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음으로 아파트에 많이 사는 나라, 스페인

글, 어예진

📌 필진 소개: 안녕하세요. 해담경제연구소 어예진 소장입니다. 저는 한국경제TV에서 기자와 앵커로 일했고요. 지금은 국내 경제, 그리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뉴스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탐구하는 연구자이자 방송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 주거 정책을 돌아보는 ‘청년 주거 세계여행’. 오늘은 정열의 상징 스페인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당장 나가!” 분노한 바르셀로나 시민


얼마 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시민 3천여 명이 관광객들에게 물총을 쏘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일이 있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시민들이 이토록 분노하는 걸까요?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바로 주택난 때문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는 16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바르셀로나에 방문한 관광객은 2600만 명에 이르며, 이들이 하룻밤을 묵기 위해 지출한 금액은 127억5천만 유로(한화 약 19조 원)에 달하지요.


바르셀로나는 이 많은 여행객을 수용하기 위해 1990년부터 2023년까지 시내 호텔을 4배 늘렸습니다. 주택 시장도 이러한 추세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집주인들이 장기 임대 매물을 거둬들이고, 보다 수익이 좋은 에어비앤비 같은 방식의 단기 임대로 전환했던 거죠.


기존에 살던 세입자들은 방을 비워야 했고 새로운 주거지를 찾아야 했지만, 매물이 줄어 집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임대료는 크게 치솟았죠. 지난 10년 동안 바르셀로나 임대료는 무려 68%, 집값은 38%가 올라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었습니다.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관광은 스페인에 경제적으로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지만, 시민들은 젠트리피케이션, 또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으로 인해 개인의 삶에는 해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도심의 특정 지역이나 장소의 용도가 바뀌는 등 변화에 따라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기존 거주자 또는 임차인들이 내몰리는 현상

*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주거 지역이 관광지화되는 현상


바르셀로나 시장은 시민들이 겪고 있는 주택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2028년 11월까지 단기 임대용으로 등록된 아파트의 허가를 취소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약 1만 가구의 아파트가 장기 임대 시장에 다시 추가될 것으로 예상돼요.


도둑을 내쫓지 못하는 나라


스페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존재는 관광객 말고도 또 있습니다. 바로 오쿠파(Okupas)입니다. ‘점거하다’는 뜻의 스페인어 ‘ocupar’에서 유래된 단어로,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몰래 집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길면 수개월 동안 집을 차지하곤 하는데요. 주택 부족 문제에 대한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돈을 받고 집을 다시 내어주는 식으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스페인에서는 빈집에 들어가 불법으로 점거했다고 해도, 점거한 지 48시간이 지나면 경찰이 와도 불법으로 집을 점거한 사람을 해당 주거지에서 쫓아낼 수 없습니다. 법원의 퇴거 명령이 있어야만 가능한데요. 이를 위해 법적 절차를 거치는 데에만 평균 18개월이 걸려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 됩니다.


그래서 스페인에는 오쿠파들을 내쫓아주는 업체들도 생겨났는데요. 전직 권투 선수, 무술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불끈불끈 아저씨들이 점거된 주택에 찾아가 ‘좋은 말’로 합의를 이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업체는 건당 3,500유로(한화 약 500만 원)의 수수료를 떼간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법적 절차가 너무나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 같은 방법이 더 보편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아파트 천국 스페인

바르셀로나 아파트. 출처: 구글맵


스페인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 형태는 바로 아파트입니다. 피소(Piso), 플랫(Flats)이라고도 부릅니다. 주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같은 인구가 집중된 대도시에 빼곡히 들어서 있죠.


스페인 국민의 65%는 아파트에 살고 있을 정도로 아파트는 가장 흔한 거주 방식이에요. 스페인에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많습니다. (대한민국이 74%로 1위)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고층 건물의 단지형 아파트가 아닌 대부분 6~8층 이하의 개별 건물입니다. 물론 지역에 따라 20~30층짜리 아파트도 있어요.  


스페인에서 아파트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해요. 물량이 부족해서도 있지만, 주인이 세입자를 골라 받기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월세를 얻으려면 집 주인에게 지원서를 넣어야 합니다. 이 지원서에는 학교, 전공, 통장 잔고 등을 증명하는 서류를 포함해야 하죠. 


직장인이라면 회사 재직증명서, 월급명세서 등이 필요하고, 면접을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집의 경쟁이 치열하다면 나를 어필할 만한 모든 내역을 제출해야 하지요. 일부 집주인들은 스페인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 임대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외국인들은 렌트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 셰어하우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올해 상반기 기준 바르셀로나 중심부에서 방 1개짜리 월세를 구하기 위해서는 평균 1,270유로(한화 약 190만 원), 도시 외곽이라면 평균 980유로(146만 원)가 필요합니다. 참고로 바르셀로나 시민의 평균 월급은 세후 2,000유로(300만 원) 정도 됩니다.


철저한 계획도시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전경. 출처: Flickr


바르셀로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깜짝 놀랄 만큼 반듯하게 블록화된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900개 정도의 블록이 규칙적으로 놓여 있습니다. 이 지역을 우리는 Eixample(에샴플레) 지구라고 부릅니다. 

19세기 후반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하면서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중세 도시의 성벽을 허물고 확장하기로 합니다. 대규모 주택 단지를 짓기 위해 고민했고, 당시 일데폰스 세르다(Ildefons Cerda)의 설계가 채택되면서 네 면이 건물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는 정원 등 공용 공간으로 이루어진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2017년 전후 바르셀로나는 공공 공간을 차량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바꾸고 대기 오염을 줄이겠다는 계획에 따라 ‘슈퍼블록’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작은 블록들을 묶어 크게 하나의 슈퍼블록으로 만들고 기존에 있던 블록 사이의 도로를 막아 축구장, 놀이터, 공원 등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구밀도가 더 높아지고 대기오염 개선에도 효과가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죠.

스페인의 주택 유형

좌) 스페인 빌라. 출처: www.booking.com

우) 스페인의 타운하우스. 출처: Spain-Real.Estate

아파트로 가득 차 있는 스페인 도심을 지나 교외 지역으로 가면 타운하우스들을 볼 수 있는데요. 타운하우스는 정원과 수영장 등을 공유하는 2층짜리 주택인데 발코니, 테라스 정도만 있고 외부에 정원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페인에서 빌라는 단독 주택을 의미합니다. 빌라, 샬렛 등이 대형 단독 주택을 이르는 말인데요. 일반적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잘 살지 않는 주택 종류입니다. 지역 귀족, 유지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면 스페인 도시 주변에서는 큰 집을 찾기 어렵습니다. 주로 해안가에 외국인이나 부유한 스페인 사람들이 세컨드 하우스로 주로 사용합니다.


이밖에도 지방에 있는 전통적인 주택 형식의 전원주택과 포도밭이나 농장 근처에 있는 농가 주택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지방에 사람들이 떠나면서 농가주택을 개조해 숙박을 제공하고 시골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패키지도 관광 상품으로 나오곤 합니다.

좌) 스페인 전원주택. 출처: Rustical Travel

우) 스페인 농가 주택. 출처: CHRIS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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