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관세 이후의 세계 2025년 2월 13일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부과 결정이 담긴 각서에 서명했어요. 이 각서에 따르면, 다른 나라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모두 조사해 국가별로 상호주의 견지 차원에서 맞춤형 관세를 부과한다는 건데요. 비관세장벽에는 부가가치세, 환율, 보조금 등 관세 외의 모든 것이 포함돼요.
미국 정부는 1조 달러(2024년 기준)에 이르는 자국 무역적자의 원인으로 다른 나라들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꼽고 있어요. 상호관세가 도입되면 고용이 증가할 것이고, 물가는 상승하겠지만 곧 하락할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죠.
그러나 이런 장밋빛 예측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관세 부과를 둘러싼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이를 의식한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은 상호관세 부과 대상은 대미 무역흑자가 많은 10~15개국이 될 것이라며, 나머지 약 100개국은 면제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죠. 헤셋 의장은 관련한 지난 3월 19일 Fox와의 인터뷰에서 ‘매우 명쾌하고 상세하며 이해하기 쉬운 상호관세 부과 방식이 4월 2일이면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어요.
4월 2일이 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 광범위한 관세 정책을 발표했어요.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경한 수준이었어요. 이 조치는 쉽게 말하면 ‘이층 구조’로 되어 있어요.
- 1층엔 모든 수입품에 일괄 10% 관세를 부과하는 보편관세(universal tariff)가 있고요
- 2층엔 미국에 흑자를 내는 57개국에 한정해 그 나라들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율과 비관세장벽을 고려해 나라별로 다른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를 부과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라별로 1층은 다 같은데, 2층부터는 높이가 제각각이죠.
아, 기본 관세는 4월 5일부터, 상호관세는 4월 9일부터 적용하기로 시차를 둬 각국과의 협상 문을 열어놨어요. 우리나라에는 25% 상호관세가 부과됐고요. 다행히도(!) 기존 고율 관세 부과품목(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 구리, 의약품, 반도체, 목재 등 전략품목엔 부과 유예(곧 하겠다고 합니다)를 했고, USMCA 원산지규정 준수 품목에는 기본적으로 관세가 부과되지 않아요.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EU 등 다른 국가들에 ‘보복은 더 큰 갈등을 부르니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했어요. 이렇게 일방적인 관세 부과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소지가 있고, 적어도 중국이나 EU는 자존심이 있어 가만있을 수 없기 때문에 무역 분쟁을 촉발할 위험성도 커요. 결국 4월 4일 중국은 미국이 부과한 것과 같은 34%로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어요.
4월 3일부터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와 핵심 부품에 대해 25% 관세 부과가 시작됐어요. 4월 4일에는 한 달간 유예되었던 캐나다와 멕시코산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도 시행하되, USMCA 원산지 규정 준수 품목은 무관세가 유지(비준수 품목은 12%)돼요.
4월 2일 상호관세 발표 직후 캐나다의 마크 카니 신임 총리는 그간의 강경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4월 28일 총선 이후 미국과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의사를 내비쳤어요. EU도 강력 보복 조치를 언급하면서도 동시에 협상도 병행하겠다고 했어요.
트럼프가 관세에 집착하는 이유 자유 무역으로 인해 뺏긴 미국 제조업의 일자리를 미국 보호주의로 되찾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프레임은 미국 대선 과정에서 러스트 벨트(한때 미국 제조업의 중심지였으나, 미국의 남부 및 해외로 기업이 이전하면서 쇠퇴한 지역)의 저소득 백인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끌어낸 바 있어요. 특히 관세는 일반 대중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워서, 공화당을 노동자 정당으로 포지셔닝하는데도 유용했고요.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세 가지 용도, 즉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보복, 세수 확보를 위한 카드, 다른 나라와의 협상 도구로 쓰고 있어요. 이 세 가지는 상호 보완적이고 병립이 가능해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 국가의 양보를 끌어내는 협상 도구로써 관세의 효과를 느끼고 있어요. 그 배경에는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가진 군사 대국이자 기축통화국인 미국만이 가진 힘이 있죠. 대통령이 의회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쓸 수 있는 무기라는 점도 트럼프가 관세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미국에서 대통령 재량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국내법은 1974년 무역법 301조, 슈퍼 301조, 1962년 무역확장법 232조, IEEPA, 338조 등 적지 않아요.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는 협상 도구 그 이상이라고 봐야 해요. 미국 기준에서 볼 때 낡은 질서를 깨고 MAGA를 필두로 한 새 질서를 세우는 ‘국가 개조 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보는 거예요. 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스스로 구축해 온 세계질서가 중국이나 동맹과 우방을 이롭게 한 반면, 미국의 희생을 자초했다는 판단에 기반해요.
그래서 패권국가 ‘미국의 세계 전략은 실패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거죠. 그 결과 턱밑까지 추격해 온 중국을 누르고 미국의 경제와 안보를 튼튼히 하려면, 관세 부과를 통해 자국으로 자본을 끌어들여 미국의 제조업을 다시 육성시키는 방법이 유효하다고 본 거예요.
MAGA를 실현하기 위해 관세를 이용하다니 독특한 시도라고 볼 수 있어요. 외국산 수입제품에 (일종의 세금인) 관세를 많이 부과하면 세수가 느는 동시에 수입은 줄고 국내 생산은 늘고, 그러면 외국 기업도 관세장벽을 피하고자 미국으로 공장을 옮겨 미국 제조업이 부활한다는 논리예요. 이 효과를 촉진하기 위해 감세 패키지도 같이 제시하는데요. 지난 집권 당시 트럼프는 법인세와 소득세를 대폭 인하했는데 현 정부에서 더 깎아주려 해요.
관세, 환율, 안보를 저글링하다 미국은 관세와 환율 그리고 안보를 엮는 방안도 검토 중이에요. 달러화가 기축통화라서 달러와 미 국채에 대한 해외수요가 많다 보니 늘 달러화는 강세가 되고 미국의 무역적자를 초래한다는 건데요. 더욱이 미국의 관세율은 다른 경쟁국보다 낮아 자국 제조업 경쟁력이 약해졌다고 보고 있어요.
하지만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장점은 유지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달러 패권은 유지하면서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높일 방법을 고안했어요.
- 먼저, 미국이 동맹 A국에 ‘안보 우산’을 제공(미국 군사력으로 제3국 안보 보장)해 주고 그 대가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거죠.
- 그다음에 A국에 ‘미국이 발행한 100년 만기 국채를 무이자로 사들이라’고 요구, 미 국채 시장의 안정성은 유지(미 국채 금리 안정, 미국은 국채 이자 비용 절감)하고 달러화 가치는 떨어뜨리려고 시도해요.
이렇게 해서 A국 생산품의 수입은 줄고 미국의 수출이 늘어나길 바라는 거죠. 만일 A국이 이 요구를 수용하면 관세율을 깎아 주겠다고 합니다. 이처럼 미국은 감세와 관세와 안보 등 여러 개의 공을 저글링하는 고난도 정책 조합을 시도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 보여요.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의 관세 정책과 이를 둘러싼 배경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다음 시간에는 미국의 관세 정책의 특징, 그중에서도 ‘감세-관세 혼합 정책’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 필진 소개: 안녕하세요, 대구대학교 경제금융학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김양희입니다. 무역·통상 전문가로서, 외교부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등을 거치며 국제통상과 경제안보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국제 정세와 통상 환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복잡한 흐름을 곰곰 짚어보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