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지웅


최근 중동 전쟁 영향으로 유가가 크게 오르내리며 석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석유만큼 경제적·정치적 영향력 대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자원은 아마 없을 거예요.

2025년 기준 우리나라 석유·가스 수입액은 1225억 달러, 한화로 약 180조 원에 달했죠. 국가 전체 수입액의 19%, GDP의 약 7%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예요. 나라 전체가 벌어들인 부의 상당 부분을 에너지 자원 조달에 투입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과거부터 지금까지 국제유가는 경제 성장과 물가, 기업의 수익과 가계의 부담, 나아가 외교와 군사 전략까지 결정하고 있어요. 오늘날 석유를 빼놓고 거시 경제와 국제 정세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석유 수요가 감소한다는 착각
그럼에도 석유가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석유에 대한 몇 가지 오해에서 비롯돼요. 가장 일반적인 오해는 석유는 쇠퇴 중인 에너지원, 혹은 수요가 감소하는 자원이라는 인식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인식과 달리 세계 석유·가스 수요는 매년 증가하고 있어요. 2000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연간 기준 석유 소비량이 감소한 적이 없었어요. 유가는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지만, 수요는 유가 변동과 상관없이 꾸준히 늘어온 거예요.

세계 원유 소비량 변화(대륙별 구분, 2000~2024년), Energy Institute(2025)


재생에너지가 석유 소비를
바로 줄이지 못하는 이유
석유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재생에너지가 증가하면 석유 소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인식이에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해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하고, 석유의 시대가 곧 끝날 것이라고 여겨지죠.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앞서 말했듯 석유 수요는 재생에너지와 관계없이 여전히 우상향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바로 재생에너지와 석유는 쓰임이 달라서 서로의 대체재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이 우리가 쓰는 전기는 대부분 석유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그러나 석유를 이용한 발전량 비중은 총발전량의 3~4% 수준이에요. 대부분의 전력은 석탄, 가스, 원자력으로 생산되고 있어요.

석유의 가장 큰 용도는 차량, 선박, 항공기 등의 연료로 쓰이는 거예요. 수송용 연료로 전체 석유의 약 50~60%, 그다음으로 플라스틱, 섬유, 화장품 등 석유화학제품의 원료로 약 20%가 소비돼요. 그리고 남은 일부가 산업용, 난방용 연료나 기타 용도로 활용되죠.

반면 재생에너지는 대부분 발전용으로 쓰여요. 재생에너지원 중 비중이 가장 큰 것은 태양광인데요. 이 태양광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지만, 항공기와 선박의 연료는 되기는 어려워요. 풍력도 전력을 생산할 수는 있지만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석유화학 제품이나 아스팔트 도로를 대체할 수 없어요.

재생에너지와 석유는 마치 ‘장화와 하이힐’처럼 용도가 판이하게 달라요. 하나는 주로 발전용으로 사용되고, 다른 하나는 운송용 연료이자 각종 제품의 원료로 사용돼요.

전기차의 영향이 제한적인 이유
오늘날 석유 수요를 줄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전기차예요. 그런데 전기차 역시 석유 수요를 크게 줄인다고 보기 어려워요. 엄밀히 말해 승용차의 연료인 휘발유를 대체할 수 있는 건데, 휘발유는 석유 소비량 중 26%에 불과하거든요. 전기차가 승용차를 모두 대체해도, 74%의 석유 수요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해요.

우리나라로 한정할 경우, 석유 총소비량 중 휘발유의 비중은 더 작아요. 202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간 석유제품 소비량 9.6억 배럴 중 휘발유로 소비되는 물량은 9504만 배럴로 약 9.9% 수준이에요. 극단적으로 가정해서 모든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대체되어도 줄일 수 있는 석유 소비량은 전체 수요의 10분의 1에 불과한 것이죠.

석유는 ‘연료’이면서 ‘원료’
마지막으로 석유 수요가 감소하지 않는 이유는 석유는 ‘연료’이기도 하지만 각종 제품의 ‘원료’이기도 하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매일 쓰는 비닐, 플라스틱, 아크릴, 벽지, 장판, 페인트, 단열재, 옷, 신발, 가전제품 케이스, 드론, 사무용품, 주사기, 마스크 등 일상에서 쓰이는 거의 모든 물건이 석유를 원료로 생산돼요. 또한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제조 과정에도 다양한 석유화학제품이 필요하죠.

반도체 패키징 소재와 기판용 재료 등에도 석유화학 소재가 쓰여요. 사실 에너지원으로서의 석유보다 원료로서의 석유가 더 대체하기 어려워요. 더욱이 우리나라는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원료로 소비되는 석유의 비중이 높은 편이죠. 총 석유 소비량의 무려 40% 이상이 원료용으로 소비되는 나프타일 정도예요.


미래는 정확한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요
석유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말은 익숙해요. 그 말에는 석유에 대한 피로감도 있고, 더 깨끗한 미래에 대한 희망도 담겨 있어요. 그러나 희망이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어요. 석유에 대한 오해는 석유가 여전히 세계 경제와 국제 정세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어요.


석유에 더 오래 의존하자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현실을 정확히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숫자를 냉철하게 보면 분명한 사실 하나가 드러나요. 우리는 아직 석유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어요. 석유는 퇴장한 에너지가 아니라,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 에너지예요. 에너지 전환은 이 현실 위에서 출발해야 해요.

📌필진 소개: 안녕하세요. 한국석유공사 정보분석팀에서 석유 시장과 산업, 에너지 전환과 탄소 문제를 연구하는 최지웅입니다. 저는 석유 수급과 에너지 정보 등 다양한 업무를 맡으며 현장을 경험해왔습니다. 여러 방송을 통해 에너지 산업의 변화와 미래를 전한 공로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역사와 경제의 흐름 속에서 에너지 산업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는 힘’인 석유에 대해 짚어보고자 합니다. 지은 책으로는 《2050 에너지제국의 미래》와 《석유 제국의 미래》가 있습니다.

💌 <석유라는 패권>은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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