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과의 전쟁 3부 – 장기화에 대한 두려움

글, 오건영


📌 필진 소개: 신한은행 WM추진부 팀장 오건영입니다. 신한금융지주 디지털전략팀과 신한은행 IPS 그룹 등을 두루 거치며 글로벌 매크로마켓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과 함께 매크로 투자 전략 수립, 대외 기관·고객 컨설팅, 강의 등의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삼프로TV」, 「김미경TV」, 「스터디언」, KBS라디오, MBC 등 다양한 경제 미디어에 출연해 친절한 경제 전문가로 대중들과 소통해 왔어요. 저서로는 『부의 시나리오』, 『부의 대이동』 『인플레이션에서 살아남기』 등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조금씩 승기를 잡아가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관해 이야기 나눠볼게요. 22년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9.1%로 발표되면서 고점을 형성했습니다. 이후 빠른 속도로 안정되면서 23년 6월 3.0%로 내려왔죠. 이 당시 분위기가 상당히 고무적이었습니다. 이 속도면 23년 말이면 연준이 목표로 하는 2.0%까지 내려오는 것 아니냐 하는 얘기들이 오갔죠. 


그렇지만 이후 물가가 다시 튀어 오르면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3% 언저리를 1년간 횡보했습니다. 이후에도 안정세를 이어가긴 했지만, 3.0%에서 2.0%대까진 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난했어요. 2024년 7월 지수가 2.9%로 발표되며 비로소 목표치에 한 발 다가서게 되었죠.


오늘은 인플레이션이 이제 진정세를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희망 섞인 기대와는 반대되는,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장기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기대인플레이션이라는 것도 문제라고요?


연준 파월 의장은 22년 8월 잭슨홀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두 마리의 용’에 대해 언급했죠. 혹시 연준 볼커 전 의장에 관한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볼커는 70년대 장기 인플레이션을 제압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죠. 연준의 파월 현 의장은 볼커의 말을 인용하면서 볼커가 당시 두 마리의 용과 싸웠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이고요, 다른 하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중의 기대, 즉 기대인플레이션이라는 용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제압하더라도 인플레이션 기대, 즉 물가가 오른다는 기대가 남아있다면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거예요.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다는 말씀을 드렸었죠. 일본 역시 비슷한데요, 디플레이션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제품에 대한 수요를 줄이면서 제품의 가격 하락을 더욱 부추겼던, 즉 디플레이션을 심화시켰던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이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이죠. 과거에 인플레이션을 전혀 겪어보지 못했던 사람과 과거에 이미 인플레이션으로 힘겨운 시기를 겪어본 사람 사이에는 시각과 태도에 분명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인플레이션을 처음 겪어보는 사람들은 물가 상승으로 인한 고통 및 지속 가능성을 보다 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볼커는 인플레이션 그 자체의 제압도 중요하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이라는 용 역시 함께 제압해야 씨를 말릴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파월 의장은 이런 볼커의 두 마리 용을 언급하면서 기대인플레이션의 안정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고요.


2024년 8월 기준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대로 돌아왔죠. 이제 인플레이션이 종료되는 것은 시간문제일까요? 지난 연재에서 여기서 방심했다가는 언제든 다시 지수가 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드렸어요. 이번에는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물가가 잡혀도 끝이 아니라고요?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연준이 목표로 하는 2.0%를 넘어선 것은 지난 2021년 3월입니다. 2024년 여름까지 거의 3년 반 동안 인플레이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죠. 홍길동이라는 사람이 감기에 걸렸는데 기침이 3년 반 동안 이어진 셈이에요. 분명 예사 감기는 아니죠. 이미 감기라기보다는 폐렴 등의 질환으로 옮겨갔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기간이 이렇게 오래되면 고질병이 될 수도 있겠죠. 고질병은 치료도 쉽지 않지만, 치료가 되더라도 조금만 무리하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이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인플레이션에 익숙해질 수 있죠. 인플레이션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가 강해지고, 이를 겪어본 만큼 두려움 역시 남아있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된다면 약간의 정책 실수 등에도 시장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죠. 예를 들어 물가가 안정된 듯 해서 예전처럼 금리를 인하했더니 기저에 강하게 남아있던 인플레이션 기대가 재차 점화되면서 물가가 다시 치솟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거예요. 미국의 70년대가 이러한 가정을 뒷받침하는 실제 예시입니다. 70년대 당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추이를 보시죠. 

1960년대 중반까지 물가와 경기의 대 안정기(Great Moderation)을 경험하면서 인플레이션은 사라졌다고 환호했던 시장이었습니다. 그러나 65년 들어 물가가 오름세를 보였고요 계속해서 밀어 올렸죠. 그리고 뒤늦게 이런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연준은 60년대 후반 강한 긴축을 단행합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치솟기만 하던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74년 말 정점을 기록한 이후 하락했죠.


인플레이션이 장기화 되면 어떻게 되나요? 


안정세를 보이는 물가를 보면서 경기에 포커스를 맞춘 당시 연준의 아서 번즈 의장은 금리 인하로 경기 부양에 나서게 되죠. 완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설익게 진행된 연준의 금리 인하는 77년 이후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를 다시 한번 하늘로 올려버립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재차 튀어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죠. 


어쩌면 1~2년에 끝낼 수 있었던 인플레이션을 10년 이상 끌어간 요인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며 작은 충격에도 언제든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수 있는 상황, 70년대를 보시면 이 상황이 느껴지실 겁니다. 


과거의 이런 경험 때문에 ‘현재 물가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고, 실물 경기가 둔화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빠른 금리 인하를 단행해야 한다’는 시장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연준은 신중을 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가가 연준의 물가 목표치를 상회한 지 3년이 훌쩍 넘은 현재,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인플레이션의 고착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인플레이션이 고질병이 됐다면 안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과거와같이 과감한 경기 부양을 했을 때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럼 물가와의 전쟁은 제대로 장기전으로 치달을 수 있죠. 


인플레이션이 없는 세상에서는 마음껏 돈을 풀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 실제로 팬데믹 기간에 돈을 마구 풀 수 있었죠. 그러다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으로 홍역을 치른 이후 다시 물가가 안정을 찾는다고 해서 과거처럼 돈을 풀 수 있을까요? 


과거와같은 무제한 돈 공급이 어렵다면, 돈의 가격인 금리는 어떻게 될까요?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됩니다. 돈 공급이 무한대일 때는 금리가 마이너스까지 내려갈 수도 있겠지만, 인플레 고착화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는 지금은 그렇게 공급할 수 없으니, 과거보다는 높은 금리를 만들어내지 않을까요?


인플레이션을 인식하는 대중들, 그리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가 남아있는 중앙은행. 이는 기존보다 높은 금리라는 결과로 금융 시장에 남게 될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무리해서 금리를 낮추려 하면 인플레이션과의 장기전에 돌입하게 될 위험도 생겨나겠죠.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고통, 자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네 가지 시나리오를 통해서 현재 거시경제 상황이 투자에 있어 시사하는 바를 설명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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