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위기, 그리고 그 후

글, 이광수

📌 코너 소개: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며 미래 경제 대국으로 꼽히는 인도. 하지만 인도 경제의 실체는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죠. 매주 수요일, 인도 전문가 이광수 교수님이 연재하는 <인도 경제 이야기>에서 그 막막함을 해결해 드릴게요.


1991년 이전의 인도는?

1991년, 인도는 외환위기를 맞았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에서 돈을 빌려야 했고, 그 대가로 경제 정책을 크게 바꿔야 했어요.

외환위기를 맞기 전까지 인도 경제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1985년 라지드 간디가 수상이 되고 난 뒤, ‘신경제정책’이라는 이름의 개방 경제를 시행하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고, 폐쇄적인 경제 체제와 정부 및 공공 부문의 비효율성, 정부의 강력한 통제는 계속됐어요. 정부 통제는 비효율적인 경제를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인도 경제는 탄력성을 잃어갔어요.

계속된 악재, 그리고 찾아온 외환위기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걸프전이 발발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유가가 치솟았고, 중동에 진출한 근로자들의 외화 송금이 중단되면서 인도의 외화보유고는 쪼그라들었어요.

비슷한 시기,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도 붕괴했습니다. 그나마 있었던 인도의 수출시장이 사라지자,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크게 늘어났어요. 이렇게 연쇄적인 악재로 인도는 IMF 외환위기를 맞게 된 것이죠.

1991년, 개방 경제를 시도합니다

라오(Narasimha Rao) 정부는 1991년 7월 신경제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정책을 한마디로 말하면, 인도 경제의 구조와 질서를 경쟁적 체제로 전환하고자 한 시도였어요. 세부적으로는 이런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 기업 신설 및 증설에서 사전 인허가제 대폭 폐지
  • 공공에서 안보 및 전략적 이유로 진입을 금지했던 산업 부문을 대폭 축소
  •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 대폭 축소
  • 외국인 투자를 우대하는 업종에는 외자 비율을 51%로 상향
  • 해외 거주 인도인에 대해서는 100% 투자 참가 허용
  • 각종 수입 규제 완화
  • 1991년 7월, 루피화의 평가절하 단행

전반적으로 규제를 푸는 방향, 외국 자본에 개방적인 정책이라는 게 느껴지죠?

그리고 저항이 이어졌습니다

인도 정부의 신경제정책은 국내 기업들의 엄청난 저항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과거 40여 년간 국가의 보호 안에서 성장한 기업들의 반발이 거셌어요.

외국계 기업은 제품 생산보다 판매에 집중할 뿐이며, 이들의 기술로 기존 기업들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기업들의 저항에 국민들은 동요했습니다. 그리고 이 분위기 속에서 인도는 선거를 마주하게 되죠.

인도는 선거가 잦은 국가입니다

1994년 말부터 1995년 초까지는 안드라 쁘라데시, 까르나따까, 마하라슈뜨라 등 큰 주에서 주 의회 선거가, 1996년에는 전국 총선거가 열렸어요.

인도는 압도적으로 농민층이 두껍고, 이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선거가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입니다. 정치인들은 정부의 경제 개혁을 지지할 것이냐, 저지할 것이냐의 선택지 속에서 후자를 택했습니다.

마하라슈뜨라 주에서는 1995년 주 의회 선거에서 인도국민당이 집권하면서 미국 ‘엔론(Enron)’사가 직접 투자한 발전소 건립 계약을 취소하기도 했어요.

🗞️ 뉴스 속 경제 이야기


<‘포스트 차이나’ 인도의 매력과 함정>

한경BUSINESS, 2018년 11월 22일


“인도 진출 실패 기업 중에는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을 들 수 있다. 엔론은 1992년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 주의 다브홀에 천연가스 발전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투자 규모가 30억 달러에 달해 당시 기준으로 인도 최대의 외국인 투자 프로젝트였다 … 시민들은 시위에 나섰고 인도 내에서 엔론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자 돌연 인도 정부는 엔론과의 계약을 재검토했고 결국 2001년 6월 계약을 파기하기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말 대규모 회계 부정이 밝혀지면서 엔론은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소비재 기업도 발을 붙이지 못했어요

엔론 외에도 인도에 진출했다가 말 그대로 ‘혼쭐’이 난 글로벌 기업들은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외국 소비재는 인도 시장에서 거의 발을 붙이지도 못했어요. 오랫동안 인도는 코카콜라가 없는 나라로 지내왔죠.

까르나따까 농민협회(Karnataka Farmers Association)는 1995년, 까르나따까 주에 새로 문을 연 치킨 패스트푸드점을 일주일 안에 문을 닫지 않으면 강제 폐쇄할 것이라고 지시한 후 실행에 옮기기도 했습니다. 피자헛, 맥도날드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혁 경제를 주도하던 인도국민회의는 안드라 쁘라데시와 까르나타까 등 주요 주 선거에서 패배했습니다.

신경제정책을 추진하던 라오 수상의 입지는 크게 나빠졌고, 당내 비판도 거세졌어요. 1996년 총선거를 앞두고 정책은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도 경제는 40년 동안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로 인해 실패했습니다. 그 후 IMF 외환위기로 경제 개혁을 추진했지만, 추진 후 10년 이상 국민의 저항과 기득권층의 반발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어요.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인도가 1991년부터 개방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200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제대로 추진됐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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