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에서도 ‘Made in Korea’ 가능할까

글, 서영민 



대만이 우리나라를 뛰어넘은 것

2026년 1월, 코스피는 뜨거웠습니다. 잠시 주춤하긴 했으나 그 열기는 2월이 된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현대·기아차의 주가가 무서울 정도로 올랐습니다. 시가총액을 더해봤어요. 대략 1400조 원 수준이네요. 이젠 우리나라 한 해 GDP의 60%에 육박합니다. 즐겁긴 한데, 좀 차분해지는 얘기를 해볼게요. 대만을 한번 보시죠.


우선 대만을 대표하는 기업 TSMC의 시총은 44조 TWD(대만 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2000조 원입니다. 우리 빅3를 다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역전된 지 오래죠. 또, 1인당 GDP도 역전되긴 마찬가지예요. 2025년 기준, 대만 전망은 3만8748달러, 우리나라는 3만6107달러입니다.


역전당한 게 또 있습니다. 전력에서 태양광과 풍력이 차지하는 비율이에요. 우리가 2022년부터 멈춰 선 사이 대만이 역전했어요. 이후 격차가 점점 벌어져요. 재생에너지 보고서, 마지막 이야기는 바로 이 격차를 응시해보겠습니다.

한국과 대만의 태양광과 풍력 비율, EMBER


우리나라와 대만은 닮은 점이 많아요. 반도체 중심의 수출 경제, 아시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가 그렇죠. 에너지 부문에서도 공통점이 많습니다. 국토가 좁은 데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편이에요. 두 나라 모두 오랫동안 ‘재생에너지 열등반’이었죠.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우리나라는 태양광, 풍력 시장의 성장이 정체되었으나, 대만은 꾸준히 나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뒤처진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어요. 정치·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지난 연재에서 살펴봤듯 ‘전력망’의 부족 문제, 그리고 ‘수도권 에너지 집중 문제’가 있죠.


글로벌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 집계에 따르면, EU는 재생에너지 비중 50%를 향해가고, OECD 평균과 중국도 30%를 넘어섰어요. 재생에너지를 핍박하는 트럼프 정부의 미국도, 늘 우리보다 뒤처졌던 일본도 이미 20%를 상회합니다. 모든 재생에너지를 쥐어짜야 겨우 10% 턱걸이 중인 우리나라는 비교조차 어렵죠.

전 세계 재생에너지 비중, EMBER


대만 재생에너지 추월의 실체

대만 현지로 가서 확인해봤어요. 대만 재생에너지 확대의 중심에는 TSMC의 직접 PPA(Power Purchase Agreement : 전력구매계약)가 있었어요.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확보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예요. 사업장 내 설비를 갖추는 자가발전, 기존 요금에 웃돈을 얹는 녹색 프리미엄, 그리고 발전사와 직접 장기 계약을 맺는 PPA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PPA를 가장 높게 평가해요. 기업의 투자를 통해 새로운 발전소가 건설되니 ‘추가성(Additionality)’이 크기 때문이죠. TSMC의 PPA는 세계 최대 규모로, 소형 원전 1기(약 100만 가구분)에 육박하는 920MW의 전력을 공급해요.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타이중 현장의 부두에서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80m 높이의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었어요. 바다 해저면에 설치되어 풍력 타워와 터빈을 지탱해요. 20년 이상 거친 파도를 견뎌야 해서 내구성과 정밀함이 필수인데, 놀랍게도 ‘Made in Korea’였습니다.

타이중 해상풍력 단지 건설 현장 © KBS <시사기획 창> 


경남 통영의 중소조선사 HSG성동조선이 제작했는데, 그 스토리가 드라마예요. 이 회사는 2010년대 조선 불황으로 법정관리까지 갔고, 직원은 200명으로 줄었었죠. 그런데 이 하부 구조물이 기업을 살렸어요. 2024년 매출의 70%가 이 한 프로젝트에서 나왔어요. 고용은 3,000명으로 급격히 늘었습니다. 이국땅의 재생에너지 사업이 머나먼 우리나라 지방의 조선사를 살려낸 겁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활약은 이뿐만이 아니에요. 하부 구조물 위로 솟은 타워는 세계 1위 CS윈드가, 발전기와 송전망을 잇는 혈관인 해상 케이블은 아시아 1위 LS전선이 공급했어요. 건설 때 운반을 담당하는 풍력 전용 바지선과 해상 설치선은 현대가 담당했고요. 핵심 인프라 곳곳에 이른바 ‘코리안 드림팀’의 기술력이 녹아 있었죠. 


2026년 2월 현재, 대만의 바다에서는 한국이 만든 인프라 위로 TSMC의 반도체를 생산할 깨끗한 전기가 이미 흐르기 시작했어요. 대만의 재생에너지 전환 의지와 우리나라의 제조 역량이 만나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우리나라에게 열린 기회의 문 

이제 대만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가 짐작이 가시나요? 우리나라 재생에너지의 동력이 주춤했던 지난 몇 년, 대만은 우리나라 기업들과 손잡고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국가의 의지도 확고하지만, TSMC라는 기업의 결단이 결정적이었죠. PPA 전력은 일반 전기보다 비싸지만, TSMC는 추가 계약을 서두르고 있었어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아직 국내에서 이 정도 규모의 PPA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과 비교되죠.


대만의 해상 풍력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산업의 가능성을 증명합니다. 터빈과 블레이드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기업 없이는 프로젝트가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풍력뿐 아니라 태양광 패널(한화솔루션-미국 가정용 시장 1위), 변압기(HD현대·효성·LS 등) 등에서 국내 기업은 이미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섰어요. 제대로 된 정책과 국내 시장의 뒷받침만 있다면, 차세대 성장 동력 잠재력이 충분해요.


특히, 지정학이 우리를 돕고 있어요. 대만을 보면 알 수 있어요. 현재 재생에너지 인프라 시장은 중국 기업이 장악한 상태거든요. 그런데 대만은 지리적으로 더 가깝고 비용 측면에서 훨씬 저렴한 중국산을 배제하고 한국산을 써요. 지정학적 리스크와 제조업 종속을 우려하기 때문이에요. 바로 이런 ‘중국이 아닌 대안’을 찾는 국제사회의 흐름이 우리에겐 기회의 문입니다.


천재일우의 상황인데, 공급망의 대부분을 보유하고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은 정말 아쉽습니다. 가격 경쟁력과 수지타산의 문제로 국내 생산을 주저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기까지 하죠. 도전해 볼만한 상황인데,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당위 측면에서도 그래요. 재생에너지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에요. RE100이냐 CF100이냐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필요도 없어요. 적극적으로 에너지 전환을 실천해야 할 시점이에요. 당연히 원전의 자리도 있을 겁니다. 다만, 원자력의 사회-정치적 수용성에 한계가 너무도 명확해요. 하나를 짓는데도 너무 오랜 시간이 드니까요. 에너지 전환을 이끌기는 어려워요. 주인공 자리는 재생에너지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도체, IT산업 그리고 에너지 전환까지 

마지막으로, 원전 산업이 성장해 온 역사를 되짚고 싶어요. 원전이 주연이 될 수는 없지만,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는 던져 주거든요. 과학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계적 원전 강국이 됐는지를 살피면, 국가적 목표를 산업의 현실로 바꿔낸 전략의 힘이 보입니다.


우리는 원전을 수입할 때 공동설계와 기술 전수를 약속받아 원천기술을 흡수했어요. 한전과 원자력연구원(KAERI)은 물론 민간 기업들까지 참여했죠. 그렇게 공급망 모든 과정을 국산화했어요. 또, 자체 표준형 원전을 개발한 뒤, 한 부지에 여러 기를 반복적으로 지었죠. 숙련된 인력과 장비가 다음 현장에 바로 투입되면서 ‘학습 효과’를 극대화했어요. 국가는 거대 자본을 지원했죠.


세계적인 ‘원가 경쟁력’과 ‘빠른 건설’은 이렇게 탄생했어요. 초기에 거대 자본이 필요한 전략 산업은 진입장벽이 높아 개발도상국에 맞지 않다는 통념이 지배적이었지만, 우리는 달랐어요.


반도체도, IT 산업도 다르지 않았어요. 모두가 비웃을 때, 1980년대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했어요. 서울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공공기관이 함께 했죠.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삼성과 현대, LG 등 주요 대기업이 도전했어요. 2000년대 IT 붐 역시, 정부 주도의 거대한 인프라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대한민국이 반도체 산업에 ‘메모리 철옹성’을 구축한 것도, 유럽과 일본 등은 미국 빅테크에 다 뺏긴 IT시장을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국내 기업이 지키고 있는 것도 다 우연이 아니에요. 부족하긴 해도, AI 분야에서 우리가 미·중 다음인 건 바로 이 전략의 힘입니다.


지금 에너지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한국식 성장 전략이에요. 이미 탄탄한 기반까지 갖추었는데 망설일 이유가 없어요. 한국에너지공과대학의 김승완 교수는 이렇게 말했죠.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방향으로의 성장이 착하다고 보는 것 자체가 좀 잘못됐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똑똑한 겁니다. 똑똑한 성장을 하려면 그 길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착하다, 나쁘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진짜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한 방향이 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2026년이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전기가 되길 바라며, 이번 재생에너지 보고서를 마칩니다.

📌 필진 소개: 셋째 아이 육아를 위해 잠시 휴직 중인 KBS 기자 서영민입니다. 기재부, 금융위, 한국은행 등을 출입했고 산업부 팀장을 지내고, 최근까지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산업과 사람, 그 사이의 흐름을 기록했어요. 보고 듣고 읽어 알게 된 세상 풍경을 정리해 글로 전하는 일을 즐긴답니다.《거대한 충격 이후의 세계(2023)》와 《삼성전자 시그널(2025)》을 썼습니다. 다큐 ‘전환과 성장 : 수도권 에너지독식체제의 위기’로 제1회 기후·에너지·환경 보도상을 수상했어요. 성장의 한계, 불균형, 인구소멸, 기후위기 같은 지속 불가능성에 답을 찾고 싶습니다. 저는 그 길의 이름을 ‘지속가능성’이라 부르고 있어요.

💌 지금까지 ‘재생에너지 보고서’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연재는 어피티 홈페이지에서 모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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