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대리
👉 지난화 보러 가기
- 1화: 국책은행에서는 어떤 일을 할까?
- 2화: ‘정책금융’을 아시나요?
- 3화: 기업도 ‘내 돈’만 쓰는 건 아니다?
- 4화: 기업이 금융 대출 받는 방법
- 5화: 기업이 ‘대출’ 말고 ‘투자’ 받는 방법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잘 알려진 월스트리트. 이곳의 집값은 어느 정도일까요? 2023년 초에 발간된 보고서에 따르면, 월스트리트가 위치한 맨해튼의 원룸 임대료 중위가격은 월 3천 달러, 한화 기준 약 402만 원에 달합니다.
이렇게 높은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금융기관이 월스트리트로 모이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겠죠. 바로 ‘모여 있어야 힘을 발휘하는’ 금융의 특성 때문이에요. 오늘은 그 이유를 알아볼게요.
기업금융에서는 ‘대면’이 여전히 중요해요
예전에는 직접 금융기관에 방문해서 업무를 보는 게 당연했지만, 요즘은 대면보다 비대면이 더 흔해졌습니다. 계좌이체, 예적금 가입, 심지어는 전세자금대출까지 스마트폰 앱에서 완료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금융’에 한정했을 때의 상황이에요. 기업금융에서는 여전히 직접 만나는 방식이 기본이죠. 큰돈이 오가는 기업금융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대면 만남이 필요하거든요.
기업금융에서는 몇백억 원에서 많게는 몇조 원까지 상당히 큰 규모의 대출과 투자가 일어나곤 합니다. 단위가 클수록 협의할 사항도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산업은행 전 회장은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산업은행에서 LG화학에 5조 원을 지원했는데, 아마 100번은 서로 만났던 것 같다. 수조 원의 돈이 나가는데, 만나서 협의해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업은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해있어요
수익성 높은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기업 고객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해야 합니다. 기업에서 돈이 필요할 때가 언제인지, 어떤 금융상품이 유리할 지 등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동향을 파악해야 하니 잦은 대면 미팅이 필수적이에요.
그리고 기업은 대부분 수도권에 있습니다. 상호출자제한기업 소속 회사 중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는 비율은 74%에 달해요. 왠지 지방에 본사가 있을 것 같은 ‘SK해운’은 서울 중구에, ‘HMM’은 서울 여의도에 본사를 두고 있어요.
본사가 지방이더라도 자금 담당 팀을 서울에 두는 경우도 많아요. 거제에 본사가 있지만 자금 팀은 서울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대표적이죠. 그래서 기업 고객 대상 마케팅이 필요한 대다수 금융기관들도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금융기관끼리는 왜 가까이 있을까요?
그렇다면, 서로 다른 금융기관이 모여 있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기업 금융에 큰 단위의 돈이 들어가는 만큼, 한 금융기관이 아닌 여러 금융기관들이 함께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사례를 함께 살펴볼까요?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 수원을 짓기 위해 만들어진 합작법인 ‘㈜스타필드수원’이 어떻게 자금을 조달했는지 알아볼게요.
㈜스타필드수원은 ‘신세계프라퍼티’와 ‘KT&G’가 2018년 50대 50으로 합작하여 만든 회사예요. 대주주인 신세계프라퍼티와 KT&G가 유상증자에 자금을 투입하였고, 나머지 자금은 산업은행과 국민은행 대출을 통해 조달했어요.
신디케이티드론 형태로 돈을 빌려주기 위해서는 금융회사, 기업, 회계법인 및 법무법인 등과 소통해야 합니다. 함께 돈을 빌려줄 차관단(Syndication)을 구성하고, 상황에 맞게 조건을 협의해서 계약서를 작성하게 돼요.
금융기관들끼리 모여 있어야 딜에 참여하거나 조건을 협의하기가 수월하겠죠. 투자도 마찬가지예요. 투자 전에 금융기관들은 기업 가치를 추정하는 등 여러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여러 기관들이 모여 있어야 투자 협의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어요.
수많은 이해관계자를 만나야 해요
물론, 금융기관에서 대출과 투자만 하는 건 아닙니다. 채권을 발행해서 자금을 조달하기도 하고, 기업 구조조정 업무도 담당하는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어요. 이 중 한 가지 케이스를 더 알아볼게요.
최근 뉴스에서 ‘대우조선해양’이 ‘한화’에 인수됐다는 소식이 있었죠.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 7월 영업손실 3조 원이라는 충격적인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손실에 최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정부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었어요.
2015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에 자금 수조 원이 투입됐고, 질긴 인연 끝에 2023년 한화에 인수돼 ‘한화오션’으로 새 출발을 시작했어요. 이렇게 구조조정 기업이 새 출발을 준비할 때, 금융기관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먼저,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한 곳에서만 돈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해요.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대기업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려 기업을 운영합니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에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면, 채권단(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은 모여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선택합니다. 기업과 채권단이 협의하여 기업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워크아웃’을 선택할 수도 있고, 대우조선해양처럼 M&A를 통해 매각할 수도 있어요.
대우조선해양의 주된 의사 결정권자는 총 12개의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채권단, 회계법인과 법무법인, 정부 부처 그리고 국회였어요. 채권단에는 농협은행, 국민은행과 같은 은행들과 방위산업공제조합까지 포함돼 있었죠.
최소 주 1회 이상은 법률적 리스크, 회계적 영향 등 여러 방면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은 국가 전체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산업은행에서는 정부, 국회와 긴밀하게 소통해야 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채권단을 설득하는 일이었습니다. 구조조정의 성패는 채권단에 달려있기 때문이에요. 구조조정을 위해 채권단이 일부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지, 신규 금융지원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또 설득하는 일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었어요.
다행히 기나긴 협의 끝에 대우조선해양은 ‘한화오션’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거제 사업장 앞의 길 이름도 ‘대우조선해양로’에서 ‘한화오션로’로 바뀌었죠.
여의도에 금융기관이 많은 이유예요
수많은 금융기관이 여의도에 위치해있고, 서울시는 글로벌 톱5 금융도시라는 목표를 세우고 여의도 금융중심지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 도쿄, 상하이, 선전 등 동북아 글로벌 도시와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금융의 집적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와요.
*2023년 3월 기준 GFCI 순위 1위 뉴욕, 2위 런던, 3위 싱가포르, 4위 홍콩
마지막 원고를 보내며, 언젠가 한국의 금융 중심지도 뉴욕의 월스트리트, 런던의 시티오브런던과 어깨를 나란히 하길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국책은행에 사람 있어요>를 읽어주신 구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