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돈 이야기 

머니칼럼

돈의 인문학[돈구석 1열] “모든 투자자는 한국을 떠나라, 당장” 영화 🎥 <국가부도의 날>



1995년, 우리나라는 국민소득(GDP) 1만 달러 돌파가 큰 이슈였습니다. 1만 달러가 당시 한국 사회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였거든요. 

세계은행(WB)은 1인당 GDP가 1만 2,375달러 이상인 국가를 ‘고소득국가(high-income countries)’로 분류하는데 그에 거의 근접한 금액이니까요. 

한국전쟁으로 세계의 원조를 받던 나라가 이제 먹고살 만해졌다는 거죠.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잘 사는 대한민국’의 환상에 젖어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1997년 어느 날. 한국은행의 통화정책팀 한시현 팀장(김혜수 분)은 급하게 한국은행 총재를 찾아가 경고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환율 800원을 방어하기 위해 쓰이는 돈이 1주일 20억 달러이고, 일주일 뒤면 국고에 남은 달러가 90억 달러 미만으로 떨어지는 ‘국가 부도’의 상태에 빠진다고 말이죠.


‘환율을 방어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환율이 국가에 위험이 되는 무기라도 되는 걸까요?



환율이 뭐길래?


환율은 두 국가 간의 통화 교환 비율을 뜻합니다. 우리에게는 미국 달러의 가치를 원화로 환산하는 ‘원·달러’ 환율이 가장 익숙하죠. 

돈의 상대적인 가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경제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에게 환율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예시를 통해 확인해보죠. 


2020년 9월 17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173원입니다. 1달러를 갖기 위해 우리 돈(원화) 1,173원을 내야 한다는 뜻이에요. 

이 환율로 계산하면, $399인 애플 아이폰 SE를 사기 위해 우리 돈으로 약 46만 8천 원을 내면 됩니다. 

만약 원·달러 환율이 800원이라면 아이폰 가격은 약 32만 원으로 약 15만 원 가까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번엔 기업으로 사례를 확장해볼게요. 환율 100원 차이는 수출, 수입기업에 엄청나게 큰 이익 차이를 가져옵니다. 

1달러가 1,100원일 때는 100만 달러가 1,100,000,000(11억)원이고, 1달러가 1,200원일 때는 100만 달러가 1,200,000,000(12억)원이죠. 

100원 정도는 그러려니 할 수 있어도 1억 원씩, 매달 수십 건이 결제된다면 문제가 달라질 거예요. 


어떻게 보면 환율의 수치만 변경되었을 뿐인데 그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합니다. 개인과 기업 입장에서도 차이가 이렇게 큰데, 국가 단위에서는 더 큰 변화가 있겠죠.

그러다 보니, 나라 경제를 신경 써야 하는 정부는 이 환율에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어요.



환율 800원을

사수해라


1997년 당시만 해도 달러의 원화 가격이 800원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이 환율 수치를 유지하고 싶어 했어요.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에 낮은 환율도 한몫했었거든요. 환율이 1달러에 1천 원이라면, 국민 소득 1인당 800만 원을 달러로 환산했을 때 8천 달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환율이 800원이라면 국민 소득은 1만 달러가 되죠. 


정부는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위해 낮은 환율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원화의 가치가 높고(원화 강세), 달러의 가치가 낮아지도록 시장에서 달러를 팔고 원화를 사들였어요. 이게 영화에서 말한 환율 방어고, 이렇게 환율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는 시스템을 고정환율제라고 합니다. 

당시엔 100% 완전한 고정환율제는 아니었지만, 매일 정부가 환율을 고시하는 방식이었어요. 결국 국내 달러 보유금액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동시에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돈을 빌려 동남아에 투자하던 중이었어요. 1997년 연초부터 외환위기로 도미노처럼 무너진 그 동남아 말이죠. 

빌린 돈으로 투자했는데, 투자금을 회수할 길이 사라졌습니다. 상환 시점은 계속 다가오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요.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마련하는 ‘외화준비금’은 한참 부족한 상황. 

1993년에 금융시장을 일부 열면서, 빌려오는 건 쉽게 만들어 놓고 빌려오는 만큼 쌓아와야 하는 '외화준비금'은 1993년 이전과 똑같은 수준을 유지했던 거예요. 


시간만 더 주어지면 갚을 수 있었을 텐데,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이걸 ‘유동성 위기’라고 해요. 

돈을 못 버는 게 아니라 돈이 순간적으로 못 돌아서 생긴 위기죠. 돈을 못 갚은 기업은 바로바로 쓰러져 나갔습니다. 

한국 기업 주식 구매로 투자한 투자자들도 한국 주식을 마구 팔았어요.



IMF를 만나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부도의 날 일주일을 앞두고, 재정국 박대영 차관(조우진 분)은 IMF와의 협상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이에 시현이 반대 의견을 내놓으면서 갈등을 겪게 되죠. 


돈을 갚아야 하는데 달러가 부족해 갚지 못하며, 이미 줄도산이 시작된 상황. IMF의 구제 금융을 받으려면 IMF의 구제안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과연 영화에서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그려냈을까요? 


한편, IMF 지원금으로 외환위기가 ‘극복’된 것은 아닙니다. 나라에 들어올 ‘새로운 돈’이 필요했어요. 

이때 처음 발행하게 된 게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입니다. 외화준비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발행하는 채권이죠. 


당시 우리나라의 부도 사실은 이미 세계에 알려졌지만, 외평채에 대한 수요는 의외로 높았습니다. 

그렇게 1998년 4월, 처음으로 40억 달러어치의 외평채(발행금리 9%)를 발행했습니다. 

외화가 부족해 돈을 못 갚고, 돈을 단기에 못 갚아 유동성 위기로 부도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기금으로 외화를 관리하기 시작한 거죠. 



연착륙은

실패했지만


환율제 역시 이 시기를 계기로 바뀌었습니다. 기존의 고정환율제는 정부가 경제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그 방향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환율을 고정시키려는) 여러 투기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하거든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지 소로스의 영란은행 환율 공격이 대표적인 사례죠. IMF 때, 우리나라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IMF 이후 우리나라는 변동환율제를 도입합니다. 국가에서 정하는 환율을 포기하고, 시장에서 정해지는 환율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죠. 

지금에야 변동환율제가 당연하지만, 사실 경제 제도는 시대상과 연결이 되어 있어서 어떤 제도가 맞고 틀린 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 경제는 제도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OECD에 처음 가입하기도 했고, 금융시장이 전면적으로 개방되던 시기기도 하죠. IMF는 이러한 제도의 연착륙이 실패한 결과라고 보는 지적이 많아요. 


2020년인 지금도 경제 위기 때마다 IMF가 소환되곤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외환위기와 ‘경제 불황’은 큰 상관이 없고, 오히려 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정부의 무지가 불러온 면이 커요. 

경제정책이 새롭게 도입될 때, 우리가 항상 정부의 방향성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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