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와 배터리, 역사는 반복된다

글, 강희종

📌필진 소개: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1999년부터 기자로 일하고 있어요. 서울전자신문, 아이뉴스24, 디지털타임스를 거치며 인터넷, 통신, 미디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정보기술(IT)과 전자 분야를 오래 출입했어요. 아시아경제신문에서 산업부를 거쳐 국제부장, 경제부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에너지 분야 전문 기자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에너지 산업을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펴낸 책으로는 ⟪배터리워⟫가 있습니다. 

“올해 테슬라에 공급하는 물량이 늘면서 공장 가동률이 3배나 올라갔습니다.”


얼마 전 국내 한 이차전지 소재 기업의 임원을 만났을 때 들었던 얘기입니다. 당시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이후 전기차 기업들의 실적 발표를 접하며 과장된 얘기가 아니었음을 알게 됐어요. 올해 2분기 테슬라는 예상치를 7만4000대 초과한 48만126대의 차량을 인도했어요. 국내에서도 기아가 올해 상반기 역대 최고치인 7만2078대의 전기차를 판매했고요.

전방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차 판매량이 급증하니 ‘후방 산업’인 배터리 기업들도 덩달아 바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컴컴한 동굴을 걷는 것 같던 배터리 산업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배터리 산업이 ‘캐즘’을 겪고 있을까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배터리 업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됐던 단어 하나를 꼽자면 ‘캐즘(chasm)’일 겁니다. 캐즘이란 일시적인 성장이나 수요 정체를 의미하는 마케팅 용어예요. 2020년대 초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전기차 시장이 2023년 말을 기점으로 갑자기 꺾이며 배터리 관련 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어요. 사람들은 이를 ‘캐즘’이라고 불렀죠.

저는 배터리 산업이 현재 겪고 있는 상황을 캐즘이라고 정의하는데 동의하지는 않아요. 일반적으로 캐즘은 수요 측면에서 일어나지만 최근 몇 년간 전기차 시장이 보인 정체는 실제 수요가 변했다기보다는 각국의 정책 영향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하기 때문이에요.

기름값 상승이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에 미친 영향
올해 상반기 전기차 시장에 반짝 온기가 도는 것 역시 외부 변수 때문이에요. 이 중에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어요.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과 배터리는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바로 석유 때문입니다. 미국이 이란을 침공하자 전 세계 원유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감이 고조됐고, 해협이 막히자, 원윳값이 치솟았어요. 전쟁 이전 배럴당 70달러 달러 중반이었던 미국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100달러를 훌쩍 넘겼습니다. 휘발유, 경유 등 석유 제품의 가격도 폭등했어요. 미국 휘발윳값은 한때 갤런당 6달러에 육박했습니다. 보통 미국에서는 갤런당 4달러를 넘으면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다고 해요. 우리나라는 석유 제품 가격이 급등하자 약 30년 만에 석유 최고 가격제를 실시했죠.

기름값이 오르자, 소비자들은 다시 전기차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전기차가 약간 비싸더라도 장기적으로 경제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실제로 시장조사기관인 SNE리서치가 올해 4월 고유가 상황을 고려한 차량의 총소유비용(TCO)을 분석한 결과, 휘발유 가격 2,000원을 가정할 때 ‘스포티지’의 유지비는 10년간 총 6500만 원인데 비해, EV5는 4400만 원으로 2000만 원 이상 적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다시 말해, 올해 상반기 전기차 판매량이 회복세를 나타낸 것은 석윳값 급등 영향이 컸어요. 배터리 기업들에게는 호재였고요.

석유와 배터리, 애증의 관계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석유와 배터리는 애증의 관계라는 사실 말이죠. 전기차에 들어가는 리튬이온배터리는 알고 보면 1970년대 있었던 오일쇼크, 즉 석유파동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50여 년이 지나 또 석유 가격이 치솟자, 다시 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는 상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죠.

스탠리 휘팅엄 뉴욕주립대 교수는 리튬이온배터리의 원리인 ‘인터컬레이션(intercalation)’ 현상을 처음 발견해 2019년 노벨화학상을 받았어요. 인터컬레이션은 층상 구조(원자들이 평면 모양의 판을 이루고, 이 판들이 시트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를 지닌 물질에서 이온이나 원자가 삽입하는 현상을 말해요. 휘팅엄 교수가 인터컬레이션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70년대 초 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엑슨모빌의 연구원으로 있었을 때예요.

엑슨모빌은 휘팅엄 교수의 연구 성과를 보고받자마자 특허를 등록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당시 석유파동을 겪은 엑슨모빌은 석유화학 기업에서 벗어나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던 때였어요. 휘팅엄 교수의 연구는 이 같은 회사의 비전과 딱 맞아떨어졌던 것이죠.

석유화학에 기반을 둔 배터리 기업들
지금도 배터리 기업 중에는 석유화학에 기반을 둔 곳이 많아요.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 SK온은 SK이노베이션 E&S를 모태로 하고 있어요. 배터리를 이루는 소재 중 상당수는 석유화학 공정에서 나와요. 석유화학 기업이 진출하기에 수월하죠.


배터리 사업은 이런 석유화학 기업에는 일종의 보험일 수 있어요. 지금 우리는 하루도 석유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의존하고 있어요.

석유 소비는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기간 없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가 누리는 의식주 중 많은 것들이 석유에서 나오고 있죠. 이번 중동 전쟁으로 석유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깊게 파고들었는지 많은 분이 깨달았을 거예요.

하지만 석유는 유한한 자원이에요. 또 기후 위기에 대비해 화석연료를 줄여야 하는 전 세계적인 숙제를 안고 있어요. 석유화학기업이 언제까지 석유에 미래를 기댈 수는 없어요. ‘캐즘’의 터널을 건너고 있지만 배터리의 미래를 절대 어둡지 않게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배터리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AI 시대에 더 중요해질 ESS 시장에서의 기회와 더불어, 배터리가 왜 안보자산으로서 주목받고 있는지를 짚어볼게요. 나아가 산업 경기를 보여주는 지표들을 살펴보면서, 배터리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 <다시 보는 배터리>은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경제 공부, 선택 아닌 필수

막막한 경제 공부, 머니레터로 시작하세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프로모션, 이벤트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

잘 살기 위한 잘 쓰는 법

매주 수,금 잘쓸레터에서 만나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광고성 정보 수신

제휴 콘텐츠, 프로모션, 이벤트 정보 등의 광고성 정보를 수신합니다.
📩 머니레터를 놓치지 않고 받아보려면? 👇

경제를 보는 눈을 기르는 데는 머니레터를 꾸준히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답니다. 그런데 종종 "머니레터를 구독했는데도 메일이 오지 않는다", "어제는 머니레터가 도착했는데, 오늘은 머니레터가 오지 않았다"는 문의가 들어오곤 해요. 이를 방지하기 위한 3단계를 알려드릴게요.

첫째, 어피티 발신자를 주소록에 추가하고 VIP 또는 중요 메일로 지정해주세요.

👆 위 이메일 주소를 복사해 주소록에 추가해 주세요.
위 이메일은 어피티가 독자님에게 머니레터를 발송하는 공식 발신자 이메일입니다.

둘째, 받은편지함에 없다면 스팸 메일함과 프로모션함을 확인해주세요.

셋째, 회사 이메일이라면 Gmail, 네이버 등 개인 이메일 사용을 권장합니다.

회사 및 기관 메일은 내부 보안 정책에 따라 메일이 정상적으로 수신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