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우지우
잠깐, <돈구석1열> 지난 에피소드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이 링크에서 ‘국가 부도의 날 1편’을 확인해주세요!
2주 뒤면 대한민국이 보유한 외환이 바닥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시현(김혜수 분). 시현은 급히 한국은행 총재와 대면한 뒤, 청와대로 찾아갑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하죠.
“나라가 망하게 생겼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저들도 무슨 액션이 있겠지…”
‘나라가 망한다’. 언뜻 들어도 무섭고 섬뜩한 말입니다. 그런데 잠깐, 좀 더 들어가 봅시다. 나라가 망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나라가 망하는 게 정말 나의 삶과 연관이 있을까요?
국가 부도,
디폴트와 모라토리엄
영화 제목의 일부이기도 한 ‘부도’는 쉽게 말해 ‘빚을 제때 갚지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개인이 빚을 갚지 못하면 개인 부도, 기업이 빚을 갚지 못하면 기업 부도, 국가가 빚을 갚지 못하면 국가 부도라고 부르죠.
국가는 공공목적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거나 시중의 통화량을 조절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곤 합니다.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이라서 ‘국채’라고 해요. 채권은 빌릴 채, 문서 권으로 이루어진 한자어입니다. 말 그대로 ‘빚 문서’예요.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의 현금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돈을 빌리는 거죠.
빌린 돈은 채권의 만기일에 갚아야 합니다. 이때 원금과 함께 이자를 주는데, 이자율 즉 금리는 채권의 신용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채권의 신용도는 채권을 발행하는 주체(국가, 기업 등)의 신용도와 채권의 발행목적에 따라 정해져요.
채권의 신용등급이 높을수록 금리는 낮아지고, 신용등급이 낮을수록 금리가 높아집니다. 우리와 같은 개인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신용도가 낮을수록 대출금리가 높게 적용되는 것과 같아요.
국채는 국가라는 강력한 파워를 가진 주체가 발행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습니다. 하지만, 국채도 결국 채무계약이기 때문에 채무를 제때 이행하지 못하는 ‘채무 불이행’이 종종 발생하곤 해요.
채무 불이행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 “지금 당장은 못 주는데, 조금만 시간을 주면 갚을게. 좀만 믿고 기다려줘”
- “나 빌린 돈 못 갚아”
1번을 모라토리엄(Moratorium), 2번을 디폴트(default)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2번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죠.
국가는 채무불이행 상황에서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 선언을 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국가의 신뢰도에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힙니다. 그래서 이 상황까지 절대 가지 않도록 조심하긴 하는데요. 그렇다고 드물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2015년 그리스, 2017년 베네수엘라, 2020년 레바논이 디폴트를 선언했으니까요.
1997년, 한국은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를 선언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당장 외국에서 빌린 돈을 갚을 수 없게 생겼으니까요. 이때 등장한 것이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 국제통화기금)입니다.
당장 급하게 쓸 돈이 필요한 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기금이죠. 모라토리움이나 디폴트를 선언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IMF에 손을 벌리기로 했던 겁니다.
1997년 12월 4일, IMF 이사회는 대한민국의 자본시장을 세계에 개방한다는 조건 아래, 한국에 210억 달러를 빌려주는 건을 승인합니다. 이때 IMF의 구제금융 선언으로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AA- (투자 적격)에서 BBB-(투자 부적격 등급)까지 격하됩니다. 디폴트나 모라토리엄이 선언되었다면 그 여파는 더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IMF와 2020년
IMF는 우리나라에 ‘신용’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큰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관리되지 않은 신용 위험이 개인과 기업에 어떤 피해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몸소 체험한, 아프지만 귀중한 경험이죠.
지금 코로나19 사태로 대한민국의 재정 상태가 큰 이슈입니다. 경제 뉴스에 ‘추경(추가경정예산)’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이기도 하죠. 우리나라의 재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이 추경에 필요한 돈을 국채의 발행, 즉 국가의 신용을 통해 마련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나라의 경제를 살리려는 목적으로 정부가 돈을 빌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 변화에 둔감해져서는 절대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IMF라는 귀중한 경험을 통해 국가의 신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