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BBC 홈페이지
작년 8월 요하네스버그의 버려진 오피스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어린이를 포함해 70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곳 역시 폭력조직이 불법 점거해 탄자니아, 말라위 등에서 온 이민자들을 받아 살도록 한 곳이었죠. 전기 대신 사용했던 양초가 화재의 원인으로 알려졌어요.
이런 불법 거주지는 공무원, 경찰 등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쓰레기 더미를 가득 쌓거나 쇠사슬로 입구를 막고 조직적으로 문 앞을 지키는 곳이 많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온 가난한 이민자를 비롯해 사정이 어려운 청년들은 이런 불법 거주지의 화장실, 영안실 등을 집으로 꾸며 살고 있습니다.
불법 침입자를 함부로 내쫓지 못하는 법
이처럼 사람들이 불법으로 점거해 거주하는 대형 건물과 개인 주택이 요하네스버그 주변에만 대략 600채가 넘는데요. 시내를 벗어나면 그 숫자가 더 늘어난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다음엔 이런 생각이 드실 수 있어요. ‘집주인이 왜 불법 거주자들을 쫓아내지 않지? 정부가 폭력조직을 몰아내고 공공주택으로 리모델링 하면 되지 않나? 사람들이 전기와 수도를 제대로 공급받으며 살 수 있게 해주면 참 좋을 텐데…’ 하고 말이죠. 그러나 그게 법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PIE라는 아주 기가 막힌 법 때문인데요. 우리 말로 하면 ‘불법퇴거 방지법’입니다. 1998년에 만들어진 법인데, 불법 점유자일지라도 법원의 명령 없이는 집에서 퇴거 시키거나 집을 철거할 수 없다는 내용이에요.
내쫓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집 주인이 불법 점유자가 거주할 대체 숙소 또는 토지를 마련해 줘야 해요. 예를 들어 폐공장에 무단으로 200명이 들어가 살고 있다면, 200명이 살 곳을 마련해 줘야 모두 내보내고 건물을 팔거나 리모델링을 할 수 있는 거죠.
남아공은 왜 소유자가 아닌 점유자의 권리를 이토록 옹호하게 됐을까요? 처음의 명분은 노동자들의 근로 의지를 위한다는 거였어요. 거주지 또는 토지에 대한 안정성이 없으면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논리였죠. 문제는 이 법 때문에 도시 개발도 안 되고 주택난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거예요.
지어도 지어도 부족한 주택
1994년 이후 남아공 정부는 ‘Breaking New Ground’라고 불리는 주택 재건 및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2014년까지 불법 주택을 근절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 바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현재까지 약 500만 개의 주택을 공급했습니다. 무료 또는 아주 낮은 가격에 말이죠.
대표적인 예가 오피스 빌딩을 개조해 저렴하게 세를 놓는 것이에요. 오랫동안 비어있는 오피스 건물을 리노베이션해서 방 한 개 혹은 두 개짜리 아파트로 바꾸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멀끔한 아파트는 월세가 약 3천 랜드, 우리 돈으로 대략 22만 원 정도 합니다. 보증금은 보통 두 달 치를 내는데, 입주 후 첫 달은 공짜인 곳도 있어요. 젊은이들은 기존에 살던 도시 외곽에서 통근하면 교통비가 꽤 많이 들기 때문에 도심에 거주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공은 2023년을 기준으로 여전히 240만 가구 이상이 주택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 가운데 140만 가구는 판잣집 같은 불법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어요. 이마저도 실제보다 적게 집계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이렇게 주택이 부족한 이유 중 하나는 인구의 도시 집중화 때문입니다. 현재 남아공 인구의 62%가 도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도시에 와야 하기 때문이죠. (참고로 남아공의 공식 실업률은 32%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24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60%가 넘습니다.)
양극화의 끝판왕, 남아공
지금까지 한 얘기만 보면 ‘남아공은 정말 못 사는 사람 천국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이는 절반의 진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요. 남아공 인구 가운데 80%를 차지하는 흑인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빈곤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백인 소득의 6분의 1밖에 벌지 못 하니까요. 그렇다면 나머지 20%의 백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GDP 기준 1위(2024년 전망치)에 해당하는 가장 잘사는 나라입니다. 이건 잘사는 사람은 매우 잘 살고 있다는 얘긴데요. 남아공은 인구의 10%가 국가 전체 자산의 71%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늘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로 꼽혀요.
남아공의 주택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서 다룬 무허가 주택이 있고, 전통 가옥도 여전히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택 형태 중 하나 입니다. 오두막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요. 주로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흙과 풀, 나무, 돌 등 천연 재료를 이용해 짓고 거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