.
한 번쯤 들어봤을 그 합의
the 독자: 미국이 일본을 경제적으로 무너뜨린 이야기 하려던 것 아니었어요?
정인: 맞아요. 일본이 잘 나가던 1980년대는 바로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예요. 체급이 비슷해야 굳이 에너지를 들여 무너뜨릴 계기가 생기니까요.
플라자 합의. 모두가 한 번쯤 들어봤지만,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는 바로 그 사건입니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G5 국가의 재무장관이 모여서 달러화 강세 시정에 합의한 거예요. 일본의 경우 미국 달러에 대해 엔화 가치를 40% 정도 평가절상했습니다.
사람들이 플라자 합의에 대해 잘 모르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이렇게만 써놓으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추측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일본에 너무나도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 합의를 도대체 일본이 왜 수락했는지 바로 납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에요.
미국은 왜, 일본은 또 왜?
the 독자: 정말 그래요!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정인: 우리나라 돈으로 예를 들자면, 환율이 1달러에 1,200원 했던 걸 강제로 1달러에 800원 이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예요.
the 독자: 그렇게 되면 일본 회사들의 수출 경쟁력이 갑자기 확 꺾이지 않나요?
정인: 그렇죠?
the 독자: 그런데 그걸 일본이 왜 합의를 해줬어요? …협박이라도 당한 걸까요?
1980년대 미국은 사회 전반적으로 굉장히 보수적인 분위기로 바뀌어요. 경제와 무역 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애국심 고취, 국산품 애용, 수출 증대와 수입 억제, 해외 원조 감소를 강조하게 됩니다.
미국이 보수적으로 바뀐 데는 심각한 무역수지 적자도 영향을 끼쳤어요. 수입만 많이 하고 수출을 잘 못해서 미국 기업에 적자가 쌓인 거죠.
한편, 미국의 금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높았습니다. 그래서 해외에서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를 많이 했고, 미국 달러는 점점 더 비싸졌습니다.
달러가 비싸지자 미국 기업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서 수출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실적이 안 나오니, 은행은 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 리스크를 반영해 금리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 높은 금리를 보고 다시 해외 자본이 미국으로 들어오고, 그만큼 달러는 비싸지는 무역적자 악순환의 늪이었죠.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전 세계 1위 국가가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이야기예요.
보호무역주의 풀고 잘 좀 해봅시다
지금도 그렇지만 미국은 세계 1, 2위를 다툴 만큼 굉장히 큰 시장이에요. 1980년대에도 미국이 폐쇄적인 보호주의로 돌아서게 되자 세계가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 1985년 플라자 호텔에 G5 국가가 모여, 미국의 급한 사정을 봐주고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분위기를 완화해보자고 합의한 거예요.
일본은 1달러에 240엔 정도였는데 회담 직후에는 화폐 가치가 1달러에 210엔 대로 높게 조정됐어요. 같은 금액의 달러로 살 수 있는 엔화가 줄었으니, 엔화의 가치가 높아진 거죠. 당시 1달러에 200엔 정도까지는 일본 기업들이 버텨줄 거라 생각했다고 해요.
the 독자: 그래서 일본 기업이 버텼나요?
정인: 플라자 합의 다음 해에는 1달러에 150엔대까지 엔화 가치가 올라가요. 일본 버블 들어보셨죠? 아주 심각한 버블이 찾아왔다가 꺼지면서 우리가 아는 일본의 저성장 경제가 찾아옵니다.
버블이 꺼지고 난 뒤
엔화가 비싸진 이후, 일본 기업들은 갖고 있던 현금이나 벌어들인 현금을 달러에 투자하는 대신, 자국의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게 돼요. 그러면서 증시와 부동산 시장이 급등해, 경제에 버블이 찾아오게 됩니다.
버블이 너무 커서 일본 기업들은 어떻게든 남는 돈을 써야만 했어요. 그러다 보니 과잉투자를 하게 됐고, 버블이 꺼진 이후에는 과하게 투자했던 것들이 모두 빚으로 남아 20년 넘게 허리띠를 심각하게 졸라매야 했던 거죠.
한국에는? 오히려 기회!
the 독자: 그 정도면 우리나라 경제도 영향을 받았을 것 같아요.
정인: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미국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고 있었는데 일본 상품에 비해 우리나라 상품 가격이 굉장히 저렴해졌거든요.
당시 우리나라 수출품들은 다 ‘가격에 비해 쓸만하니까~’ 팔리는 가성비 제품이어서, 가격 책정에 따라 해외 매출이 들쑥날쑥했습니다. 그런데 엔화가 비싸지며 우리나라 수출품들은 가격 경쟁력 덕분에 처음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보게 돼요.
여전히 체급 차이는 어마어마하지만, 영화적으로 특수한 세계관 안에서 일본 야쿠자와 대등하게 싸우는 마석도 형사 정도는 된 거죠.
우리는 피할 수 있을까?
일본은 엔화 가치 평가 절상이라는 총알을 피하지 못했어요.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거죠. 최근 우리나라는 계속해서 무역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반도체 경기 부진과 고유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갈등 악화라는 총알을 피할 수 있을까요?
<범죄도시> 시리즈를 감상할 수 있는 O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