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돈 이야기 

머니칼럼

돈의 인문학[라떼극장] 회계장부 메이크업, (삐빅-) 범죄입니다! 🚨



경제 뉴스를 보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단어, 분식회계

많은 경제용어가 그렇듯 분식회계도 ‘뭔가 회계를 어떻게 하는 것 같은데… 떡볶이, 튀김은 아닐 테고… 나누는 건가.’ 정도의 느낌만 들죠. 

기업인들이 잡혀들어가는 거 보면 분명히 범죄는 범죄인데 말이죠.


최근에 보도된 분식회계 관련 뉴스 몇 개만 가져와 볼까요?



최근 1년 사이에도 이렇게 많은 분식회계 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분식회계는 기업의 대표적인 부정부패 형태 중 하나로,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 기업들이 속절없이 무너진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분식회계를 더 잘 이해하려면 두 대기업의 사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1998년부터 불거진 대우그룹의 41조 원 분식회계 사태와 5년 전,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일명 삼바 사태)을 알아볼게요. 

지금 한창 시끄러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불법 승계 수사가 바로 삼바 사태랍니다.



설마 대우가 망하겠어?

망했습니다!


지금 한국 경제는 주식시장 시가총액 10위 중 절반이 삼성그룹 소속일 정도로 삼성의 독주체제지만,

20년 전까지만 해도 재계 1위 하면 현대였답니다. 

1992년 일이지만 그룹 회장(故 정주영)이 대선에 출마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의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고, 현대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말 대통령이 됐죠. 


그리고 1위 현대에 이어 바로 그다음은? 지금은 사라진 대우그룹이었습니다.



🎬Scene #1. 

1998년, 

대마불사 재계 2위


대우: 크흑… 그러니 우리가 망했을 때 한국 경제에 얼마나 충격이 컸겠니. 지금 갑자기 LG나 SK 같은 회사들이 망한다고 생각해 보라고.

회사들: (????) 아, 왜 그런 불길한 이야기에 우리 이름을 걸고넘어져요.

대우: 여러분, 다 순식간이야. 정신 바짝 차려요. 우리 대우그룹 한창때는 계열사만 41개에 해외법인은 396개나 됐다고.


현재 삼성그룹의 계열사는 비상장회사를 포함해 59곳(2020년 기준), 해외법인은 489곳(2016년 기준)입니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과 2020년 사이, 한국의 경제 규모는 2.5배가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삼성그룹의 회사 규모와 당시 대우그룹의 회사 규모가 비슷하죠?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였어요.


그런데 왜 현대는 안 망하고 대우만 망했을까요? 

설마 외환위기 당시 현대만 지원해주고 대우는 안 해준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우그룹이 망한 건, 대우 특유의 공격적 경영전략과, 세계 1위급 분식회계 규모 때문입니다.



🎬Scene #2.

기네스북에 오른 

41조 원짜리 분식회계


어피티: 분식회계(粉飾會計)라는 단어 말인데요, 한자를 그대로 풀어보니까 대충 ‘여름에도 보송보송하게 밀착되는 수분에센스 함유 퍼펙팅 파운데이션(21호) 회계’ 정도 되던데, 대체 이게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 회계장부를 거짓말로 보기 좋게 꾸며놨단 뜻이랍니다.

어피티: 저 이 단어의 용례 아주 여러 가지 의미로 굉장히 지적하고 싶은데요…?

선생님: 그래서 요새는 간단하게 ‘회계 부정’이라든가 ‘회계사기’, ‘회계장부 조작’이라고 한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분식회계란 말이 더 많이 쓰이고, 예전에 작성된 중요한 자료들에도 다 '분식회계'라고 쓰여 있어서 정확한 뜻을 알고 있기는 해야 해요.

어피티: 회계장부 조작은 듣자마자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왜 분식회계 같은 말을 쓰나요?

선생님: 일본식 조어랍니다. 원체 법률용어가 일본에서 많이 왔다 보니, 아직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어피티: 그러니까 1998년에 대우그룹이 세계 최고의 회계장부 사기를 쳤다는 뜻이네요?

선생님: 정답!


한 가정의 가계부만 해도 식비, 주거비, 공과금, 의류 및 잡화, 문화생활, 교통비, 통신비 등등 항목이 어마어마한데 계열사를 수십 개씩 거느린 대기업의 회계 장부는 얼마나 복잡하겠어요?

그만큼 빈틈없이 꼼꼼하게 찍어 바를(?) 곳이 많았겠죠. 

그런데 이 복잡한 회계장부를 도대체 왜 조작하는 것일까요. 



🎬Scene #3.

아주 간략하게 보는

범죄의 현장


사장님: 올해 실적 보고해봐!

재무팀장: 영업손실이 5천억 원 났습니다. (재무룩)

사장님: 영업이익이 2조 원 났다고 해!

재무팀장: 네?

사장님: 아, 장부에서 건드릴 수 있는 데는 다 건드려서 그렇게 만들어 놔!

재무팀장: 하, 하지만…

사장님: 우리가 손해를 그렇게 봤다고 해봐! 주가가 얼마나 내려갈 것이며, 은행에서 우리한테 대출해주겠어? 정부도 지원은 못 해줄망정 구조조정을 해야 하니 어쩌니 할 거고, 기업 이미지도 나빠질 텐데. 내년에 더 많이 벌어서 메꾸면 되잖아!


…라는 상황을, 1998년 대우그룹은 거의 30년간 40조 원어치를 해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망하기 직전의 회사가 회계장부 조작으로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은 돈으로 규모를 지금의 삼성그룹만큼 불려놨다는 거예요.



회계 조작이 

정말 나쁜 이유 


이런 회계 조작이 중범죄인 이유는 다른 기업들도 물귀신처럼 끌어당겨 함께 망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많은 회사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습니다.

상장기업이라면 주식도, 채권도 있죠. 대우가 무너지면 대출금 회수가 불가능해진 은행도 쓰러지고, 대우에서 발행한 주식과 채권도 휴짓조각이 됩니다. 

큰 규모의 회사가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부도가 나면 개인투자자들만 어려워지는 게 아니라 큰 규모로 투자를 했던 기관들도 경영에 구멍이 나게 돼요.


당시, 대우그룹에 인수 합병된 회사들도 함께 무너집니다. 

당시 대우는 공격적인 인수합병을 해왔는데, 그 중엔 굳이 대우가 인수하지 않았더라도 알아서 잘 돌아갈, 장래가 유망한 회사들도 많았죠. 

다른 좋은 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던 인재들도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었고, 다른 거래처를 일찌감치 찾아뒀어야 하는 하청업체들도 연쇄 부도가 났답니다.


공정한 시장이라는 생태계를 뿌리째 흔들어버리는 거죠. 1998년 당시 대우그룹의 회계 조작은 아직도 분식회계 규모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답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최근 2~3년,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의 서울구치소 출입이 잦았습니다. 2017년에는 1년 넘게 서울구치소 생활을 하기도 했어요. 


그 배경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있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다른 제약사가 신약을 개발하면 원료와 레시피를 받아 대신 대량생산을 해주는 회사입니다. 

최근엔 신약개발능력과 대량생산능력을 분리하는 추세여서, ‘삼바’ 같은 회사가 점점 크고 있지요.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을 물려받기 위해 저질렀다는 각종 의혹의 핵심에 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재벌 ‘후계자' 같은 것은 원론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① 우리나라는 신분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② 주식회사는 개인의 사적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투자한 주주들의 공동소유이기 때문에)


각종 드라마에 나오는 ‘회장님 셋째아들이지만 후계자인데 신분을 감추고 경영수업을 받는 일’ 같은 건 불법일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은 이야기랍니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 다들 회사를 물려받고 있고, ‘오너 일가’라는 말도 등장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방법은 딱 하나죠. 창업주가 계속 대주주로 있다가 회사를 물려주고 싶은 자식에게 주식 지분을 상속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① 상속세가 어마어마하게 발생합니다. 참고로 그냥 상속세 내고 깔끔하게 승계를 끝낸 기업이 바로 LG입니다.

② 계열사가 수십 개씩 되면 일이 굉장히 복잡해집니다. 그 정도 규모가 되는 회사라면 거액의 투자자들도 많아지기 때문에 단독으로 대주주를 유지하기도 어렵고, 계열사들끼리도 A회사가 B회사 주식을 갖는 등 회사 간 주식 소유도 생겨버려서 어느 회사의 어느 주식을 어떻게 어떤 비율로 물려줘야 하는지 엄청나게  꼬이기 시작합니다.


일명 ‘삼바 사태’는 바로 ②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볼게요.


삼성그룹에서 제일 중요한 회사는 삼성전자입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경영권 승계 당시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삼성전자 지분이 0.6%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어떤 지분을 가장 많이 갖고 있었냐? 바로 제일모직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지분을 23.2% 갖고 있으면서 최대 주주였죠. 


그래서 삼성은 결심합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인수·합병하자!



🎬Scene #4. 

삼~바 삼바 삼바 삼~바

이상하게 더하며 웃는 그대 


어피티: 삼성전자랑 제일모직을 인수·합병하는 게 아니고요?

선생님: 인간적으로 그건 너무 속 보이는 데다, IT기업과 섬유기업… 좀 이상하잖아요...

어피티: 그럼 삼성물산은 괜찮나요?

선생님: 삼성물산은 사업 부문이 다양하고, 삼성그룹의 첫 회사니까 상징적으로 상관없죠. 게다가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이 4.1%나 되니까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되면 삼성전자의 4.1%를 가져가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꽤 큰 대주주가 될 수 있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인수합병을 통해, 삼성전자 주식을 많이 가져가려고 계획한 이재용 부회장. 여기서 문제가 하나 튀어나옵니다.


삼성물산 주식이 총 5개, 제일모직 주식이 총 5개 있다고 쳐봅시다. 두 회사의 주식을 합치면 10개죠.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 5개 중 1개를 갖고 있었습니다. 코스피 기준 한 회사당 지분율 1% 이상 가지고 있으면 대주주로 칩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대주주죠.


하지만 두 개를 1:1 비율로 합쳐버리면 10개 중 1개를 갖게 됩니다. 5개 중에 한 개일 때보다 비율이 반이나 깎이죠. 이러면 곤란합니다. 

합쳤을 때도 이재용 부회장이 대주주 중에서도 최고로 주식을 많이 가진 대주주여야만 합니다. 

그래야 다른 대주주들과 합의를 보지 않아도 중요 사항을 혼자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삼성은 삼성물산 주식의 가치를 깎고, 제일모직 주식 가치는 높이는 방법을 택합니다.


검찰의 기소 내용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제일모직의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즉 ‘삼바’의 회계장부가 부풀려졌다고 합니다. 

자회사 가치가 올라가면 제일모직 가치도 올라가잖아요. 그럼 제일모직 최대주주인 부회장의 재산도 올라가니까요.


이후 삼바의 회사 가치는 4조 5천억 원이나 뛰어오릅니다. 그리고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병합 비율은 1:0.35가 되죠. 

제일모직 주식 5개에 삼성물산 주식 1.75개가 합쳐진 셈이 되어, 이재용 부회장은 총 주식 6.75개 중 1개를 가진 것이니 계속 최대 주주로 남죠.


아직 이 의혹에 대한 최종 판결은 나지 않았답니다. 어쨌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잘 나가고 있고, 삼바 부정 회계 의혹을 처음 수사할 당시 증거를 인멸한 삼바의 임원들은 작년 말 실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제 곧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 결과도 나오겠죠? 

결과가 어떻든 현대 기업에서 회계 장부 조작이 얼마나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사건이랍니다. 


오늘 라떼극장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제 회계 부정과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뉴스가 나왔을 때 건너뛰거나 빠르게 스크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뉴스가 더 흥미롭게 느껴져서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게 되실 거예요. 

경제 뉴스가 어려운 건, 용어와 맥락을 모르는 상태로 현상만 접하기 때문이랍니다. 

맥락의 빈틈을 팍팍 채워, 읽을수록 경제 뉴스가 더 재미있어지는 라떼극장,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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